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락 탐정
고바야시 야스미 지음, 주자덕 옮김 / 아프로스미디어 / 2023년 1월
평점 :
안락 탐정 (2023년 초판)
저자 - 고바야시 야스미
역자 - 주자덕
출판사 - 아프로스미디어
정가 - 16000원
페이지 - 280p
안락의자 탐정의 설정을 역으로 이용하는 영리한 작품
이제는 고인이 돼버린 '고바야시 야스미'의 신작이다. 제목 그대로 안락의자 탐정이 의뢰인을 상대로 의자에 앉은 채로 사건을 해결하는 6편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개인적으로 움직임 없이 오로지 대화로서 이야기가 진행되는 안락의자 탐정물을 즐겨보진 않는편이다. 특히나 처음 접했던 안락의자 탐정물이 '아이작 아시모프'의 [흑거미 클럽]이었는데 이걸 읽고 진절머리를 쳤던 기억이 아직도 뇌리에 박혀있다. -_-;;;
하지만 '고바야시 야스미'가 써낸 안락의자는 달랐다.
작가 특유의 말꼬리를 잡고 늘어지는 대화체는 이 작품에서 빛이 난다. 말장난을 늘어놓으면서 오고가는 대화의 호흡이 굉장히 빠르고 리드미컬하여 지루 할 틈이 없다. 더군다나 이런 만담에 가까운 대화로 독자의 정신을 빼놓는 사이 교묘하게 복선을 심어 놓아 반전의 묘미를 꾀하기도 한다.
1. 아이돌 스토커
탐정을 찾아온 미모의 아이돌은 몇 년 째 자신을 집요하게 스토킹 하는 자의 정체를 찾아달라 의뢰한다. 그라비아 모델로 사진을 찍고 오면 그 직후 자신과 거의 똑같은 속옷을 입고 입는 중년의 남자 사진이 배달되 온다. 물론 아이돌은 그 사진에 강한 혐오를 느끼는데....
2. 소거법
자신이 초능력을 갖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탐정을 찾아온다. 회사에서 우연히 싫은 사람에게 당장 사라지라 소리치자 기묘하게도 그 직후 직원은 사무실을 나가고 다시는 직원을 보지 못한다. 이상한 건 다른 직원들에게 사라진 직원을 물어도 누구도 그 직원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
3. 다이어트
3 개월째 아무것도 먹지 않음에도 살이 찌고 있다고 탐정을 찾아온 여성. 3개월 동안 그녀가 섭취한 건 다이어트 약 뿐이었다는데....
4. 식재료
손님이 가져온 식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프라이빗한 레스토랑. 어린 딸과 함께 식당을 찾은 부부는 딸이 실종된 채 혼비백산하여 탐정 사무소를 찾는다. 사라진 딸은 어디에.....
5. 생명의 가벼움
자원봉사 단체에 기부금의 불법적 사용 정황을 찾기 위해 직장도 그만두고 단체가 지원한 해외 병원까지 찾아가 자금 현황을 살펴본 남자는 더이상 자금 불법 사용 단서를 찾을 수 없자 탐정 사무소를 찾는다. 탐정은 단숨에 진상을 파악하는데...
6. 모리아티
마지막 단편 [모리아티]가 이 단편집의 백미이자 대망의 반전 추리파트이다. 이 단편으로 인하여 기존의 안락의자 탐정물의 선입견을 전복하는 기발한 이야기를 풀어낸다. 각 단편 자체가 완결성을 띤 단편이지만 그 사이사이 [모리아티]를 위한 복선을 심어두었다는 말이다. 형식만 놓고 보자면 [영매탐정 조즈카]와 같은 구성이다. 각 단편의 추리파트는 그다지 어렵지 않다. 특히나 첫번째 [아이돌 스토커]는 독자가 예측한 범인을 그대로 보여줌에 따라 다소 심심한 혹은 실망(?)스러운 결말을 보여주게 된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범인을 맞췄음에도 뭔가 찜찜한 기분을 남긴다. ㅎㅎㅎ 물론 [모리아티]를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작가가 의도한 찝찝함이다.
이제 이어지는 단편들을 읽다보면 자연스레 고민하게 되는 내 자신을 발견한다. '이 단편에서도 내가 생각하는, 눈에 훤히 보이는 범인이 범인일까? 아니면 전혀 생각지 못했던 반전의 결말을 보여줄까?' 라고 말이다. 첫번째 단편만으로 이미 독자의 머릿속에 하나의 고정관념을 심어 놓은 셈이다. 뭐랄까. 독자와의 밀당이랄까. ㅎㅎㅎ 이어지는 단편에서도 이 밀당이 기막히게 들어먹힌다.
[소거법]은 다소 억지스럽지만 설정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다. [다이어트]는 고정관념을 이용한 훌륭한 서술트릭이다. [식재료]는... ㅋㅋㅋ 읽어보면 안다. 마지막 [모리아티]가 대미를 장식하면서 장르 자체를 전복한다. 깊이 보다는 가볍게 즐길 수 있는 기발함과 대중성을 지닌 작품이다. 뭣보다 이 작가의 위트와 개그감이 가장 좋았다. 그러나 이제는 더이상 작가의 위트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 아플뿐. ㅠ_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