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한도시 no.6 #1 ㅣ 무한도시 no.6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9년 1월
평점 :
절판
넘버식스, 과연 미래도시만을 이야기 하고 있는가?
물폭탄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무섭도록 비가 많이 내렸다. 그 무렵 나는 <무한도시 NO.6>를 읽고 있었다. 빗소리라기 보다는 냇물이 흘러가듯 쏴한 소리를 들으니 NO.6의 무한도시는 작가가 그린 미래도시 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미래의 도시, 그러나 NO.6는 마치 우리가 밀레니엄이 다가오기 전 2000년대의 도시를 그리듯 타임캡슐 안에 잘 정비된 과학도시를 엿보는 것처럼 표면적으로 아무런 결점없는 환상의 도시를 그려낸다. 그곳에 사는 꽃 이름을 가진 소년 시온과 회색의 짙은 눈동자를 가진 생쥐라는 소년의 만남이,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1 운명적인 만남
9권을 완결으로 한, 이 소설은 시온과 생쥐가 만나는 첫만남부터 강렬하다. 비가 쏟아지던 날, 생사의 갈림길에 선 생쥐를 시온은 구해준다. 그의 열두번째 생일날 침입한 낮선 그림자. 평온하고 안락한 공간속에서 시온은 주문처럼 부숴라. 깨트려나, 무엇을? 모든것을. 모든것?이라는 말을 하염없이 중얼거린다. 온실속의 화초로 자란 시온이 본능적으로 외치는 소리를 생쥐는 빗소리를 뚫고 단번에 알아듣는다. 서쪽구역 교정시설에서 탈출한 생쥐를 치료해주고, 도주를 도왔다는 이유로 시온은 최상의 조건에서 가장 최악이라는 등급의 시설로 옮겨간다. 훗날 다른 사건을 계기로 다시 두 사람은 만나게 되는데.
1권을 읽은 느낌은 탐크루즈가 주연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조지 오웰의 작품<1984>를 떠올렸다. 시온이 살고 있는 무대는 구획이 잘 정리된, 그야말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최상의 조건을 자랑하는 곳이다. 두 소년은 태생에서부터 자란 환경도 틀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극과 극이다. 그럼에도 도시에서 태어난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은 의미가 깊다. 아웃사이드에 있는 생쥐, 어둠의 공간에 있던 그와 도시의 보호를 받는 태양 같은 만남은 초 엘리트를 밑바다으로 추락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그 도시의 생리에 대해 알아가는 시작점이었다.
'살아있다. 난 살아 있어.' - 1권 P.133
눈을 떴을 때, 너는 과연 이런 현실을 믿을 수 있을까? 받아들일 수 있을 까? 열두 살까지 신성도시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던 인간이, 로스트타운이라고는 하지만 열여섯 해를 NO.6의 시민으로 온실 속에서 살아온 인간이,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정도로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있을까? - 1권 P.145
#2 새로운 세계
시온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망온 곳은 생쥐가 사는 서쪽구역이었다. 시온의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세계와 생쥐가 보는 세계는 다르다. 태초부터 둘은 빛과 어둠으로 나뉘었듯 태어나서부터 자란 곳의 도시의 습성을 그 누가 현미경을 보듯 들여다볼 수 있을까. 도시가 제공해주는 것, 보여주는 것, 쾌적한 환경, 주입식 교육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 '진실의 눈'으로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온은 본능적으로 표출하고, 운명적으로 생쥐와 조우했지만 사람의 이기심으로 탐욕적으로 지은 공간의 실체를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도시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두 소년은 생사의 갈림길을 오간다. 특히 시온은 새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것 처럼 서쪽구역에서 보는 삶은 그야말로 치열한 날것 그대로다. 아사노 아츠코는 무한도시를 통해 사람의 탐욕과 이기심, 가식과 가면이 가득한 소굴인 그곳을 아름답게 변모시킨다.
"그런데도 너는 참았어. 저항하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서약을 매일 아침 복창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지. 시온, 말이라는 건 너처럼 가볍게 내뱉어서는 안 되는 거애. 싫은 걸 강요당하는데 가만있어서도 안돼. 하지만 너는 그걸 몰라, 그래서 나는 너를 믿을 수 없는 거야." - 2권 P.26
"한숨은 빈틈을 만들어. 오래 살고 싶거든 입을 닫아. 누구에게도 빈틈을 보여선 안 돼. 누구에게도 절대로 마음을 열지마. 아무것도 믿지 말고." - 2권P.39
"넌, 내게 살라고 했어."
