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문의 책 ㅣ 아나스타시아 6
블라지미르 메그레 지음, 한병석 옮김 / 한글샘 / 2011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게 삶으로 008 푸른 눈으로 쓴다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

블라지미르 메그레

한병석 옮김

한글샘

2021.5.20.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을 2021년 7월 22일에 처음 펼쳤다. 그날은 머리가 얼음덩이 같고 쩍쩍 갈라지듯이 아팠다. 다섯 시간 동안 책을 읽었지만 반도 못 넘겼다.


두 해가 지난 오늘 다시 들춘다. 오늘은 두 해 앞서처럼 머리가 차갑거나 갈라지듯 아프지 않다. 두 해 앞서는 다섯 시간을 붙잡아도 못 읽은 책인데, 오늘은 끝까지 다 읽을 수 있다.


책도 때에 따라서 다르구나. 아름답거나 훌륭하다는 책도 스스로 힘들거나 괴롭거나 지치는 날에는 한 줄조차 버겁겠지. 스스로 웃고 즐겁게 살림을 가꾸는 날이라면, 안 아름답거나 안 훌륭한 책에서도 배울거리를 얻을 수 있을는지 모른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스스로 즐거운 날에 구태여 안 아름다운 책을 골라서 읽어 보고 싶지는 않다.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에 적힌 ‘가문의 책’이 무언가 했더니, 모든 사람이 저마다 “우리 집안 이야기를 책 하나로 남길 수 있을 만큼 스스로 써야 한다”는 줄거리이다. 아이를 낳을 적에는, 남한테 맡겨서 가르치지 말고, 어버이로서 먼저 스스로 ‘아이가 물려받을 살림’을 즐겁고 아름답게 지으면서 고스란히 물려줄 줄 알아야 한다고 들려준다.


어버이로서 아이한테 아름다운 살림을 물려주자면 ‘3000평(1헥타트)’이 넘는 땅이 있어야 한단다. 이 땅은 풀과 꽃과 나무가 푸르게 어우러지면서, 손수 짓는 땅일 뿐 아니라, 새와 풀벌레와 여러 짐승도 깃들 수 있는 땅이어야 한다고 한다.


의성 멧골짝에서 태어나고 자란 어린 나날을 돌아본다. 우리 아버지하고 어머니는 “우리 땅”을 얻고 누려서 지으려고 얼마나 땀을 들이고 품을 팔았는가. 그때에 나는 우리 아버지하고 어머니가 “우리 땅”에 “우리 집”을 얻고 지으려고 애쓴 품과 땀을 얼마나 알아보았을까?


곰곰이 생각하면, 군것질을 하려고 ‘알 굵은 마늘’을 몰래 빼내어 엿장수한테 가져다주기 일쑤였다. 엿장수는 우리 같은 아이들이 몰래 빼내는 ‘알 굵은 마늘’을 엿 조금하고 바꾸면서 목돈을 벌었으리라. 그런데 그 엿장수도 그 엿장수대로 “우리(엿장수네) 집과 땅”을 얻으려는 품과 땀이었겠지.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을 차근차근 읽는다. 짝을 맺는 두 사람은 오직 사랑이라는 눈빛과 마음일 때에만, 아이가 사랑을 받아서 태어난다고 한다. 속으로 뜨끔하고 지난날 내 모습이 겹치면서 부끄럽다. 세 아이를 낳으며 어머니란 이름으로 살아오기까지, 첫째랑 둘째를 배었을 적에 ‘아직 돈을 더 벌어야 하는데, 아이가 너무 빨리 들어섰네?’ 하면서 싫으면서 걱정하는 마음이 있었다. ‘돈이 비록 적은 살림’이라 하더라도, 첫째랑 둘째하고 오순도순 사랑으로 짓는 우리 보금자리를 짓자는 마음이 옅었다. 너무 부끄럽다.


나를 낳아 돌본 우리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어떠셨을까. 집도 땅도 제대로 없던 의성 멧골 깊숙한 데에서, ‘나라는 숨결’을 몸에 처음 품던 어머니는, 또 아버지는, 그 옛날 조그맣고 가난한 멧골집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 힘들거나 배고픈 일이 있어도 조금 더 줄이고 나누면서 함께 살아낼 사랑을 그리지 않았을까. 그러한 사랑이 있었기에 내가 태어나서 자랐고, 나는 어느새 어머니가 되어 세 아이를 낳지 않았을까.


