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빵 1
토리노 난코 지음, 이혁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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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12 모이터


《토리빵 1》

토리노 난코 글

이혁진 옮김

AK 커뮤니케이션즈

2011.1.30.



《토리빵》을 세 해 앞서 여름이던 이맘때 장만했다. 책을 산 지 닷새 뒤에 하얀 새우리를 샀다. 어느 날 내가 누운 창가에 참새가 날아왔다. 누운 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틀에 앉은 참새는 내가 안쪽에서 저를 보는 줄을 모르더라. 살금살금 일어난다. 들키지 않으려고 천천히 움직인다. 가리개를 살포시 들고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하다가 참새하고 눈이 맞았다. 여태 잘 놀던 참새가 깜짝 놀라서 포르르 날아갔다.


겨울이면 굴뚝 아닌 굴뚝, 보일러 연통에 비둘기 한 짝이 가끔 내려앉았다가 날아간다. 어쩌면 알아볼까 싶어, 에어컨 실외기에다가 물그릇을 두고 질그릇에 사과하고 감자를 담아 보았다. 새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렇게 한 달을 기다리니 드디어 새가 물을 먹으러 왔다. 대단히 기뻤다. 


우리 집으로 목을 축이려고 새가 찾아오고서 여섯 달째부터는 빵을 잘게 뜯어서 날마다 두었다. 가끔 멸치하고 베이컨도 담았다. 바나나나 사과는 잘 먹지 않더라. 까치가 모이터를 짓밟아 지저분하기에 비닐을 깔았더니 바람에 휙 날아간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 만한 묵직한 그릇으로 바꾸었다.


여름에는 빵이 빨리 말랐다. 저녁에 뜯어 두면 덜 마르고, 아침 다섯 시쯤 까치가 와서 먹었다. 여름이라 날이 일찍 새서 그런지 까치가 일찍 일어난다. 봄만 해도 일곱 시 넘어서 아침 먹으러 왔다. 


《토리빵》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러니까 철마다 찾아드는 새와 가까이 있는 풀꽃나무를 두고두고 지켜보는 하루를 만화로 담아낸다. 먼저 단출하게 네 칸에 한 갈래씩 이야기를 풀어내는 얼거리로 스물네 꼭지를 풀어낸다. 직박구리 개똥지빠귀 백조 오리 쇠박새 휘파람새 까마귀 사랑해 할미새 동박새 콩새 쇠딱따구리 딱따구리 잠자리 닭 두견새 부엉이 같은 새를 만난 이야기가 흐른다. 사프란 목련 주목 으름덩굴 노박덩굴 해바라기 고사리 딸기 툴립 등나무 버찌 같은 풀꽃나무에다가, 민달팽이 거미 털벌레 애벌레 고양이 뱀 양 멍게 갯지렁이 메뚜기 여치 같은 여러 숨결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준다.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짐승에 벌레에 풀꽃이 나온다. 어떻게 이 많은 이야기를 이렇게 단출하면서 앙증맞게 풀어내고서, 또 시까지 써낼 수 있을까. 우리 집 모이터는 까치와 비둘기와 까마귀만 다녀갔는데. 


도시에 있는 아파트라고 하는 집은 마당이 없다. 도시에서는 단독주택도 마당이 안 넓다. 고작 자동차가 지나가는 조그마한 골목이 고작이랄까. 모이터를 놓을 자리도 거의 없다. 아파트라면 마당이 아예 없으니 나처럼 바깥마루에 매단 에어컨 실외기를 모이터로 삼는다.


옛날 옛적에는 마을이 숲이었고, 이 숲에서 새를 만났다. 이제 우리는 숲으로 가지 않으면서 아파트에서 까치를 만나고 까마귀나 비둘기를 본다. 소나무나 큰나무 우듬지에 집을 짓고 사는 새인데, 높다란 아파트에서 이 새를 만난다.


우리가 숲을 헐고 높은 집을 차지해도 새가 찾아온다.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아파트라고 해도 아파트 뜨락에 나무가 있기 때문일까. 새를 부를 마당이 없어도 물냄새나 물빛을 느끼고서 내려앉을까.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는 새가 내려앉아서 목을 축일 냇물이나 못물을 찾기 어렵다.


