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혹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저들은) 왜 살지?” 


나쁜 생각이라고, 해서는 안 될 생각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태극기 집회라든지 대통령 변호인단이라든지 세월호 문제를 대하는 여러 정치인들의 태도를 보면 자연히, 어쩔 수 없이 들고 마는 생각이기도 하다. 실은 다른 방향에서, '저들의 행태'를 (거리낌없이) 조롱하는 언사를 접할 때도 같은 생각이 들곤 한다. 


“저들은 왜 살지?” 라는 질문은 체호프의 전공 분야이다.


한편 체호프의 문학적 스승이랄 수 있는 톨스토이의 질문은 이런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인가?” 


생각해보면 체호프의 “대체 왜 살지(Why live)?”라는 질문의 이면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How live)?” 라는 톨스토이의 질문이 자리하고 있다. “대체 왜 살지?”란 질문은 올바른 삶, 가치 있는 삶을 추구하는 태도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어쨌든 저 질문을 출발점 삼아 톨스토이는 오늘날 ‘자아’라고 불리는 복잡하고도 거대한 내적 우주를 구축했고 거기에 ‘성찰’이라는 벡터를 부여했다. 




멈추지 않는 자아 성찰이 톨스토이의 작품 세계의 원동력이자 윤리라면, 체호프는 타자와의 관계 성찰이라는 새로운 벡터, 새로운 윤리를 부여한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는 깨달음, 세상에는 나와 완전히 다른 인간형이 숱하게 존재한다는 인식이 체호프 작품에는 들어 있다. 이는 우리 은하계가 우주의 전부가 아니며, 지구인이 우주의 유일한 지적 생명체가 아니라는 얘기와도 같을 것이다. 


내 인생을 어떻게 살지, 어떻게 사는 것이 올바른 삶일지를 고민하는 건 물론 매우 중요하지만, 이렇게 되면 부지불식간에 “(저들은) 대체 왜 살지?”라는 질문이 떠올라 마치 블랙홀처럼 마음 한 공간에 자리하게 된다. 이것은 좀처럼 인식도 탐지도 잘 안 되는 것이지만 일단 자리하게 되면 어마어마한 중력으로 주변의 모든 것을 끌어들이고 공간을 왜곡시킨다. 체호프는 바로 이 블랙홀을 탐지하고자 했다. 


아무런 생각이 없어 보이는 사람, 자신을 성찰할 줄 모르는 사람, 가치 있는 삶이 무엇인지 고민조차 하지 않는 사람, 역사의식이나 공동체의식이 없는 사람, 악덕을 저질러 놓고도 부끄러움을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이 세상엔 존재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보기에) 가치 있는 노동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이는 사람, 자신의 노동으로 가족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사람, 상황 개선을 위해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사람도 있다.(하지만 그 속사정을 어떻게 아나?) 이렇게 우리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가치 있는 삶’이라는 잣대로 타인의 삶의 가치 혹은 '값어치'를—재단하고 판단한다. 그리고 이 판단은 현실에서 우리가 특정한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 영향을 미친다. 안타까워하고 충고하다가 혀를 차고 비난한다. "아니 인생을/세상을 그렇게 살면 안 되지..."라는 마음이 싹튼다. 생사여탈권을 스스로에게 부여하는 것과도 같다. 우리는 마음 속에 각자의 데스노트를 가지고 있고, 매일 매일 열심히 작성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톨스토이의 '성찰 벡터'는 인간 사회와 자기 자신에 대한 실망과 절망으로 굴절되기 쉬운 것이다. 물론 톨스토이 본인은 그러지 않았다. 그는 타고난 virtus와 spirit으로 문자 그대로 '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을 성찰했다. 


그러나 세상에는 톨스토이 같은 거인만 존재하는 건 아니며, 그런 사람만 살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닐 것이다(나는 톨스토이를 무척 좋아하지만, 그런 건 아니라고 믿는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체호프는 톨스토이라는 거인에 맞선다. 톨스토이의 대장편들에 일단 분량부터 한참 못미치는 소품과 중편과 단막극과 4막 희곡 들로 맞선다. 


체호프는 “저들은 왜 살지?”의 질문을 붙잡고 놓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작품 속에 (나중에 비평가들에 의해 ‘체호프의 등신들’이라 불리게 될) 하층민, 타락하고 탐욕스런 지주와 상인들, 실패한 지식인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과 삶을 그린다. 그런 체호프에게 톨스토이는 “자네는 재능을 낭비하고 있어”라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체호프의 작품은 모든 현대 단편 소설들의 모범이 되었고, 이후 제임스 조이스, 존 치버, 윌리엄 트레버, 레이먼드 카버, 앨리스 먼로 등의... 훌륭한 후배 블랙홀 탐지자들을 낳았다. '블랙홀 연구소' 초대 소장이라 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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