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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한 파괴자들 - 뤽 베송 대표작의 여성 캐릭터들

살인병기, 니키타. 거의 항상 마약에 취한 채 아무것도 분간 못하는 동물과도 같은 삶을 살아 온 그녀는 경관 셋을 살해한 후, 비밀리에 킬러 교육을 받는다. 아이러니한 것은 킬러 교육이 그녀에게 살인 기술만을 가르쳐 준 것이 아니라 인간적인 감정까지 갖게 해주었다는 것. 교육은(그것이 어떤 목적을 갖고 실행되건 간에) 인간을 성장시킨다. 교육을 통해 인간은 동물적 상태에서 벗어난다.
그러나 그렇게 성장한 니키타 앞에 놓인 선물 상자 안에 들어있는 건 바로 총이다. 환멸disillusionment. 총을 갖고 니키타는 자신에게 주어진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것은 우리들 모두의 운명이기도 하다.
보통의 액션 영화와는 다른 어떤 정서적 울림을 뤽 베송의 <니키타>는 지니고 있다. 비단 <니키타> 뿐 아니라 뤽 베송의 영화들은 영혼, 그것도 순수한 영혼의 발전 단계를 그리고 있다. 물론 그것을 가리켜 '발전'이라고 한다면 어폐가 있다. 그것은 그저 각 단계에서 드러나는 특징적인 국면들이다.
<니키타>나 <레옹>이나, 혹은 <제5원소>나, 또는 <잔다르크>, 이 모든 영화의 주인공들은 어쩌면 동일인이다. 가장 관념화되어 있는 존재가 <제5원소>의 주인공 '릴루'라 할 수 있겠다.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순수한 존재라는 것이다.

순수한 존재, 릴루의 의상. 완전한 나체가 순수함을 표현하는 데는 더 좋은 수단일 터이나...
'순수한 킬러(파괴자)'란 캐릭터는 매력적이다. 그들에겐 돈이나 세속 권력에 대한 욕망이 없다. 그래서 그들은 '보호자'를 필요로 한다. 달리 말해, 그들이 필요로 하는 건 '사랑'이다. 파괴자인 그들은 외로운 존재다. '릴루'가 대변하듯 그들은 태어날 때부터 (킬러로서) '완벽한' 존재지만 바로 그렇기에 극도로 외로운 존재다. 그러므로 그들에겐 때론 의지하고 때론 지켜줘야 할 '동반자'가 필요하다.
지켜야 할 것, 레옹에게 그것은 부모를 잃은 가녀린 소녀 마틸다다. 릴루에게 그것은 거대한 악의 위협 앞에 놓인 '이 세상'이다. 잔다르크에겐 조국 '프랑스'이며, 니키타에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지내는 '평범한 시간'이다.
의지해야 할 것, 레옹은 마틸다를 보호하면서 동시에 그녀에게 정서적으로 의지한다. 릴루에겐 코벤이 필요하다. 잔다르크에겐 '신의 가호'가 필요하다. 겉으로 드러나는 명칭은 다르지만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결국 '사랑'이다.
이들에게 지워진 짐은 너무나 무거운 것이다. 아버지는(<니키타>에서는 교관이며, <잔다르크>에서는 신인) 때로 관대한 얼굴로 나타나지만 항상 엄격한 얼굴로 되돌아 온다. 예쁘게 포장된 선물 상자 안엔 총이 들어 있다. 아버지들은 세상에서 살아남는 법을 가장 냉혹한 방법으로 전수한다. 아버지들의 명령 속에서 주인공들은 서서히 정서적으로 고립된다.

그러나 이들은 순수하다. 파괴자로 태어났지만 동시에 순수하기에, 이들은 매력적이다. 우리는 그들의 고립감에 스스로를 이입시킬 수 있다.
순수한 영혼들이 그들의 여정에서 마지막으로 직면하게 되는 단계는, 영화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떠나며, 누군가는 세상과 지구를 구하고, 누군가는 자그마한 희망의 표시인 화분을 심는다(가장 진부한 결말은 물론, 사랑의 힘으로 지구를 구한다는 <제5원소>의 설정이지만, 그것만으로 뤽 베송을 비난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뤽 베송이 가장 뛰어난 영화들을 만들 때는 그가 '순수한 파괴자' 캐릭터를 다룰 때다. 심지어 할리우드라는 <재능 말살소>에서도 그는 훌륭하게 해냈다. 영화 <제5원소>는 '순수한 영혼'에 관한 가장 아름다운 SF '서정시'다. '릴루'나 '니키타' 등, 단지 주인공들의 이름에도, 묘한 서정적 울림('롤리타'에서 느껴지는 것과 같은)을 담을 수 있는 감독이 바로 뤽 베송이다. 물론, 항상 그런 것은 아닐지라도 말이다.

릴루의 풀 네임. 열라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