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치스와 골드문트 (양장) 헤르만 헤세 컬렉션 (그책)
헤르만 헤세 지음, 배수아 옮김 / 그책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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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번역으로 만나는 헤세의 세계.


성장문학을 꼽으라 하면 손에 꼽히는 작품이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이다. 워낙 여기저기서 많이 듣다 보니 읽은 것 같은 착각을 주는 작품이었고, 정작 어렸을 때는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았다. 그러다 세계문학을 한 작품씩 접하면서 헤세의 대표작인 <데미안>을 접했지만, 생각만큼 재밌지도 소름이 돋을만큼 강렬하지도 않았다. 혹, 내가 이해를 잘 못해서 그런걸까 싶어 이번에는 다른 출판사의 책을 펼쳤지만 여전히 나에게는 무덤덤하게 읽혔다. 어쩌면 지금 내 마음이 헤세의 책과 맞지 않나 싶어 몇 년간 헤세의 책을 접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다시 그의 책이 읽고 싶어 선택한 책이 <나르치스와 골드문트>였다. 사실, 독일문학은 어딘가 모르게 차가움이 느껴지기도 하고, 때로는 섬세한 문장 보다는 원석 하나 하나를 문장에 넣다보니 무거운 관념을 미처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많기도 했다. 그런 특징 때문인지 유독 독일문학의 문턱을 잘 넘지 못했다.


다행히 이번 작품은 헤세의 대표적인 작품인 동시에 배수아 작가님의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어 이 책을 선택하게 되었는데 생각보다 더 잘 읽혔다. 헤세가 직접 영혼의 자서전이라 일컫는 이 작품은 매력적인 젊은 수사이자 지성으로 빛나는 나르치스와 자신이 생각하는 모든 것을 알기 위해 직접 영험하고 느끼며 사랑하는 감각의 주인공인 골드문트와 우정에 관한 이야기다. 서로 상반되는 가치와 대립이 되지만 때론 융합이 되는 그들의 이야기는 기묘하다. 처음 그들은 마리아 브론 수도원에서 보조교사와 학생으로 만나지만 다른 이들에게 곁을 잘 주지 않는 서로를 알아보게 된다. 금욕적인 수도자의 길로 들어서지만 나르치스는 이내 골드문트의 성향을 알고 그가 마리아 브론 수도원에서 살 수 없음을 예견하게 된다.


그의 예상대로 그는 본성을 누르지 못하고 세상 밖으로 나가게 된다. 누구보다 매력을 아름다운 소년은 그의 호기심과 나타내는 것에 선천적인 감각을 지닌 골드문트는 세상을 항해하고 서로 다른 성향을 갖고 있지만 서로의 끌림이 있는 두 사람의 이야기는 우리가 갖고 있는 다른 면들을 바라보게 만든다. 금욕을 하는 수사와 사랑의 본질을 이어나가는 소년의 이야기. 정신과 감각 모두 평행선을 달리며 양쪽 모두 이어갔으면 좋겠지만 누구에게는 언어와 문자, 정신만이 그를 메우고 있고, 또 누군가에게는 감각을 중요시 하는 예술을 손에 쥐고 있다. 아마도 헤세는 이 두가지의 면을 생각하고, 어떤 것을 우위에 두기 보다는 고르게 조화를 이룰 때 삶을 아름답게 해 줄 것임을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그의 작품이 잘 읽혔지만 한 번에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지성과 사랑에 대해서는 조금 더 깊이 이해하고 생각해봐야겠다. 그럼에도 그들이 나눈 정신적인 몰두와 융합, 결국 방랑을 넘어선 골드문트가 종착지에 가서는 다시 나르치스의 품으로 오는 여정이 다채롭게 느껴진다. 무엇을 우위에 두든지 그들에게 있어 삶은 아름답고, 아름답기 때문에 그들이 지녀야 할 정념, 신념, 마음에 담아야 할 것들을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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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 세계사를 바꾼 시리즈
사토 겐타로 지음, 서수지 옮김 / 사람과나무사이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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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병에서 벗어나게 한 10가지 약!


 누군들 약을 먹는 것에 대해 좋아하는 사람이 없겠지만 약에 대해 거부감이 많다보니 될 수 있으면 민간요법이나 자연 치유가 될 수 있도록 몸을 편히 쉬게 하는 편이다. 그러나 큰 질병에 있어서는 그만큼 강렬한 약이 필요하고, 약이 탄생하기까지 수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갔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획기적이고 없어서는 안 될 약들의 탄생으로 세계사가 바뀌었다. 서문에서 저자가 이야기 했듯 이런 약들이 일찍 발견되었더라면 세계의 역사는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는 다른 역사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겠지만 누군가의 노력으로, 우연으로 발견된 약들은 지금도 아주 유용히 쓰고 있는 약이다.


