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컬러 인문학 - 색깔에 숨겨진 인류 문화의 수수께끼
개빈 에번스 지음, 강미경 옮김 / 김영사 / 2018년 3월
평점 :
색을 매개로 한 다채로운 이야기
뉴스를 보다가 손석희 아나운서가 뉴스룸을 통해 앵커브리핑을 하는데 그때 이 책이 등장했다. 레드벨벳의 빨간 맛에 관한 이야기가 여기저기 오르내렸고, 색에 관한 오해가 있었기 때문이다. '빨간색'에 대한 오해가 없는 세대이지만 몇 십년전만 해도 우리나라는 '빨간색'에 대한 오해가 많았다. 이념에 관해 나눌 때는 더없이 그들을 지칭하여 이야기 했고, 그것이 생과사를 오가는 길목이기도 했다. 어렸을 때는 색에 관해 특별히 편견은 없었으나 일상적으로 남자는 파랑, 여자는 분홍색을 지칭하여 아이였을 때부터 구분지으며 살았으나 어느 때부터는 사회에서 그런 인식이 너무나 편향되었음을 알고는 남자도 분홍색을 비롯하여 붉으스름한 옷들을 즐겨입고, 여자들 또한 파랑색을 비롯하여 경계없이 즐겨입게 되었다.
뉴스룸을 즐겨보지만 특히 재미있게 보는 코너가 손석희 아나운서의 '앵커브리핑'이다. 이따금씩 그의 브리핑은 그날의 사건을 빗대어 말하기도 하고, 사람들이 지나치는 것들에 대해 경종을 울리기도 하는데 그것이 하나의 책 혹은 영화나 음악을 통해 이야기를 해 주기 때문이다. 문장으로 마주한 우리의 이야기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귓가에 쏙쏙 들어온다. 어느 날에 보았던 뉴스룸의 앵커브리핑 역시 즐겨보다가 문화학자인 개빈 에번스의 <컬러 인문학>을 알게 되었고, 그 덕분에 책을 읽게 되었는데 그의 책은 마치 색을 매개로 한 알쓸신잡 같았다. '알아두면 쓸데는 신비한 잡학사전'처럼 빨강, 주황, 갈색, 노랑, 초록, 파랑, 보라, 분홍, 흰색, 검정, 금색까지의 이야기를 다양한 주제로 풀어낸다.
색에 관한 색의 이야기이긴 한데 주제가 두서없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고무공 같아 그가 설명하는 의미를 곰곰히 생각하며 천천히 읽어가지만 결론을 도출해 내기 어렵다. 각국의 현상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세계의 많은 나라를 색에 관해 다 특징을 잡아낼 수 없을 뿐더러 유럽과 중국, 일본의 이야기가 대표적으로 많이 쓰여져 있다. 색에 관해서는 우리나라도 뺄 수 없을 정도로 조선시대의 복식이 화려한데 개빈 에번스는 우리나라의 문화 보다는 일본의 문화나 중국, 인도의 문화에 대한 예로 많이 들고 있다.
많은 색을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중에서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노랑색과 보라색에 관한 이야기였다. 특히 동서양의 차이를 많이 보이는 색이 노랑색이었다. 가장 많은 색을 차지 하면서도 동서양의 의미가 많이 달랐는데 동양에서의 노랑은 왕이나 업적이 높은 이들이 마주 할 수 있는 색이었다면, 서양의 노랑은 겁쟁이이거나, 죄를 많이 지은 이들에게 주어진 색깔이었다. 서양에서는 나쁜 의미로 쓰이는 욕들이 '노란색'을 띠고 있는 것도 흥미롭다. 보라색은 오직 왕과 귀족만 입을 수 있는 색깔이었다. 시간이 지나 한 계층이 선호했던 색깔은 의미가 옅어지고, 의미가 바래졌지만 색을 통해 그들의 말이나 어원의 의미가 같으면서도 때때로 다른 의미를 나타내는 것이 흥미로웠다.
