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하우스 민음사 모던 클래식 50
니콜 크라우스 지음, 김현우 옮김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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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인물들이 있는 방은 모두 전극봉과 전선을 통해 커다란 상어 한 마리와 연결되어 있다고. 매일 밤 조명이 환한 물탱크에 갇힌 상어가 그 사람들의 꿈을 대신 꾼다는 이야기. 아니, 그냥 꿈이 아니라 악몽이었지, 견디기가 너무 어려운 일들. 그래서 인물들이 잠이 들면 그 끔찍한 일들은 전선을 타고 빠져나와 무시무시한 물고기에게 흘러들어 가는 거라고, 흉터투성이 상어는 그 비극들을 모두 견딜 수 있을 테니까. - p.69

니콜 크라우스의 <그레이트 하우스>는 기억의 조각을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작품이다.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숨어 있는 이야기, 한 가족의 깊고 깊은 이야기를 네 명의 화자와 두번의 이야기를 통해 들을 수 있다. 그들 사이에는 열 아홉 개의 크고 작은 서랍이 달린 육중한 책상이 매개가 되고, 전혀 관계가 이어지지 않을 사람과의 스침도 '책상'이 매개가 되어 그들을 잇는다.

누워있는 판사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여자 나디아, 아들에게 벽을 두고 있는 아버지의 이야기, 같은 공간에 있지만 다른 공간에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남편과 아내의 이야기 (이 이야기는 남편의 시점으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오빠가 사귀는 여자의 시점으로 이루어진 요아브와 레아의 이야기가 <그레이트 하우스>의 목소리들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우리는 그 속에서 마음의 그림자를 그려내는 그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볼 수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하나의 목소리가 모이고 보여 근사한 하모니를 만들어낸다.  마음의 그림자를 그려낸다. 감정의 소모가 아닌 이미 그 에너지를 소화한 후의 이야기를 보는 것처럼 소통의 단절이 이미 그들에게는 사방이 '벽'으로 막혀있다. 독방에 앉아 홀로 그 순간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어있는 주인공들을 상상하게 만든다.

남남의 이야기지만 한 가족의 소통의 부재와 친밀한 사람과의 벽을 느끼는 처럼 같은 공간에서 살음 부비고, 핏줄을 나누고, 사랑을 나누는 사이에서의 상호작용이 아닌 자신이 보고자 하는 방향으로만 하는 옹골찬 고집이 느껴진다. 그것이 하나의 트라우마가 될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약점이 될 수 있으며, 또 누군가에게는 견딜수 없는 외로움이다.

기억의 상흔을 통해 비밀스러운 기억들, 미스터리한 기억의 보따리를 열고 닫히는 것처럼 그들은 자신만의 목소리를 내면서 상대방을 떠올리며 그들의 그림자를 쫓고 있다. 1000피스 퍼즐을 맞추는듯 이야기들이 독립적으로 흘러가다가 육중한 책상이 유물처럼 세대를 넘어간다. 전극봉과 전선을 통해 커다란 상어 한마리와 연결되어 있다는 글귀처럼 인물들은 상처가 난 가슴속에서 기억의 서랍을 열고 있다.

모던 클래식 특유의 주제와 맞닿아 떨어지지만 50번째 <그레이트 하우스>는 이야기의 엮임이 굉장히 고급스럽다. 인위적이거나, 지루하지 않는다. 몇날 며칠을 세서 퍼즐을 다 맞추는 기분이 것처럼 하나의 이야기가 엮여 어떤 결말이 나올까 하는 미묘한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시점이 나뉘어 지는 것보다 하나의 이야기를 올곳게 가는 것을 작품을 좋아하지만 이 작품은 시점이 나뒤어도 1부에 이어 2부에서 이어지는 감정선이 뒤바뀌면서 반전을 이루는 것이 굉장히 흡입력있게 이 작품을 읽었다. 하나의 이야기가 끝나면 하나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화수분처럼 끝없이 이어지는 비극들과 악몽이었다. 작게는 한 가정의 일, 크게는 유대인의 모습이 그려지는 그들의 슬픔과 한이 느껴지는 작품이다. 어떤 위치에서 소설을 읽고자 하는 것에 따라 의미가 새겨지는 이 소설은 정교한 선택과 세밀한 묘사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극한 감정의 향연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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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검열과 사랑 이야기 민음사 모던 클래식 49
샤리아르 만다니푸르 지음, 김이선 옮김 / 민음사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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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고 나니 얼마전 M본부에서 했던 유재석 김원희의 <놀러와>가 생각났다. 채널을 돌리다가 볼 프로그램이 없어서 케이블로 보게된 양희은의 노래인생 4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로 지인들을 불러모았다. 몇몇 노래는 들어봤지만 익숙하지 않았던 그녀의 노래를 들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지만 시간을 거슬러 그녀의 노래인생에서 듣게된 '검열' 때문에 음반을 수거하고 방송에 나오지 못한 일화에 대한 이야기가 생경하게 들렸다. 지금 생각하면 그저 웃음이 나는 이유였다. 예를 들면 제목이 너무 선정적이어서 음반이 회수되고, 가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회 분위기와 맞지 않아서 방송에 나오지 못했다.