어느 날 둘째(작은딸)한테 《아나스타시아 6 가문의 책》을 읽고서 느끼고 부끄러웠던 지난날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이제 짝을 만나 따로 살아가는 둘째는 부끄러운 어머니 지난날 마음을 듣고는 울었다. 그래도, 부끄러웠어도 이렇게 부끄러운 줄 배운 마음이라서 털어놓기로 했고, ‘우리가 잠자리에 들 적에, 밝고 맑게 생각을 다스리면서 꿈을 품을 적에 우리한테 찾아와서 태어나는 아이는 사랑을 듬뿍 받는다’는 말을 내 입으로 들려줄 수 있기도 했다.


아이가 사랑받으면서 태어난다면, 어버이는 사랑하면서 살아간다는 뜻이리라. “우리 집안 이야기”를 써야 한다는 줄거리란, 이런 부끄러운 모습도 감추지 말고 차근차근 되새기면서, 어제를 이은 오늘을 새롭게 바라보고 앞날을 즐겁게 빛낼 사랑으로 그리라는 뜻이겠지. 그러리라.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나를 낳은 의성 멧골짝 숲처럼, 오늘은 비록 대구 한복판 아파트라 하더라도 풀꽃을 품고 나무를 그리는 마음을 고스란히 옮기는, 햇빛을 닮고 담는 푸른 눈길로 글을 쓰고 싶다.



2023.08.01.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영리한 공주 ㅣ 난 책읽기가 좋아
다이애나 콜즈 글, 로스 아스키스 그림, 공경희 옮김 / 비룡소 / 2002년 4월
평점 :
절판


작게 삶으로 007 세 가지 꿈으로



《영리한 공주》

다이애나 콜즈 글

공경희 옮김

비룡소

2002.4.24.



《영리한 공주》는 동화책이다. 책을 많이 읽는 글벗이 읽어 보라고 했다. 거듭 소리내어 읽으면 글쓰기 실마리를 새삼 알아차릴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 책을 장만하던 2021년 7월 20일을 떠올린다. 그날은 마음이 어수선했다. 어디 가야 하는 날인데, 어디 가는 길에 반쯤 지나서 보니 가방이 없더라. 그냥 이대로 갈까 하다가 차를 돌려 집으로 왔다. 가방을 찾아야겠더라. 더구나 이날부터 우리 가게에서 일하는 분이 휴가를 간다고 하면서 쉬는데, 이분 자리를 채울 일꾼을 미처 찾지 못 했다. 모자라는 일손 걱정에, 집안일 눈치에, 또 제대휴가를 나온다는 아들내미 생각에, 또 나중에 사위가 될 ‘작은딸 남자친구’하고 밥 한 끼 먹기로 한 일에, 온통 뒤죽박죽이었다.


줄거리를 죽 짚어 본다. 아버지인 임금님은 보석만 좋아한다. 딸인 공주가 태어났지만 딸하고 놀 틈을 안 낸다. 아이는 엄마를 일찍 여의었고 아버지가 있는데, 어버이는 어버이로서 아이를 바라보지 않는다. 게다가 임금이란 사람은, 딸이 나이가 어느 만큼 차면 ‘목돈을 받고 시집을 보낼 마음’일 뿐이라, 아이가 뭘 읽고 쓰고 배우지 않기를 바라기까지 했다. 아이는 어버이 손길을 받지 못했지만, 돌봄이(시녀)가 곁에서 돌보고 이끌어 주었다. 글을 읽고 쓸 뿐 아니라, 그림을 그리고, 바느질을 익히고, 살림을 하나하나 배운다.


책을 덮고서 우리 어버이를 떠올린다. 우리 어머니하고 아버지는 학교를 얼마나 다닐 수 있었을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어머니하고 아버지를 어떻게 가르쳤을까? 아이한테 무엇을 가르치는 일이란 무엇이고, 어버이라면 아이한테 무엇을 보여주고 가르쳐야 할까?


《영리한 공주》에 나오는 아이는, 임금님인 아버지가 저를 돌보지 않고 쳐다보지 않더라도 미워하지 않는다. 보석을 받고서 엉뚱한 데에 시집을 보내도 미움이 아니라, 스스로 새길을 열려고 온마음을 기울인다. 아이는 ‘세 가지 꿈(소원)’을 이룰 수 있다는 말에, 보금자리를 정갈하게 치우는 살림길 하나를 바라고, 손수 바느질을 해서 옷살림을 가꾸는 둘을 바라고, 스스로 이야기를 짓고 그림을 담아서 둘레에 환하게 웃음꽃을 피우는 셋을 바란다.