인간의 역사에 있어서 질병은 누구도 막을 수 없지만 질병이 창이라면 강력한 방패의 약을 손에 쥔 이들이라면 누구보다 더 먼저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승기를 잡을 수 있다.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은 비타민 C, 퀴닌, 모르핀, 마취약, 소독약, 살마르산, 설파제, 페니실린, 아스피린, 에이즈 치료제를 다루고 있다. 음식으로 섭취할 수 있고, 부족한 부분에 대해서는 비타민 C를 영양제로 보충할 수 있는 성분이라 생각했었다. 비타민 C가 의약품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지만 이 책에서는 비타민 C가 의약품에 속하고 있고, 대항해 시대에서 뱃사람들에게 있어 풍랑이나 해적 보다 더 무서워 했던 질병이 괴사병이었다. 지금은 신선한 야채가 과일에서 섭취 할 수 있다고 모든 이들이 알고 있는 가벼운 상식이지만 예전에는 그런 지식이 없다보니 괴혈병이 생기면 극심한 피로에 시달리다 점점 쇠약해지고 목숨을 잃어버리는 일이 많이 발생했다.


많은 사람들이 괴혈병에 쓰러져갔지만 병을 막을 방도를 찾지 못하다가 18세기 후반 영국 해군 군의관이었던 제임스 린드에게 의해 괴혈병을 막는 종착지를 찾게 된다. 책에서는 약을 찾기까지의 실험과 그들이 아스러지는 과정 하나하나를 의학적 지식으로 설명해놓았다. 저자가 이바라키현 쓰쿠바시의 제약회사에서 연구원으로 일한 경험 덕분인지 의학품에 대해 어렵지만 다가가기 쉽게 설명을 해 놓아 역사와 질병, 약의 투쟁에 대한 역사를 가벼우면서도 무겁지 않게 설명해 놓은 것이 특징인 책이다.


지금도 많은 이들이 말라리아로 사망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것을 종식 시켜줄 약효 성분이 바로 키나 나무에 있었던 '퀴닌'이다. 퀴닌과 관련하여 술의 이름으로만 알고 있었던 '진 토닉'에 대한 역사와 성분이 나오는데 그 이야기가 무척 흥미로웠다. 진 토닉을 즐겨 마신 덕분인지 영국은 말라리아의 마수에 벗어나 인도를 삼키게 되었다. 영국에게는 좋은 청신호였지만 인도에게는 뼈아픈 일이었다. 제국주의 발판을 만들었던 약의 성분인 퀴닌이 해낸 일이라니 무기보다 더 센 효과를 영국은 빨리 찾았고, 말라리아의 늪에 걸려들지 않았다.


약의 탄생의 비화가 인류에게 좋은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 때로는 안 좋은 일에 점화가 되는 발단이 되기도 했지만 인류의 역사에 있어 약의 탄생은 반가운 일이다. 약에 대한 거부감이 있다 하더라도 열이 40도에 가깝게 온 몸이 뜨겁고, 한 여름에 이가 덜덜 떨릴 정도로 추위에 떨어 결국 병원에 가서 의사의 진단에 맞게 주사 한 대와 해열제를 비롯해 감기 몸살에 필요한 약을 며칠 먹고나면 이내 열이 떨어진다. 그럴 때마다 약이 명약이구나 싶을 순간이 한 두번이 아니다. 아무리 약을 좋아하지 않는다 해도 약을 먹는 순간이 오고 그럴 때마다 약을 발견한 이들의 고마움이 얼마나 크던지. 그러니 <세계사를 바꾼 10가지 약>에 소개된 10가지 약들은 우리에게 있어 좋았든 나빴든 약을 통해 바라본 세계사의 면면은 때때로 아이러니하게 느껴졌지만 중요한 포인트로서 세계사를 바라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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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쓰치의 첫사랑 낙원
린이한 지음, 허유영 옮김 / 비채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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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 없이 당신의 상처를 보듬어주고 싶습니다.


