밴버드의 어리석음 -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 이야기
폴 콜린스 지음, 홍한별 옮김 / 양철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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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버드의 어리석음>의 부제는 세상을 바꾸지 않은 열세 사람의 이야기다. 역사의 중심에 선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는 무엇일까? 수 많은 사람들 중에 역사의 중심 축에 서는 사람은 손에 꼽을 정도니 세상을 바꾸지 못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들이 패배자라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의 그늘에 가려져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자신만의 열정과 삶 속에서도 나름의 행복을 누리고 살았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실패와 성공의 모호한 경계에 대한 인문학적 탐험이라는 이야기에 끌렸고, 그들의 삶을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내가 무지한 탓인지 <밴버의 어리석음>에서 나오는 인물들은 내가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인물들이나 무척 곤혹 스러웠다. 인문학적 탐험이라 말했지만 인문학 분야 뿐만 아니라 철학이나 과학에 선 과학자들의 이야기까지 동원되니 무척 광범위하게 느껴졌다.

윌리엄 헨리 아일랜드, 조지 살마나자르, 존 배번드, 존 클리브스 심스, 르네 블롱들로, 프랑수아 수드르, 이프레임 불, 앨프리드 엘리 비치, 마친 파쿼 터퍼, 로버트 코츠, 오거스터스 J.플리즌튼, 딜리아 베이컴, 토머스 딕의 삶이 그려져 있다. 다만 이 책을 읽으면서 역사의 아웃사이더, 혹은 빛을 보지 못한 그들의 이야기지만 이들은 열정을 바쳤지만 결론에 이르러서는 완성을 맺지 못한 인물이기도 하다. 기이한 삶을 살았지만 그들의 연구가 다른이에게 영감이 되어 더 크게 빛을 발했다면 그들은 역사 속에 영원히 잊혀진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을 읽으면서 아쉬웠던 점은 책 속에 쓰여진 문장과 원작을 같이 표기해 놓아 몰입하기가 어려웠다. 원작을 표시하지 않았더라면 더 간략하게 읽었을 문장들이 대부분이었다. 원작 표시를 해 놓은 것도, 인용한 문장을 톳씨 하나 빼놓고 넣은 것도 좋지만 가독성에 있어서는 방해가 되었다. 그들이 이야기가 들어있는 신문이나 책들을 찾아보고 싶다면 도움이 되는 자료였지만 논문을 읽는 것처럼 느껴졌다.

실패와 성공의 경계는 한 끗 차이인 것 같다. 누군가 중심에 서면 늘, 그 중심의 열외는 다른 사람이 존재한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실패 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누군가에게는 그들의 삶이 열정적이고 아름답게 보이지 않았을까. 그 보다 그 자신들이 만족한 삶을 살았다면 사회적으로 인정을 받았든 받지 않았든 그 존재만으로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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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을 부탁해
이시다 이라 지음, 박승애 옮김 / 노블마인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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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시라 이라의 <스무살을 부탁해>는 현재 나의 이야기 같다. 평소 입지 않는 치마정장을 입고, 뾰족한 구두를 신고 심호흡을 하고 있는 사람은 치하루의 모습이자 현재 나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 같다. 어제만해도 나는 치하루가 소설에 등장하는 것처럼 불편한 옷을 입고, 손에 땀을 쥐며 온 몸을 긴장감을 두루며 그렇게 면접을 보았다. 그러다 보니 오늘 하루는 넉 다운이 되어 온몸이 쑤시고 아팠다. 30분이 채 되지 않는 상태에서 짧은 순간에 당락이 갈린다. 부끄럽게도 처음으로 정장을 입고 면접을 보면서 나는 머릿속이 몽롱했다.

평소에는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말을 잘 하지만 이상하게도 많은 사람들 앞에 가면 꿀먹은 벙어리 처럼 얼어 버린다. 어제도 마찬가지로 소신껏 이야기 하면 되는 것을, 어리버리하게 핵심을 찌르지 못하고 두루뭉술하게 말을 해버렸다. 그러고 나니 더 몸이 아플수 밖에. 이런 나의 모습은 다음날 나의 머릿속에서 계속 그 상황을 되풀이하고, 되돌려 보면서 마음을 쿡쿡 쑤시게 만든다.

