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루레이] 인셉션 (2disc)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외 출연 / 워너브라더스 / 2010년 12월
평점 :
품절


감독: 크리스토퍼 놀란.

출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조셉 고든 래빗, 마리온 꼬띠아르, 와타나베 켄, 킬리언 머피

 

 

영화는 '익스트랙션-추출'의 개념에서 출발한다. 이는 어떤 이의 꿈으로 침투하여 생각-아이디어(기업 기밀 같은)를 탈취하는/추출하는 개념이다.

 

익스트랙션-추출에 반대되는 개념이 '인셉션-기입(주입)' 개념이다. 이것은 어떤 이의 꿈으로 침투하여 어떤 생각-아이디어를 기입(주입)하는 것이다. 추출에 비할 때 기입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여겨지는데, 주인공 돔 코브는 인셉션을 시도해본 적이 있다고 말한다.

 

돔 코브는 사이토가 이끄는 대기업의 유일한 경쟁 기업인 피셔-모로우 에너지 회사의 후계자 피셔 2세에게 어떤 생각을 인셉트-기입/주입하는 일을 맡게 된다. 그가 피셔 2세에게 각인시켜야 하는 생각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업을 해체하라는 것이다. 사이토는 코브 일당에게 일을 의뢰하면서 다음과 같은 '명분'을 덧붙인다. 즉 만약 피셔 2세가 회사를 해체하지 않는다면 피셔-모로우 에너지 회사는 조만간 전지구적 차원에서 에너지 산업을 독점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사이토의 이러한 언급은 곧바로 국가의 경계를 넘어 전지구적 규모의 독점과 착취를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기업 집단을 떠올리게 한다. 그러나 만약 피셔-모로우라는 독점 기업이 해체된다면, 그 자리에 대신 사이토의 기업이 들어서 에너지 산업을 독점하게 될 것임이 자명하다. 하지만 영화는 이러한 점에 대해서는 자세한 언급을 하지 않는다.

 

어쨌든 돔 코브 일당은 피셔 2세에게 이 생각(회사를 해체해야 한다는 생각)을 직접 주입하기보다는 아버지-아들 간의 관계에 착안하여, "난 아버지의 발자취를 따르지 않겠다"(1단계),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보겠다"(2단계), "아버지는 내가 자기처럼 되지 않길 원한다."(3단계)는 생각을 차례로 주입시키려 한다. 

 

이 계획을 이끄는 돔 코브 자신은 "아내와 함께 늙어가기"라는 생각을 소중히 지니고 있다. 그의 아내는 모종의 사건으로 인해 죽었으나 돔은 자신의 기억 내밀한 곳에 아내를 가둬둔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기 기억 속에 축조된 공간에서 "아내와 함께 늙어가기"라는 생각을 이루려 하는 것이다. 이는 돔이 지닌 이상적 가족에 대한 관념인데, 동시에 전통적이고 낭만화된 미국의 가족 관념이기도 하다. 

 

돔은 자신이 아내를 죽였다는 '오해' 때문에 아이들이 있는 미국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상태다. 꿈 속에서 임무를 수행하는 그에게 아이들의 행복한 한 때가 보이는데, 이러한 광경 및 이 광경에 뒤이어 나타나는 아내가 그 자신 및 그와 함께 임무를 수행하는 동료들을 방해한다. 즉 아내는 그의 투사체로서 꿈-세계에 나타나 임무를 꼬이게 만든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돔의 투사체인 아내-아이들이 암시하는 바, "홈 스위트 홈" 아이디어가 돔에게 (또한 대다수의 미국인에게) 이미 오래전에 주입된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를 바꿔 말하면 미국의 가족 이데올로기라고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서 "홈 스위트 홈"의 이미지는 아이들의 행복한 한 때로 표현된다. 이것은 아버지 돔의 꿈 속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데, 이때 그는 아이들의 뒷모습 밖에 볼 수 없으며, 그가 아이들의 이름을 불러도 아이들은 반응이 없다. 또한 "홈 스위트 홈" 아이디어는 "아내와 함께 늙어가는 것"이라는 아이디어로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것과 (림보에서) "회한에 빠져 외로이 늙어가는 것"의 차이는 사실상 없어보이기도 한다. (한편 극장 관객석에 앉아 스크린을 응시하는 미국인 관객들이 보기에는 돔 코브라는 인물 자체가 일종의 투사체처럼 보일수도 있을 것이다)

 

이러한 "홈 스위트 홈"의 아이디어와 연동되고 공명하는 아이디어로서 돔 일당이 피셔 2세에게 주입시켜야 하는 아이디어인 "대기업을 해체시켜야 한다"라는 것을 들 수 있다. 오늘날, 국가의 역량과 범위를 초월한 초거대기업(또는 금융기업)은 내수시장을 파괴하고 지역 경제를 파탄에 몰아넣으며, 고용을 불안정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가정'을 해체시키는 역할을 한다고 비난받고 있음을 염두에 둘 때 그러하다.