몇 십년전만 해도 우리도 '검열'이 있었던 시대가 있었다. 비록 내가 태어날 무렵에는 장발이거나, 미니스커트가 짧아서 걸리는 시대를 넘어서서 통금시간도 없는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세대이기도 하지만 아직도 '불온서적'이라고 붙이는 명명하는 책들이 존재하기에 보이지 않는, (혹은 조금 엿볼 수 있는) 잔재들이 남아있다.

여기, 샤리아르 만다니푸르가 쓴 <이란의 검역과 사랑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이란의 '검열' 속에서도 '사랑이야기'를 쓰고 싶어하는 작가의 열망과 열정 그리고 거기에 대두되는 사회적인 문제들을 열거한다. 표출할 수 없으니 당연하게도(!) 은유적인 표현으로 그들의 마음을 대신한다. 그 속에서 작가의 마음은 열망하고, 열정적인 땀방울이 솟아 오른다. 급기야 마음속에서 폭발이 일어나기도 한다. 우리가 자연스럽게 쓰는 표현들, 상징들, 티비나 언론 매체들이 쓰고 있는 문장이 누군가에게는 쓰고 싶은 단어이던가.

햇살 가득한 테헤란의 봄날, 차도르를 쓴 사라가 대학 정문 앞에서 "독재에 죽음을, 자유에 죽음을"이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서있다. 그 속에서 지난 일년 동안 많은 책 속에 암호로만 사랑고백을 하는 남자 다라의 이야기가 이 책의 사랑이야기의 주인공이다. 그 가운데 작가가 있다. 이란의 검열 정책에서 그의 사랑이야기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이란이라는 나라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사랑 표현이 허용된 나라가 아니며, 사랑하는 두 남녀가 한 공간에 있어서도 안되고, 손을 잡을 수도 없으며 심지어 나란히 길을 걷을 수도 없다.

마치 이것도 안되고, 저것도 안되는 복잡한 거미줄이 얽힌 지뢰밭 사이에서 작가는 그들이 쳐놓은 그물망 사이에서 그들 특유의 생존방식을 구하고 있다.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것처럼, 작가의 열망과 욕망을 신화에 빚대어 표현한다. 어떤 시대든 암흑의 시대였던 곳에서도 문화와 예술이 발전하듯이 작가는 사회의 어리석음과 잔인함을 고발하고, 그의 글쓰기는 점점 더 깊고, 깊은 세계로 빠져든다.

샤리아르 만다니푸르의 이야기는 무거운 소재임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유머러스하게 이야기를 끌어간다. 작가의 시점으로 가다가 다시 그가 쓴 소설의 이야기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시점 사이에서도 전혀 피로가 느껴지지 않는다. 책을 읽더라도 주로 영미권 소설이나, 일본, 유럽권의 책을 자주 읽곤 했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깊게 이란이라는 나라에 대해서 알고 싶어졌다. 그동안 알았던 이란의 표면적인 모습들은 물론이고 그가 속사포처럼 해준 이야기들이 귓가에 맴돌았다. 오랜만에 읽는 웃음과 해학이 돋보이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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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한도시 no.6 #1 무한도시 no.6 1
아사노 아쓰코 지음, 양억관 옮김 / 까멜레옹(비룡소)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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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넘버식스, 과연 미래도시만을 이야기 하고 있는가?