역사의 의미 속에서 흰색에 관한 이야기를 읽다가 결혼식을 상징하는 '흰색 드레스'의 의미를 알고 나서는 기분이 그리 유쾌하지 않았다. 역사적으로 여성이 투표권을 갖고 자기의사를 결정하며 살 수 있었던 역사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지만 흰색 웨딩드레스는 여자의 순결을 의미하는 녀성을 상징한다는 이야기가 불쾌하게 느껴졌다. 결혼의 예복을 맞추는 것은 남녀 모두 마찬가지인데 옛날부터 많은 나라가 신부는 꼭 순결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스스로의 생각이 아닌 사회에서 그렇게 하기를 강요하는 것 같았다. 여성에게 색깔의 옷을 입는 것 조차도 사회에서는 억압으로 민낯을 만나는 순간이었다.
미술, 책, 언어, 복식, 권위, 염료, 사회, 문화, 종교, 동화등 인류의 문화 속에서 끼쳤던 수 많은 수수께끼를 개빈 에번스는 짤막하게 이야기에 담아 다채롭게 인간이 걸어 나간 길을 한 권의 책으로 묶었다. 색을 풀어내는 일이 쉽지 않았음에도 색깔을 가지고 사람에 대해 시공간을 넘어 다채로운 이야기를 150컷의 이미지를 통해 만들어 냈다. 글을 읽다가 깔갈거리기도 하고,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기도 하다가, 때로는 얼굴이 울긋불긋하며 분통을 터트리기도 했다. 색채를 표현하는 것이 이렇게 다채로우면서도 사람을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구나 싶은 인류의 문화사적 이야기라 오랫동안 눈과 귀를 기울이며 읽었다. 언급된 책이나 사회적인 현상, 색의 의미를 다시 되새기는 시간이었다.
---
오렌지는 4,500년 전쯤 중국에서 처음 재배된 이후로 실크로드를 거쳐 서서히 서쪽으로 이동했다. '오렌지'라는 말은 '향긋하다'를 뜻하는 인도 남부의 고대 드라비다어에서 유래했다. 그곳에서 이 말을 산스크리트어에 병합되었고 이후 오렌지 나무를 가리키는 산스크리트어 'narangah'는 오렌지를 심고 판매하는 지역을 이동하면서 수많은 언어로 번역되기에 이르렀다. 그래서 언어권은 달라도 발음은 비슷하다. 즉 인도어로는 'naranga', 페르시아어로는 'narang', 아랍어로는 'naranj', 스페인어로는 'naranja'이다. 영어에서 주황orange이라는 단어는 산스크리트어의 변형이다. 사람들은 'a naranga'를 'an aranga'로 오인했고, 그 결과 'an orange'가 되었다. 독사의 일종인 살무사adder의 이름에도 이와 똑같은 일이 발생해 중세 영어 'a naddre'는 결국 'an adder'로 굳어졌다. 문제의 과일이 들어오기 전 '주황을 가리키는 영어 단어는 '황적색yellow-red'을 뜻하는 'geoluread'밖에 없었다. 오렌지라는 단어가 널리 보급되기 시작하면서 이를 색 이름으로 채택하기 된 것은 16세기에 들어와서이다. 그 과일은 누가봐도 주황빛을 띠었기 때문이다.-p.45~46
시계태엽 오렌지란?
폭력적이고 디스토피아적인 묘사로 화제를 불러온 앤소니 버제스의 1962년 소설은 속으로는 이상하지만 겉으로는 정상처럼 보이는 뭔가를 가리키는 런던 토박이말에서 제목을 빌려왔다. 버제스는 선 아니면 악만 행할 수 있는 사람을 지칭할 목적으로 이 말을 사용했는데, 1988년 편집판 서문에서 그는 이 말을 '겉보기에는 색과 즙이 풍부한 사랑스러운 유기체 같지만 실은 신 또는 악마, 또는 (그 둘을 아우르는) 전지전능한 존재의 조종을 받는 시계태엽 장난감일 뿐인 누군가'를 의미한다고 설명했다. 다시 말해 이는 작가가 목격한 부패한 사회를 표현한 것이다. - p.52
색 이름에서 온 가장 흔한 성은 무엇일까?
