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나의 선택 1 - 3부 마스터스 오브 로마 3
콜린 매컬로 지음, 강선재 외 옮김 / 교유서가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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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의 매혹적인 인물들이 펼치는 향연의 장.


<가시나무 새>로 유명한 콜린 매컬로의 <로마의 일인자>가 출간 이후 <풀잎관>과 <포르투나의 선택>까지 '마스터스 오브 로마' 시리즈가 계속해서 순항 중이다. 이전에 <풀잎관>까지 번역이 되어 나왔다가 이후 더 이상 출간되지 못해 뒷 이야기를 읽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다. <포르투나의 선택>이 그래서 더 의미가 있지만 무엇보다 이야기가 견고하고 다채로워 손을 뗄 수 없게 만든다.


오랜만에 접한 콜린 매컬로의 이야기는 시대가 많이 지나 장년층을 넘어 노년의 시기에 접어든 술라의 모습을 목도하게 된다. <로마의 일인자>때부터 어디로 튈지 모르는 이 청년의 모습이 눈길을 사로 잡았고 귀족이지만 그에 맞는 자리를 차지하지 못해 속으로 많이 삭혔던 그가 이제는 정국의 주도권의 고삐를 틀어 잡았다. 시간이 많이 흘렀기에 많은 역할을 담당했던 가이우스도 사라졌고, 아우렐리아의 어린 아들이 영민하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가이우스는 자신이 죽으면서 한 아이의 영민함을 로마 전체에 알리지 못하도록 유피테르 대제관으로 묶어두었다. 전장에도 정치적인 입지를 다질 수 없던 그를 술라가 그의 족쇄를 풀어줌으로서 자신이 원하고 그토록 성취하고 싶어하는 발걸음을 내 딛는다.


무엇보다 이번 장에서 가장 눈여겨 봐야할 인물은 뭐니뭐니 해도 술라다. 아름다운 외모를 갖고 있음에도 백치미다운 그의 성격이 이제는 나이를 먹어 침착해지고, 무엇보다 사람을 다룰 수 있는 용인술에 감탄을 할 만큼 밀고 당기기를 기막히게 잘 해낸다. 비록 외모는 젊었을 때와 정반대로 주름이 지고, 피부병으로 온 언굴에 딱지가 앉아 보기가 흉하지만 그는 자신의 병과 마주하면서 한걸음씩 더 발빠르게 행보한다. 가장 선봉에 선 그는 자신과 함께 지휘봉을 잡은 동료들을 누구보다 빨리 캐치하고 날렵하게 그 임무를 수행하도록 압박해 자신이 원하는 결과물을 만든다. 자신감이 넘치고 열의로 가득한 폼페이우스를 이용해 그와 밀고 당기기를 하며 갓 새내기 수장을 일으켜세우며 전장의 고삐를 더 발빠르게 치고 나간다.


동전의 양면처럼 자신의 이익을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는 술라의 모습과 융통성이 가미된 술라의 모습은 처음부터 끝까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예전에 술라와 잠깐의 인연을 나누었던 아우렐리아 역시 기품있고, 단단한 성정이 물씬 묻어난다. 아직 젊은 망아지 같이 날뛰어 아버지 마리우스의 발끝조차도 따라갈 수 없었던 마리우스 2세가 빨리 사라진 것이 아쉬웠지만 용맹스런 새싹인 폼페이우스와 카이사르가 빠르게 성장해 나간 것이 <포르투나의 선택>에서 보여진다. 로마의 매혹적인 인물들이 쉴 새 없이 향연의 장을 펼치다 보니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페이지가 넘어간다. 이전에 보였던 로마의 모습은 사라지고 로마를 틀어잡을 주인들은 세월을 머금고 사라졌다.


