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나코 - 2014 제38회 오늘의 작가상 수상작 공간 3부작
김기창 지음 / 민음사 / 2014년 10월
평점 :
품절


쓸쓸한 노년의 삶.

 

 어린 아이들에게는 '어제'의 일보다 '내일'의 일을 더 고대한다. 삶의 질곡을 모두 겪은 어른들에게는 '내일'보다는 '어제'의 삶이 오늘보다 더 선명하게 다가온다. 시간이 지나야 내가 살았던 순간들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알게 되는 것처럼 노년의 삶 역시 오늘 보다는 예전의 삶이 더 그립다. 어렸을 때는 부모 밑에서 살을 부대끼며 살고, 몸도 마음도 튼튼하여 자신이 가고 싶은 곳을 주저없이 갈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 나이를 먹게 되면 자신이 가졌던 모든 것들이 모래를 쥔 것처럼 사르르 사라진다.

삶의 모든 것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행동반경도 좁아지고, 몸을 쓰는 근육도 적어진다. 사람도 자연의 일부라 기계가 오래쓰면 고장이 나는 것처럼 사람의 몸도 오랫동안 쓰면 자연히 마모되지만 다른 이의 부축을 받는 노인의 삶은 알맹이 없는 빈껍데기로 살아가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줄 때도 없고, 준다고 하더라도 뭔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감출 수 없다.

 

노인은 나이와 고독의 상관성에 대해 결혼을 내렸다. 살 만큼 살고 할 만큼 하고도 죽지 않는 것에 대한 신의 분노가 둘의 고리였다. 노인은 신에게 반문했다. "당신도 너무 오래 사는 것 아닌가?" - p.51

 

그가 지금껏 혼자인 것은 다른 사람들 탓이 아니다. 지금의 그 자리에 있는 것은 자신의 선택이었다. 젊은 사람 중 관계의 시달림보다는 외로움을 택하는 사람이 있듯이 노인도 그럴 수 있다. - p.65

 

"조금 더 살면, 사는 것 자체가 모욕처럼 느껴질 거야."

" 노인은 모욕당하면 안 되는 존재야.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존경받아야지. 당신은 부자에 걱정도 없고 젊은 여자 뒤나 따라다니다 보니까 망각하고 있는 거야. 별 볼일 없는 존재로 취급받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거지. 그 여자는 당신을 어떻게든 구워삶아서 돈 좀 만져 보겠다는 거야. " - p.139 

<모나코>를 읽었을 때 초반에는 지루했다. 노인과 같이 나이가 들었다면 소설을 읽고 체감하는 느낌이 달랐을 것이다. 아직 파릇파릇한 나이고 활동할 수 있는 나이라 노년의 삶을 그린 작품들을 요즘 곧 잘 만나지만 작가가 어떻게 다루느냐에 따라 몰입감이 다른데 이 책은 초반이 다소 지루했다면 뒤로 갈수록 노년의 삶이 이렇게 매마르고, 쓸쓸할 수 있구나 라고 느끼는 감정이 뒤로 갈수록 더 치닫는다. 노인의 삶은 티비에서 보여지는 것보다 조금은 호화롭지만 어쩐지 그를 둘러싼 관계들이 깊지 않다. 옆에서 도와주는 덕이나 노인이 사랑을 꿈꾸는 진 마저도 허울적인 느낌이고 노인은 언제나 혼자인 것 같다.

 

누군가에게 관심을 받고 싶고, 집안 곳곳에 살림을 도와주는 덕이나 고양이 두 마리가 아닌 사람의 온기가 필요했다. 그러나 노인은 관계의 시달림 보다는 외로움을 택했다 하지만 그의 마지막 순간은 너무나 처참했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나이 많은 어르신들을 자주 보게 된다. 뉴스를 보더라도 일하는 인구 보다는 노년인구가 급증 한다는 기사들이 심심찮게 올라온다. 몇 년전만 해도 노후대비에 대해 생소했다면 요즘은 나이가 많아진다면 어떻게 삶을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고 하는데 이렇듯 노년의 삶은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문제이기도 하다.

 

노인의 말투나 먹는 것 하나하나 노년의 삶 보다는 노인의 욕망이 깃든 삶을 그려져 있고, 노인의 집에 걸려진 그림 조차도 노인의 욕망이 그대로 점철되어 있다. 모리츠 루드비히 폰 슈빈트의 '아침시간'과 마리아노 포르투니 이 카르보의 '포르티시 해변의 누드'역시 세월이 흘러도 변함없이 그의 눈빛이 반짝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쉽게도 세 작품 중 요제프 리플 로나이의 <새장을 든 여인>은 검색해도 나오지 않아 어떤 그림인지 느낄 수 없었다. 그러나 그림의 색감이나 색조, 화풍을 봐도 따스함과 푸르른 느낌은 노인이 한 없이 그리워하는 젊음이 아닌가 싶다.

