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알게 된 사실. 도서출판 b에서 다자이 오사무 전집을 총 10권으로 계획하고 출간 중이라고 합니다. 현재는 5권까지 출간되었습니다. 작품이 쓰여지고 출간된 시기 순이어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세계를 체계적으로 살펴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집 10권의 제목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권 <만년>, 제2권 <사랑과 미에 대하여>, 제3권 <유다의 고백>, 제4권 <신햄릿>, 제5권 <정의와 미소>, 제6권 <쓰가루>, 제7권 <판도라의 상자>, 제8권 <사양>, 제9권 <인간 실격>, 제10권 <생각하는 갈대>.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중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아무래도 <인간 실격>일 텐데, 중단편들도 읽어볼 만합니다. '훌륭하다'고 하지 않고 그저 '읽어볼 만하다'고 한 것은, 글쎄요, 아무래도 다자이 오사무에 대한 개인적인 소회가 작용한 탓이 아닌가 싶습니다.

다자이 오사무는 한국에서 '문학 청년(소녀)적 감수성'의 기본 형태를 주조한 작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다르게 얘기하자면 '문학 청년적 감수성'을 자극하는 데 최적화된 작가, 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대 후반 혹은 20대 초반에 다자이 오사무에 푹 빠졌던 경험이 있는 이라면(드물지 않을 듯한데) 이 말에 공감하실 듯.

'문학 청년(소녀)적 감수성'은 '미성숙한 자아의 감수성'이라고도 부를 수 있을 겁니다. 주관적 감수성이 실제 세계와 실제 삶을 압도하는 경우를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에서는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아이가 세계를 자기 위주로 바라보고 해석하는 것과 유사합니다. 다른 사람의 존재나 입장보다는 내 존재와 입장이 우선이고, 또 절대적입니다. 요컨대 자기중심적입니다. 그래서 다자이 오사무를 읽다보면 문득, 내면이 아직 성숙하지 못한 어른이 '감수성'(또는 순수함)을 앞세워 마구 칭얼대고 떼쓰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그래서인지 개인적으로, 다자이 오사무는 20대 중반을 넘어선 이후로 자연히 멀어진 작가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다자이 오사무는, "내 순수함을 인정해주지 않는 이런 세계 따위 필요 없어. 죽어버릴 거야!"라는 태도를 취하기도 합니다. 세계에 대한 경멸이 깔려 있고, 죽음, 그것도 자살을 무기로 내세운다는 점에서 기분이 썩 좋지 않습니다.

물론 다자이 오사무는 이것을 다음과 같이 에둘러 표현합니다. "태어나서 죄송합니다." 사과의 형식을 취하고 있지만 전혀 사과로 여겨지지 않고, 칼날이 숨겨져 있는 듯합니다. 위악적입니다. 이런 식의 사과 아닌 사과는 받는 입장에서도 기분이 좋을리 없습니다. '인간 쓰레기'--자신의 작품 속에서 다자이 오사무는 스스로를 그렇게 그려놓고 있습니다.

잘 타일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다자이 오사무의 경우엔 이게 또 쉽지가 않습니다. 작품 자체가 발하는 고유한 매력이 있어서 읽다 보면 어느덧 설복당하기 십상이니까요. 가령 <동경 팔경>과 같은 작품에서는 항상 자살을 꿈꾸고 있는, 그래서 언제 죽을지 모르는 주인공이 그 '초긴장 상태' 속에서도 짐짓 여유를 부리며 주변 풍경을 둘러보는데, 그 묘사에는 놀랍게도 유머가 섞여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에 가서는 자기 자신을 동경의 명물 중 하나로 제시하기까지 합니다.

이러한 자기중심성을 어떻게 봐야할까요. [자기 자신에 대해 까놓고 이야기 하기] 분야가 있다면, 다자이 오사무는 도스토예프스키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작가일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태도는 '과도한 자의식'이라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미성숙한 태도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어른(요즘 유행하는 말로 '깨시민')이 된다는 것은, '나'라는 편협한 관점과 입장을 벗어나 '남'의 존재와 입장을 배려하고 인정할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라고 우리는 배우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타인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요. 자신의 상황과 입장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없고, 자기를 배려해본 적이 없는 이가 타인의 입장에 서보고, 타인을 이해한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요.

'(내 입장 보다는) 남의 입장을 우선 배려하기'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 취하기'가 하나의 정언 명령으로 자리 매김된 요즘입니다. '개념을 탑재'해야(적어도 그런 것처럼 보여야) 사람 대접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한 번의 말 실수나 행동의 실수로 '초딩(=인간 쓰레기)' 취급을 받는 경우도 다반사입니다. 그러고 보면, '개념 탑재'가 하나의 강박이 되어 버렸다는 느낌도 듭니다. 하지만 편견과 고집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이 있을 수 있을까요.

다른 성별, 다른 인종, 다른 종(동물), 그리고 지구와 환경. 이 모든 것을 배려하라는 명령들 속에서 우리는 정작 자기 자신에 대한 배려를 생략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갖가지 '개념들'에 의해 '감수성'이 질식당하고 있는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이런 면에서 "다자이를 읽으면 숨통이 트인다"는 독자들의 반응은 의미심장하게 들립니다. 해서, 앞서 그저 '읽어볼 만하다'라고 썼지만, 요즘 같은 시기에 '특히 읽어볼 필요가 있는' 작가라고 수정해둡니다... (읽을 것들이 쌓여 있어 언제 전집을 읽을 시간이 날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중에서는 <인간 실격>보다는 <사양>이 좋았습니다. 단편집 <달려라 메로스>에 실린 단편들도 인상적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위에 언급된 <동경 팔경>을 비롯하여, <후지 산 백경> <여학생>과 같은 단편들이 좋았습니다. 앞의 두 단편은 경치에 대한 묘사라는 공통점이 있네요. '자기 중심적 작가' 또는 '자기 자신의 (감수성에) 매몰된 작가'임에 틀림 없는 다자이 오사무이지만, 한가롭게 경치 얘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물론 자기 얘기가 빠지지는 않습니다.)

삶에 대한 답은 누가 대신 제시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구나 각자 자신에게 절박한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을 풀어가는 방법도 천차만별입니다. 다자이 오사무가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사회의 통념에 비춰볼 때) '바람직한' 방식은 아닙니다만, 어쨌든 그는 아주 성실한 자세로 자신의 문제를(또한 그가 살았던 시대의 문제이기도 했습니다)에 천착했다는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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