가게에서 일하느라 새를 느긋이 지켜볼 틈이 없어 빠듯하지만, 이따금 창밖을 내다볼 적에 모이터에 새똥이 수북해도 어쩐지 반갑다. 어느 새가 다녀갔으려나 생각하면서 웃는다.


《토리빵》이라는 만화책을 그린 아가씨는 모이터에 찾아드는 새를 지켜보면서, 또 스스로 살아가는 마을 곳곳에서 만나는 새를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때로는 숲에 깃들어 숱한 새를 마주하면서, 이 모든 새한테서 기운을 얻는다고 느낀다. 그리고 새가 반기는 풀꽃나무하고 숲이 만화가한테 마음을 북돋우는 바탕일 테고, 나로서도 하루를 북돋우는 숨결이 된다.


새를 늘 바라보면 노래가 절로 나오겠지. 새는 늘 노래하니까. 그러고 보니, 새를 곁에 두는 사람도 늘 노래를 하겠구나. 노래가 시이지. 시가 노래이지. 새를 품으면서 노래하고, 새 곁에서 노래하는 글을 한 줄 두 줄 적고.



2023.08.08.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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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꾸로 사는 재미
이오덕 지음 / 산처럼 / 200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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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11 거꾸로


《거꾸로 사는 재미》

이오덕 글

산처럼

2005.2.20.



이오덕 님이 멧골학교에 깃들어 아이들을 가르치던 곳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데하고 가깝다. 어릴 적에 나는 멧골짝에서 놀고 뛰고 학교를 다녔고, 집안일을 하고 심부름을 다녔다.


멧골짝에는 나무도 흙도 숲도 늘 곁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도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도 언제나 나무에 흙에 숲을 본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노상 마주하는 나무랑 흙이랑 숲이다.


이오덕 님이 처음 《거꾸로 사는 재미》를 쓰던 무렵에, 나로서는 국민학교란 데를 한창 다녔다. 2005년에 새롭게 나온 책이지만 참 아득하다 싶은 예전 이야기와 예전 눈길을 들려준다. 1970∼80년대 시골은 오늘날 시골하고 아주 다르다. 뭐, 시골뿐 아니라 도시도 예전하고 오늘은 아주 다르지. 대구만 해도 1970∼80년대하고 2020년대는 아주 딴판이라고 할 만하다. 딸아이가 사는 서울이란 곳도 예전하고 오늘은 확 다르리라.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자기 보물을 옳게 가질 줄 모르는 민족이 불행하다. 말은 그 민족의 피”라고 들려주는 대목을 곱씹는다. 어린이를 높이 여기면서 슬기롭게 가르칠 일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는데, 내가 어릴 적에 다니던 학교는 “우리말로 부드럽거나 상냥하게 가르치거나 얘기하는” 데하고 멀었다. “우리말로 한마디로 다정하게 얘기할 줄 몰랐고, 수업료 독촉했고, 날마다 관솔을 따러 산으로 끌고 다니고, 냇가에 잔디 파고 돌 주워 나르는 개간을 시키며 일본 아이들 훈련을 한” 셈이라고 외치는 대목을 한참 돌아보았다. 그야말로 학교는 배우는 터전하고는 한참 멀었다. 요새 학교는 예전 같지 않겠지? 그런데 학교가 예전처럼 다그치고 닦달하고 괴롭히는 곳은 아닌 모습으로 바뀌었어도, 아이들을 올바로 가르치거나 이끄는 몫을 어느 만큼 하려나?


내가 살아온 나날을 글로 쓰자고 다짐하면서 글쓰기를 배우고, 시도 써 보고, 책도 냈다. 그런데 문학강의를 들어 보면, 삶이나 숲(자연)을 사랑으로 돌아보도록 얘기하지 않더라. 문학이라는 이름은 다들 무슨 문학상을 타느냐에 사로잡히고, 글재주를 키우는 데에 기울었다고 느낀다.


1983년에 처음 나온 책이 2005년에 다시 나올 만하다. 아니, 1983년에 이런 책을 쓴 이오덕 어른이 놀랍다. 2005년에 다시 나온 책을 알아보면서 우리 마음과 숲을 푸르게 돌보자고 돌아본 이웃은 얼마쯤 될까. 2023년 오늘날에는 이오덕 어른이 ‘어린이와 숲과 우리말과 시골’을 하나로 바라보면서 사랑하자고 외친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까.