 책을 읽은지 꽤 시간이 지났지만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라 몇 번을 망설였다. 처음 그녀의 글을 접했을 때는 너무나 문학적이어서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답다고 생각했으나 책 말미에 그녀의 인터뷰를 보고 나서는 '아름답다'는 말이 그녀에게 독이 되는 말 같아 살그머니 그 단어를 마음 속에 집어 넣었다. 그녀가 쓴 이야기가 자전적인 소설이 아니라 그녀가 지은 이야기라면 마음이 답답하지 않았을까. 사마천이 궁형을 당하고 <사기>를 써내려가듯 그녀는 <팡쓰치의 첫사랑 낙원>에 자신을 투영한다. 대만의 신예작가라고 불리던 진이한은 책을 출간 후에 얼마되지 않아 목숨을 끊어버린다.


열세 살 소녀인 팡쓰치와 류이팅은 둘도 없는 친한 친구 사이다. 공부를 비롯해 문학적으로 감수성이 풍부했던 그녀들은 이원과 교류하면서 문학을 더 깊이 이해한다. 팡쓰치와 류이팅은 룸메이트로서 같이 살고 있고,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는 국어강사 리뤄화는 '논술'을 알려준다는 명목 아래 팡쓰치에게 접근한다.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이름있는 선생님에게 배우기를열망하는 학부모와 아이들의 기대로 리뤄화는 가르친다는 명목아래 자신의 팡쓰치와 류이팅을 1:1로 불러 개인 수업을 시작한다. 중산층의 가정으로 평범하게 사는 것 같은 그들의 실상은 마치 낚시를 하듯 공부를 잘 하고 싶어서 따르는 아이들을 이용해 리뤄화는 팡쓰치를 비롯해 여자 학생들에게 서스럼없이 다가가 욕심을 채워나간다.


무자비한 폭력으로 몸이 무서진 팡쓰치는 리뤄화가 자신에게 말한 '사랑한다'는 말을 끌어안고 생채기난 마음을 덮어버리려고 노력하지만 잃어버린 마음은 계속해서 나락으로 떨어져 나간다. 이팅에게는 팡쓰치는 사랑한다고 고백을 하게되고, 아무것도 모르고 리궈화를 동경하는 이팅은 팡쓰치를 오해하게 된다. 서서히 이팅과 팡쓰치는 멀어지게 되고, 서로의 마음을 주고 받았던 이원과도 벽을 치게 된다. 쉰 살의 리궈화는 자신의 연륜과 경력을 막 자라나는 아이들의 꿈과 희망을 싹둑 잘라버린다. 국가와 사회, 가정에서, 아이들의 열망이 리궈화 같은 괴물이 살 수 있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선생으로서 자격이 없는 그에게 권한과 지위를 넘겨주고 칭송을 받는 그는 뒤편으로는 여학생을 맘껏 유린하며 세상에서 가장 좋은 남편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누구도 쓰치의 마음을 돌아보지 않고, 오직 누구보다 앞서기를 바라는 부모와 이팅, 이원까지도 그녀에게 든든한 방패막이 되어주지 못했다. 오해로 멀어졌던 이팅이 어느 날, 전화를 받게 되고 몸과 마음이 부서진 쓰치를 보게되고, 쓰치의 방에서 일기를 발견하면서 그동안 그녀의 행적에 대해 알게 된다. 쓰치가 나락으로 떨어질 무렵 이원 역시 남편 첸이웨이의 폭력에 허물어진다. 결혼하기 이전에 폭력의 조짐이 있었음에도 주변에서는 그의 폭력성을 모른 척 했고, 다시 되살아나는 폭력을 부인인 이원이 모두 몸으로 견뎌내야 했다. 그 누구도 그들을 잡아주지도, 막아주지도 않는 사회. 문학적으로 지식과 감정이 풍부했던 그들은 그렇게 폭력의 중심이 되어 몸이 부서져 버리고, 마음도 곪아버렸다.


가장 마음이 아팠던 장면은 그들의 사건을 알고도 부모들이 앞장서서 리뤄화 같은 이를 몰아내려고 하는 노력 보다는 자신의 딸아이가 잘못을 해서 그렇게 몸이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부모들의 시선이다. 쓰치의 부모역시 쓰치를 비난하지 않았지만 자랑스러워하던 딸이 더 이상 자랑스럽지 않았을 때 그들은 서둘러 몸을 피하는 것처럼 빠르게 자신들의 거처를 옮겨 버렸다. 무방비한 사회와 부모들의 욕심이 늙은 사내의 욕심이 그렇게 그들을 망가뜨렸음에도 그들은 아무런 타격없이 당당하게 사회의 일원으로서, 선생님으로서 지낸다.


