백광
렌조 미키히코 지음, 양윤옥 옮김 / 모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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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광 (2022 초판)

저자 - 렌조 미키히코

역자 - 양윤옥

출판사 - 모모

정가 - 14500원

페이지 - 316p



끝없이 펼쳐지는 반전의 반전



SNS에서 화재가 되고 있는 작품 [백광]을 읽었다. 2011년에 국내 출간됐는데 이번에 새로운 옷을 입고 재출간되었다. 기출간작임에도 이토록 회자되는 것은 그만큼 작품의 완성도가 높다는 반증인지도 모르겠다. "충격이 연속으로 이어지는 렌조 미키히코표 미스터리의 걸작"이라고 말한 '이사카 고타로'의 말에 백프로 동의한다. 끝없이 펼쳐지는 반전의 반전이 독자를 혼란의 도가니에 빠트린다. 전율을 일으키는 마지막 페이지 그날의 진실에 할 말을 잃게 된다. 격조 높은 미스터리의 완성이랄까. 



전쟁에 파견되어 열대의 남국에서 전쟁포로가 되었던 게이조는 종전 후 지금은 고인이 된 아키요와 재혼하여 지금의 일가를 일구었다. 게이조의 며느리 사토코는 딸 가요의 치과 진료를 위해 치매가 걸린 게이조에게 여동생 유키코의 딸 나오코를 맡기고 집을 나선다. 얼마 뒤. 집에 돌아온 사토코는 네살박이 나오코가 사라진 것을 깨닫고 나오코를 찾아나선다. 그리고 마당에 심어진 능소화 아래에서 흙속에 파묻힌 나오코의 시신을 발견하고 경악에 휩싸인다. 나오코를 죽인 사람은 치매에 걸려 정신이 나가버린 게이조일까?



등장인물이 많고 이 인물들의 관계가 온통 엇갈려 있어 작품을 읽는데 방해가 될 것 같지만 막상 작품을 읽다보면 머릿속에 자연스럽게 가계도가 그려지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그런 점이 놀라웠다. 평소 등장인물이 많은 작품을 꺼리는데 이 작품은 각 캐릭터의 개성과 성격이 명확하게 그려지던 것. 



사건은 단순 명료하다. 네살박이 소녀 나오코의 사망. 이어서 나오코를 죽인 자가 누구인지 등장인물 각자의 시선으로 바라본 사건이 독백으로 이어지는 구성이다. 시아버지 게이조, 며느리 사토코, 남편 류스케, 딸 가요, 사토코의 동생 유키코와 남편 다케히코, 유키코의 불륜남 히라타에 이어 사망한 당사자 나오코까지.... 각자가 바라본 그날의 사건은 다수의 캐릭터 만큼이나 다양한 해석과 추리를 가능케 한다. 



아침드라마 뺨치는 애증과 불륜, 질투와 증오가 소용돌이치는 막장의 진수를 보여준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이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게 마련. 하나의 사건에 대한 각자의 해석이 예상치 못한 반전으로 작용하는 것인데 독백이라는 형식의 정보의 단절이 얼마전 읽었던 [기만의 살의]를 떠올리게했다. [기만의 살의]의 서신이나 [백광]의 독백이나 독자에겐 일방적일 수 밖에 없는 효과적인 방법인 것이다.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은 미스터리의 묘미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진범을 찾아가는 과정은 그리 유쾌하지만은 않다. 가족들을 둘러싼 욕망에 찌든 인간의 민낯을 마주해야 하며 어른들의 잔혹함에 아무런 죄 없는 소녀의 희생을 목도해야만 한다. [기만의 살의]로 클래식한 미스터리의 정수를 느꼈건만 [백광]의 완벽에 가까운 치밀한 설계에 혀를 내두른다. 모든 것이 복선이며 그 무수한 복선들이 모이고 모여 경악의 결말을 그려내니. 내놓으라 하는 일본 작가들의 연이은 칭송이 거짓이 아님을 깨닫게 될 것이다. 