이오덕 어른이 숨을 내려놓고 멧새로 돌아간 지가 스무 해가 된다. 벌써 그렇게 흘렀나 싶어 깜짝 놀란다. 마치 엊그제 쓴 듯한 글인데, 꼭 엊그제 우리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글 같은데.


나는 경북 의성 멧골짝에서 살며 학교를 다닐 적에 책이라곤 구경하기 어려웠고, 읽을 생각도 못 냈다. 그런데 이오덕 님은 멧골학교 어린이를 가르치면서 책을 늘 가까이 두었고, 어린이하고 함께 글을 쓰셨네. 문학이라는 글쓰기를 안 하고서, 삶을 그대로 글로 옮기셨네. “새끼 고양이를 개가 혀로 핥아 주지만 고양이 새끼 밑을 핥아 주어야 똥오줌을 누지 그렇지 않으면 배가 터진다. 고양이한테 핥아서 똥오줌 가리는 길과 쥐 잡는 기술은 개한테 배우지 못했다” 같은 대목을 되돌아본다. 우리는 예전이나 요즘이나 ‘흉내를 내는 틀’에 꼼짝없이 갇혔으나 갇힌 줄 모르는 모습일 수 있겠다.


둘레에서 문학을 한다는 적잖은 분들은 하도 다른 작가들 글을 베껴서 내놓느라 베낀(표절·도용) 줄조차 느끼지 못 한다. 우리는 왜 우리 삶을 우리 손과 눈과 마음으로 안 쓸까? 왜 문학단체나 문학강의는 우리 손길과 생각으로 삶과 살림살이를 그대로 쓰도록 이끌지 않을까?


《거꾸로 사는 재미》를 덮고서 내 책꽂이를 돌아본다. 이오덕 님 책이 꽤 있다. 하나씩 다시 읽어 보아야겠다. 아무렇게나 섞여서 살지 않고, 거꾸로 살아가며 푸른 숨결을 다시 배워야겠다.


2023.08.06.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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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스 - 매와 소년
배리 하인즈 지음, 김태언 옮김 / 녹색평론사 / 199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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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10 매


《케스-매와 소년》

베리 하인즈 글 

김태언 옮김

녹색평론사

1998.08.20.



나는 어릴 적에 매를 맞았다. 학교에서는 우리가 떠들거나 무엇을 잘못했다고 여기면 책상에 무릎 꿇고 앉으라 시키고는 발바닥을 때렸고, 칠판에 팔을 뻗치라 하고는 엉덩이를 때렸다. 덩치가 크고 힘이 센 어른들이 윽박지르면서 매를 드니, 우리처럼 몸도 나이도 작은 아이들은 얌전하게 시키는 대로 따를 뿐이었다.


왜 예전에 학교에서는 말로 부드러이 타이르지 않았을까. 왜 예전에 교사들은 하나같이 매를 들고 윽박지르면서 나무랐을까. 그런데 매맞는 일은 우리 문화나 역사가 아니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 나리한테 붙들려 가서 볼기(곤장)를 맞는 일이 있었다지만, 마을에서 어른이 아이들을 때리는 짓은 아니었다. 나라에서 힘으로 아랫사람을 윽박지르는 길이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삼은 때부터 매바심이 퍼졌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학교라는 곳도 일제강점기부터 다닐 수 있었다. 예전에 조선시대에는 양반이나 사대부만 배우러 다닐 수 있을 뿐, 논밭을 짓는 사람들은 따로 배우러 다니지 못 하고, 그저 집에서 어버이 곁에서 함께 일하고 살림할 뿐이었다. 조선시대 볼기질도, 일제강점기에 퍼졌다고 하는 매질(체벌)도, 알고 보면 힘으로 위아래를 세운 이들이 윽박지르는 힘(무기나 권력)이었구나 싶다.


《케스-매와 소년》에 나오는 아이는 학교에서 매우 시달린다. 또래한테도, 교사한테도, 얻어맞기도 하고 들볶이기도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이웃나라에서도, 서양에서도 아이들이 학교에서 얻어맞았구나. 그러나 힘이 세거나 이름이 높거나 돈이 많은 어버이를 둔 아이들은 얻어맞을 일도 없고 들볶일 일도 없었겠지. 아무것도 없다고 여기는, 빈손인 가난한 집 아이들이 얻어맞고 시달리고 괴롭게 살았다.


