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도시 이야기 창비세계문학 34
찰스 디킨스 지음, 성은애 옮김 / 창비 / 201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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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격변의 순간에, 혹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각기 어떤 선택을 하는가, 억압자 혹은 피억압자이던 사람들은 혁명의 순간에 제 위치를 어떻게 의식하며 또 어떤 행태를 보이는가, 위기의 순간에 우애나 애정은 어떻게 변하고 또 어떻게 지켜지는가, 인간의 미덕과 사악함은 어떤 상황에서 발휘되는가, 삶의 가치란 어떻게 결정되는가.

 

작가로서, 또 중년 남자로서, 여러모로 ‘격변’과 ‘위기’에 처한 디킨스는 『두 도시 이야기』를 통해 위기에 처한 개개인이 어떻게 하면 가치있게, 인간답게 살아남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제기함으로써 자신의 위기를 성찰할 기회를 얻었을 것이다. 이 소설이 디킨스의 작품 중 가장 ‘종교적’이라고 평가받는 것은 바로 이러한 특수함 때문이 아닐까.”


역자 성은애의 한 마디


찰스 디킨스, <두 도시 이야기>의 새로운 번역이 나왔습니다. (이미 지난 7월에 나왔네요). 기존의 펭귄클래식 번역도 괜찮았습니다만, 이번 번역본은 창비에서 나온 것이라 기대를 품어봄직합니다. 일단 '역자의 한 마디'가 눈에 들어오네요.

 

 

"역사적 격변의 순간에, 혹은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사람들은 각기 어떤 선택을 하는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를 두고 '역사적 격변의 순간'이자 '위기의 순간'이라고 진단하는 사람들이 많은 줄로 압니다. 굳이 세계적인 석학들의 진단을 참고하지 않더라도 '역사적 격변'이니 '위기'니 하는 말이 전혀 과장이 아니라 느끼는 사람도 많을 줄로 압니다. (일단 하루 하루 먹고 사는 일이 위기의 연속입니다.) 

 

이런 시대에 나는 (그리고 우리들 각자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하게 될 것인지... 이딴 식으로 생겨먹은 세계에서의 삶이 전적으로 부질없는 것이 아니라면, 그 가치는 과연 어떻게 결정되는 것인지... 뭐 이런 문제에 대해 디킨스가 무슨 뾰족한 답을 줄 것 같지는 않습니다. 답을 준다하더라도 그 자신만의 답이 아닐까 싶습니다만, 그래도 그가 (모두가 속수무책으로 휩쓸릴 수밖에 없는) 역사의 흐름 속에서 선택의 문제, 삶의 가치의 문제를 제기한 것, 역사의 흐름에 맞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을 모색한 것은 높이 평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편, (제가 쓴 것이지만) '역사에 맞선다'라는 표현이 저는 마음에 들지 않는데요, 역사-시대의 흐름에 맞서 개인이 할 수 있는 건 사실상 별로 없는 것 같아서입니다. 디킨스의 주인공들은 '역사에 맞선다'라는 표현에 합당한 그런 선택들을 하지만... 그러니까 소설이겠죠. 


 

오늘날 자본주의적 관계망을 전적으로 벗어나 존재할 수 있는 개인은 없고,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우리가 착취당하는 만큼 다른 이들을 착취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서로에 대해서 '가차 없는 착취자'로 존재한다, 적어도 그런 가능성을 품고 있고 또 (그 가능성이 현실이 되는 것을) 끝까지 거부하지 않고(혹은 못하고), 짐짓 모른 척 승인하고 있다, 아니 (공정을 기해 말하자면) 어쩔 수 없이 승인할 수밖에 없다, 는 생각입니다. 그러한 해소불가능한 모순, 치유불가능한 모순을 상처처럼 우리 양심에 새겨 넣은 채, '병리학적 주체'로서 우리는 이 가혹한 역사의 흐름을, '네 이웃을 할 수 있는 데까지 착취하라'는 게 절대명제로 자리한 이 세계를 가까스로 하루 하루 버텨내고 있을 따름입니다. 뭐...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봐야 하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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