누가 나한테 ‘세 가지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물어보면, 나는 어떤 세 가지를 바랄까? 더 많은 돈일까? 글을 써서 얻을 이름일까? 무슨 일이든 척척 해낼 수 있는 튼튼한 몸에서 넘치는 힘일까? 나는 이 책 《영리한 공주》에 나오는 아이처럼, 먼저 스스로 보금자리를 돌보고, 살림을 짓고, 생각을 펴면서 노래하는 꿈을 고르면서 밝힐 수 있을까?


어둠을 걷어낸 아이는 말을 타고서 새롭게 배우려는 길에 나선다고 한다. 돈(여행경비)을 챙긴다든지, 짐(여행에 쓸 물품)을 꾸리지 않는다. 그저 가볍게 말에 맨몸으로 타고서 호젓하게 길을 나선다.


크고 날이 잘 드는 칼이 있어야 괴물이나 적군을 물리치면서 나를 지킬 수 있지 않는다는 뜻이리라. 아버지인 임금님처럼 돈이 철철 넘쳐나더라도 스스로 즐겁게 하루를 누리지 않는 줄 일찌감치 알아보았다는 뜻이리라. 여기에 스스로 하루를 그리고 스스로 이야기를 짓고 글그림으로 펴는 손길이 함께 있구나.



2023.07.30.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일방통행로 - 사유의 유격전을 위한 현대의 교본
발터 벤야민 지음, 조형준 옮김 / 새물결 / 2007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게 삶으로 006 딱딱하다

 

《일방통행로》

발터 벤야민 글

조형준 옮김

새물결

2013.4.30.

 

 

둘레에서 《일방통행로》는 꼭 읽을 책으로 꼽기에 장만했다. 지지난달에 처음 읽으면서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더라. 오늘 다시 펼쳐도 글이나 이야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읽다가 자꾸만 멈춘다. 옮긴 말씨까지 한몫 거들듯 딱딱하다.

 

글쓴이 발터 벤야민을 풀이한 글을 들춘다. 꽤 길고, 이분이 뭘 하고 뭘 생각해서 뭘 썼다는 뜻인지 종잡기 어렵다. 논문을 써서 냈더니 ‘단 한 줄도 이해할 수 없다’라는 소리를 들었다는데, 절로 고개를 끄떡인다. 우리나라에서는 번역 탓도 크다고 느낀다.

 

집안일을 하고서 다시 읽어 본다. 글은 꼭지 하나마다 짧다. 다음 글하고 이어가는 글이 아닌, 저마다 따로 노는 글이다. 글이름과 줄거리가 잘 와닿지 않는다. 글이름을 건너뛰고서 읽자니 오히려 줄거리를 어림할 수 있겠다.

 

발터 벤야민이라는 분은 이렇게 한자로 얘기했을까? 어쩌면 라틴말을 많이 썼을는지 모르지만, 왜 옮긴이는 우리말로 ‘생각’을 풀어내려 하지 않을까? 딱딱한 글이고, 깔끔하지도 않다. 자꾸만 전쟁이 떠오른다. 책을 반쯤 읽다가 샛길로 빠진다. 드디어 책을 덮고 영화를 본다. 숨을 돌린다.

 

그런데 영화 하나를 다 보고서 책을 이어 읽으려고 펼쳤다가 또 덮는다. 골이 아파서 다른 영화를 본다.

 

에라 모르겠다. 읽다 만 책은 다음날 읽자고 생각한다. 오늘은 영화를 보자. 열두 시가 넘고 새벽 세 시가 넘어도 영화는 안 끝난다. 아홉째 이야기까지 보고 나니 새벽 다섯 시 삼십 분. 이제 마지막 같은데 잠이 쏟아진다. 세 시간 자고 일어나 열째 이야기를 보니 열두째 이야기까지 흐른다. 마침내 다 보았다. 여덟 시간을 본 셈이다.