 물폭탄이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게 무섭도록 비가 많이 내렸다. 그 무렵 나는 <무한도시 NO.6>를 읽고 있었다. 빗소리라기 보다는 냇물이 흘러가듯 쏴한 소리를 들으니 NO.6의 무한도시는 작가가 그린 미래도시 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미래의 도시, 그러나 NO.6는 마치 우리가 밀레니엄이 다가오기 전 2000년대의 도시를 그리듯 타임캡슐 안에 잘 정비된 과학도시를 엿보는 것처럼 표면적으로 아무런 결점없는 환상의 도시를 그려낸다. 그곳에 사는 꽃 이름을 가진 소년 시온과 회색의 짙은 눈동자를 가진 생쥐라는 소년의 만남이,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되는 것으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1 운명적인 만남

9권을 완결으로 한, 이 소설은 시온과 생쥐가 만나는 첫만남부터 강렬하다. 비가 쏟아지던 날, 생사의 갈림길에 선 생쥐를 시온은 구해준다. 그의 열두번째 생일날 침입한 낮선 그림자. 평온하고 안락한 공간속에서 시온은 주문처럼 부숴라. 깨트려나, 무엇을? 모든것을. 모든것?이라는 말을 하염없이 중얼거린다. 온실속의 화초로 자란 시온이 본능적으로 외치는 소리를 생쥐는 빗소리를 뚫고 단번에 알아듣는다. 서쪽구역 교정시설에서 탈출한 생쥐를 치료해주고, 도주를 도왔다는 이유로 시온은 최상의 조건에서 가장 최악이라는 등급의 시설로 옮겨간다. 훗날 다른 사건을 계기로 다시 두 사람은 만나게 되는데.

1권을 읽은 느낌은 탐크루즈가 주연한 <마이너리티 리포트>를 보는 느낌이었다. 더불어 조지 오웰의 작품<1984>를 떠올렸다. 시온이 살고 있는 무대는 구획이 잘 정리된, 그야말로 사람이 살기에 가장 최상의 조건을 자랑하는 곳이다. 두 소년은 태생에서부터 자란 환경도 틀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 자체가 극과 극이다. 그럼에도 도시에서 태어난 그들의 운명적인 만남은 의미가 깊다. 아웃사이드에 있는 생쥐, 어둠의 공간에 있던 그와 도시의 보호를 받는 태양 같은 만남은 초 엘리트를 밑바다으로 추락시키는 역할을 했지만 동시에 그 도시의 생리에 대해 알아가는 시작점이었다. 

'살아있다. 난 살아 있어.' - 1권 P.133

눈을 떴을 때, 너는 과연 이런 현실을 믿을 수 있을까? 받아들일 수 있을 까? 열두 살까지 신성도시의 보호를 받으며 살았던 인간이, 로스트타운이라고는 하지만 열여섯 해를 NO.6의 시민으로 온실 속에서 살아온 인간이, 이런 현실을 고스란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그 정도로 강인한 정신을 가지고 있을까? - 1권 P.145

#2 새로운 세계

시온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도망온 곳은 생쥐가 사는 서쪽구역이었다. 시온의 세상에서 볼 수 있는 세계와 생쥐가 보는 세계는 다르다. 태초부터 둘은 빛과 어둠으로 나뉘었듯 태어나서부터 자란 곳의 도시의 습성을 그 누가 현미경을 보듯 들여다볼 수 있을까. 도시가 제공해주는 것, 보여주는 것, 쾌적한 환경, 주입식 교육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 '진실의 눈'으로 살아가기는 어려울 것이다. 시온은 본능적으로 표출하고, 운명적으로 생쥐와 조우했지만 사람의 이기심으로 탐욕적으로 지은 공간의 실체를 결코 아름답지 않았다.

도시의 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두 소년은 생사의 갈림길을 오간다. 특히 시온은 새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는 것 처럼 서쪽구역에서 보는 삶은 그야말로 치열한 날것 그대로다. 아사노 아츠코는 무한도시를 통해 사람의 탐욕과 이기심, 가식과 가면이 가득한 소굴인 그곳을 아름답게 변모시킨다.