술라는 황제가 아닌 독재관으로서 로마를 다시 재건하기 시작한다. 오롯하게 술라가 생각하는 로마로. 지금으로 보자면 술라의 나이는 한창 일 할 때지만 그는 서서히 자신이 갖고 있는 권력의 끝을 바라보게 된다. 떠오르는 해가 아니라 서서히 지는 해. 그럼에도 사리사욕을 느끼지 않고 자신의 색채를 과감하게 집어넣으며 마음대로 권력을 휘두르지 않는 그의 모습을 보며 로마가 왜 그렇게 오랫동안 지속되었지를 알 수 있게 만들었던 시간이었다. 더불어 위의 글 속에 언급되지 않았던 인물들을 통해 각각의 색채와 로마인들의 삶을 강하고, 깊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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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상가 폼페이우스가 비슷한 부류의 사람들과 달랐던 점은 현실감각이었다. 그는 냉철하고 날카로운 명민함으로 실제 세상을 바라보았고, 가능성이나 개연성을 절대 놓치지 않았으며, 산맥만한 것부터 투명한 물방울 하나만큼 사소한 것까지 사실에 거머리처럼 집착했다. - P.40


그의 아버지는 생전에, 장군은 전투가 계획대로 전개되지 않을 경우 신속히 후퇴해야 하므로 절대 기지에서 멀리 벗어나서는 안 된다고 수없이 말했다. - P.49


지는 해는 여전히 뜨겁고 강렬하나 궤도의 끝에 다다르는 중이다. 아! 하지만 뜨는 해는! 이미 뜨겁고 강렬하지만 앞으로는 정점을 향해 도약하며 훨씬 더 뜨겁고 강렬해지겠지. 술라의 태양은 서쪽으로 가고 있다! 폼페이우스는 의기양양하게 생각했다. 반면 나의 태양은 이제 겨우 동쪽으로 지평선 위로 떠올랐을 뿐이다. - P.53


위대한 폼페이수는. 술라는 폼페이우스의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부르는지 이미 알고 있었다. 위대함을 얻는 것이 아니라고, 태어날 때부터 자신에게 주어졌으며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진심으로 믿는 청년. 술라는 생각했다. 나는 진심으로 바란다. 폼페이우스 마그누스, 누가 그리고 무엇이 너를 무너뜨리는지 볼 만큼 내가 오래 살기를! -P.68


바로는 신중하게 생각해보았다. 폼페이우스의 말이 맞을까? 존엄! 로마 귀족 남자의 모든 소유물 가운데 가장 뮤형적인 것, 그것이 존엄이다. 권위는 권력과 공적인 영향력, 여론과 원로원부터 신관들과 국고 위원회까지 공적 기구들을 좌지우지하는 능력의 크기다.

존엄은 다르다. 존엄은 극히 개인적으로 사적이면서도 개인의 공적 생활의 모든 규정 요인들로 확장된다. 정의하기가 무척이다 어렵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그것을 위한 표현이 있는 것이다. 존엄은·····한 사람의 장업함····· 영관의 정도라고 할까? 존엄은 개인이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가 속한 사회의 지도자로서 무엇인지를 요약한다. 존엄은 개인의 자존감, 온전함, 말, 지성, 행동, 능력, 지식, 지위, 사람으로서의 가치의 총합이다·····. 존엄은 사람의 죽음을 넘어시에, 사람이 죽음에 승리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그래, 이것이 가장 올바른 정의다. 존엄은 사람의 물리적 존재의 멸실에 대한 승리다. - P.178~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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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정의 라드츠 제국 시리즈
앤 레키 지음, 신해경 옮김 / 아작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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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미래 우주를 배경으로 한 인공지능의 첫 발걸음.


지금껏 많은 소설을 읽었다고 자부했는데 앤 레키의 <사소한 정의>는 이전에 만나본 작품들과 다른 색채, 다른 체계의 세계가 그려진 SF소설이다. 이 책을 쓴 앤 레키는 2013년 출간 후에 휴고상, 아서 C. 클라크상등 과학소설에 줄 수 있는 거의 모든 상을 휩쓸었다. 평소 과학과 친하지 않다보니 많은 문학소설 중에서도 SF소설은 손에 꼽을 정도로 만나다 보니 앤 레키가 그린 <사소한 정의>를 읽는 내내 고전을 면치 못했다.지금껏 소설 속에 그려진 사랑,우정, 남자사람, 여자사람의 구분 조차도 쉽지 않았다.