소설 백광은 반전이 백미인 추리소설인 만큼 지금 출판사에서 "범인의 정체에 놀라지 않았다면 전액 환불해드립니다." 환불 이벤트를 진행하고 있다. 자세한 내용은 (@studioodr)에서 확인하기를.



*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도서로 작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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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 세계적인 법의인류학자가 들려주는 뼈에 새겨진 이야기
수 블랙 지음, 조진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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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2022년 초판)

저자 - 수 블랙

역자 - 조진경

출판사 - 세종서적

정가 - 19000원

페이지 - 443p



내 몸속 곳곳에 새겨진 나의 이야기



'대부분의 시신 절단은 시신을 몸통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부위를 5~6개로 자른다. 몸통을 자르려다 보면 먼저 체내 장기들을 모두 제거하지 않는 이상 아주 엉망이 된다. 이 경우에는 내장이 제거 되었고, 몸통은 허리뼈를 가로지르며 갈라졌고 시체 토막들은 쓰레기통 비닐과 분홍색 샤워커튼에 싸여 있었다. 외부 생식기는 잘려 있었고, 머리와 팔, 내장은 발견되지 않았다.' _175p


'각각의 척추뼈는 사망자의 나이, 성별, 신장 등을 알려주며 병리와 질병, 부상에 대해 분명히 설명해준다. 그러나 척추뼈가 법의인류학에서 갖는 가장 큰 가치는 사망 전후로 피해자에게 가해진 외상과 손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_178p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끔찍한 장면들이 저절로 그려진다. 하지만 끔찍한 묘사가 전부가 아니다. 이제껏 몰랐던 뼈에 담긴 이야기는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로 작용하면서 새로운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영국에서 손꼽히는 법의인류학자이자 해부학자인 저자 '수 블랙'이 자신이 경험한 사건 사례들을 바탕으로 각 인체의 뼈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소설이나 영화로 보아오던 만들어진 픽션이 아닌 그녀가 들려주는 진짜 리얼 사건들은 때로는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끝나는가 하면 뼛조각만으로 사망 이유를 밝혀내지 못하는 꿉꿉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100% 범인 검거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수사 실패 사례가 더욱 현실감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사실 법의학자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법의인류학자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개념을 알게 됐다. 의료법적 목적을 위해 인간 또는 인간의 유골을 연구하는 학문인 법의인류학은 오로지 인간의 뼈. 유골에 새겨진 흔적으로 시신과 소통한다. 



책은 크게 3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머리와 몸통 그리고 사지로 구분되고 세부적으로 머리는 두개골, 얼굴로, 몸통은 척추, 가슴, 목 등으로 나뉘는 구조이다. 각 챕터별로 부위별로 알아낼 수 있는 시신의 상태와 부위에 얽힌 사연이 소개되고 저자가 직접 겪었던 사건 사례들이 3~4건 정도 소개된다. '92세 남성의 의문사', 해안에 떠밀려 오는 토막난 사체들', '자신의 손가락을 끓이는 남자' 등등 그녀가 겪은 사건 제목만으로도 사건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리라.     



그중 가장 나의 눈길을 끌었던 사건은 '여행가방에서 발견된 한국인 진효정 사건'이었다. 낯선 땅 영국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유학생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 더불어 그녀를 살해한 사람 역시 한국인이었다는 것이 몹시 충격적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국을 발견해서일까. 아니면 낯선 땅에서 명을 달리한 두 여성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까. 할아버지의 성적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소년의 정강이 뼈에서 발견된 해리스선. 정신적 트라우마가 뼈에 물리적으로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내겐 놀라운 이야기였다. 물론 이밖에도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한 편의 추리소설을 보듯 긴장감 넘치게 이어진다. 



