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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이 부부를 막을 수 없다! - 웃겨야 사는 부부의 달콤살벌 토크 배틀
정진영.김의찬 지음, 김유빈 그림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평점 :
절판
한 편의 시트콤처럼 웃음을 머금고 사는 부부 이야기.
언제부턴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트콤'이 사라졌다. 중고등학교 아니 대학을 다닐 때 까지도 재밌게 보았던 이야기 모음집 같은 드라마가 어느새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 버리다 보니 사람들이 그런 장르의 드라마가 있나 싶을 정도로 기존의 드라마만 존속 되어 그 명맥을 유지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의 재미도 재미지만 시트콤을 통해 스타의 등용문이라고 할 만큼 풋풋한 신인들이 대거 투입이 되곤 했는데 그런 새로운 얼굴 마저도 볼 수 없으니 신인 연기자가 들어올 문은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 아무튼 시트콤 하면 떠오르는 <남자 셋 여자셋> <순풍 산부인과>등 대표적인 작품들을 모두 정진영 김의찬 작가 부부의 손에 거쳐 나왔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모두 웃음과 감동이 들어있는 이야기 보따리이기에 웃음이 가득찬 이 부부의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했다.
인기 시트콤 작가 부부는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하는 궁금증은 책을 펴자마자 그 궁금증이 싹 해소 될만큼 이 부부의 이야기를 찰지게 읽었다. 한때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2006,동녘라이프)가 유행처럼 읽히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스테디셀러로 잘 나가고 있지만 여자사람 정진영 작가와 남자사람 김의찬 작가는 존 그레이의 책처럼 다른 행성의 사람들처럼 너무도 안맞아 보였다. 이들 부부가 어찌 이렇게 안 맞음에도 예쁜 딸 유빈이를 낳고 잘 살 수 있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살포시 생겨날 만큼 쿵짝이 잘 안 맞을 것 같은 부부의 일상과 생각, 생활의 철학들이 서로 맞물려 한 편의 시트콤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아니면 두 부부의 이야기를 눈 앞에서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만큼 이야기는 현실적이지만 가볍지 않고 사뿐하게 적절한 유머가 베어있어 절로 웃음을 머금게 된다.
서로 같지 않기에 서로를 보완하며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엄마의 말처럼 두 부부는 하나하나 틀리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때로는 맞춰가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나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는데, 몇 십년간을 따로 살았던 남녀가 어떻게 한 순간에 몇 년 혹은 몇 십년을 살았다고 그것을 다 맞출 수 있을까. 살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나 아닌 남편(혹은 아내)의 모습을 보며 맞춰가는 과정 또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공부가 아닌가 싶다. <웬만해선 이 부부를 막을 수 없다!>는 예전에 두 사람이 쓴 작품을 빗대어 쓴 제목이지만 좌충우돌하고 때로는 못말려도 너무 못말리는 정작가와 김작가의 만상을 세상에 고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사견이 많은 책이지만 평소 그들의 유머러스하고 관대한 생활신조 때문인지 읽는 독자로 하여금 별나게 굴지만 친숙하고, 미워하고 싶어도 친근한 두 사람의 생활 모습이 하나도 보기 싫지 않았다. 맛깔스러운 글 솜씨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단점 속에서도 여전히 노력하고, 여전히 웃을 수 있는 마인드의 두 사람 때문인지 두 사람의 이야기가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로 느껴졌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의 장르처럼 소화되던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때 두 사람에게 위기가 닥쳤고 여러번 쓴물을 들이켰다. 지금도 물밑에서 여전히 두 작가는 고군분투 중이고 SBS 코미디 작가로 운 좋게 합격한 두 동기 작가가 부부로 함께 일을 하면서 느꼈던 희열과 감동, 쓰디쓴 좌절의 이야기를 한데모아 다시 재기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언젠가 다시 두 사람의 시너지를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시금 마주 할 수 있기를 빈다. 말빨과 글빨이 빵빵한 이 책에 두 사람의 하나밖에 없는 딸 유빈이의 그림이 모여 14년차 작가부부의 천태만상적인 이야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유머가 무엇인지, 남녀의 생각의 차이를 톡톡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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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 당신 좋아하는 지드래곤도 이상한 거 잘 사잖아. 노래 만들 때 영감 받으려고.
정작가: 지용이는 잘 벌잖아. 어떻게 감히 당신이 GD한테 업혀 갈라 그래.
김작가: 지용이와 내가 사뭇 처지는 다르지만 물건에 대한 이해는 사실 같은 거라구.
정작가: 그게 뭔데?
김작가: 세상에 필요 없는 물건은 없다. 심지어 물건마다 고유의 정령이 깃들어져 있다. 오히려 그 정령이 나를 이끌 수도 있으며 그 정령을 쫓다 보면 새로워질 것이고 고여서 썩는 일은 겪지 않게 해 줄 것이다.
정작가: 한 마디를 지질 않네. 그래서 계속 물건을 사들이시겠다?
김작가: 계속은 아닐 거 같애. 이젠 거의 다 사들였어. 내가 팔꿈치까지 오는 가죽 장갑 사고서 그 느낌을 받았어. '이로써 난 더 이상 필요한 게 없다.' - P.175
정작가: 단군 할아버지 말씀대로 홍익인간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 뭐 그런 거룩한 마인드인 건가?
김작가: 그렇다기 보다는 그냥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길 좋아하는 거지. 작가적인 관심일지도 모르겠어.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성향을 파악한 후 그들의 고민을 듣고 해법으로 정밀 타격을 해주는 거. 난 그게 좋거든. 부적을 쓴 것도 내 관찰의 결과였어. 그분이 아티스트라 작품을 만드는 데는 열의가 있으시지만 장사를 하는 데는 열의가 별로 없으셨던 걸 안 거지. 그래서 그쪽도 좀 마음을 열고 힘써 보시라고 써드린 거야. '연중무휴', '중국 단체 관광객 환영.' '만져도 됩니다'그런 넓은 아량으로 편하게 작품 하시라고.
정작가: 타인의 고민에 해법을 제시한다? 난 그것 자체가 주제넘은 행위라고 봐. 난 작가의 고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런 면에서 난 랩퍼 도끼의 스타일이 좋더라.
김작가: 도끼가 어떤 스타일인데?
정작가: 도끼는 고민에 빠진 사람을 그냥 절에 데리고 가서 혼자 대웅전에 앉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대. 자신은 그냥 데려다 주고 기다려 주기만 할 뿐, 그게 맞는 거 아닌가? 조용한 곳에서 혼자 자신의 고민과 대면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방향을 정하는 것. 그건 스스로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잖아. 어떻게 남이 그걸 해 주겠어. - p.235~236
"내가 내린 해답은 하나야. 우리에겐 금이 쫙쫙 간 우리 사이를 매번 촘촘하고 단단하게 메꿔 주는 접착제가 있어서야."
"접착제?"
"음. 접착제."
"그게 어떤 거지?"
"웃음. 유머. 그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 마음을 하나로 붙여 놓는 웃음 접착제. 우리 둘 다 어느 정도로 웃음과 유머와 재미를 좋아 하냐면 말이야. 당최 웃을 일이 없으면 아예 웃을 일을 찾아 나서는 수준이라구. 마치 사냥꾼처럼. - p.296~2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