 

영화를 다 보고서 얼음을 먹는다. 다시 책을 펴서 꾸역꾸역 넘어가니 얼핏 실마리가 잡힌다. 글을 어떻게 쓰는가 하는 이야기가 문득문득 나온다. ‘벽보부착금지’라는 글은 퍽 마음에 닿는다. 한창 쓰는 글을 보여주지 말고 같은 시간 같은 종이 같은 펜으로 쓰라거나, 떠오르는 어떠한 생각도 모르게 지나가지 말고 적어 놓고서 펜에 자석을 붙이라는 말을 한다. ‘이야기(말)는 생각을 정복하지만 글쓰기(문자)는 생각을 지배한다’라는 말이 조금은 와닿는다.

 

끝줄까지 읽었다. 이제 참말로 덮는다. ‘일방통행로’라는 책이름처럼 글쓴이는 홀로 한쪽으로 몰아가려고 한다. 우길 줄 아는 글 같다. 가만히 바라보는 그림을 헤아려 본다. 내가 글 한 줄을 쓴다면, 나는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이 둘레를 보듯이 쓸 일이 아니다. 나는 내가 보는 눈으로 글을 쓸 일이다. 그러나 여태까지 걸어온 길을 되새기면, 내 눈으로 내 하루를 쓰는 글보다는, 자꾸 ‘다른 사람 눈길로 둘레를 보려는 마음’이 짙었구나 싶다.

 

훌륭하거나 뛰어난 분들이 쓴 글을 따라가듯이 쓰더라도 ‘내 글’이 될 수 없다. 내 눈길이나 마음이 어리숙하더라도, 스스로 가만히 바라보고 또 바라보는 동안, 나 스스로 오래오래 보는 동안, 스스로 알아차리거나 배울 수 있다. 딱딱한 책을 다 읽고서 다짐한다. “나는 자랑하듯 쓰지 말아야지. 나는 말을 하듯이 써야지.”

 

2023.07.29.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여자의 일생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9
기 드 모파상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게 삶으로 005 나는 오직 나

 

《여자의 일생》

모파상 글

송면 옮김 

어문각

1986.07.31.


 

《달과 6펜스》읽고서 제자리에 꽂다가, 곁에 있는《여자의 일생》을 집었다. 우리 집에 있는 《여자의 일생은 1986년에 나온 판이니 묵은 책이다. 그런데 첫 쪽을 넘기다가 깜짝 놀랐다. ‘1986학년도 2학기 중간고사 성적 우수’라고 선생님이 적은 글씨가 있고, ‘상’ 도장이 찍혔다.

 

어, 내가 열아홉 살 적에 받은 책이잖아! 여태 몰랐다. 이제야 알아본다. 놀란 나머지 책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뒤쪽 빈종이에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라는 김남조 시인이 쓴 시를 옮겼다. “고독에서 고고로”라는 열여섯 줄도 적어 놓았다.

 

어쩐지 낯간지럽다. 마흔아홉 살이나 쉰아홉 살도 아닌,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무슨 ‘고독’을 씹는다고 했을까. 무슨 ‘빗물 같은 정을 준다’는 시를 읽었을까. 그러나 그때에는 둘레에서 다들 이런 시를 읽었고, 이야기했고, 학교에서도 배웠다.

 

우리 집에는 《여자의 일생》이 두 가지 책으로 있다. 하나는 민음사에서 펴낸 ‘세계문학전집’이다. 새책으로 장만했다. 다른 하나는 고등학생 적에 받은 문고판이다. 이제 해묵은 책이다. 둘을 나란히 펼치면서 어느 책이 읽기에 쉽거나 잘 그렸을까 하고 한 줄씩 견주어 본다. 한글판으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글결이 딱딱하다. 1986년에 나온 묵은 책이 부드럽게 읽힌다.

 

줄거리를 헤아려 본다. 잔느는 아버지 뜻에 따라 줄리앙을 만나 한 달 보름 만에 짝을 맺어서 나폴레옹 고향인 코르시카로 꽃마실을 간다. 꿈을 껴안으면서 살고 싶던 잔느는 첫날밤부터 꿈이 후멀어진다. 사납게 몸을 노리는 짝을 보면서 끔찍할 뿐이다. 더구나 짝은 하녀와 눈이 맞았다. 눈이 오는 날 죽으려고 했지만 아기를 밴 줄 알았다. 삶에 버림받고 숨이 넘어갈 듯한 마음을 처음 느끼면서 이제는 아이한테 매달린다. 그러나 이러고 나서도 끔찍하거나 괴롭거나 고단한 일만 잇따른다. 애써 돌본 아이는 노닥거리면서 갖가지 말썽만 일으킨다. 책이름이 “여자의 일생”인데, 여자로 살아가는 길이란 이토록 괴롭고 끔찍할 뿐인가. 무엇보다도 이런 줄거리를 담은 책을 왜 ‘성적 우수 여고생 상품’으로 주었을까? 지난날 학교는 여성과 남성을 어떤 눈으로 보았을까?