몇 달전에 프로바둑 기사인 이세돌 9단이 알파고라는 인공지능 컴퓨터와 바둑을 둬서 화제가 되었는데, 이보다 훨씬 전부터 SF소설에서는 사람보다 더 사람같은 인공지능이 사람을 대신한다. 예전 같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지만 이세돌 9단과 겨룬 알파고를 생각하면 이제는 더 이상 상상속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닌가 싶다. 먼 미래 우주에서 인공지능 함선 군단을 앞세워 라드츠 제국이 전 우주를 병합하려는 시도를 하려고 한다. 그 속에서 인공지능이 한 대위를 사랑하게 되고 계략에 빠져 버린다. 시간이 흘러 함선과 보조체, 라드츠 제국의 장교들의 모습이 정교하게 그려져 있어 무엇보다 그들 사이에서 인공지능이 빠질 수 없는 매개체가 되어 그들의 자유와 우주의 평화로운 모습을 떠올리게 된다.  


나는 이 문제가 스트리건이 아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사안이라고 확신했다. "그건 사람들의 좌절감을 더 키울 뿐이야. 평생을 정복에, 라드츠 우주를 확장하는 데에 바쳤다고 상상해봐. 너는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로 자행되는 살인과 파괴를 보겠지. 하지만 그들은 세상을 위한 문명과 정의와 공정과 이익의 확장을  봐. 죽음과 파괴, 그것들은 이 궁극의 선으로 가는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발생하는 부산물일 뿐이야." - p.131


언제나 그렇듯 큰 제국이 다른 세계를 통합하고 모든 것을 손에 쥐려면 문명의 파괴는 일어나고, 무고한 목숨은 대의를 위해 희생 되어왔다. 앤 레키가 새롭게 구축한 세계 역시 정교하지만 차갑고, 지구에서 확실하게 분별할 수 있는 계급과 색채를 그녀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다시 그려냈다. 오온 대위는 다른 함선에 있으면서 라드츠 제국에서 행하라고 한 명령을 불복종하게 하게 되고, 함선이지만 사람의 몸피를 한 것 같은 브렉은 인간과 함선의 모호함을 갖고 있지만 눈에서 의식을 잃고 있었던 세이바든을 구한다.


그리고 그 역사가 차이를 만들 것이다. 그걸 알지 못하고서 세이바든이 다른 뭐라도 이해할 길이 있을까? 그 맥락 없이, 누가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아난더 미아나이가 갈세드인들에게 그처럼 격분하지 않았더라면 라드츠 군주는 그때 이 후로 천 년동안 해왔던 일들을 하지 않았을까? 그때 오온 대위가 5년 전에 있었던, 지금으로부터 25년 전에 있었던 이메 사건 얘기를 듣지 못했다면 오온 대위는 그런 행동을 했을까? - p.290


브렉은 세이바든을 자신이 구했지만 그녀를 믿지 못하고 때로는 자신이 갖고 있는 돈이나 가방을 뒤졌을 가능성을 늘 염두해 두며 함께하고 있지만 오온 대위가 있는 그곳과 브렉과 세이바든과의 이야기가 교차되며 라드츠 제국의 모습과 그들이 갖는 모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과학소설을 많이 접해보지 않는 나로서는 너무나 생소한 이야기라 귀를 기울이고, 조금 더 세밀하게 지켜보려고 했으나 앤 레키가 그려놓은 그림이 쉽게 이해 되지 않았다. 전체적인 그림이 쉬이 그려지지 않았지만 앤 레키가 그려놓은 그림 속에 빠져든 독자라면 그녀가 그려넣은 라드츠 3부작의 시작점을 시작으로 3부작이 끝날 때까지 계속 지켜봐야 할 소설이다.


SF소설에서 이제는 더 이상 인간의 깊은 고뇌와 존재의 이유가 될 모든 것들이 인공지능인 그들의 손으로 넘어가 그들의 존재의 이유를 떠올려야 한다. 기계가 아니라 사람인가? 인공지능에 대한 상상력을 더 없이 높이고 높여 체계적이고, 지구상에서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모호함과 라드츠 제국이 갖는 상징성을 생각 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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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해선 이 부부를 막을 수 없다! - 웃겨야 사는 부부의 달콤살벌 토크 배틀
정진영.김의찬 지음, 김유빈 그림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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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편의 시트콤처럼 웃음을 머금고 사는 부부 이야기.


