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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드로메다 구하기
김설아 지음 / 아프로스미디어 / 2022년 11월
평점 :
안드로메다 구하기 (2022년 초판)
저자 - 김설아
출판사 - 아프로스미디어
정가 - 16000원
페이지 - 334p
다채로운 장르가 믹스된 환상소설집
꿈을 꾸듯 이어지는 잔혹하고도 매혹적인 이야기들. 김설아 환상소설집으로 명명된 [안드로메다 구하기]에는 다양한 장르의 여덟가지 이야기들로 꿈속을 거니는 듯한 착각이 들게 만든다. 작가의 이름은 낯설다. [현대문학]으로 등단하여 다양한 이야기들을 써왔다는 건 작가 약력을 보고서야 알게 되었다. 이 작품에는 SF, 공포, 호러, 오컬트, 외계인, 뱀파이어, 크리처 등 경계없는 장르적 서사를 바탕으로 억압에 맞서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담아낸다. 때로는 신화속 공주에서, 때로는 남편에게 학대받는 임신한 아내로서 지독한 현실과 맞서 나가는 여성들의 이야기는 예상치 못한 결말과 함께 작가의 독특한 메시지를 담고있다.
1. 과자와 고기
정하나는 식인 외계인에게 몸을 강탈당한 과자 공장 노동자다. 식량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기대했던 지구에서의 삶은 가혹하기만 한데…….
2. 안드로메다 구하기
고대 에티오피아의 공주 안드로메다는 아름다운 여성으로 성장하면서 어머니 카시오페이아로부터 결혼의 압박을 받는다. 답답한 마음에 바다로 나온 안드로메다는 엄청난 사실에 눈을 뜨게 되는데…….'
3. 유령 들린 스텐 팬
오래된 아파트에 새로 이사 온 주라는 가정에 소홀한 남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전주인이 남기고 간 스텐 팬으로 고기를 굽는다. 그 고기를 먹은 남편은 이상할 정도로 다른 사람으로 변하는데…….
4. 금빛 집
공부는 잘하지만 못생긴 미운 오리 새끼 같은 중학생 소녀는 친구가 생기지 않아 고민이다. 어쩌다가 친구가 생기긴 하지만, 둘 다 비슷한 처지라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데…….
5. 데빌라
이탈리아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쌍둥이 자매는 한쪽이 버림받으면서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살게 된다. 한쪽은 성녀로 추앙받지만, 버림받은 쪽은 최악의 삶을 살면서 어느새 머리에 악마의 뿔까지 자라는데…….
6. 새롭고 낯선 당신의 이웃
30년 된 주공 아파트에 혼자 사는 예고 강사 겸 작가 지망생은 어느 날 불쑥 방문한 이웃 때문에 당황한다. 이상한 말과 행동으로 보아 인간이 아닌 것 같은데…….
7. 천년우물
부잣집에 시집온 보배는 갓 낳은 아들 연후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주변 사람들의 기억에도 남아 있지 않다는 것에 놀란다. 시댁에서 정신병자 취급을 당하던 보배는 신기한 가보로 시간을 되돌리기로 하는데…….
8. 값비싼 사랑
자살시도를 했다고 오해하는 엄마의 권유로 댄스 학원에 다니게 된 효정은 아름다운 루비를 보고 반한다. 꿈속에서 루비와 은밀한 시간을 보내던 효정은 현실 같은 자극을 느끼는데…….
보통 줄거리는 내가 쓰지만 출판사 줄거리가 잘 축약돼있어 가져왔다. 첫번째 [과자와 고기]는 SF풍의 잔혹 소설이다. 인간의 고기를 먹는 신체강탈자로서 자칫 포식자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지만 주인공 하나는 돈이 없어 불량 소세지를 먹고 위액을 게워내는 영락없는 하층민의 삶을 보여준다. 독특한 배경 속에서 만나게 되는 빈곤자의 가난은 잔혹한 현실과 맞닿아있다.
[안드로메다 구하기]와 [데빌라]는 신화풍의 작품으로 폭풍같은 운명에 놓인 여성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유령 들린 스텐 팬]은 괴기로 빚어낸 우렁각시가 떠오른다. 악마들린 스탠 팬으로 구운 고기를 먹던 남편이 서서히 변화하는 이야기가 주된 스토리인데 SM 묘사가 생각보다 수위가 높아 놀라며 읽었다. [금빛 집]은 왕따를 당하던 소녀가 친구 집에 놀러가면서 경험하는 기묘한 이야기인데 친구의 정체를 보며 '옥타비어 버틀러'의 공포SF단편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새롭고 낯선 당신의 이웃]은 공포심을 자극하는 정체불명의 아파트 이웃으로 시작하지만 결말로 가면서 장르자체가 변화된다. [천년우물] 신기한 거울로 하루를 반복하며 자신의 아기를 구하는 엄마의 이야기로 모성이 빛나는 [월광보합]을 보는듯한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마지막 [값비싼 사랑]은 진짜 친구를 구하는 뱀파이어 이야기로 쉽사리 [렛미인]을 떠올리게 한다.
다채로운 장르적 외피로 흥미를 자극하고 극적인 결말로 천천히 의미를 되새기게 하는 작품들이다. 몇몇 작품은 작가의 의도를 헤아리려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대체적으로 작품속에서 상황과 맞닥뜨리는 여성의 심리는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어 그녀들의 시선에서 그녀들의 이야기 속으로 자연스럽게 빠져들게 만든다. 평소 장르의 탈을 쓴 순문학을 어렵게 느끼는 경향이 있는데 이 작품은 스토리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흥미를 자극하여 좋았던 것 같다.
'만화경'이라는 출판사의 말이 딱 맞아 떨어진다. 그녀가 보여주는 장르만사는 허구임에 분명하지만 더없이 현실과 맞닿아있다. 그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어딘지 등골이 서늘해지는 기묘한 감각을 경험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