 

요컨대 우리는 영화에서 세계화-대기업 vs. 가족주의(& 그것을 보강, 장려하는 국가) 구도를 발견할 수 있는데, 이는 요사이 국가의 역할이 새삼 재고되고 있으며, 국가의 '제' 역할에 대한 요청이 제고되고 있는 현상과도 무관하지 않다고 여겨진다(대체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들).

 

즉 영화는 가족 이데올로기가 심각하게 와해되었으며 시간이 지날수록 보다 강력한 위협에 노출되어갈 오늘날 미국 사회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와해된 가족 이데올로기를 회복하는 것은 가능한가? 또는 가족의 와해가 오늘날 필연적이라면 그에 대해 우리 각자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들이 제기될 수 있을 것이다. 할리우드 영화와 가족주의의 오랜 동반관계를 염두에 둔다면 이는 진부한 질문이기도 하지만 적어도 <인셉션>은 이 질문에 꽤 끈질기게 매달리고 있으며, 이 문제를 어느 정도는 색다른 시각에서 바라보게 한다.

 

 

 

 

 

 

 

이와 관련하여 돔의 방식은 눈여겨볼 필요 있을 것 같다. 돔의 방식을 따른다면, (실제적인 복원은 아닐지라도) 가족 이데올로기가 여전히 온전히 기능하고 있는 하나의 상상적, 가상적 공간을 구축하는 것은 가능하다. 

 

자신의 내밀한 기억 속에 아내를 가둬 두는 돔의 모습은 현실의 인간 관계는 단절되었지만 게임 속에서는 하나의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고, 그 커뮤니티 안에서 나름대로 안정적이고 확고한 정체성과 역할을 부여받은 게임 중독자나 (중독까지는 아니라해도) 싸이월드 트위터 블로그 등 인터넷 커뮤니티 활동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는(동시에 거기에 상당한 의미를 부여하는) 이들의 모습과도 겹쳐진다. 다른 한편 이는 "홈 스위트 홈"과 관련된 일종의 노스탤지어적 이미지를 마음 속에 언제나 하나 쯤은 간직하고 있는 현대인의 모습이기도 하다. 일련의 '향수영화' 등 복고 대중 문화상품의 유행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덧붙여 노후 대비 보험 광고가 보여주곤 하는 전형적인 목가적 이상향의 이미지들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이 문제와 관련하여서는 다음의 사실, 즉 코브 일당이 피셔 2세에게 주입시키려는 생각들("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보겠다"(2단계), "아버지는 내가 자기처럼 되지 않길 원한다."(3단계))이 다름 아닌 가족 이데올로기가 상대적으로 공고히 자리잡고 있던 시절(그래서 마음놓고 그 억압적 측면을 비난할 수 있었던 시절) 미국인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이던 개인주의, 자율주의적 가치관임을 고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결국 <인셉션> 역시 일종의 향수영화로 볼 수 있다. 다만 많은 미국인 영화 관객들이 오랜 시간 극장에서 주입받아온 "홈 스위트 홈"의 아이디어(가족 이데올로기)를 무의식에서 의식의 차원으로 끌어올렸다는 차이, 외화시켰다(밖으로 드러냈다)는 차이는 있고, 그런 면에서 지적이고 도전적인 영화라는 평을 받을만하다.

 

한 가지 더 지적하자면, 이 영화는 가족 이데올로기의 와해와 그에 가해지는 각종 위협으로 인한 위기감, 불안감에 충만해 있는 만큼, "내 생각을 누군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조작할 수 있다"는 데서 비롯되는 불안감과 두려움 역시 도드라진다. 영화에서 피셔 2세에게 주입하려는(조작하는) 생각이 "스스로의 힘으로 뭔가를 이루어라. 너 자신의 길을 가라"는 것임을 감안하면 이것은 묘한 충돌, 갈등을 발생시킨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폐쇄 무한(closed loop) 미로와 같은 모순과 역설을 발생시킨다.