 언제부턴가 방송 프로그램에서 '시트콤'이 사라졌다. 중고등학교 아니 대학을 다닐 때 까지도 재밌게 보았던 이야기 모음집 같은 드라마가 어느새 방송 프로그램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져 버리다 보니 사람들이 그런 장르의 드라마가 있나 싶을 정도로 기존의 드라마만 존속 되어 그 명맥을 유지 하고 있는 것 같다. 이야기의 재미도 재미지만 시트콤을 통해 스타의 등용문이라고 할 만큼 풋풋한 신인들이 대거 투입이 되곤 했는데 그런 새로운 얼굴 마저도 볼 수 없으니 신인 연기자가 들어올 문은 점점 좁아지는 것 같다. 아무튼 시트콤 하면 떠오르는 <남자 셋 여자셋> <순풍 산부인과>등 대표적인 작품들을 모두 정진영 김의찬 작가 부부의 손에 거쳐 나왔다. 그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이 모두 웃음과 감동이 들어있는 이야기 보따리이기에 웃음이 가득찬 이 부부의 이야기가 너무도 궁금했다.

인기 시트콤 작가 부부는 어떤 생활을 하며 어떤 이야기를 할까 하는 궁금증은 책을 펴자마자 그 궁금증이 싹 해소 될만큼 이 부부의 이야기를 찰지게 읽었다. 한때 존 그레이의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2006,동녘라이프)가 유행처럼 읽히던 때가 있었고 지금도 스테디셀러로 잘 나가고 있지만 여자사람 정진영 작가와 남자사람 김의찬 작가는 존 그레이의 책처럼 다른 행성의 사람들처럼 너무도 안맞아 보였다. 이들 부부가 어찌 이렇게 안 맞음에도 예쁜 딸 유빈이를 낳고 잘 살 수 있었는가에 대한 궁금증이 살포시 생겨날 만큼 쿵짝이 잘 안 맞을 것 같은 부부의 일상과 생각, 생활의 철학들이 서로 맞물려 한 편의 시트콤처럼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지금 책을 읽고 있는 건지 아니면 두 부부의 이야기를 눈 앞에서 보고 있는 건지 헷갈릴만큼 이야기는 현실적이지만 가볍지 않고 사뿐하게 적절한 유머가 베어있어 절로 웃음을 머금게 된다.

서로 같지 않기에 서로를 보완하며 잘 살아갈 수 있다는 엄마의 말처럼 두 부부는 하나하나 틀리지만 서로를 이해하고, 때로는 맞춰가면서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어느 날은 나도 내 마음에 들지 않을 때가 있는데, 몇 십년간을 따로 살았던 남녀가 어떻게 한 순간에 몇 년 혹은 몇 십년을 살았다고 그것을 다 맞출 수 있을까. 살면서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 나 아닌 남편(혹은 아내)의 모습을 보며 맞춰가는 과정 또한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공부가 아닌가 싶다. <웬만해선 이 부부를 막을 수 없다!>는 예전에 두 사람이 쓴 작품을 빗대어 쓴 제목이지만 좌충우돌하고 때로는 못말려도 너무 못말리는 정작가와 김작가의 만상을 세상에 고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개인적인 사견이 많은 책이지만 평소 그들의 유머러스하고 관대한 생활신조 때문인지 읽는 독자로 하여금 별나게 굴지만 친숙하고, 미워하고 싶어도 친근한 두 사람의 생활 모습이 하나도 보기 싫지 않았다. 맛깔스러운 글 솜씨 때문인지, 아니면 그런 단점 속에서도 여전히 노력하고, 여전히 웃을 수 있는 마인드의 두 사람 때문인지 두 사람의 이야기가 그저 하나의 에피소드로 느껴졌다. 그런 그들에게 하나의 장르처럼 소화되던 시트콤이라는 장르가 소리소문 없이 사라질 때 두 사람에게 위기가 닥쳤고 여러번 쓴물을 들이켰다. 지금도 물밑에서 여전히 두 작가는 고군분투 중이고 SBS 코미디 작가로 운 좋게 합격한 두 동기 작가가 부부로 함께 일을 하면서 느꼈던 희열과 감동, 쓰디쓴 좌절의 이야기를 한데모아 다시 재기 할 수 있기를 기원한다.