"그런데도 너는 참았어. 저항하지 않고 마음에도 없는 서약을 매일 아침 복창하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지냈지. 시온, 말이라는 건 너처럼 가볍게 내뱉어서는 안 되는 거애. 싫은 걸 강요당하는데 가만있어서도 안돼. 하지만 너는 그걸 몰라, 그래서 나는 너를 믿을 수 없는 거야." - 2권 P.26

"한숨은 빈틈을 만들어. 오래 살고 싶거든 입을 닫아. 누구에게도 빈틈을 보여선 안 돼. 누구에게도 절대로 마음을 열지마. 아무것도 믿지 말고." - 2권P.39

"넌, 내게 살라고 했어." 

불꽃 쪽으로 얼굴을 돌린 채 시온이 중얼걸렸다.

" 생쥐, 넌 살아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그러니 살라고 말했어."

" 난 산자가 이기는 거라고 말했을 뿐이야." - 2권 P.44

모든 것이 그러하듯 두 소년에서 빛과 그림자를 보았다. 그들이 살고 있는 도시가 양면의 칼날을 갖고 있듯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 또한 장점과 단점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

#3 갈등

도시에서 벗어나 생쥐와 함께 생활하는 시온은 점차 적응하지만, 그녀의 여자친구인 사후의 갑작스럽게 치안국에 연행되는 사건이 벌어진다. 무한도시를 배경으로 두 소년이 주인공이다 보니 사후나 시온의 엄마의 가란의 역학은사건의 발단이나 적절한 동기 유발로서 그 역할이 미미하다. 시온과 생쥐가 동적인 느낌이라면 가란과 사후는 수동적인 역할. 갈등의 불씨도 결국 사후와 가란이 합작하여 두 소년을 다시 위험에 빠트리는 것으로 갈등이 고조된다. 그 후 두 소년은 사후가 있는 교정 시설로으 뛰어든다. 그 이야기가 1권을 시작으로 6권까지 계속 된다. 현재 6권까지 출간된 상태이기에 두 소년의 행보에 대해서는 세 권의 책이 출간된 후에 이야기를 알 수 있을 것이다.

책은 끊임없이 두 사람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를 되돌아보게 만든다. 사람이 세운 왕국, 도시, 세계들.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냈음에도 결국 사람의 손에 의해 무너지는 곳. 누군가 가장 안정적일 때 가장 불안하다고 했던가. 제국이 세워지고 다시 멸망하고, 또 누군가가 다시 왕국을 세우는 것처럼 끊임없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모든 것이 거짓이었어. 그 모든 것이 허상이었던 거야.' 소리를 내지 않고 중얼거렸다. 초겨울인데도 땀이 솟아났다. 세세한 등급으로 나뉘어진 ID칩 때문에 시내의 거리도 자유롭게 다닐 수 없다. 죄 없는 아들이 구속되었는데 이의를 제기할 곳이 없다. 당국이 납치한 시민의 안부를 확인할 수도 없다. 이게 무슨 자유란 말인가. 대체 어디에 평온함이, 안전이, 만족스러운 삶이 있단 말인가. 그런 건 어디에도 없다. - 3권 P.66
 

사람은 복잡한 동물이다. 강인하면서도 나약하다. 음과 양. 빛과 그림자. 성스러움과 속됨. 누구든 그 둘을 다 가지고 있다. NO.6에서 얻은 방대한 지식으로는 결코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의 실상이다. 

인체의 유전자 수는 약 삼만 이천 개, 단백질 수는 십만 개, 염기 배결은 약 삼십 억, 뉴런, 콜라겐 섬유, 마이크로퍼지, 근육의 계층 구조, 순환 혈액 양······. 지식이 무익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을 이해하는 것과는 다른 차원의 일이다. 숫자로 바꿀 수 있는 정보나 지식으로는 살아 있는 인간의 복잡함이나 실상을 파악할 수 없다. -3권 P.110

#4 진실과 허구 그리고 이야기의 끝.