영어권 국가에서는 단연 브라운이다. 브라운은 미국,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에서는 네 번째, 캐나다와 영국에서는 다섯 번째로 흔한 성이다. 다채로운 성씨 목록에서 브라운 다음으로는 화이트, 그린, 그레이, 블랙, 스칼릿, 블루가 온다. 레이드Reid, 리드Read, 리드Reed, 리드Reade라는 성은 모두 옛날 영어 'Red'에서 유래했다. 이를 하나로 합치면 색과 관계있는 성씨 목록에서 4위를 차지하게 된다. - p.66
노랑은 색 전체를 통틀어 가장 쓰임새가 많다. 빨강은 열, 위험, 피와 한 쌍을 이루고, 파랑이 차가운 느낌, 진정 효과와 관계가 깊다면 이 세 번째 일차색으로는 뭐든 만들어낼 수 있다. 서구 문화권에서는 노랑이 보통 겁쟁이의 색으로 알려져 있지만 동양에서 노랑은 영웅주의와 모든 종류의 행복한 일을 암시한다. 14세기 일본 무사들은 전투에 나갈 때 노란 국화꽃을 달았다. 서구에서 노랑은 평판이 좋지 않은 언론의 색이기도 하며, 경멸스러운 사람을 가리켜 '망나니yel-low-dog'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사람들이 '질투심에 못 이겨 노래지며yellow with envy', 흠씬 두들겨 맞아 생기는 멍을 독일어로는 '시커멓고 새파란black and blue' 멍자국이 아니라 '푸르딩딩하고 누리끼리green and yellow'하다고 말한다. 프랑스에서는 마누라가 딴 사내와 눈이 맞아 도망가면 그 남편을 가리켜'jaune cocu',즉 노랗게 속았다yellow deceived'고 말한다. 힌디어로 여성이 결혼하면 '손이 노래진다get her hands yellow'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결혼은 앞둔 신랑 신부의 건강하고 윤택한 삶을 기원하는 의미하는 의미로 예비부부와 그들에게 주는 선물은 강황으로 노랗게 물들인다. 같은 맥락에서 많은 인도인들이 질병과 불행을 막아 달라는 의미로 노란 부적을 지니고 다닌다. - p.70
한때 보라는 왕족의 색이었다. 많은 경우 왕족이 아닌 사람은 착용이 금지되었고, 이를 어기면 때로 죽음의 고통이 따르기도 했다. 이는 천연 재료로 생산하려면 값이 무척 비쌌기 때문이다며, 그래서 보라 하면 굉장한 부자를 떠올리게 되었다. 로마 시대부터 1856년 합성염료가 발명되기까지 보라는 그런 상태로 남아 있었다. 그러다 19세기 후반 들어 보라가 유행하면서 중산층도 처음으로 이 색을 향유할 수 있게 되었다.
1960년대 들어 보라는 한 번 더 인기를 구가하게 되는데, 이번에는 반문화의 색으로 반항과 사이키델릭 아트, 양성애와 연관되었다. 21세기에 와서 보라는 제2의 여성 색으로 또다시 인기를 누리고 있다. 보라는 또 남성 동성애자와도 연관성을 갖게 되었는데, 동성애자 영화감독이자 화가인 데릭 저먼 Derek Jarman은 이렇게 말했다. "남성의 파란색과 여성의 빨간색을 합치면 기묘한 보라색이 나온다." 그 과정에서 보라는 장례식 색으로 선택되었다. 그 이유는 참회와 애도를 상징한다고 알려졌기 때문인데, 이런 관습은 오늘날의 타이에서도 계속 이어져 그곳 미망인들은 종종 보라색 옷을 입니다. 일본과 라틴 아메리카 일부 지역에서 보라는 죽음과도 연관된다. 이러한 전통은 남편 앨버트 공을 잃은 빅토리아 여왕에 의해 영국에서 생겨난 뒤 1950년대까지 지속되었다. 예를 들어 현 여왕의 아버지 조지 6세가 1952년 사망하자 웨스트엔드 가게 유리창마다 엷은 보라색 속옷이 진열되었다. - p.136
순백의 드레스를 입고 결혼한다면 그대는 옳은 선택을 한 것이다.
회색을 입고 결혼하면 먼 곳으로 떠나서 살 것이요,
검은색을 입으면 예전으로 돌아가고 싶을 것이고,
빨간색을 입으면 차라리 죽었으면 하고 바랄 것이며,
청색을 입고 결혼하면 진실되게 살 것이고,
진주색을 입으면 혼란 속에서 살아갈 것이며,
초록색을 입으면 남 앞에 서기가 부끄러울 것이다.
노란색을 입으면 그대의 배우자가 부끄러워할 것이고,
갈색을 입으면 마을에서 나가 살게 될 것이며,
분홍색을 입고 결혼한다면 기운이 모두 떨어질 것이다. - p.173~17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