언젠가 다시 두 사람의 시너지를 방송 프로그램에서 다시금 마주 할 수 있기를 빈다. 말빨과 글빨이 빵빵한 이 책에 두 사람의 하나밖에 없는 딸 유빈이의 그림이 모여 14년차 작가부부의 천태만상적인 이야기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유머가 무엇인지, 남녀의 생각의 차이를 톡톡히 보여주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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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 당신 좋아하는 지드래곤도 이상한 거 잘 사잖아. 노래 만들 때 영감 받으려고.


정작가: 지용이는 잘 벌잖아. 어떻게 감히 당신이 GD한테 업혀 갈라 그래.


김작가: 지용이와 내가 사뭇 처지는 다르지만 물건에 대한 이해는 사실 같은 거라구.


정작가: 그게 뭔데?


김작가: 세상에 필요 없는 물건은 없다. 심지어 물건마다 고유의 정령이 깃들어져 있다. 오히려 그 정령이 나를 이끌 수도 있으며 그 정령을 쫓다 보면 새로워질 것이고 고여서 썩는 일은 겪지 않게 해 줄 것이다.


정작가: 한 마디를 지질 않네. 그래서 계속 물건을 사들이시겠다?


김작가: 계속은 아닐 거 같애. 이젠 거의 다 사들였어. 내가 팔꿈치까지 오는 가죽 장갑 사고서 그 느낌을 받았어. '이로써 난 더 이상 필요한 게 없다.' - P.175



정작가: 단군 할아버지 말씀대로 홍익인간을 실천하며 살고 싶다. 뭐 그런 거룩한 마인드인 건가?


김작가: 그렇다기 보다는 그냥 주변 사람들을 관찰하길 좋아하는 거지. 작가적인 관심일지도 모르겠어. 사람들을 관찰하고 그들의 성향을 파악한 후 그들의 고민을 듣고 해법으로 정밀 타격을 해주는 거. 난 그게 좋거든. 부적을 쓴 것도 내 관찰의 결과였어. 그분이 아티스트라 작품을 만드는 데는 열의가 있으시지만 장사를 하는 데는 열의가 별로 없으셨던 걸 안 거지. 그래서 그쪽도 좀 마음을 열고 힘써 보시라고 써드린 거야. '연중무휴', '중국 단체 관광객 환영.' '만져도 됩니다'그런 넓은 아량으로 편하게 작품 하시라고.


정작가: 타인의 고민에 해법을 제시한다? 난 그것 자체가 주제넘은 행위라고 봐. 난 작가의 고민은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고 생각하거든. 그런 면에서 난 랩퍼 도끼의 스타일이 좋더라.


김작가: 도끼가 어떤 스타일인데?


정작가: 도끼는 고민에 빠진 사람을 그냥 절에 데리고 가서 혼자 대웅전에 앉아 생각할 수 있게 해준대. 자신은 그냥 데려다 주고 기다려 주기만 할 뿐, 그게 맞는 거 아닌가? 조용한 곳에서 혼자 자신의 고민과 대면하고 현실을 직시하고 자신이 가장 하고 싶은 방향을 정하는 것. 그건 스스로밖에는 할 수 없는 일이잖아. 어떻게 남이 그걸 해 주겠어. - p.235~236


"내가 내린 해답은 하나야. 우리에겐 금이 쫙쫙 간 우리 사이를 매번 촘촘하고 단단하게 메꿔 주는 접착제가 있어서야."

"접착제?"

"음. 접착제."

"그게 어떤 거지?"

"웃음. 유머. 그 어떤 힘든 상황에서도 우리 마음을 하나로 붙여 놓는 웃음 접착제. 우리 둘 다 어느 정도로 웃음과 유머와 재미를 좋아 하냐면 말이야. 당최 웃을 일이 없으면 아예 웃을 일을 찾아 나서는 수준이라구. 마치 사냥꾼처럼. - p.296~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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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초등학생
마스다 미리 지음, 박정임 옮김 / 이봄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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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을 다시 읽으며 아이의 시간으로 돌아보기.