불꽃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시온이 중얼걸렸다.
" 생쥐, 넌 살아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그러니 살라고 말했어."
" 난 산자가 이기는 거라고 말했을 뿐이야." - 2권 P.44
모든 것이 그러하듯 두 소년에서 빛과 그림자를 보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가 양면의 칼날을 갖고 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또한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갈등
도시에서 벗어나 생쥐와 함께 생활하는 시온은 점차 적응하지만, 그녀의 여자친구인 사후의 갑작스럽게 치안국에 연행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무한도시를 배경으로 두 소년이 주인공이다 보니 사후나 시온의 엄마의 가란의 역학은사건의 발단이나 적절한 동기 유발로서 그 역할이 미미하다. 시온과 생쥐가 동적인 느낌이라면 가란과 사후는 수동적인 역할. 갈등의 불씨도 결국 사후와 가란이 합작하여 두 소년을 다시 위험에 빠트리는 것으로 갈등이 고조된다. 그 후 두 소년은 사후가 있는 교정 시설로으 뛰어든다. 그 이야기가 1권을 시작으로 6권까지 계속 된다. 현재 6권까지 출간된 상태이기에 두 소년의 행보에 대해서는 세 권의 책이 출간된 후에 이야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은 끊임없이 두 사람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람이 세운 왕국, 도시, 세계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냈음에도 결국 사람의 손에 의해 무너지는 곳. 누군가 가장 안정적일 때 가장 불안하다고 했던가. 제국이 세워지고 다시 멸망하고, 또 누군가가 다시 왕국을 세우는 것처럼 끊임없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어. 그 모든 것이 허상이었던 거야.' 소리를 내지 않고 중얼거렸다. 초겨울인데도 땀이 솟아났다. 세세한 등급으로 나뉘어진 ID칩 때문에 시내의 거리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 죄 없는 아들이 구속되었는데 이의를 제기할 곳이 없다. 당국이 납치한 시민의 안부를 확인할 수도 없다. 이게 무슨 자유란 말인가. 대체 어디에 평온함이, 안전이, 만족스러운 삶이 있단 말인가. 그런 건 어디에도 없다. - 3권 P.66
사람은 복잡한 동물이다. 강인하면서도 나약하다. 음과 양. 빛과 그림자. 성스러움과 속됨. 누구든 그 둘을 다 가지고 있다. NO.6에서 얻은 방대한 지식으로는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의 실상이다.
인체의 유전자 수는 약 삼만 이천 개, 단백질 수는 십만 개, 염기 배결은 약 삼십 억, 뉴런, 콜라겐 섬유, 마이크로퍼지, 근육의 계층 구조, 순환 혈액 양······. 지식이 무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숫자로 바꿀 수 있는 정보나 지식으로는 살아 있는 인간의 복잡함이나 실상을 파악할 수 없다. -3권 P.110
#4 진실과 허구 그리고 이야기의 끝.
NO.6. 너는 어떻게 할 테냐. 이 어둠을 내려다보면 빛다는 기만한 허구의 도시여, 너 또한 언젠가는 이 땅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 것인가. 그러나 너를 용서할 신은 없다. 너는 결국 황금 옷을 입은 채 무너지고 불타 올라 마침내 소멸하고 말 것이다. 난 반드시 살아남아 너의 운명에 대단원의 막이 내릴 그때를 이 두눈으로 지켜보리라. - 3권 p.122
이 한줄의 문구가 <무한도시 NO.6>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속에서 나는 사람의 강인함도, 연약함도 보았다. 늘 하던 생각이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그 어떤 동물보다 약하지만 그 어떤 종족보다 강하고 무섭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통찰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날카로움은 그야말로 '픽션'이 아닌 진정성이 담긴 작품이었다. 그러나 시온과 생쥐의 캐릭터가 품고자 하는 생각과 투쟁에 대해서는 깊이 와닿지 않았다. 이야기에 몰입하면서도 두 사람을 멀리 관찰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생각과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