얼마전 독일의 저명한 법의학자 '클라아스 부쉬만'이 직접 경험한 사례를 담은 [죽은 자가 말할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책이다. 육신이 썩어 문드러진다 해도 마지막까지 망자의 목소리를 담은 뼈는 우리를 향해 소리치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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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법 1
야마다 무네키 지음, 최고은 옮김 / 애플북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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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법 (2022년 개정 2판 1쇄)

저자 - 야마다 무네키

역자 - 최고은

출판사 - 애플북스

정가 - 15000원 * 2

페이지  - 408, 420p



* 제66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대상

* 제10회 일본 서점 대상 수상작



죽음으로부터 자유로워진 영생은 정녕 축복인가



흥미로운 SF소설이 개정판으로 새옷을 입고 다시 찾아왔다. 제목은 익히 들어왔던 작품인데 쏟아지는 신간들에 밀려 잠시 망각하고 있다가 이번 개정판으로 새롭게 만날 수 있었다. 인류의 노화를 정복하고 죽지 않는 영생의 비밀을 밝혀낸 뒤 벌어지는 이야기가 이 작품의 기본 스토리이다. 노화와 죽음의 공포는 어느 누구도 예측할 수 없기에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인류의 근원적 공포요소로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불로 시술로 죽음을 정복한다면 지상낙원이 펼쳐질까? 한정된 자원에서 정체된 세대의 지속은 종말을 고한다. 종말을 막기 위해 일본 정부에서 내놓은 법이 바로 백년법이다. 



불로의 시술 HAVI를 받은 후 백년이 지나면 강제로 안락사를 시키는 법안이다. 영원의 생명을 약속받은 이들이 백년법을 지지할리는 만무한 일. 설득하려는 자와 거부하는 자. 일본의 미래를 걸고 백년법 실시를 위해 몸바친 이들의 치열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유사는 백년법 실시에 대한 찬반 투표를 앞두고 국민들에게 백년법의 당위성을 홍보하는 정부 부처 홍보기구의 실장이다. 일본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백년법의 실시는 불가피한 일이지만 이미 백년의 기한을 앞두고 있는 고위직 의원들부터 백년법의 실시에 반대하는 입장이다. 결국 찬반 투표가 시행되고. 충격적인 결과에 유사는 다른 계획을 세우는데....


란코는 저소득층을 위해 3개월마다 로테이션 되는 생산직 업무를 알선하는 유니언에 소속되있다. 절친이었던 친구가 HAVI 수술을 받지 않고 자연사 했다는 소석에 커다란 충격을 받고. 친구와 꼭 닮은 딸과 만나면서 백년법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갇게 된다.


란코의 아들 니시나 겐은 HAVI를 받지 않은 채 자연 노화의 길을 선택한다. 백년법의 시행 이후 안락사 거부자들이 은둔해 사는 마을에서 함께 생활하던 겐은 충격적인 학살을 목격하는데....



불로의 시술이 가져오는 변화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불로 시술 이후 백년법의 시행이 가져오는 격변과 그에 따른 사회적 파장을 그리는 SF작품이다. 앞서 소개한 바와 같이 끝없는 정권. 이른바 독재정권의 유혹에 맞서는 유사를 통해 정치권의 긴박하고 치열한 암투를 그려내고, 일반인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상을 란코의 눈으로 대신하며 동시다발적 폭탄테러를 일으킨 테러리스트 아나타 도진이라는 캐릭터로 혼란에 빠지는 일본 사회를 현실적으로 그려낸다. 



