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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시록 살인사건
니시무라 교타로 지음, 이연승 옮김, 박진범 북디자이너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4년 1월
평점 :
묵시록 살인사건 (2024년 초판)
저자 - 니시무라 교타로
역자 - 이연승
출판사 - 블루홀식스
정가 - 18800원
페이지 - 468p
세월이 지나도 변치않는 명작
묵시록 : 신약 성경의 마지막 권, 신자들의 박해와 환난을 위로, 격려하고 예수의 재림과 천국의 도래 및 로마의 멸망 따위를 상징적으로 예언
'니시무라 교타로'의 명성은 익히 들어 왔다. 생애동안 무려 육백여편의 작품을 집필하고 누적 부수 2억부를 기록한 일본의 국민 작가라는 타이틀을 거머쥔 미스터리 거장. 하지만 그런 명성에 비해 국내 번역작이 많지 않은 것이 의아한데, 작가의 인기 캐릭터 도쓰가와 경부를 주인공으로 하는 대표 작품이 블루홀식스에서 출간됐다. 작가의 작품이라고는 [살인의 쌍곡선] 하나만 봤기 때문에 이번 [묵시록 살인사건] 역시 비슷한 본격풍의 작품이 아닐까 예상했으나 완독하고 보니 [살인의 쌍곡선]과는 전혀 다른 풍의 작품이었다.
풀 한 포기 없는 도심지에서 수백마리의 배추흰나비 때가 출몰한다. 비번이던 가메이 형사는 갑자기 출몰한 나비때를 향해 다가가고. 어느 건물의 옥상에서 나비때에 둘러싸여 싸늘하게 죽어있는 청년의 시신을 발견한다. 시신의 근처에서 강하게 풍기는 아몬드 냄새. 형사는 청산 중독으로 인한 사망임을 직감하지만, 정작 형사의 눈길을 잡아 끈 것은 수백마리의 나비도. 아몬드 향도 아니었다.
바로 시신의 만면에 떠오른 불가사의한 미소 때문이었다.
수사본부가 차려지고, 자/타살 여부를 가릴 것도 없이 바로 다음 사건이 발생한다. 이번에는 하늘에 떠오른 수백개의 헬륨 풍선들. 그리고 풍선이 있던 곳에 쓰러진 시신 한구. 역시 청산 중독. 얼굴에 떠오른 미소까지 첫번째 시신과 똑같았다.
연이어 발견되는 의문의 죽음들. 하지만 범인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자살일까? 하나 혼자서는 실행할 수 없는 수준의 규모. 그렇다면 조력자가 있었을까? 도쓰가와 경부와 수사팀은 이 불가사의한 사건의 배후에 무언가가 있음을 짐작하고 차근차근 수사를 진행해 나간다. 현장의 단서부터 정석적으로 접근하는 수사는 아주 오랜만에 경찰 소설의 클래식한 맛을 느끼게 한다.
1980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무려 40년의 갭이 있으나 작품에서 꼬집고 있는 사회 문제(청년문제, 비관 자살)등은 현재에도 그대로 대두되고있는 문제로서 세월의 괴리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된다. (휴대폰의 부재는 어쩔 수 없다 치고) 제목에서 이미 예고하듯 예수의 재림(묵시록)을 이용하는 악덕 종교집단의 광기와 도쓰가와 경부의 대결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지는 사회파 소설이다. 하나 보통의 사회파 미스터리가 범인이나 인물의 정체에서 반전을 이끌어 내는 반면 이 작품은 사회적 문제를 고발하는 사회파 요소에 충실하면서도 밀실이나 광장밀실과 같은 본격 요소를 포함하고 있어 미스터리적 균형을 잘 맞춘 작품이다. 무려 40년 전에 쓰인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물론 트릭만 놓고 보자면 현대의 복잡하고 정교한 트릭과는 차이가 있다.)
투박하지만 이야기의 힘이 있다. 고전은 고전 나름의 맛과 멋이 있음을 다시금 깨닫는다. 놀라운 가독성과 도쓰가와 경부라는 국민 캐릭터의 매력. 그리고 사회파와 본격의 적절한 분배까지. 일본 국민작가의 저력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