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1
데이비드 하비 지음, 강신준 옮김 / 창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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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하비는 예전에 독서모임에서 <파리, 모더니티>라는 책을 함께 읽은 적이 있다. 

그후 애정하는 학자가 되어 틈틈이 저서들을 찾아서 읽고 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지만, 힘들 때 하비의 책을 읽는 건 꽤 도움이 된다.  

그건 내가 힘든 이유가 주로 돈 문제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뭐 다들 마찬가지겠지만.)

그래서 '자본(주의)=돈'에 관련된 책들을 틈나는대로 읽어보곤 한다. 

내가=우리가 왜 이렇게 힘든지 그 이유라도 알고 나면 덜 힘들까 하는 심리에서인 듯.

('인식'에서 힘? 즐거움? 스피릿? 을 얻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나도 그 중의 한 명인 듯.) 

그런데 책을 읽는다고 해서 실제로 덜 힘든 거 같지는 않다. 

(알든 모르든 똑같이 힘든 듯. 외부 상황은 그대로니까.) 

다만 책을 읽고 나면 힘든 걸 대하는 태도가 조금 달라진다.

최소한 힘들다, 힘들다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대신, 책을 읽으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거...

까놓고 보자면 현실 도피일지도 모르겠는데, 어쨌든 힘든 때에 찾아보고 싶은 책이 있고 

그 책을 보는 게 실제로 힘이 되고 적어도 기분 전환이 된다는 건 그 자체로 큰 행복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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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란한 마음을 달래고자... (참가신청자가 1도 없어서 '한 책 읽기' 독서모임을 취소했다) 책을 읽었다. 


예쁘고 촉감 좋은 표지 및 그립감 좋은 두께 덕에 종종 펼쳐드는 데이비드 하비의 <맑스 '자본' 강의>. 말 그대로 맑스 <자본>을 강의로 풀어 놓은 책인데, 이 책 의외로 재밌다. 연륜 있는 저자가 중간 중간 이런 저런 사례, 에피소드들 들려주는 덕분인데, 특히 하비는 서문에 다음과 같은 재밌는 에피소드를 소개하고 있다.

 

예전에 자신이 자본 강의를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한 적이 있는데, 계획대로 진도를 뺄 수 없어서 애를 먹었다는 이야기. 저자의 표현을 그대로 인용하면 이렇다. "나는 극도의 절망감에 빠진 채 거의 한학기 전부를 제1장을 읽는 데에만 소비했다." 그냥 애를 먹었다는 것도 아니고 극도의 절망감에 빠졌다는 거... 


아니 대체 왜 진도를 뺄 수 없었을까? 하비는 이렇게 쓴다. "(학생들이) 내가 이야기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고 내가 보기에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안에만 계속 머물러 있으려고 했기 때문이다." ㅋㅋㅋ 이런 대목을 읽으면 위안이 된다. 나만 그런 건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하는 얘기에 별 관심이 없음[혹은 제멋대로 들음], 하지만 그게 또 그리 절망적인 일만은 아님을 하나의 소설적 주제로서 훌륭하게 다룬 사례로 체호프를 들 수 있는데, 이에 대해서는 다른 기회에.) 


어쨌든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상황을 견디다 못한 하비는 학생들에게 이렇게 호소한다. "여러분, 우리는 진도를 나가야 합니다. 적어도 노동일 부분까지만이라도 나가야 합니다." 


학생들은 이렇게 말한다. "아닙니다. 안됩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올바로 이해해야만 합니다. 가치란 무엇입니까? 맑스가 화폐상품이라고 부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물신적이라는 말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심지어 <자본> 독일어판을 들고 와서 (영어) 번역본과 일일이 대조하기도 한다. 


나중에 하비는 텍스트에 대한 이러한 접근 방식이 (존스홉킨스 대학에서 강의를 했던) 자크 데리다의 영향을 받은 것이었음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고 (텍스트를 주의 깊게 읽는) 그러한 방식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런 에피소드를 통해 하비는 교육은 지식 소유자(=선생)가 학생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가르치고 설파하고 전수하는 과정이 아니며,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는 과정임을 이야기한다. 정말이지 매력적인 선생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하비는 진도를 나가는 자신의 강의 방식을 그대로 고수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건 하비가 "적어도 '노동일'까지는 진도를 나가야 한다"며 학생들에게 호소한 대목이다. 왜 하필 노동일일까? 궁금해서 읽어봤다. 총 25장인 <자본> 1권에서 '노동일'은 8장이니 초반 3분의 1 지점이다. 그런데 실제로 강의의 이 대목을 읽어보면(이 장만 따로 읽어도 된다) 왜 하비가 노동일까지만이라도 진도를 나가자고 했는지 이해가 된다. 정말 재밌다. 강의자가 준비를 많이 한 대목인 게 보인다. 앞서 설명한 어려운 이론과 개념들이 이 대목에서 빛을 발한다. 맑스의 핵심 논지가 무엇인지 , 그가 당대의 현실 속에서 얼마나 철저하고 세심하게 자본(및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했는지, 동시에 그러한 분석이 오늘날에도 충분히 유효한지, 그의 사상이 '혁명적'인 이유가 정확히 어떤 지점에서 그러한지, 그리고 후대의 맑시스트 학자들(특히 푸코)이 어떤 지점에서 그의 유산(과제)을 계승했는지 등이 명확해진다. 더군다나 하비는 그걸 우리가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는 방식으로 쉽게, 다양한 사례와 에피소드를 들어가며 설명해준다. 그의 입장에서는 진도를 나가지 못하는 상황에 대해 충분히 초조해할만하고 학생들에게 서운해할만 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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