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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만의 살의
미키 아키코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1년 11월
평점 :
기만의 살의 (2021년)
저자 - 미키 아키코
역자 - 이연승
출판사 - 블루홀식스(블루홀6)
정가 - 14000원
페이지 - 372p
변격의 홍수에서 정통을 외치다
앞선 [낙원은 탐정의 부재]에서 특수설정 미스터리의 부흥을 언급한 바 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읽어보니 탄탄한 정통이 뿌리 깊게 내리고 있기에 변격이 열매를 맺을 수 있는 것이구나 깨달았다. [기만의 살의]는 독자를 기만에 빠트려 속여 넘기는 진정한 의미의 정통 본격 미스터리였다. 끊임없이 추리에 추리가 중첩되는 다중 추리로서 이 정도의 완결성과 복선의 회수는 실로 놀라울 따름이다.
때는 1966년 여름. 법률사무소로 유명세를 떨치는 니레 가문의 가족모임 중. 비극적인 독살사건이 발생된다. 고구마 맛탕에 커피를 마시던 다과자리에서 가문의 큰딸 사와코가 갑자기 구토를 하며 쓰러진 것이다. 사와코는 급히 구급차에 실려가고 남은 사람들은 또 한번 혼란과 경악에 빠진다. 사와코의 양자 요시오가 사와코와 같은 증세로 정신을 잃고 있었던 것이다. 요시오 역시 병원에 실려가고 출동한 형사는 사와코와 요시오의 연이은 변을 통해 음식물을 이용한 독살 사건으로 결론 짓는다. 남은 가족들의 진술을 듣던 중 사와코의 남편이자 요시오의 양부인 하루시게는 조여드는 압박을 견뎌내지 못하고 자수하고 마는데.....
원탁에 앉은 사람중 누군가가 독살 된다는 설정은 영미 추리소설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는 클래식한 설정이다. 독살 트릭 또한 그다지 새로울 건 없어 보이는 트릭인데 작가는 여기에 서간문을 조합하여 변화를 꾀한다. 서술 + 서간문 + 서술로 이어지는 형식의 변화가 독자에게 지속적인 호기심과 궁금증을 자아내게 하는 것이다. 독살 사건의 시작과 등장인물간의 관계를 서술로 소개한 뒤, 오고가는 편지를 통해 추리에 추리를 거듭한다. 편지는 아니지만 그와 비슷한 소셜미디어 메시지로 반전을 꾀하던 [기묘한 러브레터]와 마찬가지이다. 오로지 편지를 쓴 사람에 의해 정보가 왜곡될 수 있는 편지글은 어찌보면 미스터리에서 가장 독자를 기만할 수 있는 효과적인 형식이 아닌가 싶다.
어찌됐던 니레 가문의 사건이 일어나고 무려 42년이 지난 뒤. 자수했던 하루시게가 쓴 편지가 사와코의 동생 도코에게 도착한다. 그리고 그 둘은 그날의 사건에 대해 나름의 범인과 동기를 추측한다. 오가는 편지속에 다양한 추리들이 펼쳐진다. 물론 그 추리들이 진실인지 아닌지 여부는 판단하기 힘들다. 결정적 힌트가 제공된다지만 이 길고긴 장편에서 단 몇줄의 힌트를 눈여겨 볼 독자는 그리 많지 않으리라....
하루시게의 추론을 반박하는 도코. 그리고 다시 도코의 추론을 반박하는 하루시게의 추리를 거쳐 비로소 드러나는 반전의 진실. 그리고 모든 것을 뒤엎어버리는 대망의 반전까지. '모든 것이 트릭'이라는 책의 문구는 과연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60세가 되서야 등단했다는 작가의 완벽에 가까운 집요함이 작품에 가득 묻어있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정통의 묘미를 다시금 느끼게 만든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