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사는 재미
이오덕 지음 / 산처럼 / 2005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게 삶으로 011 거꾸로


《거꾸로 사는 재미》

이오덕 글

산처럼

2005.2.20.



이오덕 님이 멧골학교에 깃들어 아이들을 가르치던 곳은 내가 태어나고 자란 데하고 가깝다. 어릴 적에 나는 멧골짝에서 놀고 뛰고 학교를 다녔고, 집안일을 하고 심부름을 다녔다.


멧골짝에는 나무도 흙도 숲도 늘 곁에 있다. 아침에 일어나도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도 언제나 나무에 흙에 숲을 본다. 집에서도 마을에서도 학교에서도 노상 마주하는 나무랑 흙이랑 숲이다.


이오덕 님이 처음 《거꾸로 사는 재미》를 쓰던 무렵에, 나로서는 국민학교란 데를 한창 다녔다. 2005년에 새롭게 나온 책이지만 참 아득하다 싶은 예전 이야기와 예전 눈길을 들려준다. 1970∼80년대 시골은 오늘날 시골하고 아주 다르다. 뭐, 시골뿐 아니라 도시도 예전하고 오늘은 아주 다르지. 대구만 해도 1970∼80년대하고 2020년대는 아주 딴판이라고 할 만하다. 딸아이가 사는 서울이란 곳도 예전하고 오늘은 확 다르리라.


“하나 밖에 없는 소중한 자기 보물을 옳게 가질 줄 모르는 민족이 불행하다. 말은 그 민족의 피”라고 들려주는 대목을 곱씹는다. 어린이를 높이 여기면서 슬기롭게 가르칠 일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는데, 내가 어릴 적에 다니던 학교는 “우리말로 부드럽거나 상냥하게 가르치거나 얘기하는” 데하고 멀었다. “우리말로 한마디로 다정하게 얘기할 줄 몰랐고, 수업료 독촉했고, 날마다 관솔을 따러 산으로 끌고 다니고, 냇가에 잔디 파고 돌 주워 나르는 개간을 시키며 일본 아이들 훈련을 한” 셈이라고 외치는 대목을 한참 돌아보았다. 그야말로 학교는 배우는 터전하고는 한참 멀었다. 요새 학교는 예전 같지 않겠지? 그런데 학교가 예전처럼 다그치고 닦달하고 괴롭히는 곳은 아닌 모습으로 바뀌었어도, 아이들을 올바로 가르치거나 이끄는 몫을 어느 만큼 하려나?


내가 살아온 나날을 글로 쓰자고 다짐하면서 글쓰기를 배우고, 시도 써 보고, 책도 냈다. 그런데 문학강의를 들어 보면, 삶이나 숲(자연)을 사랑으로 돌아보도록 얘기하지 않더라. 문학이라는 이름은 다들 무슨 문학상을 타느냐에 사로잡히고, 글재주를 키우는 데에 기울었다고 느낀다.


1983년에 처음 나온 책이 2005년에 다시 나올 만하다. 아니, 1983년에 이런 책을 쓴 이오덕 어른이 놀랍다. 2005년에 다시 나온 책을 알아보면서 우리 마음과 숲을 푸르게 돌보자고 돌아본 이웃은 얼마쯤 될까. 2023년 오늘날에는 이오덕 어른이 ‘어린이와 숲과 우리말과 시골’을 하나로 바라보면서 사랑하자고 외친 목소리에 얼마나 귀를 기울일까.


이오덕 어른이 숨을 내려놓고 멧새로 돌아간 지가 스무 해가 된다. 벌써 그렇게 흘렀나 싶어 깜짝 놀란다. 마치 엊그제 쓴 듯한 글인데, 꼭 엊그제 우리 모습을 고스란히 담은 글 같은데.


나는 경북 의성 멧골짝에서 살며 학교를 다닐 적에 책이라곤 구경하기 어려웠고, 읽을 생각도 못 냈다. 그런데 이오덕 님은 멧골학교 어린이를 가르치면서 책을 늘 가까이 두었고, 어린이하고 함께 글을 쓰셨네. 문학이라는 글쓰기를 안 하고서, 삶을 그대로 글로 옮기셨네. “새끼 고양이를 개가 혀로 핥아 주지만 고양이 새끼 밑을 핥아 주어야 똥오줌을 누지 그렇지 않으면 배가 터진다. 고양이한테 핥아서 똥오줌 가리는 길과 쥐 잡는 기술은 개한테 배우지 못했다” 같은 대목을 되돌아본다. 우리는 예전이나 요즘이나 ‘흉내를 내는 틀’에 꼼짝없이 갇혔으나 갇힌 줄 모르는 모습일 수 있겠다.


둘레에서 문학을 한다는 적잖은 분들은 하도 다른 작가들 글을 베껴서 내놓느라 베낀(표절·도용) 줄조차 느끼지 못 한다. 우리는 왜 우리 삶을 우리 손과 눈과 마음으로 안 쓸까? 왜 문학단체나 문학강의는 우리 손길과 생각으로 삶과 살림살이를 그대로 쓰도록 이끌지 않을까?


《거꾸로 사는 재미》를 덮고서 내 책꽂이를 돌아본다. 이오덕 님 책이 꽤 있다. 하나씩 다시 읽어 보아야겠다. 아무렇게나 섞여서 살지 않고, 거꾸로 살아가며 푸른 숨결을 다시 배워야겠다.


2023.08.06.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