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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슴도치의 소원
톤 텔레헨 지음, 김소라 그림, 유동익 옮김 / arte(아르테) / 2017년 2월
평점 :
품절
자신의 있는 모습을 그대로 사랑할 수 있는 친구를 찾는 고슴도치 이야기.
톤 텔레헨의 소설은 200페이지가 조금 넘는 소설이지만 책을 넘겨보면 페이지 보다 더 깊은 내면의 이야기로 마음을 사로 잡는다. 그가 그리고 있는 고슴도치의 이야기를 통해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현대사회에서의 개인의 모습을고슴도치를 통해 말하고 있다. 뾰족뾰족 가지가 덮인 동물인 고슴도치, 소심하기도 하고, 같은 동물과의 친구들이 사방에 솟은 가시가 무서워 다가가지 못해 늘 고슴도치의 주변에는 오롯하게 고슴도치 혼자 삶을 살아간다. 혼자 생활을 하면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하고, 동물 친구들에게 자신의 집을 초대 하기 위한 글을 고심하여 한글자 한글자 써 내려 나간다. 누군가가 말하지 않아도 도치 혼자 생각하고, 벽을 만들고, 다시 그 벽을 허물었다가, 다시 글을 썼다가를 반복하지만 이내 도치는 벽장 속에 편지를 처박아 버린다.
고슴도치는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면 더 잘 보일 것 같았다. 아니야가 지금을 껴안고 춤을 추었다. 그들은 서로에게만 관심이 있는 것 같았다. 그런데 갑자기 문이 열리고 누군가 안으로 들어왔다. 잠깐인 것 같았다. 잠깐의 외투가 뒤로 펄럭거려서 알아볼 수 있었다. 잠깐은 지금과 아니야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가 같이 춤을 췄다. 고슴도치는 한숨을 쉬었다. 그때 또 다른 무언가가 갑자기 집 안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보이지 않는 무언가. 존재하면서도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 그럴 리 없어. 그럴 리 없어. 아무것도 안 보이잖아. 한참이 지나고 잠깐은 나갔다. 그다음에 쭉이 솜털을 놓은 두터운 겨울 외투를 입고 모자를 쓴 채 지금과 아니야 사이에 다시 끼어들었다. 고슴도치는 가슴이 쿵쿵 뛰었다. 그들은 춤을 추며 고슴도치에게 다가와서는 그의 머릿속을 통과했다. 그들은 고슴도치가 함께 춤을 추길 바라는 것 같았고 게다가 다른 것도 뭔가 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고슴도치는 그게 뭔지 알 수 없었다. - p.10~11

도치의 마음 속에서 자라나를 문장이 춤을 추듯 외투를 휘날렸다, 다시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이야기는 지금껏 읽는 문장 중에서도 가장 센세이션하게 느껴졌고, 동시에 톤 텔레헨이 만들어낸 문장 하나하나가 보여주는 글들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궁금했다. 네덜란드에서 태어난 그가 의사로 일하면서 시집을 출간 활동을 하면서 동시에 동화 작가로 활약했다는 그의 그의 프로필은 단순히 고슴도치 이야기가 예쁜 동화로 읽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갖고 있는 고독감과 서로 다가가지 않는 삭막함 그러나 그 누구도 혼자 살아갈 수 없기에 고슴도치를 통해 다가갈듯 다가서지 못하는 소심함을 결국 뚫어내고 마지막에는 소원을 이뤄내는 도치의 모습을 너무나 잘 표현해 냈다.
나무벌레는 제발 다른 곳에 구멍을 내시오.
그는 푯말을 문에 단단히 박은 다음 제발에 밑줄을 긋고 마지막에는 느낌표를 덧붙엿다. 그런 다음에야 고슴도치는 자기 집 안에서, 자기 가시들과 함께 안전하다고 느꼈다. 글쎄, 정말 안전할까······?고슴도치는 확신할 수 없었다. - p.96

누구도 다가오지 않도록 도치처럼 벽을 치고, 다가서지 않는 모습들을 보면서 이전의 나를 떠올렸다. 어느 해는 활발하게 사람들과 잘 교류하다가도 어느 때는 나 스스로 혼자가 되는 길을 선택했던 것 같다. 내가 다가서는 것 조차 노력하지 않아도 누군가 다가오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다. 그러나 톤 텔레헨은 도치의 이야기를 통해 '관계'를 형성하고 나와 가까이 누군가를 받아들이는 것은 한쪽만 다가선다고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생각이 많은 도치, 행동에 옮기고자 하지만 한 걸음도 옮기지 못하고 다시 혼자 주저 않아 있는 모습은 책을 보는 내내 안타까웠다. 아마도 누군가 나를 멀리서 봤다면 지금 내 마음과 같은 마음으로 나를 봤을까?
고슴도치는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부엉이의 질문을 깊이 생각했다. 존재라는 건 큰 것 같니 아니면 작은 것 같니? 아마 작을 거야. 그는 생각했다. 아마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을 거야. 그래! 그래서 아무것도 못 봤던 거야. 존재, 삶, 행복······모두 너무너무 작아. 아무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그때 고슴도치는 언젠가 개미와 이야기한 적 있는 죽음이 떠올랐다. 죽음 역시 작아. 아마도 가장 작을 거야. 존재하는 것 중 가장 작고 보잘것없지. 시력이 부엉이처럼 좋다면, 그리고 엄청나게 노력하면, 삶과 행복은 볼 수 있을지도 몰라. 그렇지만 죽음은 여전히 볼 수 없을 거야. 그래서 우리는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거야. 개미 말이 맞아. 죽음이 존재한다고 단지 짐작만 할 수 있을 뿐이야. 짐작이라······. 고슴도치는 생각했다. 필요할 때, 필요할 때만 죽음은 존재하는 거야. - p.185~186
그들 모두 고슴도치가 초대하지 않은 것을 고마워하는 편지를 썼다. 그들 모두 고슴도치의 친구였다. 그리고 언제나 그의 친구로 남을 것이다. 서로를 초대할 필요도, 찾아갈 필요도 없었다. 오직 다람쥐의 편지만 달랐다. "정말 즐거웠어." 그리고 그 아래엔 "조만간 또 만나자!"라고 쓰여 있었다. 고슴도치는 눈을 감고 깊이 숨을 내쉬었다. 조만간 또 만나자······. 고슴도치가 알고 있는, 가장 아름다운 말이었다. 이제 고슴도치는 잠이 들었고, 겨우내 깨지 않았다. - p.206
관계에 대한 불안함, 소외감, 일어 나지 않는 일에 대한 걱정을 하는 고슴도치의 모든 것을 해소 시켜준 자그마한 손이 고슴도치에게는 큰 온기가 되어 편한하게 잠을 이룰 수 있었다. 도치의 생각을 자유자재로 풀어낸 톤 텔레헨의 소설은 소심하면서도 까칠해보이는 도치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활용하면서도 도치의 생각들과 망상들이 더해져 점점 더 자신을 옥죄는 모습을 문장과 문장이 춤을추며 이야기하는 것처럼 동화로 풀어낸 것이 것이 너무나 다정다감하게 느껴졌다. 읽는 내내 우울하기 보다는 문장 속에 들어있는 질문과 가치, 인간의 관계에 대한 면면을 깊이 생각 할 수 있었던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