 

《여자의 일생》은 “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즐거운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닌가 봐요.” 같은 말을 들려주면서 맺는데, 글쓴이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이 보낸 삶을 글로 옮겼다는데, 이 나라와 사회와 학교는 우리한테 그저 ‘현모양처’ 되기만을 바라고, 모든 말썽과 티끌을 고분고분 받아들이라고 억누리려는 마음이지 않았나 싶다.

 

1986년에 학교에서 받은 《여자의 일생》을 옮긴 사람은 아마 시골에서 자란 분이라고 생각한다. 먼나라 시골빛을 잘 옮겨냈다고 본다. 그리고 모파상이라는 사람을 새삼스레 바라본다. ‘남성’이 억지스럽고 사납게 만든 굴레를 낱낱이 그려낸 셈 아닌가. 어머니가 겪고 아버지가 보여준 모습에다가 동생이 살아간 길을 고스란히 옮겼으니 참 대단하다.

 

서른일곱 해 동안 우리 집 책시렁에 꽂힌 채 먼지만 먹던 책을 이제야 쓰다듬었다. 고등학생이던 1986년에는 ‘현모양처’라는 말이 꽤 멋지다고 여긴 적도 있지만, 여성도 남성도 ‘현모’도 ‘현부’도 아닌 ‘사람’으로 만나서 ‘사랑’을 참답게 찾을 수 있을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딸아들한테 골고루 조그맣게 울타리로 살고는 싶지만, 현모양처는 아닌, 그저 어머니로서 나로서, 이따금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다.


2023. 07. 27. 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달과 6펜스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8
서머셋 몸 지음, 송무 옮김 / 민음사 / 200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작게 삶으로 004 달과 일

 

《달과 6펜스》

서머싯 몸 글

송무 옮김

민음사

2000.6.20

 

 

《달과 6펜스》는 2020.12.18 구미에 있는 〈삼일문고〉에서 샀다. 그날 ‘세계문학전집’을 한 꾸러미로 삼백스무 자락을 장만했다. 하루에 하나씩 읽으면 한 해 걸리고, 이틀에 하나 읽으면 두 해가 걸리리라 여겼다. 이 마음으로 읽으면 세 해쯤 넉넉잡아서 다 읽을 줄 알았다. 이제 여섯 달이 지나면 세 해째에 이르는데, 여태 펼치지 못한 책이 더 많다.

 

《달과 6펜스》는 2021.1.7에 첫 쪽을 넘겼다. 가게에서 일을 하다가도 틈틈이 책을 읽을 생각에 즐거웠다. 그렇지만 이내 이 마음이 훅 꺼져버렸다. 이날은 저녁에 가게 다른 일꾼이 바코드가 있는 자리를 손으로 잡고는 여러 번 찍는 척하더라. 그러니까, 가게 물건을 마치 팔린 듯 찍찍 긁는 시늉을 하면서 빼돌린 셈이다.

 

다른 일꾼이 집으로 돌아간 뒤에 시시티비를 열 번쯤 돌려보았다. 그냥 넘어갈 수 없기에, 이이한테서 이야기를 들으려고, 이튿날 가게에 십 분쯤 일찍 나오라고 했다. 그런데 “십 분 일찍 나오면 제 시간만 버리잖아요. 그렇게 일찍 나갈 수 없으니 할 말 있으면 바로 하세요. 혹시, 제가 그거 먹은 일로 그러십니까?”

 

‘그거 먹은 일’이라니, 아니 도둑질을 해놓고서 오히려 큰소리를 하네. 이이는 손전화 쪽글로 “단순한 실수”라고 얼버무렸다. 쪽글을 보고서 한참 할 말을 잊었다. 나는 대구 한켠에서 마을가게(마트)를 꾸린다. 혼자 가게를 볼 수 없기에 다른 일꾼을 시간제로 쓴다. 그래서 이 일꾼이 나가면 혼자 하루 내내 가게에 있어야 할 판이라서, 도둑질을 했어도 눈을 감아 주고서, 제발 제발 새마음으로 착하게 일하면 좋겠다고 마음으로 빈 날이다.