 

 

 

 

 

즉 "나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스스로의 결심이 누군가에 의해 주입된 것이자 조작된 것이라면? 실제로 영화에서는 돔 코브 일당은 피셔 2세에게 이 아이디어를 '주입'시키는 데 성공하는데, 이러한 '가치관의 주입'이라는 설정이 영화에서 강조되고 있다는 것은 오늘날 미국사회에서 가족 이데올로기와 함께 개인주의, 자율주의적 가치관들 역시 심각하게 와해되었음을 드러내는 하나의 징후로 볼 수 있다. 물론 이건 꼭 미국사회만의 것으로 한정할 수는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오늘날 특징적인 사회적 현상은 소위 '멘토'로 지칭되는 글로벌 리더, 소셜 리더들(이들은 실제로 젊은이들의 아버지 세대다!)이 문화자본과 결탁하여 만든, '자기계발서'를 비롯한 뉴에이지 문화 상품들이 널리 팔리고 있다는 것이다. 말하자면 '가치관을 바꾸라' '삶을 통째로 바꾸라' '자기 주도적인 삶을 살아라'는 식의 가르침이 실제로 젊은 층들을 대상으로 '주입'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인셉션>의 설정은 이러한 현상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구체적으로 표현하자면 오늘날 청춘들이 품고 있는 꿈--개인주의와 자율주의의 이상--이 요새 유행하는 각종 '자기계발' 관련 상품들과 프로그램들에 의해 '주입'된 것에 지나지 않음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요컨대 코브 일당이 피셔 2세에게 주입하려는 생각은 오늘날 젊은이들이 여러 자기계발 상품들을 통해 자발적으로(!) 주입받고 있는 생각이기도 한 것이다.

 

 

 

 

 

하나 더. 나로서는 영화의 맨 첫 장면 돔이 림보에 빠져 회한에 차 늙어가는 사이토와 만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곧바로 드는 의문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왜 림보 공간에 빠져 회한에 차 외롭게 늙어가면 안 되는가? 영화에서 왜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 고통인 것처럼 묘사되는가? 오늘날 사회는 늙음의 문제, 즉 자연스레 늙어가는 것조차 '기업'과 엮인 일이 되어버리지 않았는가?(각종 보험회사, 상조회사 등) 즉 신자유주의적 논리가 극에 달한, 일상의 전면에 파고든 오늘날의 사화란 '돈' 없이는 자연스레 늙어가는 것조차 하나의 사치이자 행복인 사회라 할 수 있다. 반대로 돈이 있다면 자신의 프라이버시 영역을 고수하면서(다르게 표현하면 '외롭게') 늙어가는 것이 가능하다. 나로서는 림보라는 공간이 매우 아늑하게 느껴졌고, (아무 걱정 없이 그저 늙어가기만 하면 되는) 사이토가 부러웠다. 나는 이 첫 장면--그리고 이 장면은 (이후 밝혀지게 되는) 림보에서 돔과 그의 아내가 그들만의 왕국을 건설하고 "함께 늙어갔던" 장면과 공명하기도 하는데--이 이 시대가 주조해낸 대중들의 기묘한 희망 내지 열망을 반영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이 시대의 대중들은 외부 세계와 차단된, 생계 걱정이나 파산 걱정 없이, 모험도 도전도 하지 않고, 그리하여 생존을 위협하는 어떠한 위험들에도 노출되지 않고 '안전하게 늙어갈 수 있는' 림보 공간을 열망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로또나 연금 복권에 당첨된다면 그것이 가능해진다. 요컨대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차라리 아무 생각도 없이 나만의 아늑한 공간을 구축하고 그 안에서 그저 존재하는 것(‘동물화된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것)바로 그것이 폐쇄 무한 미로에서 탈출하는 유일한--유일한 건 아닐지라도 여러 선택지 중 '가장 매력적인'--방법으로 간주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바로 그 점을 ‘림보’의 개념 및 이미지가 드러낸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까놓고 말해 이 시대에 '림보'란 일종의 유토피아적 공간, 정확히 말하자면 오늘날 대중들이 품고 있는 특정한 형태의 유토피아적 열망이 투사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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