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의 일생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19
기 드 모파상 지음, 이동렬 옮김 / 민음사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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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게 삶으로 005 나는 오직 나

 

여자의 일생

모파상 글

송면 옮김 

어문각

1986.07.31.


 

달과 6펜스읽고서 제자리에 꽂다가, 곁에 있는여자의 일생을 집었다. 우리 집에 있는 여자의 일생은 1986년에 나온 판이니 묵은 책이다. 그런데 첫 쪽을 넘기다가 깜짝 놀랐다. ‘1986학년도 2학기 중간고사 성적 우수라고 선생님이 적은 글씨가 있고, ‘도장이 찍혔다.

 

, 내가 열아홉 살 적에 받은 책이잖아! 여태 몰랐다. 이제야 알아본다. 놀란 나머지 책을 이리저리 살피는데, 뒤쪽 빈종이에 빗물 같은 정을 주리라라는 김남조 시인이 쓴 시를 옮겼다. “고독에서 고고로라는 열여섯 줄도 적어 놓았다.

 

어쩐지 낯간지럽다. 마흔아홉 살이나 쉰아홉 살도 아닌, 열아홉 살 어린 나이에 무슨 고독을 씹는다고 했을까. 무슨 빗물 같은 정을 준다는 시를 읽었을까. 그러나 그때에는 둘레에서 다들 이런 시를 읽었고, 이야기했고, 학교에서도 배웠다.

 

우리 집에는 여자의 일생이 두 가지 책으로 있다. 하나는 민음사에서 펴낸 세계문학전집이다. 새책으로 장만했다. 다른 하나는 고등학생 적에 받은 문고판이다. 이제 해묵은 책이다. 둘을 나란히 펼치면서 어느 책이 읽기에 쉽거나 잘 그렸을까 하고 한 줄씩 견주어 본다. 한글판으로 나온 지 얼마 안 되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은 글결이 딱딱하다. 1986년에 나온 묵은 책이 부드럽게 읽힌다.

 

줄거리를 헤아려 본다. 잔느는 아버지 뜻에 따라 줄리앙을 만나 한 달 보름 만에 짝을 맺어서 나폴레옹 고향인 코르시카로 꽃마실을 간다. 꿈을 껴안으면서 살고 싶던 잔느는 첫날밤부터 꿈이 후멀어진다. 사납게 몸을 노리는 짝을 보면서 끔찍할 뿐이다. 더구나 짝은 하녀와 눈이 맞았다. 눈이 오는 날 죽으려고 했지만 아기를 밴 줄 알았다. 삶에 버림받고 숨이 넘어갈 듯한 마음을 처음 느끼면서 이제는 아이한테 매달린다. 그러나 이러고 나서도 끔찍하거나 괴롭거나 고단한 일만 잇따른다. 애써 돌본 아이는 노닥거리면서 갖가지 말썽만 일으킨다. 책이름이 여자의 일생인데, 여자로 살아가는 길이란 이토록 괴롭고 끔찍할 뿐인가. 무엇보다도 이런 줄거리를 담은 책을 왜 성적 우수 여고생 상품으로 주었을까? 지난날 학교는 여성과 남성을 어떤 눈으로 보았을까?

 

여자의 일생따지고 보면 인생이란 남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즐거운 것도 불행한 것도 아닌가 봐요.” 같은 말을 들려주면서 맺는데, 글쓴이 어머니와 아버지와 동생이 보낸 삶을 글로 옮겼다는데, 이 나라와 사회와 학교는 우리한테 그저 현모양처되기만을 바라고, 모든 말썽과 티끌을 고분고분 받아들이라고 억누리려는 마음이지 않았나 싶다.

 

1986년에 학교에서 받은 여자의 일생을 옮긴 사람은 아마 시골에서 자란 분이라고 생각한다. 먼나라 시골빛을 잘 옮겨냈다고 본다. 그리고 모파상이라는 사람을 새삼스레 바라본다. ‘남성이 억지스럽고 사납게 만든 굴레를 낱낱이 그려낸 셈 아닌가. 어머니가 겪고 아버지가 보여준 모습에다가 동생이 살아간 길을 고스란히 옮겼으니 참 대단하다.

 

서른일곱 해 동안 우리 집 책시렁에 꽂힌 채 먼지만 먹던 책을 이제야 쓰다듬었다. 고등학생이던 1986년에는 현모양처라는 말이 꽤 멋지다고 여긴 적도 있지만, 여성도 남성도 현모현부도 아닌 사람으로 만나서 사랑을 참답게 찾을 수 있을 노릇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우리 딸아들한테 골고루 조그맣게 울타리로 살고는 싶지만, 현모양처는 아닌, 그저 어머니로서 나로서, 이따금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다.


2023. 07. 27. 숲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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