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인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44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인환 옮김 / 민음사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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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번은, 역시 그 여행 중의 일이었는데, 대양을 횡단하는 동안, 매일 똑같은 밤이 계속되었다. 그날도 다른 날과 다름없는 밤이 시작되었을 때였다. 중앙 갑판의 큰 응접실에서 쇼팽의 왈츠가 울려 퍼졌다. 그 곡은 그녀가 비밀스럽고 은밀하게 알고 있던 곡이었다. 몇 달 동안이나 그 곡을 배우려 애썼지만 한 번도 정확하게 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마침내 어머니도 그녀가 피아노 치기를 포기하는 것을 승낙했었다. 그녀의 기억 속에서 수많은 밤과 밤 사이에 흐릿해져 버린 그날 밤에 대해, 갑자기 그녀는 확신이 들었다. 한 어린 소녀가 그 배 위에서 밤을 보냈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 순간, 별이 반짝이는 밤하늘 아래 쇼팽의 음악이 큰 소리로 울려 퍼졌을 때, 그녀는 거기에 있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음악은 어두운 여객선 구석구석까지 퍼져 나갔다. 무엇과 관계가 있는지 알 수 없는 하늘의 지시처럼, 뜻을 알 수 없는 신의 명령처럼, 그 음악은 울려 퍼졌다. 소녀는 일어섰다. 마치 이번에는 자기가 달려가 자살하려는 것처럼, 바다에 몸을 던지려는 것처럼. 그리고 그녀는 울음을 터뜨렸다. 콜랑의 그 남자가 생각났기 때문이다. 그녀는 불현듯 예전에 자신이 콜랑의 남자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런 종류의 사랑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 이제 그는 모래 속에 스며든 물처럼 이야기 속으로 사라져 버렸고, 이제야, 쇼팽의 음악이 큰 소리로 퍼지는 지금 이 순간이 되어서야 겨우 다시 기억해 냈기 때문이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 <연인>, 민음사, 133-134.


 
소설의 이 대목을 읽으면서 쇼팽의 왈츠를 찾아서 들어봐야지, 생각했었는데, 그 생각을 이제서야--두어 달이 지나서야 실행에 옮기게 됐다. 나는 쇼팽을 그닥 (잘 알지도 못하면서) 좋아하지 않는다. 피레스가 연주한 이 왈츠곡들은 생각보다 좋다. 꽤 좋다. 자주 듣게 될 것 같다. 그렇다고 쇼팽을 좋아하게 될 거 같진 않다. 정확히 말하면, '나는 쇼팽을 좋아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지 않다.




 

좋아질 듯 좋아질 듯 좋아지지 않는 쇼팽과는 별개의 이야기로, 나는 <연인>의 위 대목이 꽤 신경 쓰인다. 오역인 듯 오역 아닌 오역 같은 한 문장 때문이다.

 

"그녀는 불현듯 예전에 자신이 콜랑의 남자에 대해 가졌던 감정이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런 종류의 사랑이었는지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


처음에 나는 이 문장을, 화자가 예전 소녀 시절에는 알 수 없었던 자신의 감정을, 훗날 대양 횡단 여행 중에 쇼팽의 음악을 우연히 듣게 된 시점에, 그때 그 감정이 사랑이었음을 깨달았다, 라는 식으로 읽었다. 그런데 다시 읽어보니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라고 쓰여 있다. 이게 무슨 말일까?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런 종류의 사랑'이란 또 무슨 말일까?


오역일까? 사실 이 소설엔 오역이나 자연스럽게 이해가 되지 않는 표현과 문장이 꽤 있는 편이이서('남동생'을 '둘째 오빠'라고 번역해 놓은 게 대표적) 그냥 오역으로 받아들이고 넘어가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이 문장을 그냥 넘어가고 싶지 않다. 자꾸 신경이 쓰인다. 가능하다면 이 문장의 정확한 의미를 알고 싶다. 프랑스어를 좀 읽을 수 있다면 좋겠지만, 나는 프랑스어를 못한다.


오역이 아닐 거라고, 복잡한 문장 구조와 (번역이 어려운) 미묘한 뉘앙스의 단어와 표현들로 쓰여진 원문을 번역자가 최대한 정확히 번역하려 노력한 것이라고 믿어 보자.


좀 애매모호한 대목은 '스스로도 미처 깨닫지 못했던 이런 종류의 사랑'이다('이런'이 뭘 가리키는지 알 수가 없다). 이 대목을 통째로 빼고 문장을 재구성해보면, "그녀는 자신이 예전에 콜랑의 남자에 대해 가졌던 감정을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가 된다. 문장 구조가 좀 단순해졌다. 그렇다면 해석이 잘 안 되는 부분은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는 부분이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일까? 뭔가 미묘하고 혼란스럽다. 일반적으로는 "훗날 나는 쇼팽의 음악을 듣고 당시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확신할 수 있게 되었다[알게 되었다]"라는 식으로 쓸 것이다. 이게 우리에게 '익숙한' 표현이다. 하지만 뒤라스는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라고 썼다. 나는 '익숙한' 언어 습관에 따라 위 문장을 오독한 셈이다.


