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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복 - 누릴 복을 아껴라
정민 지음 / 김영사 / 2018년 3월
평점 :
채우지 말고 비우고, 아낀 복을 함께 나누다.
언젠가부터 '아껴쓰라'는 말 보다는 '쓰라'는 풍속도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은행에 가도 백화점에 가도 '절제의 미학'은 없고 무조건 써야 이득을 볼 수 있다. 현금 보다는 신용카드로 긁어야 혜택이 더 있다니, 마구 긁어야 하는 것일까. 아끼려는 노력하는 이와 쓰라고 부추기는 자 사이에서 고민이 되기도 하지만 계획없이 계속해서 쓰기만 하면 안될 것 같아 최소한의 것만 구매했다. 요즘은 워낙 소비의 폭이 넓어서 빈익부 부인빈의 차이가 클 뿐만 아니라 다양한 제품, 먹을거리가 풍부하다 보니 어디까지 제한을 두어야할지 고민스럽다. 그러다보니 요즘은 많은 것을 구매하기 보다는 꼭 필요한 것들만 사고, 불필요한 것을 줄이자는 의견들이 속속 나오는 것 같다. 어떤 부분에서는 미니멀리스트적인 면도 어떤 면에서는 절대 줄일 수 없는 것도 있으니 법정스님이 말하신 '무소유'와는 거리가 먼 인사이지만 물질적은 풍요로움 보다는 절제하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정민 교수의 <석복>은 복을 아낀다는 뜻이다. 누릴 복을 풍족하게 누리기 보다는 복 마저도 아꼈다가 함께 나눈다는 의미인데, 그 의미가 좋아 여러번 읊조려본다. 자본주의 시대에서는 돈이 최고의 으뜸되는 가치이고, 돈을 가지고 있는 사람, 쓰는 사람이 최고의 대우를 받고 있지만 흥청망청 돈을 쓰기 보다는 적절하게 돈을 쓰는 사람이 대우 받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석복>에서는 총 4장의 구성으로 되었는데 마음 간수, 공부의 요령, 발및의 행복, 바로 보고 멀리 보자 라는 뜻의 고사성어들이 25개씩 담겨져 있다. 단어들에 얽힌 이야기들이 한 꼭지씩 들어 있는데 그 이야기 중에서는 낯익은 다산 선생의 이야기도 담겨져 있고, 연암 박지원 선생과 간서치로 유명한 이덕무 선생의 이야기도 수록되어 있다.
원두의 향이 좋은 커피 한 잔도 좋지만, 고즈넉한 공간에 앉아 담백하고 쌉싸름한 차 한잔을 마시며 옛 선인들의 문장을 음미하는 것도 좋지 않을까. 요즘은 너도나도 빨리빨리를 외치다 보니 그저 맛을 음미하기 보다는 무엇이든 허겁지것 담기 바쁜 것 같다. 느릿느릿 산책을 하듯 발걸음을 옮기며 시공간을 떠나 장자가 한 이야기, 고려의 사람이 한 이야기, 조선의 한 선비가 말한 이야기들을 읽다보면 우리가 잊고 있던 절제의 미덕을 깨닫게 된다. 슬로우 푸드, 슬로우 라이프는 이미 옛 사람들이 밥먹듯 하고 있는 것이기에 줄창 외국 것만 외치지 말고 우리의 할아버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가 거쳤던 시간들의 삶과 경구들을 읽으며 그 뜻을 헤아려보는 것은 어떨까.