NO.6. 너는 어떻게 할 테냐. 이 어둠을 내려다보면 빛다는 기만한 허구의 도시여, 너 또한 언젠가는 이 땅에 무릎 꿇고 용서를 빌 것인가. 그러나 너를 용서할 신은 없다. 너는 결국 황금 옷을 입은 채 무너지고 불타 올라 마침내 소멸하고 말 것이다. 난 반드시 살아남아 너의 운명에 대단원의 막이 내릴 그때를 이 두눈으로 지켜보리라. - 3권 p.122 

이 한줄의 문구가 <무한도시 NO.6>을 잘 나타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속에서 나는 사람의 강인함도, 연약함도 보았다. 늘 하던 생각이지만 사람이란 존재는 그 어떤 동물보다 약하지만 그 어떤 종족보다 강하고 무섭다.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공간에 대한 통찰과 은유적으로 표현하는 작가의 날카로움은 그야말로 '픽션'이 아닌 진정성이 담긴 작품이었다. 그러나 시온과 생쥐의 캐릭터가 품고자 하는 생각과 투쟁에 대해서는 깊이 와닿지 않았다. 이야기에 몰입하면서도 두 사람을 멀리 관찰하는 것처럼 두 사람의 생각과 투쟁은 계속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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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펭귄클래식 13
허균 지음, 정하영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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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균의 <홍길동전>은 언제 접해도 중간에 책갈피를 넣을 시간도 없이 절로 책장을 넘길만큼 재밌는 우리의 고전 소설이다. 고전 중에 가장 친근한 소설을 뽑으라면 1순위로 <홍길동전>을 뽑을 만큼 나에게는 가장 친숙한 책이다. 초등학교 때 서점에서 샀던 정비석의 <소설 홍길동>을 두고두고 볼 만큼 좋아했다. 어느 날 학급문고를 만든다고 책을 내라고 해서 소설 홍길동 1.2 권을 냈더니 학년 말 1권은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2권만 두둥실 나에게로 다시 왔다. 아직도 그 책을 갖고 있지만 유난히 길동이와 인연이 많은지 민음사 판과 더불어 펭귄클래식으로 바라본 홍길동전은 같으면서도 사뭇 다르게 다가온다.

책의 뒷장을 보면 목각 방각본이 수록되어 있다. 번역이 되지 않는 있는 그대로의 우리글을 읽다보면 익숙하게 아는 이야기 임에도 불구하고 띄엄띄엄 글을 읽다가 어느 순간에는 아, 무슨 글씨지? 하고 반문하게 된다. 1612경에 쓰여진 최초의 국문소설이라고 일컫는 이 책은 영어나 일어, 불어로 쓰여진 책과 마찬가지로 번역이 되어야 비로소 책을 읽을 수 있다. 다른 문화권의 언어와 달리 많이 변형되었고 하는데 몇 백년이 지난 지금 있는 그대로의 책을 읽기란 쉽지 않다.

허균의 창작소설이며, 민감한 사회문제를 제시한 사회소설. 홍길동의 유명한 대사인 아버지를 아버지라 못 부르고, 형을 형이라 못 부르는 적서차별을 그리며 조선 사회의 사회적인 병폐를 지적한다. 위 아래, 차별없이 평등하게 살아가는 삶의 가치에 대해 이야기하지만 율도국이라는 가상국을 내세워 해결방안을 제시하며 이야기는 끝을 맺는다. 현실에 맞는 해결방안이라 내세웠지만 <홍길동전>은 구체적인 해결방안 보다는 앞으로의 미래를 제시했을 뿐 그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의 제도의 병폐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해결방안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고전소설인 이 책은 탄탄한 짜임새와 그 시대를 느끼는 것만으로 큰 위치를 차지한 문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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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인 에어 세트 - 전3권 펭귄클래식
샬럿 브론테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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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차게 목소리는 낸 소녀, 사랑을 쟁취하다!

 나에게 <제인 에어>는 조금 특별한 작품이다. 인생에 있어, 어느 순간에도 타이밍이 가장 중요하듯이 세계 문학 전집을 접하면서 가장 몰입하며,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이 바로 이 소설이었다. 누군가 재미있는 작품을 추천한다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작품이 바로 샬럿 브론테가 쓴 <제인 에어>다.

