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리빵 1
토리노 난코 지음, 이혁진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11년 1월
평점 :
품절


작게 삶으로 012 모이터


《토리빵 1》

토리노 난코 글

이혁진 옮김

AK 커뮤니케이션즈

2011.1.30.



《토리빵》을 세 해 앞서 여름이던 이맘때 장만했다. 책을 산 지 닷새 뒤에 하얀 새우리를 샀다. 어느 날 내가 누운 창가에 참새가 날아왔다. 누운 채 가만히 바라보았다. 창틀에 앉은 참새는 내가 안쪽에서 저를 보는 줄을 모르더라. 살금살금 일어난다. 들키지 않으려고 천천히 움직인다. 가리개를 살포시 들고 더 가까이에서 보려고 하다가 참새하고 눈이 맞았다. 여태 잘 놀던 참새가 깜짝 놀라서 포르르 날아갔다.


겨울이면 굴뚝 아닌 굴뚝, 보일러 연통에 비둘기 한 짝이 가끔 내려앉았다가 날아간다. 어쩌면 알아볼까 싶어, 에어컨 실외기에다가 물그릇을 두고 질그릇에 사과하고 감자를 담아 보았다. 새를 기다리기로 했다. 이렇게 한 달을 기다리니 드디어 새가 물을 먹으러 왔다. 대단히 기뻤다. 


우리 집으로 목을 축이려고 새가 찾아오고서 여섯 달째부터는 빵을 잘게 뜯어서 날마다 두었다. 가끔 멸치하고 베이컨도 담았다. 바나나나 사과는 잘 먹지 않더라. 까치가 모이터를 짓밟아 지저분하기에 비닐을 깔았더니 바람에 휙 날아간다. 바람에 날아가지 않을 만한 묵직한 그릇으로 바꾸었다.


여름에는 빵이 빨리 말랐다. 저녁에 뜯어 두면 덜 마르고, 아침 다섯 시쯤 까치가 와서 먹었다. 여름이라 날이 일찍 새서 그런지 까치가 일찍 일어난다. 봄만 해도 일곱 시 넘어서 아침 먹으러 왔다. 


《토리빵》은 봄여름가을겨울, 그러니까 철마다 찾아드는 새와 가까이 있는 풀꽃나무를 두고두고 지켜보는 하루를 만화로 담아낸다. 먼저 단출하게 네 칸에 한 갈래씩 이야기를 풀어내는 얼거리로 스물네 꼭지를 풀어낸다. 직박구리 개똥지빠귀 백조 오리 쇠박새 휘파람새 까마귀 사랑해 할미새 동박새 콩새 쇠딱따구리 딱따구리 잠자리 닭 두견새 부엉이 같은 새를 만난 이야기가 흐른다. 사프란 목련 주목 으름덩굴 노박덩굴 해바라기 고사리 딸기 툴립 등나무 버찌 같은 풀꽃나무에다가, 민달팽이 거미 털벌레 애벌레 고양이 뱀 양 멍게 갯지렁이 메뚜기 여치 같은 여러 숨결 이야기를 하나하나 들려준다. 그야말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짐승에 벌레에 풀꽃이 나온다. 어떻게 이 많은 이야기를 이렇게 단출하면서 앙증맞게 풀어내고서, 또 시까지 써낼 수 있을까. 우리 집 모이터는 까치와 비둘기와 까마귀만 다녀갔는데. 


도시에 있는 아파트라고 하는 집은 마당이 없다. 도시에서는 단독주택도 마당이 안 넓다. 고작 자동차가 지나가는 조그마한 골목이 고작이랄까. 모이터를 놓을 자리도 거의 없다. 아파트라면 마당이 아예 없으니 나처럼 바깥마루에 매단 에어컨 실외기를 모이터로 삼는다.


옛날 옛적에는 마을이 숲이었고, 이 숲에서 새를 만났다. 이제 우리는 숲으로 가지 않으면서 아파트에서 까치를 만나고 까마귀나 비둘기를 본다. 소나무나 큰나무 우듬지에 집을 짓고 사는 새인데, 높다란 아파트에서 이 새를 만난다.


우리가 숲을 헐고 높은 집을 차지해도 새가 찾아온다. 사람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아파트라고 해도 아파트 뜨락에 나무가 있기 때문일까. 새를 부를 마당이 없어도 물냄새나 물빛을 느끼고서 내려앉을까. 그러고 보면 도시에서는 새가 내려앉아서 목을 축일 냇물이나 못물을 찾기 어렵다.


가게에서 일하느라 새를 느긋이 지켜볼 틈이 없어 빠듯하지만, 이따금 창밖을 내다볼 적에 모이터에 새똥이 수북해도 어쩐지 반갑다. 어느 새가 다녀갔으려나 생각하면서 웃는다.


《토리빵》이라는 만화책을 그린 아가씨는 모이터에 찾아드는 새를 지켜보면서, 또 스스로 살아가는 마을 곳곳에서 만나는 새를 하나하나 돌아보면서, 때로는 숲에 깃들어 숱한 새를 마주하면서, 이 모든 새한테서 기운을 얻는다고 느낀다. 그리고 새가 반기는 풀꽃나무하고 숲이 만화가한테 마음을 북돋우는 바탕일 테고, 나로서도 하루를 북돋우는 숨결이 된다.


새를 늘 바라보면 노래가 절로 나오겠지. 새는 늘 노래하니까. 그러고 보니, 새를 곁에 두는 사람도 늘 노래를 하겠구나. 노래가 시이지. 시가 노래이지. 새를 품으면서 노래하고, 새 곁에서 노래하는 글을 한 줄 두 줄 적고.



2023.08.08.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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