 

까다로운 노인에게 찾아온 마지막 사랑이라는 띠지가 눈에 들어오지만 진이 노인에게 '마지막 사랑'이라고 하기에는 여러가지 조건이 충족되지 않는다. 내 생각에는 진이 노인에게 주는 마지막 온기 정도랄까. 그것도 아주 잠깐 스치고 마는 바람같은 온기. 노인이 살았을 때 자신이 택한 까다로운 냉소적인 면들이 그가 마지막 순간 삶을 마감할 때도 사람들은 그의 선택을 지지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의 마지막은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졌고 사람들의 관조하는 모습이 어쩌면 지금 우리의 이웃들에게도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노인의 삶을 냉철하게 그려낸 작품이다. 어젯밤 저녁내내 이 책을 읽고 잠을 설쳤던 이유 역시 노인의 삶이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일이며, 현재 우리에게 일어나는 흔한 풍경의 모습인 것 같아 마음이 스산했던 소설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 십이국기 1
오노 후유미 지음, 추지나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대단원의 첫 시발점.

 

 

 애니메이션을 보다가 '십이국기'라는 애니메이션을 알게 되었다. 제목으로 말미암아 장편의 포스가 폴폴 풍기는 제목에 겁먹어 섯불리 접근하다가는 깊은 바다 풍덩 빠져 헤어나오지 못할 것 같아 감히 시도도 못했던 작품이었다. 이전에도 <십이국기>가 책으로 출간되었지만 엘릭시르에서 다시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출간한다고 하니 십이국기를 좋아하는 팬들에게는 그야말로 기쁜 소식이 아닌가 싶다. 책이 출간되기 이전에 가제본을 통해 읽어본 십이국기 달의 그림자 그림자의 바다는 한 편의 성장 소설 같았다.

 

다른 나라의 판타지를 많이 안 읽어 봤지만 일본 소설이나 애니메이션 속에 나오는 판타지는 머나먼 세계를 중국이나 일본의 사회를 본따서 신화 속에 나오는 인물들과 연호를 차용해 만드는데 <십이국기> 또한 어딘가 모르게 우리의 세계와 닮은 듯 하면서도 다른 세계의 일들을 그리고 있다.

 

평범한 여고생 요코가 평소에는 지극히 학교생활에 충실하고 집에서는 가부장적인 부모 밑에서 착실한 그녀 곁에 나타난 한 남자가 나타나고 그녀를 갑작스럽게 납치하듯 끌고 사라지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학교와 집만을 왔다갔다하며 보낸 한 소녀는 게이키를 통해 새로운 세계를 만나고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세계에 발을 디디다가 급기야 그도 사라져버리고 검 한자루와 요코의 몸 속에 빙의된 있는 조유만이 남아 어디론가 내던져지듯 떨어졌다. 그 후 요코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가냘팠던 한 소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사람에 대한 믿음과 배신을 통해 세상을 배워간다.

 

강하지 않으면 무사할 수 없다. 머리도 몸도 한계까지 쓰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

-살아남는다.

살아남아 반드시 돌아간다. 그것만이 요코에게 허락된 바람이었다. - p.167

이 세계에 요코의 편은 없다. 갈 곳도 돌아갈 곳도 없다. 자신이 얼마나 고독한지 깨달았다. 그래도 살아남아야 한다. 내 편, 머무를 곳 하나 없는 목숨이라서 진심으로 아까웠다. 이 세계 모든 것이 내 죽음을 바란다면 살아남겠다. 원래 있던 세상의 모든 것이 내 귀환을 바라지 않아도 돌아가 보이겠다. 포기하고 싶지 않다. 도저히 포기할 수 없다. 살아남아서 게이키를 찾고 반드시 저쪽으로 돌아간다. 게이키가 적이든 같은 편이든 상관없다. 적이라면 위협해서라도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가겠다. - p.240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위해 산다. 자선도 파고들면 자신을 위해서 하는 일일 뿐이다. 그러니까 라쿠슌의 말은 원망스럽게 여길 만한 일은 아니었다. 요코는 생각했다. 아아, 인간은 결국 자신을 위해 사는 존재니까 배신하는 것이라고, 누구든 남을 위해 살 수는 없으니까. - p.274