16년 동안 학생의 삶을 살아오다가 대학을 졸업하면 더 이상 진로가 아니라 사회인의 삶을 살아야 한다. 더이상 엄마가 주는 돈이 아닌 내가 돈을 벌어야 하고, 나의 행동을 책임지는 사회인으로 나아가는 모습은 취업이라는 성장통을 겪에 되는 것이다. 사춘기때와 마찬가지로 사람마다 성장통이 빨리 오는 사람이 있고 늦게 오지만 크게 자리 잡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혹시 떨어진다 해도 그건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서로 안 맞는다거나 운이 나빴던 거라고 생각하면 돼. 전혀 자책할 필요 없는 일이라고. 자꾸 여리저기 부딕쳐보면서 자기와 딱 맞는 곳을 만날 때까지 도전하면 되는 거야. - p.255-256

<스무살을 부탁해>를 읽으면서 치하루를 비롯해 그 친구들이 겪고 있는 마음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합격이 되기까지 수 많은 고비를 거쳐 온 과정을 보면서 반드시 시작이 있으면 끝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나 또한 지금 삶에 있어서 힘든 고비를 넘고 있는 중이라고. 언젠가 이런 날을 기억하며 나 또한 그렇게 성장통을 겪었노라고 말하는 때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원하는 직장에 들어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그들에게는 한없이 애타는 심정이며, 불면의 나날을 보내고 있을 것이다.

조급하게 생각하지 말자는 말을 계속 읊조림에도 불구하고 과연 내가 그동안 무엇을 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된다. 우물안의 개구리처럼 살지 않았는지 답답함을 여기면서. 취업에 시달리는 무수한 많은 사람들이 <스무살을 부탁해>를 보며 마음의 위안을 얻었으면 좋겠다. 취업을 하면 또다른 산이 위용을 나타내겠지만 현재 우리들에게는 '취업'이라는 산을 뛰어넘을 전사이기에 말이다.



"앞으로 우리가 사회에 나가서 한 사람의 직업인으로 살아간다는 건 아마도 이런 긴장의 연속일 거야. 끊임없이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또 어떤 능력이 있는지를 증명해 보이며 살아가야겠지. 여기저기서 부딪치고 때로는 실패도 하면서. 우리가 지금 취직하느라 뛰어다니는 것 자체가 우리 삶의 축소판이 아닐까 생각해. 히로시, 두려워할 필요도 없고 자기가 가진 것 이상을 보여주려고 욕심을 부려서도 안 돼." - p.3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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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번째 빙하기
오기와라 히로시 지음, 양억관 옮김 / 좋은생각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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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나의 생활은 와타루가 성장통을 겪는 만큼이나 나 또한 사춘기를 겪고 오춘기라고 말하는 그 이상의 성장통을 앓고 있다. 머리속은 복잡해서 글을 통해 마음을 표현하려 해도 쉬이 쓰여지지 않는다. 언젠가부터 나의 이야기를 글로 옮기기 힘들게 되어 버렸다. 마음에 담아두었다가 절로 소멸시키는 방법을 택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네 번째 빙하기>는 머릿속이 치열한 가운데 만난 작품이었다. 책을 읽으려고 해도 좀처럼 눈에 들어오지 않아 헤메고 있던 와중에 와타루라는 소년을 만났다. 처음엔 제목에 이끌렸다가 나중엔 와타루라는 소년에 마음이 묶여 버렸다. <네 번째 빙하기>의 키워드는 '성장'과 '아버지'다. 한 소년의 성장, 정확히 말하자면 아버지가 없는 가운데 겪는 남자 아이의 성장기라고 말할 수 있다. 여자아이들의 성장 또한 남자아이들과 같은 성장기를 겪지만 특히 남자 아이에게 있어 '아버지' '어머니'는 자신이 설 수 있게 하는 기둥같은 역할이다. 언젠가 남자아이에게 '엄마'란 얼마나 큰 의미로 다가오는가에 대해 생각한 적이 이었는데 와타루의 모습을 보자 그 생각이 번뜩하고 떠올랐다.

기무라 타쿠야와 다케우치 유코가 주연한 드라마 <프라이드>에서 사토나카 하루의 모습이 와타루의 모습과 겹쳐진다. 하루는 어릴 때 헤어졌던 엄마를 잊을 수가 없었고 와타루는 태어나면서 부터 보지 못했던 아버지가 존재하지 않았다. 가슴 속에 구멍을 뚫어 놓은 것처럼 시린 가슴은 그 누구도 가슴을 채워주지 못했고, 나중에 찾아간(혹은 찾아온) 아빠(엄마)는 모듬어 주지 못했다. 오히려 '사요나라'라는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더이상 그리움을 종결시켜 버리는 역할로 다가왔다. 와타루 역시 그리워하던 아버지를 그렇게 보낸다.

