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브래드버리 - 태양의 황금 사과 외 31편 현대문학 세계문학 단편선 18
레이 브래드버리 지음, 조호근 옮김 / 현대문학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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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레이 브래드버리(Ray Bradbury)는 1920년에 태어나서 2012년에 타계한 SF, 판타지 작가다. 최근까지 살아 있었던 셈. 2012년에 이 작가가 타계했을 때, 미국 대통령 오바마가 추도사를 하기도 했다고. 오바마 역시 레이 브래드버리의 팬이었던 셈. 



레이 브래드버리는 대개 'SF 작가’라 불리긴 하는데, 우리가 통상 이해하는 과학 소설(Science Fiction)로서 SF를 쓴 작가는 아니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작품들은 환상(판타지)적 색채, 동화적 색채가 짙다. 


SF를 썼지만 과학적 사실에 구애받지 않으면서 상상력을 자유롭게 펼쳐 나가는 식으로 썼다고 할 수 있다. 더불어 문장과 이미지가 매우 아름답다. (그래서 <멋진 신세계>로 유명한) 올더스 헉슬리 같은 작가는 레이 브래드버리를 ‘시인’이라 불렸다고. 또 미스터리, 공포(horror)에 해당하는 작품도 많이 썼기 때문에 ‘에드거 앨런 포의 후예’라고도 불린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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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들에는 ‘인간이 만든 어떤 것’(=새로운 발명품)이 거의 반드시 등장한다. <안개 고동>에서는 거대한 등대와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고동, <날틀>에서는 날틀(=비행기), <저 너머의 드넓은 세계>에서는 (편지를 쓸 수 있는) ‘문자’, <태양의 황금 사과>에서는 ‘태양 탐사 우주선’이 발명품에 해당한다. 또 다른 작품들에서는 '로켓', ‘발전소’, '인공 태양', ‘테마 파크’, ‘타임 머신’, 심지어 ‘운동화’ 등이 발명품으로 등장한다. 


말하자면 레이 브래드버리에게 인간은 무언가 새로운 것, 훌륭한 것을 만드는 존재다. 훌륭한 발명품은 세계를 변화시킨다.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올려 인간을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존재로 변모시킨다. 그런데 그는 이 새로운 발명품을 갖고 어떤 편리함이나 물질적 이득, 과학의 발전과 연관시키며 소설을 쓴 게 아니라 ‘감정’과 연관을 시킨다. 이게 이 작가의 특별한 점이다. 게다가 이때 ‘감정’이 꼭 인간의 감정인 것만은 아니다. 예를 들어 <안개 고동>에서는 거대한 등대와 고동이라는 발명품과 심해 괴물의 ‘기다림’과 ‘외로움’이 서로 연관되어 다뤄진다. 그는 감정이란 게 오직 인간만의 것이 아니라 세상 모든 존재들의 것이라고 본다. 이 세상, 이 지구와 우주가 인간만의 것이 아닌 것과 같다. 오직 이 점에서 보더라도 레이 브래드버리는 특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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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개 고동>은 미국 교과서에도 실린 소설이라고 한다. 거대한 등대가 있고, 그 안에는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낼 수 있는 고동이 있다. 인간들이 만든 것이다. 이 고동 소리를 듣고 심해 괴물이 해안을 방문한다, 는 이야기. 이 심해 괴물의 정체는 정확히 알 수 없고, 아마도 공룡의 일종이 아닐까, 라고 막연히 추측을 하고 있는 상황. 작가는 이 막연함을 막연함 그대로 내버려둔다. 괴물의 정체를 정확히 밝히는 데는 별 관심을 쏟지 않는다. 괴물을 잡아다가 해부를 한다거나 유전자를 채취한다거나 하는 실험 계획 같은 건 소설에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대신에 작가는 소설 속 인물의 대화를 통해 이 괴물이 만약 멸종한 공룡 중 살아남은 한 마리라면 '얼마나 외로웠을까' 하는 점에 관심을 쏟는다. 이게 세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관심이고 관점이다. 레이 브래드버리는 그런 관점에서 공룡과 인간을, 그리고 그 두 생명체가 모두 존재했던 이 지구의 역사를 바라본다.