공교롭게도 동생 에밀리가 쓴 <폭풍의 언덕>과 <제인 에어>를 비슷한 시기에 읽었는데, 브론체 자매의 책은 특징적으로 비슷하게 혹은 서로 다른 음습함이 느껴진다. 동생 에밀리가 보여주는 음습함은 그야말로 바람처럼 강렬하고 폭력적인 남성적인 것에 기인했다면 샬럿은 미스테리 형식의 긴장감이 느껴지는 부드러운 어둠이다. 주인공의 성격과도 비교가 되듯이 히스클리트와 제인 에어의 성격을 보여주듯 배경마저도 그들의 성격이 닮아있다.

처음 책을 읽었을 당시 에밀리가 쓴 <폭풍의 언덕>보다 <제인 에어>에 열렬하게 반응했다. 그때만해도 왜 사람들이 폭풍의 언덕의 남자 주인공인 히스클리프를 좋아할까? 라는 물음표 어린 시선으로 고개를 갸우뚱 했었다. 저울이라면 한쪽으로 치우쳤던 기우뚱한 저울이 시간이 지나고 나자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의 간극은 소리소문없이 매꿔졌다.

다시 <제인 에어>의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읽고 또 읽어보아도 제인 에어처럼 당찬 소녀는 보지 못했다. 지금에서야 제인 에어처럼 여자들도 자기목소리를 내고, 당당하게 자신을 내세웠지만 이전까지는 소극적이고 자신을 낮추는 것이 삶의 미덕으로 알고 살았던 시대였다. 그런 시대를 삶을 살았던 사람들에게 그녀의 글은 단비 같은 존재였다.

더욱이 음습함 속에서도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의 밀고 당기기는 그야말고 읽는 재미를 가져다 준다. 앙다문 입술 사이에 베어져 나오는 강하고 고집센, 만만찮은 가정교사와 그녀 못지 않는 포스를 가진 주인님 로체스터 사이에서 불꽃이 팡팡 튀기는 사이라니. 핑퐁같은 대화를 주고 받는 사이 점점 사이가 농밀해진 두 사람과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미묘한 긴장의 흐름. 샬럿 브론테는 미스테리한 긴장감과 로맨스를 적절하게 잘 버무려 놓았다. 그야말로 밀고 당기기의 고수처럼!

탄탄한 이야기에 매력적인 주인공까지. 글을 읽다보면 절로 제인 에어의 공간으로 들어가 그녀의 숨소리 마저도 들리는 듯한 환정이 느껴지곤 한다. 극적인 요소가 많고, 말 그대로 반전의 묘미가 느껴지는 제인 에어 이기에 한 순간도 눈을 셀 수 없다. <제인 에어>를 읽고 또 읽어도 가장 눈길이 갔던 장면은 훗날 그녀가 다시 그를 찾아가는 장면이었다. 이전과 달리 그녀는 로체스터가 없어도 충분히 스스로의 삶을 풍족하게 꾸려 갈 수 있었음에도 그녀는 그를 선택했다.(것도 아주 당당하게! 쟁취했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오랜만에 제인 에어를 다시 만나니 보이지 않는 그녀의 모습들이 속속들이 눈에 들어온다. 그녀의 성격마저도 로체스터와 닮아 있기에 그녀의 영원한 반려자로 그를 택했고, 진심어린 사랑을 했다. 제인 에어만큼이나 멋지게 보였던 로체스터의 면모는 시간이 지날수록 현실적으로 달라져 보이는 면모라니. 그들의 '진실한 사랑'과 '해피엔딩'에 므흣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는데 이번에 그가 그녀보다 스무살이나 많은 남자였다니. 어쩐지 난 이 결혼 반댈세~하는 한숨을 내셨지만 샬럿 브론테가 그린 <제인 에어>는 여전히 매력있는 소설이다.

덧붙여 작품을 읽고 난 후에 BBC에서 방영한 드라마 <제인 에어>도 일품이다. 말 그대로 작품속에서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가 걸어나온 것 처럼 싱크로율 100%였다. 원작을 먼저 읽은 후에 영화나 드라마를 볼 때면 언제나 가장 먼저 본 것이 좋았는데 <제인 에어>는 책을 읽은 이후에도 다시 찾아볼 만큼 원작이 훼손되지 않는, 있는 그대로 만든 드라마여서 더 좋았던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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