소설의 화자는 소녀 시절 자신이 콜랑의 남자에게 가졌던 감정이 무엇인지, 그게 어떤 종류의 사랑에 값하는 것인지 확실히 알고 싶어 했던 것 같다. 그리고 되도록이면 그게 사랑에 값하는 어떤 감정이었기를, 스스로 그렇게 정리할 수 있기를 바란 것 같다. 하지만 그런 바람과는 달리 그녀가 쇼팽의 음악을 들으며 불현듯 깨닫게 된 것은 그게 사랑인지 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다. 그러니까 그녀는 어린 시절 콜랑의 남자와 했던 경험을 '사랑'으로 자리매김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정리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우리가 대개 과거를 아름다운 추억으로, 사랑으로 미화하고 넘어가거나 뿌연 안개 속에 남겨두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상기한다면, 위 문장은 꽤 의미심장하게 읽힌다. 무엇보다 화자의 정직함이 돋보인다. 내 감정은 내 거니까 내 맘대로 처리하고 내 맘대로 의미를 (대충 좋은 쪽으로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아니면 굳이 정확히 정리하려고 해봤자 '나만 손해'라는 생각에 얼버무리고 넘어가는 경우도 많다. 상처를 들쑤시지 않기 위해 과거를 윤색(또는 망각)하는 이런 태도가 꼭 나쁜 것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때의 그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파악하고 날것의 진실과 마주하는 것은 때로, '현재의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어떤 치열함을, 심적 부담을 동반하는 일이다. 어떤 대상에 대한 집요하고 정확하고 무사공평한 분석이 반드시 미덕인 것은 아니라고, 요즘의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연인>을 쓸 무렵, 70세의 뒤라스는 그렇게 하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다. 소녀 시절 중국인 남자와의 감정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가능한 한 정확히 쓰고 싶었던 모양이다. 그때의 그 감정은 사랑이었을까? 아니었을까? "그건 사랑이었어." "아니 그건 사랑과는 다른 무엇이었어." 이렇게 단정지어 말하는 대신, 거짓이 섞인 확신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소유하는 대신, 뒤라스는 '확신할 수 없음을 알았다'라고 쓴다. 이 문장이 오역이 아니라는 전제 하에 말하는 것이지만, 그녀는 쇼팽의 왈츠가 들리는 그 순간 불현듯, 사랑인듯 사랑아닌 사랑 같은 그 감정의 혼란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데 성공한 게 아닐까 싶다.

 

 

독서 모임을 하면서 번역에 대한 불만을 들을 때가 많다. 일반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어색함이 남는 직역보다는 쉽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의역을 선호한다. 번역자를 두고서, 이 사람은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면서 번역을 어떻게 하느냐는 비난도 자주 듣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말로 자연스럽게 읽힌다고 해서 '번역을 참 잘했군!'하고 칭찬만 할 일은 아니닐 것이다. 자연스러움을 대가로 희생되고 삭제되는 요소가 분명 존재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생각은 복잡한 문장을 필요로 하고, 혼란스러운 감정은 역시 혼란스러운 표현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것들을 역자나 편집자가 깔끔하고 명확하게 다듬어 버리면 독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작품에 깃든 중요한 뭔가를 놓쳐버리는 셈이다. [...]


일단은 이렇게 써둔다. 나중에 위 문장이 엉터리 오역으로 밝혀질 수도 있다. 그럼 좀 민망할 것 같기는 하다. 이런 글은 어쨌든 원문을 확인하고 나서 써야 하는 글인데, 확인도 하지 않고 불확실한 사실들을 가지고 제멋대로 추측해서 썼으니 말이다. "그러나 어쩌랴! 우리의 힘이란 고작 우리의 약점들을 그러모아 어떻게든 활용해 보는 것일 테고 우리 능력이란 기껏해야 우리의 수단들을 저울질하는 정도인 것이다."(장 그르니에, <담배>, <<일상적인 삶>>)


약점들을 그러모아 어떻게든 활용해 보려 노력해봤으니, 달리 말해 (프랑스어를 모르고 원문을 찾아보지 않았다는) 약점을 약점으로 남겨둔 덕분에 저 인용 대목을 여러 모로 곱씹어볼 수 있었으니 그걸로 만족할 수 있을 것 같다.



20150125

막독13기 레이디 / 첫 번째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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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연인>(1992)에서도 저 장면을 다뤘고, bgm으로 쇼팽의 왈츠를 쓰고 있는데, 이때 쓰이는 곡은 왈츠 10-2번 / 작품번호 69-2번(Op.69 No. 2 in B minor) 라고 한다. 위 영상에서는 35:16부터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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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00:1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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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2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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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7 23:5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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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8 23: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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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로군 2015-10-08 02: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최근에 어떤 글을 읽다 알게 된 사실이 있어서 덧글 남깁니다. 프랑스어에서는 `남동생`과 `작은 오빠`를 같은 표현으로 쓰기 때문에 구별할 수 없다고 하네요. 영문판에는 younger brother라고 되어 있다지만, 그 영역이 오역일 가능성도 있기 때문에 `남동생`이라고 100% 단정할 수는 없을 것 같아요. [...] 그리고 `아 이게 자전적 소설이었지`라는 생각에 연보를 보니, 뒤라스는 `2남 1녀의 막내`였군요. 이 전기적 사실을 소설에 그대로 적용하는 게 가능하다면 영문 번역이 오역이라 하겠습니다... 아니, 그러고보니 영어도 프랑스어와 마찬가지로 younger brother가 남동생과 작은 오빠 둘 다의 의미를 가지는 것 같기도 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