고령화가 만연한 일본사회에서 작가는 늙지 않는 세상을 꿈꾸었고 그로인해 벌어지는 다양한 사건들을 무수한 사고실험을 통해 현실감 넘치게 그려냈다. 장르는 SF이나 음모와 계략, 암투가 난무하는 정치 스릴러에 가깝다는 느낌이다. 사린 가스를 살포했던 옴진리교의 교주가 떠오르는 테러리스트 아나타 도진의 실체와 대중의 공포를 이용하여 이득을 취하려는 인물들의 음모가 한데모여 소용돌이 친다. 무너져가는 일본의 미래를 견인하는 이는 과연 누구일지. 적지 않은 분량임에도 불구하고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으로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누구나 꿈꾸는 소원이기에 더욱 간절하고. 그렇기에 생존제한법의 의미가 깊게 와닿는다. 자신의 수명에서 백년을 더 살 수 있다면.... 당신은 하루하루 죽을 날을 기다리며 백년 연장의 시술을 받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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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찾는 아이들
시모무라 아쓰시 지음, 최재호 옮김 / 북플라자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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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체 찾는 아이들 (2020년)

저자 - 시모무라 아쓰시

역자 - 최재호

출판사 - 북플라자

정가 - 15500원

페이지 - 348p



자 이제 시체 찾기의 시작이다!



대부분의 평이 좋아 눈여겨 봐뒀다가 이번 기회에 읽어봤다. 대놓고 '스티븐 킹'의 [스탠 바이 미]에서 따온듯한 설정이다. 심지어 본문에서도 해당 작품이 언급되는만큼 유년시절 소년들의 풋풋한 모험담을 담은 성장소설의 느낌을 물씬 풍기는데, 여기에 조회수에 목을 메는 유튜버라는 현대적 트렌드와 연쇄살인범의 미스터리를 접목하여 새로운 느낌의 일본판 스탠 바이 미 를 탄생시켰다.  



8명의 기혼 여성을 잔혹하게 살해하고 재판을 받는 아사누마 쇼고. 마지막 공판에서 사형을 선고 받은 쇼고는 이렇게 외친다. 마지막 여덟번째 여성은 자신이 죽인 게 아니라고. 그리고 마지막 여성을 죽인 진짜 범죄자 3인방 중 한 명을 죽여서 파묻었다는 폭탄 발언을 터트린다.

"나는 추억의 장소에 진범의 시신을 숨겼다. 자, 이제 시체 찾기의 시작이다!"

전국민은 쇼고가 발언한 시체찾기에 열광하고 실제로 인싸들은 쇼고가 숨긴 시체를 찾기 위해 길을 떠난다. 한편, 줄곳 여덟번째 범행의 범인을 쇼고가 아닌 3인방의 범행으로 의심했던 여형사 노조미는 쇼고의 발언 이후로 3인방의 주변을 조사한다.  


이제 막 개인 방송을 시작한 소타는 좀처럼 늘지 않는 구독자 때문에 고민이다. 그러던중 우러러보던 인기 유튜버 니시얀이 함께 시체찾기를 하지 않겠느냐고 제안한다. 니시얀의 인기에 편승하려는 의도로 콜라보를 수락한 소타는 또다른 유튜버 세이와 함께 지방의 시골로 찾아가는데.....



살인범을 찾기 위해 고군분투 하는 노조미의 이야기와 시체찾기 여정을 떠난 세 명의 유튜버 이야기가 교차된다. 물론 두 가지 이야기가 맞물리는 순간 숨겨져 있던 진실이 반전으로 작용하게 된다. 후반부로 접어들면서 어느정도 반전은 짐작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생한 묘사와 마지막 떡밥 때문에 끝까지 긴장하게 만든다. '스티븐 킹'이 80년대 소년들의 모험을 통해 어른들의 향수를 자극하였다면 이 작품은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의 소년들이 나이가 들어 이 작품을 다시 봤을때 분명 향수를 느끼게 만들만한 현대의 정서가 담겨있다. 높은 이혼률로 가족의 해체와 결합이 반복되는 상황에 직면한 소년의 고민, 청소년들의 장래희망 1위가 인기 유튜버일정도로 달라진 인식과 직업관, 학교안에서 극명하게 갈리는 빈익빈 부익부 등등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소년들의 고민이 시체를 찾아 떠나는 소년들의 여정에 가득담겨 있다. 



