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적의 세기
캐런 톰슨 워커 지음, 정회성 옮김 / 민음사 / 2014년 9월
평점 :
품절


기적의 세기의 이중적 의미.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최초의 며칠은 인간이 느끼는 불안이 예상과 맞아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했던 날들이었다. 오존층의 구멍, 녹아내리는 빙하,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와 돼지 인플루엔자, 점점 흉포햐지는 꿀벌 등의 예를 보면, 우리의 불안은 결국 적중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싶다. 진짜 재앙은 늘 예상을 빗나간다. 그것은 상상한 적도 없고 그에 맞서 준비할 수도 없는 미지의 이변이다. - p.49

캐런 톰슨 워커의 <기적의 세기> 표지는 네이버에 표시된 표지보다 훨씬 더 예쁜 색감과 산뜻한 표지로 눈길을 사로 잡는다. 어느 날 갑자기 지구의 자전 속도가 느려지고 사람들은 그 현상을 일컬어 슬로잉'이라 부르지만 처음에는 보통 날과 같은 평범한 하루였다. 그러나 점점 하루의 시간이 길어지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하루의 시간이 사십 시간으로 늘어났다. 책은 성인이 된 줄리아가 자신의 열 한살 가을에서 열 두살 가을까지의 일을 회상하며 담은 책이 바로 <기적의 세기>다.

 

우리는 새로운 중력의 영향 아래 살게 되었다. 인식하기에는 너무 작은 변화였지만 몸은 벌써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몇 주 동안 하루의 시간이 계속해서 늘어났고, 공을 멀리 차는 게 점점 더 힘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미식축구의 공격수들도 예전처럼 공을 멀리 보내지 못했다. 홈런 타자들은 슬펌프에 빠졌다. 조종사들은 재교육을 받고 비행에 나섰다. 공중에서 물체를 떨어뜨리면 전보다 빨리 땅에 떨어졌다. 돌이켜 보면 슬로잉은 다른 종류의 변화, 이를테면 처음에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물체가 떨어지는 속도보다 더 심각한 여러가지 변화를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슬로잉으로 인해 친구 간의 우정이 흔들리거나 연인 사이가 가까워지고 멀어지는 등 미묘한 감정의 행로에 혼란이 일기도 했다. - p.55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은 한 소녀의 사춘기의 첫 사랑을 그린 소설 같기도 하고 SF소설과 같은 공상 과학소설 같기도 하며 때로는 재난을 다룬 책을 떠올리게 만든다. 실제 지구의 자전 속도가 달라지면 어떻게 달라질까에 대한 현상도 그려지고 있지만 사람들이 이 당혹스런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며 살아가는지에 대한 이야기들이 마치 진짜 뉴스를 보는 것 마냥 담겨져 있다. 한 사춘기 소녀의 기적적인 만남과 이별 짧지만 강렬하게 지구의 속도가 달라진 기적은 어쩌면 그 시기에 한 소년을 만나 마음에 담고 함께 입을 맞추며 자신의 생애에 잊을 수 없는 일을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연적인 재앙과 줄리아에게 다가온 사랑은 시작과 끝이 분명히 존재했고 잊을 수 없는 기억으로 눈부시게 남았다. 줄리아의 시선으로 바라본 자연적인 재앙은 어딘가 모르게 자신의 일상을 흐트러 놓았다. 학교에 등교를 하던 아이들의 부재 속에 줄리아는 외톨이가 되었고, 어른들은 슬로잉으로 인해 갖가지 비상요품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거리 만큼이나 자연의 현상 또한 현저하게 달라졌고 일상의 움직임이 부자연스러워졌고 그동안 교육 받았던 모든 것들이 무용지물이 되어 버렸다. 혼란이 틈타는 와중에 줄리아와 세스의 사랑이 시작되었고 첫사랑이 으레 그렇듯이 강렬한 끌림 뒤에는 아쉬운 이별으로 기적의 세기를 마감해야 했다.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난 일이기에 줄리아 에게는 그 시기가 기적이었고, 그때 일어난 그 순간들이 오롯하게 마음에 남았을 것이다. 줄리아의 사랑과 하루의 시간이 24시간이 아니라 40시간처럼 길게 늘어가는 순간이 왔으면 하는 바램이 지구의 자전속도를 느려지게 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시기에는 시간의 속도가 줄어들고 세상의 만물이 다르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1년여의 짧은 시간 동안 줄리아를 비롯해 줄리아의 가족과 이웃들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만약 우리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을 했을까 라는 생각이 들만큼 언론과 정부의 발빠른 체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기존의 있는 시간은 파괴되고 다시 새로운 포멧으로 살아야 하는 사람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다. 과도기적인 모습들이 새로이 그려지고 그런 과도기가 지나면 어른으로 성장하는 한 소녀의 이야기처럼 사회의 모든 것들도 결국 과도기적 시련과 맞물려 한 순간의 변화의 바람이었고, 기적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소년소녀의 사랑을 내가 마치 누군가를 좋아하는 것처럼 가슴 설레이며 읽었지만 어느 순간 부터는 감정이입을 하지 못했는데 '기적의 세기'는 캐런 톰슨 워커의 기발한 상상력으로 풋풋함 뿐만 아니라 지구의 속도가 느려지는 혼란스러움 속에 교차되는 이야기이기에 그 어떤 책보다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책을 읽었다. 기적의 세기의 판권이 팔려 앞으로 영화로 제작된다고 하니 영화관에 개봉이 되면 꼭 가서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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