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디푸스 왕 외 을유세계문학전집 42
소포클레스 지음, 김기영 옮김 / 을유문화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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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는 당연히 애도하고 묻어줘야 한다는 '쓰여지지 않은 법'(신들의 법=보편적 윤리 감각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과 그 죽은 이가 국가 반역자라면 시신을 방치해두어야 한다는 '군주의 포고령'(인간의 법, 국가의 법)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충돌한다. 


그 와중에 흥미로운 건 '코러스'의 태도. 그저 '합창단'으로 알고 있었던 코러스가 극중에서 인물처럼 기능하며 주인공 인물들과 대화를 주고 받는다는 걸 이번에 처음 알았는데, 이 코러스의 대사들이 아주 미묘하다. 쉽게 말해서 엄청 깐족거린 달까... 

안티고네가 곧 죽게 될 자신의 처지를 여신 니오베에 빗대며 깊이 슬퍼하는데, 곧바로 "그러나 니오베는 여신이고 신들의 자식이었소. 우리는 인간이고 죽을 운명이라오"(= 넌 신이 아니잖아) 라면서 뭔가 얄밉게 팩트 폭격. 이에 안티고네, 모욕적이라며 화냄. 

크레온 왕이 아들(이자 안티고네의 약혼자) 하이몬과 매장을 둘러싸고 논쟁을 벌이자, 양편의 말이 모두 핵심을 찌르는 면이 있으니 서로 배우라며 황희 정승 놀이... 

나중에 크레온 왕이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며 자신을 왕좌에서 몰아내라고 하자 망설임 없이 "유익한 조언입니다. 불행 속에서도 뭔가 유익한 게 있다면. 불행과 직면하려면 가장 빨리 하는 게 최선입니다." 라고 한 마디. 


코러스 = 여론 = 상식에 기반한 집단 지성의 목소리, 라고도 할 수 있을 듯하다. 코러스는 '안티고네-신의 법'과 '크레온 왕-인간의 법' 중 어떤 한쪽 편을 들지는 않는다. 왕에 대해서도 안티고네에 대해서도 그냥 소신 있게 자기 할 말을 한다. 이 말들은 모두 "인간은 모두 죽는 존재", "불행과 직면하려면 가장 빨리 하는 게 낫다", "신들에게 불경을 저질러선 안 된다", "나이를 먹으며 지혜를 배운다"는 등 어떤 인간적 상식, 연륜, 삶의 지혜에 기반을 둔 말들이다. 그런데 코러스의 말들에는 한 가지 없는 게 있다. 타인이 겪는 심적 고통을 내 것처럼 느끼고 공감해주는 감정 이입이 없다.


* 코러스 얘길 주로 했는데, 그것 말고도 할 얘기가 많은 아주 매력적인 텍스트다. 


막독 20기 [바닥] 

여섯 번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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