그녀의 발걸음이 향할 때 마다 검집은 잃어버리고 검과 구슬을 통해 간신히 살아가는 그녀에게 악마의 속삭임처럼 들려오는 불신의 목소리는 정말, 원숭이의 간교처럼 들려와 요코를 괴롭혔다. 계속된 여정 속에서 선의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요코에게 다가서는 무리들 사이에서 아슬아슬하게 위험에 빗겨나가는 소녀를 보면서 나도 모르게 움찔 거렸다. 때로는 요코의 여정이 불안감을 안겨줬지만 앞으로의 발걸음을 통해 어떤 일이 일어날까에 대한 호기심이 일었지만 라쿠슌과 함께 요코를 둘러싼 세계와 그 세계 속의 체제는 아직도 헷갈린다.

 

나오는 인물들도 많고, 그 세계 속의 체제들이 너무도 다양해 요코가 속해 있는 나라와 인접해 있는 국가, 그 세계 속에서 싸우는 적들이 너무 다양하다. 때론 인물들을 통해 세밀한 설명을 듣고 있음에도 요코를 둘러싼 나라들의 설명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요코나 게이코, 라쿠슌을 떠올리며 책을 읽을 때 절로 그들을 떠올리게 하지만 정식 출간본에는 가제본에서 볼 수 없는 삽화들이 들어있다고 하니 가제본 보다 더 세밀한 십이국기를 읽게 될 것이다.

 

장편소설에 첫 발걸음을 들일 때 1권에서는 그들을 둘러싼 인물과 배경에 치중하기 마련인데 <십이국기>의 시작점은 한 소녀의 성장소설로 느껴져 시리즈 소설이 아닐지라도 그 한 권의 소소한 재미가 느껴진다. 다만 너무 다양한 어휘가 존재하고 때로는 상황과 인물을 통해 설명되지 않는 단어는 각주로 따로 설명했으면 하는 아쉬움도 느꼈다. 대작의 첫 발걸음을 떼고 보니 왜 많은 이들이 '십이국기'를 좋아하는지 알겠다. 앞으로 계속되는 시리즈에 대한 기대감과 완간을 기대하며 얼른 다음 이야기 출간 되었으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기적의 세기의 이중적 의미.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최초의 며칠은 인간이 느끼는 불안이 예상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했던 날들이었다. 오존층의 구멍, 녹아내리는 빙하,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와 돼지 인플루엔자, 점점 흉포햐지는 꿀벌 등의 예를 보면, 우리의 불안은 결국 적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진짜 재앙은 늘 예상을 빗나간다. 그것은 상상한 적도 없고 그에 맞서 준비할 수도 없는 미지의 이변이다. - p.49

캐런 톰슨 워커의 <기적의 세기> 표지는 네이버에 표시된 표지보다 훨씬 더 예쁜 색감과 산뜻한 표지로 눈길을 사로 잡는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고 사람들은 그 현상을 일컬어 슬로잉'이라 부르지만 처음에는 보통 날과 같은 평범한 하루였다. 그러나 점점 하루의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하루의 시간이 사십 시간으로 늘어났다. 책은 성인이 된 줄리아가 자신의 열 한살 가을에서 열 두살 가을까지의 일을 회상하며 담은 책이 바로 <기적의 세기>다.

 

