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리버 여행기 - 초판본 완역판
조너선 스위프트 지음, 강미경 옮김 / 느낌이있는책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후이늠들Houyhnhnms의 언어에는 사악한 것을 표현하는 단어가 없는데, 다만 야후들의 추한 모습이나 못된 성질들을 표현하는 단어가 있을 뿐이다. 그들은 하인들의 어리석음, 어린 자녀의 게으름, 자기 다리에 상처를 낸 날카로운 돌, 사나운 날씨나 이상기후 같은 것들을 표현할 때 ‘야후 같은’ 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예를 들면, 흐늠 야후hhnm Yahoo 우흐나홀름 야후wh-naholm Yahoo 이늘흐믄드위흘르마 야후ynlhmndwihlma Yahoo라고 하고, 설계가 잘못된 집은 인흘름흐늠로흘른누 야후ynholmhnmrohlnw Yahoo라고 한다.

 

- 조너선 스위프트, <걸리버 여행기>, 느낌이있는책, 2011.

 

 

 

* 문예출판사본(2008)에서는 후이늠들의 말을 '흐은 야후', '흐나홀름 야후', '은름나윌마 야후', '은홀믄론 야후’라고 표기했다. 

 

 

스위프트는 분절되지 않은 소리인 말 울음소리를(책 속에서는 울음소리가 아닌 말들의 ‘언어'이지만) 알파벳으로 표기하고 있는데, 그것을 다시 한국어로 표기하는 데는 난점이 있음을 위 두 번역을 통해 알 수 있다. 스위프트는 h와 n을 많이 사용하면서 후이늠들의 말을 길게 늘여 표기했지만(이럴 경우, 후이늠도 후이흐느흠으로 표기되어야 할 것이다), h와 n, (w)를 묵음으로 간주하면 한국어 표기는 훨씬 간단해진다. 하지만 그렇게 하면 스위프트의 알파벳 표기가 가져다주는 시각적 호소력이 반감된다. 

 

발음이야 h와 n을 묵음으로 간주하고 '은홀믄론 야후'라고 하더라도 표기는 '인흘름흐늠로흘른누 야후ynholmhnmrohlnw Yahoo'라고 하는 게 어울린다. 후이늠들이 야후라는 존재에 대해 품고 있는 착잡한 경멸감--그것은 스위프트가 인간 존재 전반에 대해 품고 있는 경멸감이기도 한데--은 '인흘름흐늠로흘른누'라 표기할 때 더 잘 표현된다는 생각이다.

 

<걸리버 여행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스위프트는 걸리버의 입을 빌어 다음과 같이 쓴다. "단지 언어를 사용하고 벌거벗고 돌아다니지 않는다는 것만 빼고는 후이늠 나라에 사는 야후들과 구별되지 않을 사람들이 이 나라에는 무수히 많다." 

 

또 걸리버는 이렇게 말한다. "이렇게 타락한 야후의 왕국에서 그들을 개선하려는 어리석은 짓은 처음부터 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실현 불가능한 시도는 이제 그만두기로 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실망과 절망감이다. 스위프트는 인간이 개선될 여지가 없음을 단언하며 책을 끝맺는다. 

 

야후들과 구별되지 않을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아니 실은 매일같이) 만난다. 스스로에게서 야후의 모습을 발견할 때도 많다. 그럴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말도 일도 별로 없다. 다만 흐늠hhnm 이라거나, 우흐나홀름wh-naholm이라거나, 이늘흐믄드위흘르마ynlhmndwihlma라거나, 인흘름흐늠로흘른누ynholmhnmrohlnw라는 식으로 뜻모를 신음을 흐느끼듯 내뱉는 수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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