<안개 고동>은 모든 동료(?) 공룡들이 다 없어진 상태에서 심해에 100만년 동안 웅크리고 있다가 커다란 고동 소리를 듣고 그게 다른 공룡의 소리인 줄 알고 물 위로 나왔는데, 알고 보니 인간이 만든 고동의 소리였다… 라고 줄거리를 정리할 수 있다. 어떻게 보면 되게 허무한 이야기고, 별 다른 스토리도 없는 이야기다. 그런데 작가는 이 이야기를 통해 인간이 얼마나 작고 유한한 존재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해준다. 심해 괴물의 ‘100만년 동안의 기다림’을 ‘인류  역사(호모 사피엔스부터 계산해도 겨우 1만년)’ 와 비교하는 비교적 관점이 우리의 무의식 속에서 의식 표면으로 자연스레 부상(emerge)하듯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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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하들은 그가 소리 높여 말하기를 기다렸다. 모든 서늘함과 흰색과 반갑고 상쾌한 날씨를 한데 그러모아, 마음속에 떠오른 단어를 입 밖에 내기를 기다렸다. 그들의 눈에, 선장이 입안에서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굴리듯 그 단어를 만들어 내는 모습이 보였다.

 

“이제 우리가 갈 수 있는 방향은 우주에서 단 하나밖에 없지.”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그들은 기다렸다. 빛에서 도망쳐 빠르게 차가운 어둠 속으로 움직이는 우주선에서, 그들은 기다렸다. 


“북으로.” 선장이 중얼거렸다. “북으로.”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함께 웃었다. 무더운 오후에 한 가닥 바람을 만난 사람들처럼. 

- <태양의 황금 사과>, 247.



단편 <태양의 황금 사과>의 마지막 장면이다. 단순하지만 아름다운 서술이고, 아름다운 장면이다. 



<태양의 황금 사과>도 겉보기엔 되게 허무맹랑하고 별 것 아닌 이야기다. 미래의 어느 시점, 태양 탐사선을 타고 일군의 탐사 대원들이 미션을 수행하러 태양에 가까이 가는 과정이 그려진다. 미션 내용은 태양을 한 컵 퍼내는 것. 아이스크림 가게에 가면 점원들이 아이스크림을 한 스쿱 퍼내는데, 마치 그런 느낌으로 태양을 한 컵 퍼내서 갖고 오는 것—이것이 바로 태양 탐사 미션의 내용이다. 



왜 이런 미션을 수행하는 걸까? 이에 대해 작가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우리가 알고 싶은 것을 아는 유일한 존재는 태양이며 태양에만 그 비밀이 숨어 있기 때문에. 게다가 재밌기도 하고. 여기까지 와서 술래잡기를 하며, 태양을 한 대 때리고 도망갈 수 있는 기회니까. 사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오직 작은 벌레 같은 인간들이 헛된 자존심 때문에, 사자의 콧등을 쏜 다음 그 입에서 도망치려고 시도하는 것뿐이었다. 그리고 자기네가 해냈다고 당당하게 외칠 수 있게 말이지! (<태양의 황금 사과>, 현대문학, 243-244) 



요컨대 재밌기 때문에, 태양을 한 대 때리고 도망갈 수 있는 기회니까, 라는 것. 별다른 이유는 없다. 인간의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며, '해냈다'라고 한 마디 말할 수 있는 성취감 때문이다. 



온도조절기가 고장 나는 바람에 대원 한 명이 죽지만 태양 성분을 한 컵 퍼내는 데 성공한 후, 소설의 마지막 대목에서 부하들은 선장의 말을 기다린다. 임무에 성공했으니 이제 우리는 어디로 가느냐고. 



선장은 곧바로 말을 하지 않고, “입안에서 아이스크림 덩어리를 굴리듯” 단어 하나를 만들어내어 중얼거린다. "북으로." 

그리고 그들은 모두 함께 웃는다. 무더운 오후에 한 가닥 바람을 만난 사람들처럼. 끝. 이게 전부다. 



레이 브래드버리의 소설에서 인간들은 로켓을 만들어 우주로 발사하기도 하고, 거대한 등대나 비행기를 발명하기도 하며, 문자를 쓸 줄 아느냐 모르냐를 두고 서로를 질투하고 속상해하기도 한다. 성벽을 쌓고 전쟁을 일으켜 이웃 마을을 정복하기도 하며, 8일 간의 수명을 11일로 연장시키기 위해 전투를 벌이기도 한다. 이 모든 인간의 활동은 따지고 보면,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헛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떤 헛된 일 하나를 함께 수행하고 마친 후 우리는 함께 웃을 수 있다. 무더운 오후에 한 가닥 바람을 만난 사람들처럼. 그 상쾌한 한 순간을 맛보기 위해 우리는 지난 여름의 폭염과 헬조선에서의 이 팍팍한 삶을 견뎌내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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