우리는 새로운 중력의 영향 아래 살게 되었다. 인식하기에는 너무 작은 변화였지만 몸은 벌써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몇 주 동안 하루의 시간이 계속해서 늘어났고, 공을 멀리 차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식축구의 공격수들도 예전처럼 공을 멀리 보내지 못했다. 홈런 타자들은 슬펌프에 빠졌다. 조종사들은 재교육을 받고 비행에 나섰다. 공중에서 물체를 떨어뜨리면 전보다 빨리 땅에 떨어졌다. 돌이켜 보면 슬로잉은 다른 종류의 변화, 이를테면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체가 떨어지는 속도보다 더 심각한 여러가지 변화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슬로잉으로 인해 친구 간의 우정이 흔들리거나 연인 사이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등 미묘한 감정의 행로에 혼란이 일기도 했다. - p.55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은 한 소녀의 사춘기의 첫 사랑을 그린 소설 같기도 하고 SF소설과 같은 공상 과학소설 같기도 하며 때로는 재난을 다룬 책을 떠올리게 만든다. 실제 지구의 자전 속도가 달라지면 어떻게 달라질까에 대한 현상도 그려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이 당혹스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마치 진짜 뉴스를 보는 것 마냥 담겨져 있다. 한 사춘기 소녀의 기적적인 만남과 이별 짧지만 강렬하게 지구의 속도가 달라진 기적은 어쩌면 그 시기에 한 소년을 만나 마음에 담고 함께 입을 맞추며 자신의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일을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적인 재앙과 줄리아에게 다가온 사랑은 시작과 끝이 분명히 존재했고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눈부시게 남았다. 줄리아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연적인 재앙은 어딘가 모르게 자신의 일상을 흐트러 놓았다. 학교에 등교를 하던 아이들의 부재 속에 줄리아는 외톨이가 되었고, 어른들은 슬로잉으로 인해 갖가지 비상요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거리 만큼이나 자연의 현상 또한 현저하게 달라졌고 일상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졌고 그동안 교육 받았던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혼란이 틈타는 와중에 줄리아와 세스의 사랑이 시작되었고 첫사랑이 으레 그렇듯이 강렬한 끌림 뒤에는 아쉬운 이별으로 기적의 세기를 마감해야 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줄리아 에게는 그 시기가 기적이었고, 그때 일어난 그 순간들이 오롯하게 마음에 남았을 것이다. 줄리아의 사랑과 하루의 시간이 24시간이 아니라 40시간처럼 길게 늘어가는 순간이 왔으면 하는 바램이 지구의 자전속도를 느려지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시기에는 시간의 속도가 줄어들고 세상의 만물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1년여의 짧은 시간 동안 줄리아를 비롯해 줄리아의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만약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언론과 정부의 발빠른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존의 있는 시간은 파괴되고 다시 새로운 포멧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과도기적인 모습들이 새로이 그려지고 그런 과도기가 지나면 어른으로 성장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처럼 사회의 모든 것들도 결국 과도기적 시련과 맞물려 한 순간의 변화의 바람이었고, 기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소년소녀의 사랑을 내가 마치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처럼 가슴 설레이며 읽었지만 어느 순간 부터는 감정이입을 하지 못했는데 '기적의 세기'는 캐런 톰슨 워커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풋풋함 뿐만 아니라 지구의 속도가 느려지는 혼란스러움 속에 교차되는 이야기이기에 그 어떤 책보다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책을 읽었다. 기적의 세기의 판권이 팔려 앞으로 영화로 제작된다고 하니 영화관에 개봉이 되면 꼭 가서 봐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이 고도를 사랑한다 - 경주 걸어본다 2
강석경 지음, 김성호 그림 / 난다 / 2014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걷는 그 순간, 행복감이 물씬 피어나는 곳.

 

이제야 알겠다. 경주의 깊이란 다름 아닌 황룡사지의 봉 자국에 묻은 신라인의 정성과 깊은 염원이라는 것을, 분화사 탑에 서린 할기리 여자 희명의 간절한 기도라는 것을. 비록 후손들이 이익에 눈이 어두워 고충 아파트를 마구 세우고 유산을 손상했지만 돌 틈에도 살아 있는 그 숨결 때문이라는 것을. - p.56

 

 남들은 중고등학교 때 수학여행지로 발도장을 찍고 천마총 앞에서 기념사진을 남겼지만 어쩐 일인지 학교를 다닐 때에는 '경주'를 빚겨갔다. 고등학교에 새로 입학한 아이들이 이전에 중학교에서 경주로 수학여행을 떠났다는 이유로 고등학교 수학여행은 경주가 아닌 강원도 화진포로 갔던 기억이 난다. 다른 중학교에서 입학한 아이들 중에서는 극히 소수이겠지만 경주에 발을 디뎌보지 못했고,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기에 다른 곳으로 수학여행을 간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쉬웠다.

 

 

 

시간이 흘러 학교를 졸업한지 시간이 흐르고 흘러 작년에 큰 마음을 먹고 엄마와 단둘이 여행을 떠난 곳이 '경주'였다. 늘, 처음 발걸음을 떼는 힘든 법인지 여행을 고민하다 갑작스럽게 '가자~'하면서 떠난 경주여행은 생각보다 무척 재밌었다. 좋은 펜션, 좋은 민박집이 아닌 역 근처의 모텔에서 잠깐 눈을 붙이며 몸을 뉘였지만 서울의 빽빽함과 낯밤이 불분명할 정도로 환한 거리를 떠나 경주의 나지막한 집들과 곳곳의 둥글둥글한 릉과, 구불구불 파마를 한 듯 울창한 나무들이 서있는 이 곳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예전에는 서울에 사는 것이 참 좋았는데 언젠가부터 공기도 탁하고 사람도,집도,자동차도 빼곡한 이곳이 너무도 빡빡하게 느껴진다. 자연적인 모습은 점점 사라지고 인공적인 모습만 존재하는 것 같아 대도시의 삶이 조금은 밋밋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경주에서의 2박 3일의 여정은 자연과 마주하는 것은 물론 신라의 역사와 문화 찬란한 고도에 대해서 깊이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짧은 여정이 아쉬웠을 정도다.