 

그러고 보면, 《달과 6펜스》가 영 읽히지 않는데다가, 가게 일꾼이 도둑질을 하고도 오히려 큰소리를 하기에 도무지 책을 펼 마음이 아니었다. 한숨을 폭 쉬다가, 우리 집 책꽂이에 있는, 다른 《달과 6펜스》를 집었다. 민음사 판이 아닌 묵은 《달과 6펜스》는 시누가 예전에 읽은 낡은 책이다. 시댁 시골집에 있던 책을 가져왔는데, 오래된 《달과 6펜스》에는 한자가 많이 섞여 더 읽기 어렵다.

 

아무래도 이 책은 몇 해를 묵히고 나서야 읽을 수 있을 듯싶다. 그래도 줄거리라도 어림해 볼까 싶어, 책끝에 붙은 ‘해설’을 편다.

 

《달과 6펜스》는 화가 고갱 이야기를 풀었다고 한다. 그렇구나. 그런데 부끄러운 말이지만, 나는 책이름을 처음 보았을 적에는, 어떤 달 이야기가 나올까, 6펜스는 달하고 어떻게 얽히려나, 무슨 뜻일까 싶어 궁금했다. 초승달에서 보름달을 지나 그믐달이 되는 마음이 흐르려나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6펜스라고 하는 영국 돈에 얽힌 이야기도 아니고, 글에는 달 이야기도 딱히 나오지 않는 듯 싶어, 책이름하고 고갱이라는 사람 이야기는 너무 멀리 떨어진 듯하다고 느낀다.

 

고갱이라는 사람은 그림이 뭐가 그리 좋았을까. 오직 그림 하나를 그리려고 집을 버리고 떠난 매무새가 의젓하거나 대견하다고 여길 만한가. 자꾸자꾸 더 멀리 외딴섬으로 옮기면서 그림을 남겼다는데, 무엇을 종이에 남기고 싶었을까. 다른(사회) 데에는 눈을 두지 않고서, 스스로 짓고 이루어서 펴고픈 뜻을 바라보기에 삶이 보람차거나 즐거울 만할까. 남(사회)이 어떻게 보든 아랑곳하지 않을 적에 예술을 꽃피울 수 있는 셈일까.  

 

집(가정)을 버리고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한들 얼마나 즐거울까 하고 돌아본다. 이렇게 바라보는 내가 꼰대 같은 아줌마 마음일는지 모르겠다. 하나를 가지려고 하면 둘을 잃어야 하는, 아니 버려야만 홀가분하기에 마음껏 넘나들면서 우리 삶 모두를 그림에든 글에든 바칠 수 있다면, 나로서는 참 어려운 길이다.

 

언제부터인가 글을 보면 서술어가 먼저 눈에 들어온다. 소설은 더더욱 서술어가 멈춘 글이 아닌 살아 움직이는 낱말로 작은 이야기를 들려주듯이 쓰면 잘 읽힐 듯하다. 첫 장부터 설명하는 글이 턱턱 막혔다. 그나마 《달과 6펜스》는 사람 얼굴이 어떠한가를 가장 잘 들려주었지 싶다. 그림을 그리는 사람 이야기를 편 책인데, 막상 이 글로는 ‘그림을 그리는 삶’을 잘 느끼기 어려웠다. 영어가 아닌, 한글로 옮긴 책을 읽은 탓일까.

 

책이름이 얼마나 크게 차지하는지 알 듯하다. 책마다 시집마다 책이름이나 글이름을 멋을 부려서 꾸미려고 하는 마음도 알 듯하다.

 

그런데, 해와 비와 바람과 숲과 들에 널린 풀꽃나무 이야기가 하나도 없는 글은 어쩐지 참 메마르다. 영어로 나온 글도 이랬을까. 글을 옮긴 사람 말씨가 녹아서 그럴까. 바람에 풀잎이 한들거리는 말을, 해가 하는 말을, 꽃이 하는 말을, 우리도 마음으로 받아적을 수 있을 텐데. 무딘 칼날로 종이를 잘라 엮은 책보다 더 아쉽다.

 



2023.07.27.숲하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