더불어 실존하는 연쇄살인범을 모티브로 만들어낸 아사누마 쇼고는 사이코패스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환경이 중요인자인지, 아니면 태생적 본성이 먼저인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세상의 누구라도 살인마가 될 수 있다.

아마도 누구나 부정할 것이다. 

인간은 누구나 자신의 마음속에 존재하는 가학성을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재미와 더불어 사회에 던지는 깊이 있는 메시지 또한 담고 있는 수작이다. 마음속에 누구나 미치광이 한 명정도는 가두고 있으리라. 그 미치광이가 쇠창살을 찢고 튀어나오지 않기를 바라는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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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의 살의
미키 아키코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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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의 살의 (2021년)

저자 - 미키 아키코

역자 - 이연승

출판사 - 블루홀식스(블루홀6)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72p



변격의 홍수에서 정통을 외치다



앞선 [낙원은 탐정의 부재]에서 특수설정 미스터리의 부흥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어보니 탄탄한 정통이 뿌리 깊게 내리고 있기에 변격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기만의 살의]는 독자를 기만에 빠트려 속여 넘기는 진정한 의미의 정통 본격 미스터리였다. 끊임없이 추리에 추리가 중첩되는 다중 추리로서 이 정도의 완결성과 복선의 회수는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때는 1966년 여름. 법률사무소로 유명세를 떨치는 니레 가문의 가족모임 중. 비극적인 독살사건이 발생된다. 고구마 맛탕에 커피를 마시던 다과자리에서 가문의 큰딸 사와코가 갑자기 구토를 하며 쓰러진 것이다. 사와코는 급히 구급차에 실려가고 남은 사람들은 또 한번 혼란과 경악에 빠진다. 사와코의 양자 요시오가 사와코와 같은 증세로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요시오 역시 병원에 실려가고 출동한 형사는 사와코와 요시오의 연이은 변을 통해 음식물을 이용한 독살 사건으로 결론 짓는다. 남은 가족들의 진술을 듣던 중 사와코의 남편이자 요시오의 양부인 하루시게는 조여드는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수하고 마는데.....



원탁에 앉은 사람중 누군가가 독살 된다는 설정은 영미 추리소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클래식한 설정이다. 독살 트릭 또한 그다지 새로울 건 없어 보이는 트릭인데 작가는 여기에 서간문을 조합하여 변화를 꾀한다. 서술 + 서간문 + 서술로 이어지는 형식의 변화가 독자에게 지속적인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독살 사건의 시작과 등장인물간의 관계를 서술로 소개한 뒤, 오고가는 편지를 통해 추리에 추리를 거듭한다. 편지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소셜미디어 메시지로 반전을 꾀하던 [기묘한 러브레터]와 마찬가지이다. 오로지 편지를 쓴 사람에 의해 정보가 왜곡될 수 있는 편지글은 어찌보면 미스터리에서 가장 독자를 기만할 수 있는 효과적인 형식이 아닌가 싶다.  



어찌됐던 니레 가문의 사건이 일어나고 무려 42년이 지난 뒤. 자수했던 하루시게가 쓴 편지가 사와코의 동생 도코에게 도착한다. 그리고 그 둘은 그날의 사건에 대해 나름의 범인과 동기를 추측한다. 오가는 편지속에 다양한 추리들이 펼쳐진다. 물론 그 추리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여부는 판단하기 힘들다. 결정적 힌트가 제공된다지만 이 길고긴 장편에서 단 몇줄의 힌트를 눈여겨 볼 독자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하루시게의 추론을 반박하는 도코. 그리고 다시 도코의 추론을 반박하는 하루시게의 추리를 거쳐 비로소 드러나는 반전의 진실. 그리고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는 대망의 반전까지. '모든 것이 트릭'이라는 책의 문구는 과연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60세가 되서야 등단했다는 작가의 완벽에 가까운 집요함이 작품에 가득 묻어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정통의 묘미를 다시금 느끼게 만든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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