 

 

 

걸어가는 곳마다 펼쳐지는 풍경과 나무와 새, 나지막한 기와집이 그야말로 너무 자연친화적이어서 가는 곳마다 나중에 꼭 이곳에 와서 몇 년쯤 살았으면 좋겠다고 할 만큼 푸르른 기운에 행복감이 물씬 피어났다. 동전의 양면처럼 장점이 있다면 단점도 있는 것처럼 있는 내내 유명하다는 음식점에 가서 한정식을 먹어봤지만 반찬의 가지수만 많았지 맛은 그리 좋지 않았다. 경주에는 왜 그리 빵집이 많은지 덕분에 보리빵과 황남빵을 사먹느라 여행경비를 제법 썼던 기억이 난다.

 

강석경 작가의 에세이를 읽고나니 작년 여행 갔을 때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당시 찍었던 사진을 찾아서 다시 보니 그 때 생각이 나서 좋기도 하고 다시 한번 경주로 여행을 떠나고 싶은 것을 꾸욱- 참았다. 걸어본다 시리즈 1권인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도 그랬지만 이 책 역시 여행정보나 여행기가 아닌 저자가 스스로 그곳을 걸으며 느꼈던 사유와 그 곳의 근원적인 본질을 찾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글 만큼이나 화가 김성호의 그림이 너무도 좋아 몇 번이나 보고 또 보고를 반복하며 감상했을 정도로 경주의 풍경을 그대로 보여준다.

 

 

경주에 살면서 가장 좋은 점은 바다를 가까이 볼 수 있다지만 저번 여행에서는 바다가 아닌 신록의 푸르름만 깊이 본 터라 다음에 꼭 경주를 여행한다면 문무대왕릉과 감포항에 꼭 가보고 싶다. 지금과 가장 근대인 조선의 역사에 심취한터라 신라의 역사는 학교 때 배웠던 것이 전부여서 경주 시내를 돌아다니면서 그 찬란한 문화를 마음 깊이 넣고 오지 못한 것이 아쉬웠다. 그들의 정신과 찬란한 문화를 눈과 마음에 깊이 새기는 날이 온다면 그 때는 깊이, 깊이 새겨넣어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 - 용산 걸어본다 1
이광호 지음 / 난다 / 2014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산책자가 되어 용산을 돌아보다.

 

 김탁환 작가의 소설 '서러워라, 잊혀진다는 것은' 제목처럼 우리가 살고 있는 시간과 공간을 자꾸 잃어만간다. 점점 더 발전된 서울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몇 십년 전, 몇 백년 전의 발자취를 더듬는 노력없이 우리는 깨고 부수고, 다시 짓기를 반복하며 도시를 깃는 것 같아 과거와 현재 미래를 동시에 내다 볼 수 없음을 한탄하기도 하는데 어느 한 산책자가 서울의 많은 지역 중 한 곳을 돌아보며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 들춰보고 그곳을 돌아보며 기록한 책이 바로 <지나치게 산문적인 거리>다. 서울의 많은 지역 중 그가 택한 곳은 바로 '용산'이다.

 

종로에 갈 때면 어김없이 지나치는 곳이 바로 '용산'이다. 용산은 나에게 멀지도 가깝지도 않으나 종착지에 머물러 있기 보다는 간이역처럼 잠시 머물렀다 가거나 버스를 타고 차창밖에 보이는 풍경을 스쳐지나가는 정도의공간이었다. 현재는 아무런 대척점이 없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처음 아빠손에 이끌려 간 곳이 '용산 전자상가'였고 나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워크맨'을 손에 넣었던 기억이 난다. 용산 전자상가에 가기 위해 아빠 손을 잡고 버스를 타고 간 그곳은 사람들이 많이 드나들어 혼잡한 곳이었고, 거리에는 유흥가, 식당가들이 많아 아빠 손을 꼬옥 붙잡아야 했다. 많은 언니들이? 의자에 앉거나 거리에 서서 호객 행위를 했던 기억도 어렴풋이 남는다.

