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 주기 에스프레소 노벨라 Espresso Novella 6
테드 창 지음, 김상훈 옮김 / 북스피어 / 2013년 8월
평점 :
절판


테드 창 <소프트웨어 객체의 생애주기>를 읽었다. 재밌고 단숨에 읽힌다.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하는 인공지능을 만드는 데 있어서 감정(애착, 친밀감, 사랑)의 문제를 배제할 수 없다는 게 소설의 기본적 입장. 요컨대 학습과 성장은 애정 없이 가능하지 않다는 것. 소설에서는 '강요된 애정'을 환기하는 상황이 여러 차례 등장하기도 한다.


소설에서는 크게 두 가지 종류의 인공지능이 등장한다. 첫 번째 종류는 스스로 학습과 성장을 하지만 그 속도가 굉장히 느려서 실용적 용도로는 쓸모가 없다. 다만 인간이 자발적으로 애정을 쏟고 보살필 수 있도록 '귀엽게' 설계되어 있다. 마치 업그레이드된 다마고치, 혹은 반려동물과 같은 인공지능이다. 문제는 역시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으로 보살핌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 물론 인공지능이 귀엽고 기특한 행동들을 해서 '감정적 보상'을 받을 수는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오래 관계를 지속하지 못하고 지쳐 나가 떨어진다.(반려동물과 달리 인공지능 소프트웨어는 생명체도 아니기에 인간-구매자 입장에서도 큰 책임감 없이 '종료'시킬 수 있다.) 


두 번째 종류는 '사교성'은 제거하고 '강박증'을 집어넣어 학습에 최적화된 인공지능. 개인 비서로 활용가능한 사업성이 높은 모델이다. 문제는 매력(즉 사교성, 사회성)이 너무 없어서 아무도 사용하려 하지 않는다는 점. 또 다른 제 3의 용도도 있는데 그건 섹스 파트너로서의 인공지능이다… '애정 특화' 모델인 첫 번째 모델을 ‘성적으로' 성장시켜 섹스 파트너로 제공한다는 사업 모델이다. 말만 들어도 좀 어이없고 불쾌한 발상이지만, 테드 창은 인공지능의 자가 학습, 자가 성장에 바로 이 '성적 성장’(및 그것과 긴밀히 연계된 자기결정권)이라는 맥락을 잘 결부시켜 흥미로운 주제로 제시한다. 


자연스러우면서도 어떤 유토피아적인(그만큼 비현실적인) 감정적 상호작용이 가능한 건 첫 번째의 경우이고, 후자의 두 경우는 '애정(친밀함)을 강요하는 것'과 관련이 있다. 비즈니스 모델이 언제나 ‘애정의 강요’와 관련된다는 게 흥미롭다. 따로 생각해볼 지점. 


'작가 노트'에서 테드 창은 "감정을 느끼는 소프트웨어의 개발은 정말로 생각을 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들어 내기 전에 거쳐야 할 필수 단계"이며, "설령 사고를 감정에서 분리해 낼 수 있다 하더라도, 인공지능에게 감정을 부과해할 다른 이유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쓴다.


<프랑켄슈타인>에서도 '괴물'은 기본적으로 감정을 지닌 존재로 등장한다. 즉 부지불식간에 작가 메리 셸리는 피조물이 창조자와 맺는 감정적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프랑켄슈타인>의 경우 괴물이 창조자에게서 가장 먼저 캐치하는 감정은 애정이 아닌 '혐오감'과 '두려움’이다. 이러한 창조자의 최초 반응이 괴물에게는 마치 트라우마처럼 작용한다.


나중에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은 자신이 차라리 아무 감정 없이 태어난 존재였다면 더 나았을 것이라고 한탄한다. 한데… 굳이 인공지능을 상상하지 않더라도, 우리 역시 감정을 학습이나 성장에 방해가 되는 요인으로 생각하며 한탄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입시생일 때, 직장인일 때, 연구자일 때, 자신이 하는 일의 사업성을 타진하는 사업가일 때, 우리 마음속 이상적 롤모델은 감정이 없는(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인공지능이다. 물론 우리는 감정에 휘둘린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사람들은 인공지능 알파고를 '내 일자리를 뺏을 수 있는’ 어떤 넘사벽 경쟁자로 인식한 셈이다. 


그런데 감정은 열등한 것이고 잉여적인 것에 불과한가? '완벽한 지성체'가 되기 위해서는 감정을 제거해야 하는가? 하지만 지능은(그 단어에 내포된 스스로 성장하고 학습한다는 활동은) 감정과 불가분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테드 창의 생각이다. 


알파고에 대한 기사들을 보면서 흥미로웠던 점은, 인공지능을 감정을 가진 존재로 묘사하는 경우 많았다는 것이다. 굳이 인공 피조물을 감정적 존재로 보려는 건 역시 인간 쪽인가? 그러한 시각은 나이브한 시각인가? 그런데 이는 어쩌면 '스스로 학습하고 성장하는' 인공지능이라는 개념이 불가피하게 감정과 연관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모두들 부지불식간에 눈치채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알파고에게 실제로 감정을 부여한다는 가능성이나 그것이 갖는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듯하다.


오히려 반대 방향에서 "인간의 감정(애정 또는 열정이나 직관) 역시 어떤 연산의 결과물(무척 복잡한 것이겠지만)에 지나지 않는 것일 수 있다"는 ‘인간혐오적’(자기혐오적) 생각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 일단 이런 반응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다른 누군가와 관계를 오래 지속하는 것을,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여러 감정들을 감당하기 버거워하고 있거나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의 가능성에 대해 극히 회의적이라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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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대상 독서 모임에서 이 책을 읽어도 될지 어떨지 모르겠다. 과연 재밌게 읽어올 것인가? (성적) 성장이라는 주제에 대해 잘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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