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험소설의 외피를 두른 잔혹우화이자 정치, 사회, 인간본성을 묘파하는 날카로운 이야기다.

무인도에 고립된 소년들이 리더를 뽑는 모습, 서로 대장질하고 싶어하는 목소리 큰 빅마우스 그리고 그들 사이에 생기는 의견대립, 오늘의 적이 된 어제의 동지, 인간 본성의 어두운 면... ‘파리대왕‘에 펼쳐진 풍경은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를 축약하여 보여준다.

책을 덮은 뒤, 많은이가 진부하게 제기했지만 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나도 다시 곱씹었다. 이놈의 ‘인간‘이 만들어 놓은 아비규환 같은 ‘세상‘을 그나마 좀 더 낫게 가꾸어 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사회를 변혁하겠다고, 세상을 바꾸겠다고 나서도 그 결함을 메우지 못하는 것 아닐까. 인간 본성의 결함이 너무 크기 때문에...

‘파리대왕‘ 소녀 버전이 나온다면 그 내용은 어떻게 전개될까 궁금하다. 여자들 사이에서는 파괴성향과 잔학충동이 사그라들까. 마초들의 권력욕과 지배욕을 자매들의 연대와 지혜로 승화시킬 수 있을까.

˝내 말은...... 짐승은 아마 우리들 자신에 지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거야.˝

˝소음에 지지 않고 랠프가 다시 외쳤다.
「법을 지키고 구조되는 것과 사냥을 하고 모든 것을 파괴하는 것 중 어느 편이 좋으냔 말이야?」
이제는 잭도 고함을 지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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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읽은 한국 장편소설. 그리고 올해 처음으로 펼친 여성작가의 책.

배경은 동해안의 소도시 ‘척주‘다. 작가의 가공을 거쳤는데 강원도 삼척시가 모델이다. 핵발전소 유치를 두고 갈라지는 지역공동체, 지역경제의 중심축인 석회광산과 공장은 딱 그 동네 얘기다. 여기에 약왕성도회라는 사이비 종교, 진통제를 구하려는 노인들, 죽거나 사라지는 사람들 같은 소재가 가미되었다. 주인공은 척주 출신의 보건소 약사. 그녀는 지역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사건에 휘말린다.

스릴러 요소가 풍부한 멜로드라마라고 일컬어도 좋을 듯하다. 보건소 공익요원과 썸타는 주인공에게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모습이 보였다. 이말삼초 여성들이 좋아할만한 관계설정.

바다에 접한 도시, 척주를 잘 그린 소설이다. 잔잔하고 아름다운 문장들이 군데군데 박혀서 숨을 가다듬게 한다.

˝송인화는 강을 따라 걷다가 문득 뺨이 따뜻해서 옆을 돌아보았다. 강물 위에 빛들이 내려앉아 자글거리고 있었다. 걸어갈수록 빛 무리가 왠지 자신을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 송인화는 걸음을 조금 빨리해봤다. 빛 무리도 같은 속도로 따라왔다. 송인화는 다시 천천히 걸었다. 빛 무리도 속도를 늦추며 따라왔다. 송인화가 걸음을 멈추자 빛 무리도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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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화작가가 되고 싶어서 이 책을 샀던 건 아니다. 위기철이란 글쓴이의 이름에 일단 혹했다. 나 열한 살 적에 그가 쓴 ‘반갑다, 논리야‘를 읽고 느꼈던 희열이 오래도록 남았다. 커서 읽은 동화 ‘아홉살 인생‘에서는 그의 재치와 통찰을 맛볼 수 있었다.

이 책은 글쓴이 위기철이 동화를 쓰려는 이들에게 보탬이 될까 싶어 연재했던 글을 모아 엮은 것이다. 그렇다고 동화작법서로만 한정짓기에는 너무 알차고 쓸모가 많다. 이야기꾼이 갖추어야 할 기본기를 쉽고 명료하게 전달해준다. 동화뿐만 아니라 소설, 영화, 만화 등 다른 서사장르 창작에도 공히 적용할 수 있는 도움말이 풍부하다.

이야기를 만드는 데 필요한 주의사항을 알아두면, 만들어진 이야기를 잘 읽어내는 눈썰미도 기를 수 있다. 이 책으로 이야기‘가‘ 노는 법을 배우는 동안 이야기‘와‘ 노는 법도 은근히 습득하게 될 것이다. (2013년 출간되었을 때 읽고, 5년 지나 이번에 다시 읽었다.)

˝이야기를 쓰는 과정이 바로 이야기를 즐기는 과정인데, 왜 그 과정을 쉽고 편하게 하려는지 이해할 수가 없더군요. 후딱 써 놓고 TV 보려고?˝

˝작품 발표에 연연하지 말고, 그냥 쓰는 과정을 즐기세요. 목숨 부지하고 있을 때 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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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의 기자 스티그 라르손은 10부작으로 계획한 소설 ‘밀레니엄 시리즈‘를 끝맺지 못하고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시리즈 4부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이야기를 이어나갈 새로운 작가로 지명된 다비드 라게르크란츠가 썼다. 그는 앞선 내용의 인물과 배경을 그대로 승계했다.

나는 밀레니엄 시리즈 3부를 다 읽고 나서 못내 아쉬웠었다. 분명 다음 이야기가 남았고 주인공도 살아있는데 작가는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기에. 밀레니엄 시리즈는 불가항력에 따라 강제종결된 상태였다.

대체작가의 손에서 부활한 4부 ‘거미줄에 걸린 소녀‘는 원작과 견주어도 어색하지 않았다. 원작을 잘 파악한 작가의 노고가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활자의 한계‘ 덕분이다. 부활한 주인공은 여전히 탐사보도 기자 ‘미카엘 블롬크비스트‘이고 천재해커이자 펑크족 스타일을 고수한 ‘리스베트 살란데르‘다. 드라마 ‘리턴‘의 사례처럼 하차한 배우 고현정을 박진희로 교체한 것 같은 어색함은 없다.  

영화와 영상에 눌려 다 죽어가는 소설이 이런 우위성을 지녔구나! 천의무봉을 이룰 바늘은 역시 문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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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 서가에서 그래픽노블을 발견했다. 영화 ‘부산행‘으로 천만 관객을 찍은 연상호 감독이 쓰고 그린 ‘얼굴‘이었다. 만화나 그래픽노블은 공공도서관에서 만나기 어려운 귀한 책이라 일단 빌렸다.

주인공은 30년 전 갓난아기 때 헤어진 어머니의 유골이 발견되었다는 연락을 받는다. 시각장애인이자 도장 전각 장인인 아버지는 주인공에게 그녀가 별안간 집을 나갔을 뿐 자기도 아는 게 없다고 말해왔었다. 주인공은 어머니의 과거와 죽음을 추적한다. 주변사람들은 그녀가 아주 못생긴 괴물 같았다고 말하는데... 남편인 아버지조차 보지 못한 어머니 얼굴. 주인공은 어머니가 도대체 어떤 사람이었는지 몹시 궁금해한다.

애니메이션 ‘사이비‘를 보았을 때도 느꼈다. 이야기의 초입에서부터 빠져들게 하는 힘, 결말 이후의 불편함과 찝찝함. ‘얼굴‘도 이러한 ‘연상호스러움‘의 특징이 드러났다. 섬세하게 따지고 들자면 흠이 없지 않을 터이나 나는 이렇게 강한 힘을 보여주는 서사물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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