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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 세계적인 법의인류학자가 들려주는 뼈에 새겨진 이야기
수 블랙 지음, 조진경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22년 2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매일 죽은 자의 이름을 묻는다 (2022년 초판)
저자 - 수 블랙
역자 - 조진경
출판사 - 세종서적
정가 - 19000원
페이지 - 443p
내 몸속 곳곳에 새겨진 나의 이야기
'대부분의 시신 절단은 시신을 몸통은 그대로 두고 나머지 부위를 5~6개로 자른다. 몸통을 자르려다 보면 먼저 체내 장기들을 모두 제거하지 않는 이상 아주 엉망이 된다. 이 경우에는 내장이 제거 되었고, 몸통은 허리뼈를 가로지르며 갈라졌고 시체 토막들은 쓰레기통 비닐과 분홍색 샤워커튼에 싸여 있었다. 외부 생식기는 잘려 있었고, 머리와 팔, 내장은 발견되지 않았다.' _175p
'각각의 척추뼈는 사망자의 나이, 성별, 신장 등을 알려주며 병리와 질병, 부상에 대해 분명히 설명해준다. 그러나 척추뼈가 법의인류학에서 갖는 가장 큰 가치는 사망 전후로 피해자에게 가해진 외상과 손상에 대한 정보를 전달해준다는 것이다.' _178p
글을 읽는 것만으로도 머릿속에서 끔찍한 장면들이 저절로 그려진다. 하지만 끔찍한 묘사가 전부가 아니다. 이제껏 몰랐던 뼈에 담긴 이야기는 사건을 해결하는 열쇠로 작용하면서 새로운 호기심을 충족시킨다. 영국에서 손꼽히는 법의인류학자이자 해부학자인 저자 '수 블랙'이 자신이 경험한 사건 사례들을 바탕으로 각 인체의 뼈에 얽힌 이야기들을 풀어낸다.
소설이나 영화로 보아오던 만들어진 픽션이 아닌 그녀가 들려주는 진짜 리얼 사건들은 때로는 끝내 범인을 잡지 못해 미제사건으로 끝나는가 하면 뼛조각만으로 사망 이유를 밝혀내지 못하는 꿉꿉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현실세계에서 100% 범인 검거는 없지 않은가. 오히려 수사 실패 사례가 더욱 현실감을 증폭시키는 장치가 되기도 한다. 사실 법의학자는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법의인류학자는 이 책을 통해 처음으로 개념을 알게 됐다. 의료법적 목적을 위해 인간 또는 인간의 유골을 연구하는 학문인 법의인류학은 오로지 인간의 뼈. 유골에 새겨진 흔적으로 시신과 소통한다.
책은 크게 3개의 챕터로 구성된다. 머리와 몸통 그리고 사지로 구분되고 세부적으로 머리는 두개골, 얼굴로, 몸통은 척추, 가슴, 목 등으로 나뉘는 구조이다. 각 챕터별로 부위별로 알아낼 수 있는 시신의 상태와 부위에 얽힌 사연이 소개되고 저자가 직접 겪었던 사건 사례들이 3~4건 정도 소개된다. '92세 남성의 의문사', 해안에 떠밀려 오는 토막난 사체들', '자신의 손가락을 끓이는 남자' 등등 그녀가 겪은 사건 제목만으로도 사건에 대한 호기심이 증폭되는 것은 비단 나뿐만은 아니리라.
그중 가장 나의 눈길을 끌었던 사건은 '여행가방에서 발견된 한국인 진효정 사건'이었다. 낯선 땅 영국에서 차가운 시신으로 발견된 유학생 여성의 안타까운 사연. 더불어 그녀를 살해한 사람 역시 한국인이었다는 것이 몹시 충격적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국을 발견해서일까. 아니면 낯선 땅에서 명을 달리한 두 여성에 대한 안타까움 때문일까. 할아버지의 성적 학대를 이기지 못하고 자살한 소년의 정강이 뼈에서 발견된 해리스선. 정신적 트라우마가 뼈에 물리적으로 흔적을 남길 수 있다는 사실 또한 내겐 놀라운 이야기였다. 물론 이밖에도 기상천외한 이야기들이 한 편의 추리소설을 보듯 긴장감 넘치게 이어진다.
얼마전 독일의 저명한 법의학자 '클라아스 부쉬만'이 직접 경험한 사례를 담은 [죽은 자가 말할 때]와는 또 다른 매력을 지닌 책이다. 육신이 썩어 문드러진다 해도 마지막까지 망자의 목소리를 담은 뼈는 우리를 향해 소리치고 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