소년의 성장기는 다른 이의 사춘기와 별반 다르지 않지만 아버지의 부재로, 엄마가 연구원인 덕분에 자신의 아버지를 크로마뇽인으로 오해를 하게 사건이 벌어지는 일을 보며 쿡쿡 웃음이 났지만 또 한편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을 알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와타루의 모습은 눈물어린 감동이으로 다가온다. 엄마를 보내고, 아버지라는 존재를 더 이상 그리워하지 않는 시간을 흘려 보낸 소년은 점차 한 남자로 성장하겠지만 어쩐지 성장이라는 말은 쑥쑥크는 의미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알아버린다는 상실의 의미로 다가왔다.

섬세한 문체는 아니지만 이야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여자인 나보다 남성 독자들이 읽는다면 좀 더 와타루의 이야기가 절실히 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작인 <천년수>를 읽고 싶었는데 <네 번째 빙하기>를 읽고서야 그의 작품인 줄 알게 되었다. 이 작품을 필두로 그의 전작을 섭렵해 보고 싶을 만큼 그의 이야기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가슴이 찡한 훈훈함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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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포스 Olympos
댄 시먼스 지음, 김수연 옮김 / 베가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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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댄 시먼즈의 <올림포스>를 읽고 있을 무렵 그의 책 <히페리온>이 출간 되었다. 네이버를 검색해보니 <올림포스>는 댄 시먼'즈'로 적혀져 있고, <히페리온>은 댄 시먼'스'로 적혀있어 같은 작가의 작품임에도 검색 결과에는 따로 나온다. 댄 시먼즈든 댄 시먼스든 그의 책은 책의 위용에 눈을 동그랗게 떠질 만큼 웅장하고 거대하다. <올림포스>도 자그마치 1087페이지다. <일리움>도 천페이지가 넘는다고 하니 웬만한 팬이 아니고서야 큰 숨을 쉬며 맘을 다잡고 읽어야 하는 책일 것이다. 최근에 나온 <히페리온> 역시 천 페이지는 아니지만 상당한 두께를 자랑한다고 들었으니, 댄 시먼스는 짱짱한 두께로 먹어주는 작가 되시겠다.

현대 SF 문학을 이야기할 때 그를 빼놓고는 논의 할 수 없다고 하는데 <올림포스>로 첫 만남을 갖고 보니 빈 말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실, <일리움>과 <올림포스>가 여러 고전문학과 접목되어 있다는 것을 짐작 할 수 있었다. 전 부터 읽어보려 했지만 시도도 못해본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를 접해봐야겠다는 다짐을 했던 작품이었다. 종종 호메로스의 대서사시는 현대 문학에 와서 무수히 많이 거론되어 그의 작품을 읽어보지 않아도 읽은 것처럼 귓가에 맴돌았다.

영화 트로이를 통해서 핵토르의 죽음이 강렬하게 각인되어 있던 터라 파리스의 죽음이 그려지는 <올림포스>의 이야기는 '엇!'하고 고개를 갸우뚱 거렸다. 아, 이거 뭔가 이상한데?라고 강력히 이야기를 못하는 것은 그리스 로마신화를 좋아하지만 사건들을 완전히 꿰고 있지 못한 무지함이 손을 멈칫하게 만든다.

댄 시먼즈는 핵토르의 죽음을 파리스에게로 바꿔놓으며 이야기를 조금씩 보이지 않게 트루고 있다. 교묘하게 이야기를 비틀기 때문에 '사실과 다른 이야기'가 전개 된다는 상황을 정확히 알 수 있는 독자라면 보이지 않는 1인치의 짜릿함과 작가의 상상력에 무릎을 탁하고 칠 것이다. 마치 숨은 그림찾기 처럼 원작을 비교하며 보는 웅장한 SF 대서사시는 더 맛깔나지 않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무릎을 탁치며 썩소를 날려주는 독자가 아니라 책을 읽는 내내 갸우뚱 거리며 원작과 이야기의 트룸에 어디까지가 그의 이야기며, 어디까지가 진짜 이야기인지 궁금증에 미쳐버린 독자 중 한명이었다.