《케스-매와 소년》에 나오는 아이는, 책이름에 나오듯 ‘매’를 돌보고 품으면서 하루를 보낸다. 이 아이한테는 ‘매’가 동무요 말벗이요 한집안이라고 여길 만하다. ‘애완동물’이 아닌, 요즘 흔히 말하는 ‘반려동물’일 수 있고, 어쩌면 ‘반려동물’이란 이름을 훨씬 넘어서는 ‘마음지기’나 ‘곁지기’라고 여길 만하다.


이제 와 우리 집 아이들한테 잘못을 빌 일인데, 내가 어릴 적에 학교에서 으레 매를 맞아 버릇을 하다 보니, 내가 낳은 우리 집 아이들이 뭔가 잘못했다 싶을 적에 곧잘 매를 들었다. 부끄럽다. 나부터 어릴 적에 학교에서 매를 맞는 일이 싫었는데, 어떻게 우리 집 아이들한테 매를 들 수 있었을까? 내가 내 마음과 사랑을 바라보거나 찾지 않았기에, 그만 학교나 사회에 길들었겠지. 아니, 학교나 사회에 길들었어도 나부터 바꾸거나 털 수 있었는데, 아이들을 낳아 돌볼 적에는 미처 여기까지 살피지 않았다. 바쁘고 힘들다는 핑계로 쉽게 매를 들어 꾸짖으면 바로바로 넘어갈 수 있겠다고 여겼다.


하늘을 씩씩하게 날아오르는 ‘매’를 품는 아이는 ‘매’한테서 ‘날개(자유)’를 느낄 뿐 아니라, 이 ‘날개(자유)’는 어느 누구한테도 똑같이 주먹질로 앙갚음을 하지 않는 ‘새빛(평등이나 평화)’를 바라보는 눈빛으로 나아가는 실마리였지 싶다. 집은 사랑이 깃들고 아이가 마음껏 놀면서 배우며 자라도록 학교가 도와야 한다. 학교에 들어가면 알음알음 과외나 학원을 보내며 어버이가 겨루거나 싸우도록 부추기는데, 이제는 이런 짓과 굴레를 멈춰야 한다. 어버이가 돈이나 힘이나 이름이 얼마나 높거나 크거나 많든, 아이들을 함부로 가르거나 따돌리지 않아야 하고, 고루 사랑을 찾고 바라보도록 이끌어야 한다.


더 배워서 더 좋다는 대학에 가면 무엇이 나을까? 더 좋거나 더 낫다는 대학을 마친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우리나라인데, 무엇이 나아졌거나 아름다울까? 좋은 직장이나 안정된 직장이라는 이름은 허울이 아닐까? 숨막히는 싸움터에서 스스로 죽어나가면서 ‘날개(자유)’를 스스로 잊고 ‘새빛(평등이나 평화)’도 스스로 잃는 굴레 아닐까?



2023.08.03.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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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 우리말 지킴이 최종규와 어린이가 함께 읽는 철수와영희 우리말 시리즈 1
최종규 지음, 강우근 그림 / 철수와영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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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09 꽃처럼 피는 말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

최종규 글

강우근 그림 

철수와영희

2014.3.1.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은 2020년 12월 19일에 처음 읽었다. 벌써 여러 해 지났다. 그날은 큰딸한테 동생(나한테는 작은딸)이 언제부터 안경을 끼었는지 아느냐고 물었는데, “엄마가 기억할 일!”이란 대꾸를 듣고서 어쩐지 기운이 쭉 빠졌다. 엄마가 옛일이 가물가물해서 잊거나 헷갈릴 수도 있는데, 그냥 알려주면 안 되나.


그러나 곰곰이 생각하면, 엄마로서 여러 가지를 쉽게 잊어버렸다. 집안일이며 가게일로 바쁘다는 핑계로, 또 엄마가 집과 가게를 넘어 엄마 삶을 글로 쓰고 싶다는 꿈을 품고서, 어쩐지 가볍게 지나치거나 잊어버리는 일이 늘었다.