절제미가 느껴지는 많은 이야기 중에서는 보고픈 이를 청하는 마음, 그리움이 녹아드는 마음, 책 한자 한자를 놓치지 않으려는 혜안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절로 입꼬리가 올라가곤 한다. 어느 글귀 하나 놓칠까 싶어 포스트잇을 붙여놓으니 책 가득히 붙여 놓을 수 밖에 없었지만 검소하면서도 마음만은 부자인 그들에게 배우는 삶의 여유와 청렴함, 삶의 지혜은 계속해서 배우고 또 배우고 싶은 이야기다. 오랜만에 정민 교수의 <석복>을 읽으면서 오래전 다산 정약용 선생의 저서들을 읽었던 기억들이 떠오르기도 했고, 연암 박지원 선생의 글을 더 읽고픈 마음이 들었다. 잊지 말고 그들의 언어와 생각을 더 깊이 읽어보는 시간을 가져야겠다는 다짐을 다시금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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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동파가 말했다. "입과 배의 욕망이 어찌 끝이 있겠는가? 매양 절약하고 검소함을 더함이 또한 복을 아끼고 수명을 늘리는 방법이다." 이제는 '새해 복 많이 지으세요'를 '새해 복 많이 아끼세요'로 바꿔 말하고 싶다. 부족함보다 넘치는 것이 더문제다. 채우지 말고 비우고, 움켜쥐는 대신 내려놓는 것이 어떤가? - p.13
"옛 책을 소리 내어 읽는다", "손을 모두고 무릎을 여민다", "조촐해서 잡스러움이 없다", "종일 단정히 앉아 있다", "한 심지의 향을 사른다", "고요히 시서와 마주한다", "오도카니 단정히 앉는다", "도서가 벽에 가득하다". 우리는 너무 말이 많고 심히 부산스럽다. 볕 잘 드는 창 아래 앉아 책상을 말끔히 치우고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힌다.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 세상을 지우고 침묵을 깃들인다. - p.19
순욱荀勖은 진晉 무제武帝의 잔칫상에서 죽순 반찬을 맛보더니 "이것은 고생한 나무를 불 때서 요리한 것이로군"이라고 했다. 조용히 사람을 보내 알아보니 과연 오래된 수레바퀴를 쪼개 땔나무로 썼다는 전갈이었다. 《세설신어 世設新語》에 나온다. 사람 감별도 한입에 알 수 있다면 참 좋을 텐데. - p.21
선득한 추위에 깬 새벽잠이 다시 들지 않는다. 나는 너무 늦어버린 느낌이다. 공부에 아무 진전 없이 이렇게 끝나는 건가? 그래도 그는 다짐한다. 이제부터라도 더 시간을 아껴쓰고, 몸을 함부로 굴리지 말아야지. - p.46
편지 받고 부인의 병환이 이미 회복된 줄은 알았으나 그래도 몹시 놀라 탄식하였습니다. 제 병증은 전과 같습니다. 제생들이 과거시험을 함께 보러 가서 거처가 텅 비어 적막하군요. 매일 밤 달빛을 함께 나눌 사람이 없는 것이 아쉽습니다. 이만 줄입니다.
지각 地閣에 밤이 깊어 산달이 점점 올라오면 텅 빈 섬돌은 마름풀이 떠다니는 듯 너울너울 춤을 추며 옷깃을 당기지요. 홀로 정신을 내달려 복희씨와 신농씨의 세상으로 가곤 합니다. 다만 곁에 더불어 이야기를 나눌 만한 운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이 안타깝습니다.
꽃이 한창 흐드러지게 피었는데 형께서는 건강이 어떠신지요. 보고 싶습니다. 저는 별일 없이 그럭저럭 지냅니다. 봄 동산의 붉고 푸른 빛깔이 날마다 사랑스럽군요. 이러한 때 한번 들르셔서 노년에 봄을 보내며 드는 이런저런 생각들을 달래보는 것이 어떠실는지요. 진작 하인을 시켜 평상을 닦아놓고 기다리고 있으니 혼자 있게 하지 않으시면 고맙겠습니다. 어떠십니까. 이만 줄입니다. - p.56~57 (다산 선생의 편지글 중에서)
일곱째, 읽는 데 그치지 말고 자기 글로 엮어보는 연습을 병행하는 것이다. 안으로 구겨넣기만 하고 밖으로 펼침이 없으면 독서의 마지막 화룡점정 畵龍點精은 이뤄지지 않는다. - p.90
글에는 세 가지 등급이 있다. 상등는 예봉을 감춰 드러내지 않았는데도, 읽고 나면 절로 맛이 있는 글이다. 중등은 마음껏 내달려 돌멩이가 튀는 글이다. 하등은 담긴 뜻이 용렬해서 온통 말을 쥐어짜내기만 일삼는 글이다. - p.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