그만큼 <올림포스>는 어마어마한 신들의 이야기 만큼이나 장대하고 웅장하다. 신과 인간, 과학기술의 시도는 올림포스의 이야기가 아니라 과거와 현대, 미래를 어우르는 끝없는 길이었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고전소설과 과학, 신, 예술이 합쳐진 그의 이야기는 어느 것 하나 빠질 것이 없는 이야기라 읽는 독자로 하여금 숨가쁘게 다가온다. 너무 많은 양의 이야기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입이 쩌억 하고 벌어질 만큼 거대한 파도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림포스>는 손에 잡으면 놓을 수 없어 붙박이가 되어 책을 부여잡고 있었다. 오랜만에 제대로 된 SF문학을 읽은 것 같아 뿌듯했다. <올림포스>가 나오기 전에 출간 되었던 <일리움>(베가북스, 2007) 또한 읽어보고 싶었다. 더불어 <히페리온>(열린책들, 2009)까지도. 어마어마한 두께에 눌려 도전을 못하는 독자가 있다면 두려워 하지 말고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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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역사의 길을 걷다 - 정태남의 유럽문화기행
정태남 지음 / 마로니에북스 / 200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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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년전 도서관에서 그의 책 <콜로세움이 무너지는 날>을 빌렸다. 마음은 둥둥 반쯤 뜬 가운데 '이탈리아'를 알고 싶었고 이탈리아의 도시 '로마'를 알고 싶었다. 여행길에 오르기 전 열공하며 책을 부여잡고 책을 읽었다. 차분히 읽지 못한 나머지 페이지는 훗날 깊이 들여다 보지 못한 아쉬움으로 남았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몇 년이 흘러 다시 그의 책을 집어 들었다.

로마. 나는 로마하면 뜨거운 태양과 씨름하며 계속된 갈증에 만원 가까이 물을 사 마셨다. 세계사를 통해 로마의 역사를 배우며 익히 알고 있는 건축물들, 역사적 이야기는 온데간데 없었다. 땡볕아래 까무잡잡한 한 여행객만 있었을 뿐이다. 책에서 보던 유적을 실제로 보는 감격은 커녕 담담하게 보고 왔었다. 그러나 짧은 일정 속에 단 하루 였지만 가이드 분과 함께한 바티칸 성당과 주요 로마 유적지에 대한 이야기는 여행을 다녀와서도 늘, 나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다.

모든 여행객들이 그렇겠지만 나역시 다녀온 후에야 더 그 분야의 책을 읽곤 했다. 특히 유럽, 로마의 역사의 이야기는 읽어도 늘 새로운 기분이 들었다. 가이드분의 이야기는 오랜시간 걸쳐 이탈리아에 살고 역사와 예술, 음악등 다방면에 걸쳐 모르는 분야가 없을 정도로 깊고 다채로웠다. 사실, 로마의 역사를 제대로 알고 싶은데 어디서 부터 손을 대야할지 몰랐지만 저자 정태남의 이야기는 간결하고도 호기심어린 시선으로 책을 바라보게 되었다.

저자의 사진처럼 똑같은 배경으로 찍은 사진도 있고, 내가 좋아하는 깜피돌리오 언덕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그때는 설명을 들어 알았지만 지금은 가물가물했던 이야기들이 설명되어 또 한번 감상에 젖기도 했다. 몇 달 전에 소설가 김영하씨의 책 <네가 잃어버린 것을 기억하라>를 읽고 나서 그가 EBS에 출연했던 <세계테마기행 > 시칠리아편을 보면 그는 시칠리아로 가기전 로마를 여행하는 장면이 나온다. 로마의 중앙역인 테르미니역에 내려 비아 아피아를 돌아보고, 카라칼라 욕장을 둘러보며 그가 벤치에 않아 스케치를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는 30년 동안 이탈리아의 공인 건축가로 그곳에 살며 고대 건축과 예술을 접했고,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고대로마 관련 저서들을 보며 그것을 바탕으로 로마 역사의 흐름을 간단히 한 권의 책으로 냈다고 머릿말에서 밝히고 있다. 이는 로마의 역사를 간단히 정리하면서도 그의 글과 지도, 사진이 첨부된 책이 바로 <로마 역사의 길을 걷다>였다.

로마를 산책하듯 바라볼 수 있으며, 짤막하게 역사적 흐름을 언급하며 더 깊은 로마의 역사의 호기심을 일깨워 준 책이었다. 이 책을 보고 있으면 좀 더 많이, 깊이 로마를 알고 싶은 욕구가 마구마구 생겨난다. 그의 사진 글 만큼이나 정교하게 다듬어져 있어서 글과 사진만으로도 즐겁게 로마 여행을 할 수 있었다. 여행을 가기 전에도, 갔다 온 후에도 로마는 나에게 늘, 알고 싶은 나라였고 도시였다.

저자의 책 중 절판 된 책이 많아 아쉬움이 많았다. 이 책 뿐만 아니라 절판 된 책 중에서도 좋은 책들은 다시 개정판으로 나오거나 다시 나왔으면 하는 바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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