 

그 후 시간은 다시 거슬러 고등학교 때로 흘러간다. 삼성동 메가박스에서 수 많은 영화를 봤지만 용산 CGV가 생기면서 아지트가 용산으로 바뀌어 일주일에 몇 번씩 친구들과 함께 조조영화를 보러가며 용산에 발을 디뎠던 것 같다. 다시 시간이 흘러 이제는 갈 이유가 없어 그냥 지나는 곳이 되었다. 어쩌면 다시 갈 일이 생기겠지만 용산에 대한 특색이 두드러지게 느껴지지 않았던 나에게 이광호 문학 비평가의 글은 '용산'이 보인 색깔 중에 가장 작은 색채만 느꼈을 뿐 과거의 시간에 있어 이 곳이 어떠했는지를 알려주는 지침서와 같았다.

 

어떤 장소는 기억 너머에 있고, 어떤 장소는 기억 이전에 있다. - p.10

 

서울이라는 도시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는 것 중의 하나는 먼 과거의 것들을 보존하려는 당위와 노력에 비해 가까운 과거인 근대의 기억들은 잊으려 한다는 것이다. '민족 이야기'에 대한 동경과 '식민지 근대'에 대한 불편함이 이런 자발적인 망각을 낳게 햇을 것이나, 서울 중심부의 거대한 땅에 아직도 외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는 엄연한 사실은 그 망각의 이유가 동시대적인 요인을 갖고 있을 짐작하게 한다. 용산은 애써 지우고 싶은 식민과 이식의 역사와 모욕과 단절의 시산이 폭력적인 개발을 호출하는 기이한 장소이다. 불균등한 시간들이 어지럽게 교차하면서 일상적 우울과 권태와 뒤섞일 때, 용산의 '과도한 산문성'이 만들어진다. -p.11

 

참혹한 기억이 생생해서 아침햇살이 지옥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황홀했던 시간의 세부조차 기억하지 못하고 늙어가는 것이 문득 두려워질 것이다. 기억은 나의 시간에서 빠져나와 너의 미래로 흘러간다. - p.15

 

 

처음 이 책을 읽을 때는 뭉툭뭉툭 튀어나오는 '지나치게' 산문적인 모습에 흠칫했고, 선명하고 반짝이는 광택이 돋는 풍경이 아닌 세피아 느낌의 사진이 답답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다시 읽고, 또 읽고나니 저자의 글귀가 눈에 들어오고,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이 책은 그가 말했듯이 친절한 여행 안내서가 아니다. 소설도, 수필도 아닌 한 명의 산책자가 용산을 둘러보면서 느꼈던 느낌이나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도시의 미래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이 도시가 지나왔던 시간을 돌이켜 보건대 시간이 흘러도 지금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알고 있던 시간 속에서 용산은 낯설지 않았지만 그가 이야기하는 공간은 내 기억 속의 이전이었고 그 시간 속에 도시 계획은 이루어져 지금까지 구획이 나뉘어 저마다의 색깔을 갖는다. 효창공원, 청파동, 후커힐, 남일당 터에 대한 이야기는 내 기억 속에는 없었던 일이었지만 그가 언급한 이 곳의 유래와 시간의 망각은 생채기가 날만큼 가슴이 아팠다. 도시마다 저변적으로 발전에 발전을 이룩하고 있지만 그가 콕 찝은 '용산'의 모습은 너무나 쉽게 망각을 하는 우리의 현주소가 그대로 그려진 지도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무릇 용산 뿐만 아닐 것이다. 저자의 글 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그의 회한과 용산의 뒷골목 풍경은 우리의 지나간 시간들을 깨운다. 누군가 잊혀지는 것은 영원히 시간 속에 수장되어 암연 속으로 빠져 드는 것이지만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주고 돌아봐준다면 그 시간의 역사는 잊혀지지 않는 게 아닐까. 저자의 발걸음처럼 세밀하고 통찰력있는 그의 글은 용산이라는 공간의 과거와 현재 뿐만 아니라 우리의 근현대사를 관통한다. 발걸음을 통해 좋은 공기, 좋은 풍경을 마주하는 것도 좋은 일이지만 이처럼 글을 통해 산책하는 기쁨 또한 즐거운 일이다. 이번엔 눈걸음으로 그의 발걸음을 쫓았지만 다음엔 꼭 진짜 산책을 통해 '용산'을 둘러보고 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