동화였다면 리궈화는 저렇게 당당하게 서 있지 못했을텐데 현실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수면의 잔잔함만 흐르고 만다. 아무런 파동없이 그렇게 가해자는 잘 살아가고 있다. 고통스러운 마음과 죽고 싶을 정도로 잔인한 시간은 사건을 겪은 피해자들에게만 오롯하게 남았다. 치유해줄 수 없는 사회와 사람들의 인식, 개선되지 않는 문제들이 산적해 있고, 지금도 계속해서 많은 쓰치들이 무자비하게 폭력을 당하고 쓰러진다. 여전히 현재형인 상황들. TV를 틀면 여전히 많은 쓰치들이 그들의 힘을 당하지 못해 울고 있다. 쓰치와 이원은 각기 다른 폭력에 노출되어 있었지만 힘없이 저항하지 못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닮아있다. 첸이웨이의 폭력을 알고 있기에 자신의 딸을 그에게 붙여놓는 대신 이원에게 소개시켜 주고, 공부를 잘 하라며 쓰치와 이팅에게 리궈화를 붙여준 그들의 부모 역시 가해자다.


나라면 어땠을까. 나 또한 쓰치처럼 견디지 못했을 것이다. 사랑이라고 이름부르던 행위들이 몸 속 깊이 가시같이 찔러오고, 그것을 견뎌내지 못한 쓰치는 정신조차 놓고 만다. 쓰치와 이원이 겪는 고통이 글 속에 세밀하게 그려져 있어 읽는 내내 마음이 아팠다. 책 말미에 그녀의 생전 인터뷰가 실려있다. 그녀의 자전적인 소설. 세상은 그녀가 소설 속 인물인지 물었으나 진이한은 아니라고 답했다. 아닌지 맞는지 무엇이 중요할까. 그녀가 죽은 후 대만에서는 법이 만들어지고, 쓰치와 같은 이들의 목소리가 한데 모아졌다고 한다. 더 이상 여자라서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폭력이 없어졌으면 좋겠다. 성폭력을 당했음에도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고, 피해자의 입장에서는 한 번도 배려되지 않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한걸음씩 나아가야 하는 걸까?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를 계속해서 질문하고 되새기고, 또 되새긴 소설이었다. 그 어떤 말을 해도 서걱거리는 마음이 진정되지 않는다. 그들을 만난다면 그들의 잘못이 아니기에 따스한 손길로 괜찮다, 괜찮다하며 보듬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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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소녀는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야 리뤄화가 일부러 시시에게 글을 가르치지 않고 내버려두었다는 걸 알았다. 아는 게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일을 저지르는지 그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p.63


사악함이란 이처럼 평범한 것이고, 평범한이란 이처럼 쉬운 것이다. - p.93


쓰치는 연애가 시작되기 전 탐색기를 거쳐야 한다는 걸 알지 못했다. 교문 앞에서 작은 쪽지가 끼워진 음료수를 건네고, 탐색기가 끝나면 남학생이 일본 영화에서처럼 허리를 90도로 구부리고 고백을 한다. 고백을 하고 나면 손을 잡을 수 있다. 풀밭에 나란히 앉아 손가락이 손가락을 더듬고 붉은색 육상 트랙에 둘러싸인 초록색 운동장이 하나의 우주가 된다. - p.135


"딸기가 나오지 않는 계절에는 이걸 못 먹겠구나 생각하면 너무 아쉬워서요. 하지만 레몬 케이크는 일년 내낸 있죠, 난 영원한 게 좋아요. 학생 때 옆자리 친구와 친해지고 나면 혼자 속 앓이를 했어요. 그 친구가 내 옆자리에 앉지 않았더라도 나랑 친해졌을까 싶고, 또 그런 생각을 하는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요. - p.177


"순진한 사람을 나쁘게 만드는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건 사악한 자신감이에요. 아마 나도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감정조차 옮지 않다고 속으로 다짐한 후로는 그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어요." 기세 좋게 말하던 그녀의 목소리에 다시 힘을 풀렸다. "하지만 가장 사악한 건 아무것도 모른채 스스로 추락하는 걸 내버려두는 걸 거예요." - p.193


나는 밑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깊은 화산 분화구를 내려다보면서 뛰어내리고 싶고 또 화산이 불출하는 욕망을 갖고 싶어해. -p.233


세상에 해결될 수 없는 고통이 있다는 걸 사람들이 인정했으면 좋겠어요. - p.261


가끔, 나와 B의 집에서 깨어났을 때 혼자 서 있는 나를 발견해. 과도를 소매 안으로 숨기려고 애쓰고 있어. 나는 추악함을 잊을 수 있지만 추악함은 나를 잊지 않을 거야. - P.336


'천사를 기다리고 있는 소녀'야. 내가 세상에서 제일 상처받길 바라지 않는 사람이 바로 너야. 이 세상에 너보다 더 행복해질 자격이 있는 사람은 없어. 너를 솜사탕 백 개만큼 포근하게 안아줄게.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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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애의 마음
김금희 지음 / 창비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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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엔가 분명히 있을 그 마음.


