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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 ㅣ 비채 모던 앤 클래식 문학 Modern & Classic
리처드 브라우티건 지음, 김성곤 옮김 / 비채 / 2018년 2월
평점 :
현실과 환상의 경계에서 느끼고 싶은 자유.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글은 독특하다. 그의 작품 중 <임신중절>을 읽었을 때도 잃지 않았던 길을 여러번 헤메고, 또 헤메이면서 그가 쓴 문장과 행간을 읽어내려갔다. '빅서'라는 공간은 남북전쟁 때 조지아와 아칸소, 미시시피를 비롯해 남부연합의 열두 번째 주다. 남북전쟁이 일어났을 무렵 역사적인 의의가 있었던 곳이었으며, 연합군의 장군으로 많은 활약상을 남긴 리 멜론의 증조 할아버지의 후일담이 그의 친구 제시의 입으로, 리 멜론의 입으로 전해지지만 아쉽게도 오거스터스 멜론 장군의 동상은 어디에도 남아 있지 않는다. 친지들의 입과 입으로 전해들었을 뿐 잃어버린 역사에 대해 되찮을 길이 없는 리 멜론과 제시, 그들의 친구들, 그리고 리 멜론과 관계를 맺은 많은 여자들의 이야기는 바람과 같다.
내 노트의 요약은 이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 전도서의 첫 장은 57개의 구두점으로 되어 있는데, 다시 나누면 22개의 쉼표와 8개의 쌍점, 8개의 세미콜론, 그리고 2개의 물음표, 17개의 마침표로 이루어져 있다. 전도서의 두 번째 장은 구두점이 모두 103개인데, 45개의 쉼표와 12개의 세미콜론, 15개의 쌍점, 6개의 물음표, 25개의 마침표로 되어 있다. 전도서의 세 번째 장에는 77개의 구두점이 있는데, 33개의 쉼표아 21개의 세미콜론과 8개의 쌍점, 그리고 3개의 물음표와 12개의 마침표로 되어 있다. 전도서의 네 번째 장은 구두점이 모두 58개인데, 그중 쉼표가 25개, 세미콜론이 9개, 쌍점이 5개, 그리고 물음표가 2개, 마침표가 17개 있다. 전도서의 다섯 번째 장은 67개의 구두점으로 되어 있는데, 쉼표가 25개, 세미콜론이 7개, 쌍점이 15개, 물음표가 3개, 그리고 마침표가 17개이다. 이것이 내가 빅서의 밤에 등불 옆에서 하는 일이다. 나는 이 일이 보람 있다. 개인적으로 성경은 등불 밑에서 읽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원래가 전등 밑에서 읽도록 쓰인 것은 아니므로. -p.96~97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듣다보면 허름한 집에 살고 있는 리 멜론과 제시의 이야기가 손에 잡힐듯 그려지지만 어느새 싹둑 잘려져 버린 연의 실처럼 바람에 날라가 버린다. 이야기의 전개와 맞물려 뒷 이야기는 만담이나 당시의 상황을 빗대며 블랙유머로 그들의 상황에 썩소를 날린다. 치기어린 남자들의 모습들이 그려지기도 하고 때로는 리 멜론을 바라보는 제시는 그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그를 내버려둔채 여자와 어울리며 자신의 욕구를 채워나가기도 한다. 잠시 술집에 버렸다가 다시 줏어 그들과 함께 동행하며 함께 여행을 하기도 하고, 값싼 술과 마약, 여자들로 하루하루를 채워나간다.
까마귀가 광야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자기 주위에 거미줄을 쳤다. 다른 동물들, 쥐, 딱정벌레, 토끼도 거미줄을 쳤다. 지금은 땅벌레처럼 길고 날씬해진 거미처럼, 무덤의 입구에서 기다리며. 지진에 부서진 운동장처럼 찢어진 군복을 입은 16세 소년이. 군복을 입은 59세 된 노인 옆에, 교회처럼 장엄하고 완벽하게 죽은 채 땅에 누워 있었다. - p.163~164
그들의 증조부가 살았던 시절이 치열한 싸움의 1세대였다면, 그들의 후손은 그들이 싸웠던 이념이나, 영토싸움이 아닌 사회적으로 자신들의 일탈을 꿈꾸었고, 갖혀버린 세대가 아닌 자유에 열망을 드러내는 세대였다. 실제 리처드 브라우티건이 1950년대 후반에 활약을 했던 비트 작가로서 활약을 보였던 만큼 그의 첫 작품집인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은 그의 기질이 많이 나타나는 소설이다. 기존의 문화와 도덕적인 것을 타파하고 아무 것에도 구애받지 않는 성향을 작가의 분신인 리 멜론이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고, 가난하지만 아무 것도 두려울 것 없는 그들의 삶은 어렵게 며칠 일을 해 번 돈으로 마시고, 먹고, 자고, 여자들과 재미를 보며 자신만의 파라다이스를 얻곤한다. 그러나 예전이나 지금이나 돈이 없으면 환상에 젖은 생각마저도 다시 현실로 돌아오곤 만다. 여러명이 모여 마약을 하고, 뿌리까지 나쁜 것을 알고 있음에도 그들은 끼리끼리 모여 몽환에 젖어 나간다. 그러다 다시 관계를 맺고. 어떤 황홀경에 젖어 그들은 자신만의 천국을 찾아 헤메었을까.
《빅서에서 온 남부 장군》은 186000개의 열린 결말로 끝난다. 마지막에 등장인물들은 현실과 기계를 떠나, 낭만적인 바다와 파도를 마주 보고 다시 한 번 환상적인 꿈을 꾼다. 꿈과 환상이 없는 인간의 삶이란 불행하고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과거는 한풀이나 복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우리가 나아갈 길을 밝혀 보여주는 거울이자, 미래를 위한 목가적 꿈을 꾸게 하는 환상의 근원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p.222 (옮긴이의 해설 중에서)
리처드 브라우티건은 리 멜론과 제시의 이야기를 그 어떤 결말로 끝을 내지 않았다. 수 많은 결론으로 그들의 이야기가 앞으로 수 많은 이야기를 양산 할 것이고, 동전의 양면처럼 행복과 불행이 앞뒤로 지나가며 삶을 계속해서 살아갈 것을 보여주며 이야기는 끝이난다. 현실과 환상의 결계에서 그들은 다양한 변주로서 각각의 독립된 이야기로 느껴지기도 했고, 한 편의 장편소설로서 느껴지기도 했다. 붙이고, 자르고, 다시 붙이며 변주된 많은 이야기들을 읽으며 이 글을 쓴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의 삶이 너무도 궁금했다. 많은 작가들의 효시가 된 그의 이야기는 날 것 같은 파닥임과 비트 세대로서 느껴지는 시대의 정신이 깃들어 있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