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급생
프레드 울만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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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줄의 글귀가 가져다주는 충격과 감동.


 ​200페이지도 안되는 짧은 소설 안에 1930년대 두 소년의 우정과 이별이 직선과 곡선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치즘'에 대해서는 경험하지 못했으나 독일의 한 독재자로 인해 유럽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핍박을 받았고, 자신이 나고 자란 땅에서 사는 것은 물론 자신의 부모, 자식, 친척, 지인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런 죄도 없이 그저 자신들을 반목한다는 이유로 '유대인'에 대한 학살이 시작되었다. 끔찍했던 시간은 소용돌이는 잠재워졌지만 그 시간을 겪었던 이들은 그 시간을 잊지 않았다. 그들의 목소리가 증언으로 남아있거나 책으로 기록되었고, 드라마나 영화로 계속해서 그들의 이야기를 상기시킨다.


꽤 많이 나치즘의 시대에 대한 책을 접해왔다고 생각했는데 프레드 올만의 <동급생>은 이전의 다른 소설과 달리 짤막하면서도 두 소년의 우정을 손에 잡힐듯 아름답게 그려내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생각해보니 나이가 들어 생각의 폭이 넓어졌지만 누군가에게 나의 맹목적인 사랑을 퍼부을 수 있는 용기와 시간, 마음이 더해지는 시간이 점점 옅어지게 된다. 어른들의 생각이 여러모로 합리적이라고 하지만 아이가 갖는 순수한 우정이, 사랑으로 변모하는 과정은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열정적인 동시에 맹목적이다.


달콤하고 옮은 일이라는 데에 동의했을 터였다. 열여섯 살에서 열여덟 살 사이에 있는 소년들은 때때로 천진무구함을 심신의 빛나는 순결함, 완전하고 이타적인 헌신을 향한 열정적인 충동과 결부시킨다. 그 단계는 짧은 기간 동안에만 지속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 강렬함과 독특함 때문에 우리의 삶에서 가장 귀중한 경험 가운데 하나로 남는다. - p.39


<동급생>은 이 책의 화자인 한스 슈바르츠의 시선에서 자신의 지난 날을 그려내고 있다. 1932년 2월의 어느 날, 자신의 학교에 콘라딘 폰 호엔펠스라는 소년이 전학을 오게 된다. 지금껏 그의 주변에 학급 친구들이 있었지만 한번도 누군가 자신의 마음에 들어오지 않았다. 유대인이면서도 동시에 의사인 아버지를 둔 한스는 전학을 온 콘라딘이 그 누구보다 마음에 들었고, 그의 이름에서 보듯 독일 귀족을 지칭하는 '폰'으로 지칭하는 그의 높은 직위가 그로하여금 단숨에 그와 가까워지고 싶은 욕망에 사로 잡힌다.


처음에는 한스 혼자 콘라딘을 의식했지만 이내 콘라딘 또한 한스를 바라보게 되고 서서히 두 사람은 서로의 접점을 찾아 조우하게 된다. 한스가 콘라딘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노력이 여기저기 소개 되어 있는데 그 어떤 남녀가 만나 썸을 타는 것처럼 그를 향한 마음의 심지는 점점 더 견고해지고, 열망에 타오르듯 그를 새겨둔다. 오롯하게 너만이 내 친구라는 것처럼 그의 가슴 속에 도장을 찍어나가듯 강렬한 마음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그리고 우리가 생각하기에 가장 시급한 문제는 어떻게 하면 삶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을지 배우는 것이었고 이것은 삶에 어떤 목적이 있는지, 과연 있기나 한지, 또 이놀랍고 헤아릴 수 없는 우주에서 인간의 조건이 무엇일지 알아내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것이었다. 우리에게는 히틀러니 무솔리니니 하는 덧없고 우스꽝스러운 인물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진정하고도 영원한 의의라는 문제가 있었다. - p.62


드디어 한스와 콘라딘이 만나 우정을 나누면서 한스는 자신의 집에 콘라딘을 초대한다. 처음에는 신분이 높은 콘라딘을 아들의 친구가 아닌 신분이 높은 귀족의 도련님으로 그를 칭했지만 이내 한스의 부모는 콘라딘을 친근하게 부를 정도의 사이가 되었다. 한스는 자신과의 거리가 좁혀진데 반해 콘라딘은 한 번도 자신을 초대하지 않는다. 애가 타는 한스 드디어 콘라딘의 집에 방문하지만 그의 집에는 콘라딘의 부모님은 늘 계시지 않았다. 그러던 어느날 공연을 보러간 한스는 그곳에서 콘라딘과 그의 부모를 보게 된다. 공연장을 빠져 나와 콘라딘 앞에 서지만 그는 그의 부모와 인사를 시키지 않는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한스는 콘라딘에게 왜 자신을 소개시키지 않는지 그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데...


그것은 내가 독일어로 말을 해야 할 때 (비록 완전히는 아니더라도) 무의식적으로 취하는 일종의 자기방어적인 측면이었다. 물론 나는 지금도 여전히 그 언어를, 미국식 억양이 섞이기는 해도, 썩 잘 구사할 수 있지만 그러기를 싫어한다. 내 상처는 아직 치유되지 않았고 독일을 떠올리는 것은 상처에 소금을 문지르는 격이다. - p.145


한스의 시선에서 콘라딘에 대한 마음이 직선과 곡선을 향해 걷는 시간은 너무나 짧았다. 서로를 향한 마음. 책에서는 콘라딘의 마음을 깊이 그려내지 않지만 프레드 울만은 짧지만 강력한 한 줄의 글귀로 충격과 동시에 감동을 가져다 준다. 더 이상 무엇이 그들의 상황을 그려낼까 싶을 정도로 그들의 이야기는 아름다우면서도 애잔하다. 일상적인 갈등의 상황을 뒤로하고 실제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 닥쳐오는 그 긴밀한 시간은 두 소년에게 그 어떤 이유로도 떨어뜨릴 수 없었다. 지금껏 읽은 소설 중에서 가장 충격적인 한 문장이 주는 여운과 감동은 오랫동안 가슴 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올해 읽은 책 중에서 가장 최고의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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