기운이 빠지는 날이면 으레 집에서 가까운 멧골에 올라 숲빛을 느껴 보려 한다. 답답할 적에는 집에 그냥 있어도 답답하고, 가게일을 보아도 답답하지만, 좀 귀찮거나 춥거나 더운 날 억지로라도 숲에 깃들면, 조금 앞서까지 답답하던 숨통이 트인다. 아무래도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은 말 한 마디를 숲에서 돌아보고 찾아보면서 스스로 숨통을 트자는 이야기를 들려준다고 느낀다.


외워서 쓸 말이 아닌, 스스로 숲인 줄 느끼면서 생각하는 말을 들려준다고 할까. “이 꽃은 이 이름입니다!” 하고 알려주는 이야기가 아닌, “이 꽃은 어떤 이름일까요? 스스로 생각해서 이름을 붙여 봐요!” 하고 속삭이는 이야기라고 하겠다. 그러고 보니까, 《숲에서 살려낸 우리말》은 책끝에 낱말모음하고 낱말풀이를 따로 붙이기는 하되, 이런 말이 예쁘거나 저런 말을 써 보자고 하는 줄거리는 없다. 이런 말은 나쁘니까 쓰지 말라고도 안 하고, 저런 말로 고치자는 줄거리도 아니다. 그저 우리 스스로 숲으로 나들이를 가듯, 우리 마음을 가꾸는 생각을 이루는 말씨(말씨앗) 하나를 가만히 헤아리면서 품어 보자고 이끄는 듯하다.


이 책은 숲과 해와 흙과 물과 바람이 하는 말을 으뜸으로 삼아서 우리말을 풀어낸다고 본다. 햇볕을 먹고 비를 먹고 바람을 먹고 자라는 풀꽃나무라면, 우리가 풀이나 꽃을 나물로 삼을 적에, 또 나무열매를 즐길 적에, 저절로 햇볕과 비와 바람도 받아들이는 셈이겠지.


사람도 벌레도 짐승도 똑같이 햇볕과 비와 바람을 받아들이면서 이 별에서 함께 살아간다. 다시 생각해 보니, 바다도 물도 한몸이고, 사람도 바다도 한몸이고, 사람도 하늘도 한몸인데, 사람도 숲도 한몸이구나 싶다.


우리가 누리는 이 뿌리를 꿈으로 그리고, 말밑 하나하고 삶을 차곡차곡 겹치다 보면, 저절로 생각이 자라나고, 둘레를 맑게 보면서 보금자리도 스스로 싱그러이 가꾸는 슬기를 엿볼 수 있겠구나. 씨앗 하나가 천천히 자라 나무가 되듯, 땅에 안겨 잠자던 풀꽃 씨앗이 거듭나고 깨어나듯, 우리 말글도, 우리 마음도, 아이들하고 보내는 하루도, 곁님하고 이루는 살림도, 언제나 스스로 생각씨앗에 마음씨앗에 사랑씨앗으로 돌보면 스스로 피어나겠구나.


큰딸한테 다시 물어봐야겠다. “엄마가 툭하면 잊어버리네. 이 일을 우짤꼬? 우리 큰딸하고 작은딸 이야기를 글로 쓰다가 생각이 안 나서 그러는데, 너그 동생이 처음 안경 끼던 날 좀 얘기해 주라. 엄마 눈길이 아닌 네(큰딸) 눈길로 본 그날 하루를 들려주라. 응? 미안하고 고맙데이.”



2023. 08.02.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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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문의 책 아나스타시아 6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한병석 옮김 / 한글샘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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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08 푸른 눈으로 쓴다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

블라지미르 메그레

한병석 옮김

한글샘

2021.5.20.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을 2021년 7월 22일에 처음 펼쳤다. 그날은 머리가 얼음덩이 같고 쩍쩍 갈라지듯이 아팠다. 다섯 시간 동안 책을 읽었지만 반도 못 넘겼다.


두 해가 지난 오늘 다시 들춘다. 오늘은 두 해 앞서처럼 머리가 차갑거나 갈라지듯 아프지 않다. 두 해 앞서는 다섯 시간을 붙잡아도 못 읽은 책인데, 오늘은 끝까지 다 읽을 수 있다.