 

 마스다 미리의 책을 접하면 접할수록 가슴 한쪽이 따스해진다. 좋은 책도 많고, 재미있는 책도 많지만 유독 그녀의 책을 읽다보면 내가 잊어버리거나 잊고 있었던 감정의 응어리들을 만나게 된다. 속으로 앓고 있었거나 스스로 결정을 했음에도 본의 아니게 남는 감정의 잔재들을 어김없이 파고든다. 개인의 입장에서는 그것이 누구에게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사소하지만 신경쓰이는 무엇을 마스다 미리는 절묘하게 캐치해 낸다. 그래서 더  그녀의 글과 그림에 공감하게 되고, 그 공감가는 이야기 때문에 응어리진 감정을 풀어낸다. 그녀가 내 친구라면 이런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것 까지 이야기 해도 모두 이해해 줄 것 같다.

 

<어른 초등학생>은 마스다 미리가 어린아이였을 때 읽었던 그림책과 조우하는 시간을 그린 에세이다. 아이였을 때는 그저 단편적인 이야기에 시선을 집중했다면, 어른인 마스다 미리의 시선으로 바라본 그림책은 아이의 시선으로 느꼈던 것 이상으로 추억을 떠올리게 하고 행간과 행간 사이의 의미가 다르게 다가온다. 현재 결혼도 하지 않았고 아이도 없기에 어린아이로 돌아가 아이의 시선으로 바라 볼 생각 조차 하지 않았다. 시간을 돌이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지금 나이 보다는 학생 때의 시절로 돌아가픈 마음은 있지만 먼 옛날 초등학생의 나이로 넘어가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사실, 그 때 내가 무엇을 읽고, 무엇을 좋아했는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아빠도 엄마도 더이상 나이가 들지 않고 나도 계속 아이인 채, 영원히 이대로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른이 된 지금도, 결국은 찾아오게 될 소중한 사람과의 이별을 생각하면, 시간이 조금 더 천천히 흘렀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 p.95

 

그녀는 지금 어른이 된 자신을 지키는 토대가 되었던 그 시간을 추억하며, 자신이 보았던 그림책을 하나하나 소개하고 있다. 마스다 미리가 어렸을 때 본 그림책이 우리나라에도 번역되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아이가 있었더라면 <어른 초등학생>에 나온 이야기가 더 깊이 와 닿았을 것 같은데 아직까지는 그녀처럼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책을 다시 접한 적이 없어 그녀가 느꼈던 감정의 편린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어른 마스다 미리가 아이 마스다 미리를 만나는 장면과 어릴 때 느꼈던 공포감이나 엄마 아빠를 잃어버릴 것 같은 무서운 순간들에 대한 감정은 글을 읽자마자 생각이 떠올랐다. 지금도 그렇지만 예전에도 그런 무서운 순간들에 대한 이야기만 해도 베갯잎이 흠뻑 젖을 정도로 울었었다. 마스다 미리 또한 어린 시절에 그런 감정을 느꼈다고 하니 어렸을 때 나만 그런 감정을 느낀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책을 읽으면서 가장 마스다 미리 답다고 느꼈던 부분 중 하나가 체코 여행을 갔을 때 한 서점에서 그녀가 어렸을 때 읽었던 <달이 보낸 열두가지 선물>을 발견해 만난 것을 그녀낸 일화였다. 슬로바키아의 마르시카와 일본의 마르시카의 분위기는 다소 달랐던 모습까지. 요제프 라다의 고향에 도착해 그림책과 라다가 그린 인기 캐릭터 '슈베이크'에 대한 이야기와 맥주 한잔에 알딸딸한 그녀의 모습과 라다 기념관에서 사온 물품이 가장 인상깊게 다가왔다.


그녀가 언급한 그림책에 대한 정보는 각 페이지마다 수록되어 있지만 책 말미에 자세히 첨부되어 있다. 69년생인 그녀와 같은 그림책을 읽으며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흘러간 시간 속에서 자신을 지탱해주던 그 시간을 생각하고 그 소소한 감정을 하나도 소소하게 생각하지 않고, 나를 지탱해주는 감정으로 인지한 것이 무척이나 반가웠던 글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기 유년시절이 있었고, 그 유년 시절의 감정을 어느정도는 갖고 있기에 그녀의 세밀한 에피소드와 같은 감정을 공유하지 않아도 그 시절을 떠올리는 것만으로 즐겁고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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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바 아저씨
네코마키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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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고 슬픈 아버지들의 이야기.

