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차르트 -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
노르베르트 엘리아스 지음, 박미애 옮김 / 문학동네 / 1999년 4월
평점 :
품절


얼마 전 주문한 <모차르트>가 도착해서 읽고 있습니다. 사회학자 노베르트 엘리아스가 쓴 평전으로, 부제는 [한 천재에 대한 사회학적 고찰]입니다.

무려 '사회학적 고찰'이다 보니 읽는 게 마냥 쉽지 만은 않습니다. 어째서 '사회학적 고찰'이 필요하고 중요한지에 대해, 엘리아스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개인적 운명, 유일무이한 인간이자 유일무이한 예술가로서 그의 운명은 그가 처한 사회적 상황, 즉 당시 음악가들이 궁정 귀족들에게 의존하지 않을 수 없었던 상황에 의해 강한 영향을 받았다. 그의 사례에서 우리는 사회학자들의 장인적 기술을 능숙하게 구사하지 못한다면, 한 개인의 삶의 문제들을, 그의 인격이나 업적이 아무리 일회적이고, 비교 불가능하다고 하더라도, 후세에게 전기 형식으로 이해시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분명하게 알 수 있다. [이를 이루려면 그의 어깨에 지워졌던 사회적 강제를 명료하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역사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이 경우엔 18세기의 예술가가--자기 시대의 다른 사회적 인물들과의 상호의존성으로 인하여 만들어내는 결합태의 검증 가능한 이론적 모델을 완성해내는 일이다. (24-25)



엘리아스는 모차르트의 '어깨에 지워졌던 사회적 강제'에 대해 하나하나 서술하고 있습니다. 논의의 골자는 이렇습니다. 모차르트는 천재였다. 하지만 그가 살았던 사회는 아직 '낭만적 천재'의 개념을 몰랐다. 따라서 천재를 천재로 대할 줄 몰랐고, 천재에게 합당한 자리 역시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음악가들의 궁정에서의 서열은 '과자 제조공' '요리사' 또는 '시종'과 같았다고 합니다. 말하자면 (하인까지는 아니라고 해도) '궁정 아첨꾼'에 해당했다, 고 엘리아스는 적고 있습니다. 때문에 '궁정 음악가'들은 그들의 '낮은 신분'에 맞게 "음악적 취향뿐만 아니라 의상이나 전체 인간적 특징에 이르기까지 궁정의 행동 규범 및 감정 규범에 맞춰야만"(26)했다고 합니다. 마치 승진 기회를 노리고 있는 대기업 직원이 상사의 규범에 맞게 행동(그리고 감정)을 조절하는 것처럼요.

말하자면 모차르트는 '천재 시대 이전의 천재'였던 셈인데, 바로 이러한 '사회적 상황에 대한 감각'이 없다면 모차르트를 이해할 수 없다고 엘리아스는 쓰고 있습니다.

천재에게 합당한 자리를 마련해줄 수 없었던 사회. 거기서 모차르트는 뭔가 공정하지 않음을 느꼈고, 분노를 터뜨렸으며, 자신의 방식으로 그것에 대항하여 싸웁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종일관 개인적인 투쟁"이었고, "바로 그 때문에 그는 투쟁에서 질 수밖에 없었다"고 엘리아스는 또한 쓰고 있습니다.

베토벤과의 비교도 (짤막하지만) 흥미롭습니다. 엘리아스는 "모차르트의 음악에는 궁정-귀족적 전통이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반면, "베토벤은 이 전통을 박차고 나왔다"(48)고 서술합니다. 모차르트보다 15년 늦게 태어난 베토벤은 모차르트를 속박한 '궁정'으로부터 자유로웠고, '자유 시장'에서 '자유 예술가'로서 작업했으며, 자신의 음악적 환상을 일관성 있게 추구할 수 있었으며, 심지어 "음악 청중에게 자신의 취향을 강요할 수 있었다"(59)고 합니다. 물론 엘리아스는 이 ('자유 시장'이 보증하는 한 존재할 수 있는) '자유 예술가'상에 대해서도 비판적 논의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모차르트가 가장 심혈을 기울인 '오페라'들 역시 다음과 같은 맥락을 염두에 두고 보면 흥미롭습니다. 당시 오페라는 음악 장르 가운데 가장 높은 위상을 차지하고 있었는데, 엄청난 인적, 재정적 자원이 필수였던 탓에 (여차하면 유랑 극단에 의해 무대에 올려질 수 있었던 연극과는 달리) 전적으로 궁정에 묶여 있을 수밖에 없었다(49)고 합니다. 

 

모차르트는 과연 신의 축복을 차고 넘치게 받은 천재일까요? 위대한 예술은 천재들의 전유물인 걸까요? 엘리아스는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는 예술가의 착상(환상, 상상)은 (예술의) 재료 및 사회(특히 양자가 지니는 한계)와 연관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모차르트의 음악을 위대한 것으로 만든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자발적으로 발휘한 '예술가적 양심'이었다고 말합니다.