 나만 잘 하면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며 홀로 고군분투를 하다보면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파편이 날라오곤 한다. 자연의 섭리처럼 스스로 자생하는 식물과 같이 스스로 치유하는 능력이 몸 어딘가에 자리잡고 있을 수 있지만 때론 그 파편이 너무 강력하고 날카로워서 피를 흘리곤 한다. 그때 사회는 그들을 어떻게 치유해주는가. 뉴스를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헤드라인 뉴스가 바뀐다. 사건사고가 일어나고 당시에 급박했던 상황을 실시간에 가깝게 보고한다. 그러나 그 이후의 그들의 삶을 어떠한가.


김금희 작가의 <경애의 마음>은 지구상에 어디엔가 분명히 있을 그 마음을 장편소설로 써 놓았다. 그녀의 작품을 읽어본 적 없지만 익히 들어본 적은 많아 친근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의 첫 장편소설은 생각과 달리 쉬이 페이지가 넘어가지 않아 읽는 내내 몇 번을 고전한 끝에 페이지를 마쳤을 정도로 느릿한 걸음으로 책을 읽었다. 고등학교 시절 호프집에 화제사고가 일어나 친한 친구를 잃은 경애와 상수. 호프집 사장이 고등학생에게 돈을 받지 못 할 것 같아 문을 잠금으로서 사건이 더 커졌던 사건이었다. 다행히 두 사람은 운좋게 목숨을 건졌지만 그날의 사건이 생채기가 되어 마음 속 깊이 앙금으로 남아있다.


당시에는 크나큰 생채기를 입고 아파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람들 기억 속에 그날의 사건은 말끔히 잊어버린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그 사건을 말끔하게 잊어버릴 수 있을까. 마음 속에서 그날의 시간을 지웠다 하더라도 사고 현장에서 일어났던 그날의 시간은 잊지 못해 계속해서 잔재가 남아있지 않을까. 멘탈이 아주 좋은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쩌면 한 번 손상된 정신은 다시 복구되기가 힘들지도 모르겠다. 다만, 그 시간을 지우고 잊어버린 척 하며 덧대고 그 시간을 잊기 위해 열심히 살아갈뿐.


그렇게 살아가는 두 사람 경애와 상수는 그 시간을 딛고 살아가지만 다시 회사에서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틀어지거나 멀어지곤 했다. 마치 모든 것이 부서지듯 떨어지고 마는 이야기였다. 친한친구를 화재 사건에 잃고 그는 후에 직장에서 남자임에도 '언니'라고 불리며 익명의 사연이 오면 게시판에 답장을 보낸다. 모르는 사이임에도 그들은 살아가면서 찔러오는 생채기에 서로를 보듬어주고, 치유해주는 이야기가 나온다. 한 개인이 회사를 다니다가 갑작스레 회사의 일방적인 통보로 인하여 자리를 옮길 수 밖에 없을 때 그들은 격렬하게 저항하지만 마치 커다란 벽을 놓고 싸우는 것처럼 개인이 입는 화는 크다. 우리는 수도없이 그런 일을 뉴스를 통해 보았고,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의 결말처럼 말끔히 이야기가 끝나질 않는다. 오히려 마음을 다치고, 금전적으로 손해를 보는 쪽은 항상 을이다.


어쩌면 이 세상에서 몸도 마음도 다치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힘든 일인지도 모르겠다. 강한 생명력이야말로 삶을 살아가는 원동력인지 아니면 아플 때 아프다고 소리치면서 살아가야 하는지 그 누구도 정답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의 시간 속에서 지워낼 마음이 있었고, 우리는 그것을 버리지 말아야 한다고 작가는 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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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역사 읽기 : 유럽편 영화로 역사 읽기
연동원 지음 / 학지사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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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며 시대를 공부하다.