 

요즘은 대체적으로 맞벌이 하는 부부가 일상이라고 할 만큼 대부분인 반면, 예전에는 남편이 밖같일을 하고 아내는 가정을 돌보며 살았다. 그러나 요즘은 남자 여자 할 것없이 모두 일을 하다보니 가정 내에서도 남자가 하는 일, 여자가 하는 일을 따로 구분 짓지 않았고 서로 도와 가면서 일을 하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여자들이 안밖에서 일을 더 많이 한다고 생각했는데 아들을 가진 부모의 입장에서는 밖에서도 치이고 안에서도 안에서는 아내에게 구박을 받지 않기 위해 가정일을 서슴없이 돕는 아들이 불쌍한가보다. 집에서는 집안일 하나 돕지 않는 아들이 결혼을 해서 아내에게 잘 하는 모습이 대견스럽기 보다는 안쓰럽게 느껴지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기도 하지만 여자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여자라서 공감을 못하는 걸까? 이 시대의 남자사람으로 아버지로서 살아가는 중년의 아빠의 진짜 모습을 알아보고 싶고, 더 깊이 공감하고 싶어서 네코마키의 <시바 아저씨>를 펼쳐 들었다. 

 

 

시바 아저씨는 결혼하기 이전에는 시바견이 아닌 남자사람으로 잘 살아가다가 결혼 후 가족을 갖고 아이가 생겨 아빠로 진화한 후에 2년 뒤 아내에게 월급을 포함해 모든 실권을 넘기면 귀가 뾰족하게 모양이 바뀌고,코가 자라고, 몸에 털이 생겨 시바견으로 변모된다. 사람들은 애정을 담아 시바 아저씨라고 부르지만 시바 아저씨의 일상은 웃프기 그지없다. 만화 속의 주인공인 시바야마 타로는 회사 안에서는 상사에게 치이고 신입인 부하직원은 따따부따 말 없이 그저 손바닥만한 스마트폰만 주시하고 있다. 집에서는 아내의 눈치 때문에 담배도 최대한 멀리 밖에서 피워야 하고 아내와 아이가 보는 TV 속 아이돌 중 누구 하나를 지칭해 '귀엽다'는 말 한마디에 눈총을 받기 일쑤다.

 

 

어디에도 마음 편히 쉴 곳이 없는 시바견, 시바 아저씨 타로는 그럼에도 새벽같이 일어나 만원 지하철을 타고 이른 출근을 하고, 신입 딱지를 달고 있는 직원과 친해지기 위해 스마트폰을 배워 문자를 날린다. 그럼에도 윗 사람이 시킨 일을 아랫사람에게 야근을 시킬 수 없어 꾸역꾸역 밤 늦게까지 일을 하다가 겨우 발걸음을 옮겨 집으로 퇴근한다. 터덜터덜 힘 하나 없이 오면서도 아내와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시바 아저씨의 모습을 보고 있다보니 마음이 시큰 거린다.

 

우리 아버지 또한 시바 아저씨와 같은 모습이겠구나 싶었고, 평소에는 TV를 보며 툴툴거리다가도 무언가를 사고 싶을 때는 없는 애교까지 부리며 살랑대는 딸아이의 모습이 내 모습인 것 같아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내에게 딸에게 100% 만족은 시킬 수 없지만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 최선을 다하려는 시바 아저씨의 이야기를 읽고 보는 내내 웃기고 슬프게 다가왔다. 인간이 아니라 '견'으로서 살아가는 아버지의 모습이라니. 그런 개의 모습을 하던 그들이 인간이 되는 방법은 가정을 내려 놓을 위기가 닥치거나, 내려 놓을 때 다시 인간으로 변한다. 많은 아버지들이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하겠소? 아니면 인간의 모습을 하고 혼자 편히 살겠소? 하는 물음을 누군가에게 받는다면 대부분의 아버지들은 시바견의 모습을 하고 살겠다는 답변이 더 없이 많을 것 같다.

 

중년 남자들의 모습을 리얼하게 그려낸 것이 이 만화의 장점이지만, 만화적인 상상력 때문에 한참 큭큭대고 웃었던 작품이다. 이 시대의 시바 아저씨들이 지치지 않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그들에게 큰 응원의 박수를 치고 싶다. 더불어 가족을 위해 불철주야 일하시는 아빠에게도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작품이다. 여자의 시선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남자사람으로 살아가는 고달픔을 더없이 느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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