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의 기쁨 1 - 음악의 요소들 음악의 기쁨 1
롤랑 마뉘엘 지음, 이세진 옮김 / 북노마드 / 2014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최근 <음악의 기쁨>이란 책을 조금씩 틈나는 대로 읽고 있다. 1권을 거의 다 읽은 이 시점에서, 내가 느끼고 파악한 몇 가지 점을 정리해두면 좋을 것 같아 적어놓는다. (어디까지나 아마추어 리스너의 입장에서의 정리라는 점을 감안해서 읽어주시기를.)

 

<음악의 기쁨>을 죽 읽다가 발견한 사실은 음악의 핵심 요소가 다음의 세 가지라는 것이다.

 

1) 목소리, 2) 춤, 3) 악기.

(교과서에서 배운 멜로디, 리듬, 화성과 얼추 들어맞는다)

 

일단 이 세 핵심 요소를 시간축을 따라 나란히 세워보면 대강의 음악사를 그려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령 중세의 그레고리안 성가는 오직 '목소리'로만 이루어져 있다. '춤'과 '악기'는 배제되었다. 예를 들어 그레고리안 성가를 부르며 춤을 춘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 (혹시 몰래 리듬 타나?)

 

르네상스 시기를 거쳐 16-17세기에는 이탈리아, 프랑스, 독일 등지에서 발레와 각종 춤곡이 유행하기 시작한다. (춤곡의 명칭은 알르망드, 쿠랑트, 사라방드, 지그, 미뉴에트, 부레 등으로 다양한데, 이러한 다양한 명칭은 박자나 빠르기, 유래한 국가에 따른 것.) 그리고 또 오페라/오라토리오가 등장하는데, 여기서는 '목소리'가 메인 요소다. 주지할 점은 춤곡에서는 음악이 '반주'의 역할을 맡는다는 것. 어디까지나 '춤-몸의 움직임' 또는 아리아를 부르는 '목소리'가 메인 요소이고, 음악은 '반주'로서 춤이나 목소리를 지원하고, 그 효과를 부각하거나 극대화하는 역할을 맡는다.

 

'목소리'와 '춤'이 메인이었던 시기를 거친 후에 비로소 '악기'의 시대가 찾아온다. 바흐부터 베토벤까지의 시기(그러니까 바로크에서 고전주의로 이어지는 18-19세기)는 소나타, 모음곡(조곡), 협주곡, 교향곡, 퀸텟, 콰르텟 등 여러 형태의 '기악곡'이 발전을 거듭하는 시기다. 이 시기에는 연주자가 '악기'를 다루는 능력, 마에스트로로서 작곡가-지휘자가 각 악기의 장점을 극대화시키고, 서로 조화시키는 능력이 중요해진다. 이 시기는 압도적인 실력을 자랑하는 비르투오소 연주자가 등장한 시기이자, 스트라디바리와 같은 악기 장인이 등장하여 (바이올린 등) 악기 자체의 가능성을 극대화한 시기이며, 새롭게 등장한 악기인 피아노가 (한계가 많았던) 하프시코드의 자리를 대체한 시기이기도 하다.

 

목소리, 춤, 악기라는 음악의 세 요소를 시간축을 따라 세워보았는데, 다음번에는 그 시간축 위에 또 하나의 평행선을 그려보고, 거기에 음악의 세 요소를 대입해볼 수 있겠다. 이 축에 '성과 속'(신과 인간)이름을 붙이면 적절할 듯 싶다. 

 

중세의 그레고리안 성가는 '목소리'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이때 목소리로만 이루어진 이 음악의 목적은 '신을 찬미하는 것'이다. 즉 이때의 음악은 인위적 조작이나 기교가 없는 것, 순수하고 금욕적인 것, 곧 (신=인간 동형설의 관점에서) '성스러운 것'이다.

 

그레고리안 성가에 비하면, 발레나 춤곡은 세속적 즐거움을 위한 것들임을 쉽게 알 수 있다. 춤을 출 때의 쾌감, 신나게 몸을 흔들거나 이성 파트너를 팔에 안고(또는 손을 잡고) 유혹적인 눈빛과 숨결을 주고 받을 때의 야릇한 쾌감에서 신성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또한 음악에 맞춰 몸을 움직임으로써 인간은 자신의 육체적 욕망을 새롭게, 그리고 뭐랄까 한층 세련된 방식으로 인식하게 된다. 춤을 통한 자아의 발견이랄까.

 

그럼 기악곡은 어떨까. 모차르트 시기까지 기악곡은 대부분 왕족, 귀족들의 여흥을 위한 것, 기분전환용, 편히 즐길 수 있는 것, BGM에 가까운 감상용이었다고 한다. 물론 내적 형식의 측면에서는 복잡, 섬세한 발전을 거듭하고 있었겠지만, '궁정사회'에서 기악곡은 여전히 왕족과 귀족들의 여흥에 봉사하기 위한 것, 그리고 왕족 및 귀족들의 요구에 따라 만들어지고 소비되는 것이었다.

 

하지만 베토벤에 이르면 음악 자체와 음악을 둘러싼 상황 모두에 큰 변화가 일어난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베토벤은 다른 누군가의 여흥을 위해, 혹은 (신이든 왕족이든) 다른 누군가의 영광을 드러내고 찬양하기 위해 음악을 만들지 않았다. 그는 자기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그 자신의 내면에서 흘러넘치는 감정과 사상을 토로하기 위해 음악을 만들었다. 음악을 통해 우리들 청자에게 전해지는 베토벤의 감정과 사상은 일면 지극히 개인적인 것으로 느껴진다(우리는 그의 음악을 들으며 저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개인사를, 말하자면 그의 퍼스낼리티를, 혹은 퍼스낼리티와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유명한 일화들을 떠올린다. 즉 그의 귀먹음을, 봉두난발과 형형한 눈빛을 떠올리고, '불멸의 여인'과의 관계를 떠올린다). 하지만 그의 음악에 담긴 감정과 사상은 개인적인 만큼 보편적이기도 하며, 그냥 그 자체로 충분히 숭고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우리들-청자는 문득 "아 내가 지금 숭고하고 신성한 어떤 것을 듣고 있구나"하는 사실을 깨닫는다.

 

어떻게 보면 베토벤은 스스로 신이 되는 불경을 저지른 셈이다.

 

위대한 단독자, 위대한 솔로 베토벤. 영원한 마에스트로.
아아 베토벤을 뭐라 표현할 수 있을까? (사심 폭발)

 

이렇게 정리를 하고 나니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해보지 않을 수 없다. 클래식을 듣는다는 건, 그 중에서도 베토벤을 애호한다는 건 무슨 의미일까? (베토벤은 특히 나와 같은 '중2병 환자'들에게 어필하는 것일까?)

 

이런 질문도 던져보지 않을 수 없다. 대관절 음악은 누구를, 혹은 무엇을 위한 것인가? 우리는 음악을 어떤 태도로 들어야 하는가? 음악은 신성한 것인가? 아니면, 음악은 감각적 즐거움을 주기 위한 것인가? 신나는 음악, 듣기 편한 음악이면 그걸로 충분한 것인가? 아니면 음악은 우리에게 어떤 새로운 경지를 열어보여줌으로써 우리를 좀 더 나은 존재가 되도록 이끌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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