 한 때 영화를 보는 것이 좋아 친구와 함께 새벽 일찍 조조영화를 보러 다녔다. 처음에는 언제 조조영화를 하나 싶어 영화관이 문을 열지 않는 이른 시간에 가서 1시간 넘게 기다린 적도 있었고, 일주일에 서너번씩 영화를 보러다니다 보니 다이어리 포켓에 가득 영화표가 가득한 적도 있었다. 예전에는 영화표가 빳빳한 종이다 보니 표 모으는 재미가 있었다. 새벽마다 혹은 시간을 가리지 않고 보러 다녔던 시간을 뒤로하고 언제부터인가 영화관에 잘 가지 않게 된다. 종종 영화관을 가다보면 옆 자리에서 핸드폰 불빛이 환하게 비추거나 뒤에서 발을 툭툭치거나, 영화를 보는 내내 친구에게 스포일러를 말하는 사람까지 만나다보니 자연스레 영화관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고,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을 보내다보니 이제는 영화 조차도 잘 보지 않게 되는 것 같다. 영화에 대한 흥미가 책으로 옮겨지다 보니 영화와 영화 원작이 있다면 먼저 책을 읽게 된다.


책을 읽는 재미도 좋지만 영상으로 보는 재미와 실감나는 영상이 주는 감동을 그동안 못 느낀 것 같아 다시 영화를 접해야겠다고 생각했을 때 펼쳐든 책이 <영화로 영화 읽기: 유럽편>이다. 유럽의 역사를 지금껏 개봉된 영화를 통해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고, 무엇보다 평론가의 시각으로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영화를 넘어서 숨어있는 영화들도 만나고 싶었다. 고대 그리스 문명을 말 할때에는 '트로이'와 '300'에 대한 이야기가 있으며 고대 로마 제국에서는 대표적인 영화가 '글래디에이터'다. 중세사회 성립의 테마에서는 '킹 아더'와 '캐리비안의 해적 4: 낯선 조류'가 설명되었다.

절대왕정 시대, 혁명 시대, 시민 사회를 거쳐 제 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에서는 '메리 크리스마스'와 '제독의 연인'이 소개되어 있다. 이미 영화관에서 봤던 영화도 있고, 제목만 들었을 뿐 지나친 영화들이나 이름조차 못 들어본 영화들이 소개 되어있어 그 중 보고 싶은 영화들은 짧게 메모해 놓고, 봤던 영화들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저자의 소개와 시대에 일어났던 역사에 대한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읽었다. 책은 고대 그리스 문명에서 동유럽 분쟁과 현대 유럽까지를 다루고 있다.


유럽의 역사에 대해서는 워낙 포괄적이고, 사건이 많다보니 책에서는 세세히 다루지 않았다. 책에서는 영화 속 역사를 설명하되 영화와 실제 역사를 차례로 설명하고 있고, 영화의 뒷 이야기를 다룬다. 대표적인 영화 한 편과 숨어있는 영화 한 편을 골라 같은 시대 혹은 같은 인물을 어떻게 다각도로 다르게 보는지 알 수 있어 같은 시대, 같은 인물이라도 어떻게 다른지 알 수 있다는 점에서 영화 대 영화의 챕터가 흥미로웠다. 많은 역사적 순간들과 시대를 조망하다보니 세밀하게 다루지 않았고, 유럽에 있어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 할지라도 영화에서 다루지 않았다면 그 시기를 빼다보니 생각과 달리 목차가 단조롭게 느껴져기도 했다.


하나의 영화만으로 얼마나 많은 순간과 인물들을 소개 할 수 있지만 개괄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참고할만 하다. 더욱이 시대적 배경을 모르고 봤던 영화들 중에서는 그 시간이 그들에게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쳤고,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었는지를 이 책을 통해 알게 되었다. 때때로 영화의 평점이나 배우들의 연기가 아쉽거나 너무 파격적이어서 넘기곤 했는데 영화를 통해 무엇을 표현해 내고 싶었는지를 스크린에서 보고 싶을 정도로 간략한 소개가 더 영화를 보고 싶게 만든다.

역사에 중점을 두면서 영화적으로 볼 수 있는 캐스팅이나 제작과정을 짤막하게 볼 수 있다는 점이 재밌게 읽혔다. 때때로 더 설명을 했으면 하는 챕터도 있었지만 간략하게 설명을 듣고나서 영화를 본다면 더 재밌게 영화를 볼 수 있다는 점에서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책을 읽고 개인적인 바램이 있다면 하나의 주제로 더 깊이 이야기를 썼으면 좋겠다. 예고편보다는 본편처럼 깊게 영화와 역사를 설명한다면 더 깊이 영화로 역사 읽기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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