좀 길지만 다음의 인용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예술가의 착상이 재료 및 사회와 동시에 연관된다는 것은—첫눈에 그 관계가 명백하게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결코 우연이 아니다. 각각의 예술 영역을 특징짓는 재료들은 무한히 고유한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따라서 예술가의 자의에 강하게 저항한다. 한 예술작품이 탄생하려면 개인의 환상은 이 재료들 중의 하나 속에서 재현될 수 있도록 스스로를 변형시켜야 한다. 예술가가 되풀이하여 나타나...는 환상과 재료 사이의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환상은 형태를 가지게 되고 한 작품을 구성하는 요소가 되며 동시에 의사소통의 수단, 즉 반드시 예술가의 동시대인들은 아니라 하더라도 타인들의 공감의 대상이 된다.

어떤 예술가도, 즉 모차르트조차도 힘 안 들이고 창작할 수는 없다. 모차르트의 음악에서는 강물처럼 흐르는 환상의 물결이 재료의 고유성과 거의 완벽하다 할 정도로 융화되어 있고 음의 형태는 오랜 기간 동안 놀라우리만치 가볍게 그의 의식 위로 떠올랐으며 그 음의 풍부한 독창성은 뛰어난 음 형태의 내재적 일관성과 무리없이 결합되어 있지만, 모차르트는 어떤 작품에서도 지켜보는 양심의 눈 밑에서 검토하고 개정하는 수고를 면할 수 없었다. 어쨌든 그는 훗날 "작곡하지 않는 것보다 작곡하는 일이 더 쉽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는 시사하는 바가 많은 발언이며 그 신빙성도 상당히 높다. 언뜻 보기에 이는 신의 은총을 듬뿍 받은 사람이 내뱉는 말쯤으로 여겨질 수 있다. 그러나 조금 깊이 들어가보면 그것이 고뇌에 지친 인간의 고통에 찬 절규임을 알게 된다.

모차르트는 사랑받고 싶다는 채워지지 않는 욕구로 인해 많은 고통을 당했지만, 이 고통을 때론 장난기 어린 우아한 작품들을, 때론 깊이 심금을 울리는 작품들을 창조함으로써 극복하였다. 그가 이 작품들을 통해 추구했던 성공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도 바로 지나치게 엄격한 그의 양심 때문이기도 하다. 모차르트는 자신의 재능을 의식하고 있었고 그 재능을 지나칠 정도로 자신의 의무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가 이 의무를 배반했더라면 한결 수월하게 지나갔을 경우에조차 그는 그것을 저버리지 않았다. 물론 그렇게 한 것이 순전히 그의 결정만은 아니었다. 그를 그렇게 몰고 간 것은 부분적으로 자기 강제였지만, 다른 한편 하나의 결정이기도 했다. 모차르트가 별다른 자기 성찰 없이 자신의 예술가적 양심을 그가 필요로 했던 청중의 사랑과 갈채를 상실할 정도로까지 추구했기 때문에, 바로 그 때문에라도 그는 ‘한 인간으로서’ 후세의 감탄과 찬사를 받을 만하다.

모차르트와 같이 그토록 경이로운 인간의 인격 구조에 대한 간략한 언급은 인간 모차르트와 예술가 모차르트를 마치 별개의 두 사람인 양 나누어 말하는 습관이 자명성을 상실케 하는 데 일조할 것이다. 과거 사람들은 인간 모차르트를 천재의 이상형에 들어맞도록 이상화하려 했다. 오늘날 우리는 예술가 모차르트를 일종의 초인으로, 인간 모차르트에 대해서는 가벼운 경멸감을 가지고 다루려는 경향이 있다. 이는 그에게 합당치 못한 평가이다. (88-90)

 

 


 
엘리아스의 <모차르트>는 그가 이전에 했던 작업들, 특히 <궁정사회>나 <죽어가는 자의 고독>에서 논의됐던 점들이 잘 반영되어 있습니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비롯한 18세기의 음악적 양식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의 '고정된 사회적 구조이자 틀'이었던 궁정 사회를 잘 이해해야 한다는 논의나, 모차르트의 죽음을 '사회적 실존의 좌절' 즉, '사회적 죽음'으로 본 것이 흥미롭습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신동'으로 여겨져 모든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지만, 나중에 죽음을 앞두고서는 모든 사람들로부터 버림받고 '자신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누구에게서도 얻을 수 없어 '스스로를 포기'하다시피 죽어 간 모차르트의 생애는 그 자체로 매우 드라마틱한 것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모차르트의 생애를 한 개인의 드라마로 내버려두지 않고 한 편의 '사회학적 드라마'로 서술한 것이 엘리아스의 [모차르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용어나 설명이 다소 어렵게 느껴지긴 하지만, 분량이 짧은 편이어서 찬찬히 읽다 보면 비교적 부담없이 사회학적 논의를 흡수할 수 있습니다. 기분이 내킨다면, 모차르트를 틀어놓고 읽어나가도 좋지 않을까 합니다.

 

http://youtu.be/rfeoBc4fDgc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