책도 때에 따라서 다르구나. 아름답거나 훌륭하다는 책도 스스로 힘들거나 괴롭거나 지치는 날에는 한 줄조차 버겁겠지. 스스로 웃고 즐겁게 살림을 가꾸는 날이라면, 안 아름답거나 안 훌륭한 책에서도 배울거리를 얻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즐거운 날에 구태여 안 아름다운 책을 골라서 읽어 보고 싶지는 않다.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에 적힌 ‘가문의 책’이 무언가 했더니, 모든 사람이 저마다 “우리 집안 이야기를 책 하나로 남길 수 있을 만큼 스스로 써야 한다”는 줄거리이다. 아이를 낳을 적에는, 남한테 맡겨서 가르치지 말고, 어버이로서 먼저 스스로 ‘아이가 물려받을 살림’을 즐겁고 아름답게 지으면서 고스란히 물려줄 줄 알아야 한다고 들려준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아름다운 살림을 물려주자면 ‘3000평(1헥타트)’이 넘는 땅이 있어야 한단다. 이 땅은 풀과 꽃과 나무가 푸르게 어우러지면서, 손수 짓는 땅일 뿐 아니라, 새와 풀벌레와 여러 짐승도 깃들 수 있는 땅이어야 한다고 한다.


의성 멧골짝에서 태어나고 자란 어린 나날을 돌아본다. 우리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우리 땅”을 얻고 누려서 지으려고 얼마나 땀을 들이고 품을 팔았는가. 그때에 나는 우리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우리 땅”에 “우리 집”을 얻고 지으려고 애쓴 품과 땀을 얼마나 알아보았을까?


곰곰이 생각하면, 군것질을 하려고 ‘알 굵은 마늘’을 몰래 빼내어 엿장수한테 가져다주기 일쑤였다. 엿장수는 우리 같은 아이들이 몰래 빼내는 ‘알 굵은 마늘’을 엿 조금하고 바꾸면서 목돈을 벌었으리라. 그런데 그 엿장수도 그 엿장수대로 “우리(엿장수네) 집과 땅”을 얻으려는 품과 땀이었겠지.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을 차근차근 읽는다. 짝을 맺는 두 사람은 오직 사랑이라는 눈빛과 마음일 때에만, 아이가 사랑을 받아서 태어난다고 한다. 속으로 뜨끔하고 지난날 내 모습이 겹치면서 부끄럽다. 세 아이를 낳으며 어머니란 이름으로 살아오기까지, 첫째랑 둘째를 배었을 적에 ‘아직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아이가 너무 빨리 들어섰네?’ 하면서 싫으면서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다. ‘돈이 비록 적은 살림’이라 하더라도, 첫째랑 둘째하고 오순도순 사랑으로 짓는 우리 보금자리를 짓자는 마음이 옅었다. 너무 부끄럽다.


나를 낳아 돌본 우리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집도 땅도 제대로 없던 의성 멧골 깊숙한 데에서, ‘나라는 숨결’을 몸에 처음 품던 어머니는, 또 아버지는, 그 옛날 조그맣고 가난한 멧골집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힘들거나 배고픈 일이 있어도 조금 더 줄이고 나누면서 함께 살아낼 사랑을 그리지 않았을까. 그러한 사랑이 있었기에 내가 태어나서 자랐고, 나는 어느새 어머니가 되어 세 아이를 낳지 않았을까.


어느 날 둘째(작은딸)한테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을 읽고서 느끼고 부끄러웠던 지난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제 짝을 만나 따로 살아가는 둘째는 부끄러운 어머니 지난날 마음을 듣고는 울었다. 그래도, 부끄러웠어도 이렇게 부끄러운 줄 배운 마음이라서 털어놓기로 했고, ‘우리가 잠자리에 들 적에, 밝고 맑게 생각을 다스리면서 꿈을 품을 적에 우리한테 찾아와서 태어나는 아이는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말을 내 입으로 들려줄 수 있기도 했다.


아이가 사랑받으면서 태어난다면, 어버이는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이리라. “우리 집안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줄거리란, 이런 부끄러운 모습도 감추지 말고 차근차근 되새기면서, 어제를 이은 오늘을 새롭게 바라보고 앞날을 즐겁게 빛낼 사랑으로 그리라는 뜻이겠지. 그러리라.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낳은 의성 멧골짝 숲처럼, 오늘은 비록 대구 한복판 아파트라 하더라도 풀꽃을 품고 나무를 그리는 마음을 고스란히 옮기는, 햇빛을 닮고 담는 푸른 눈길로 글을 쓰고 싶다.



2023.08.01.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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