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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정한 편견
손홍규 지음 / 교유서가 / 2015년 5월
평점 :
3월도 일주일밖에 남지 않은 오늘 아침에야 손홍규의 <다정한 편견>을 다 읽었다. 다정한 편견이라니.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란 뜻의 편견 앞에 ‘다정한’이란 따뜻한 낱말이 붙자 스산하고 차가운 봄날도 좋은 날처럼 느껴졌다. 지난 5년간, 일주일에 한 편씩 원고지 4.5매 내외의 분량에 맞춰 써내려갔던 글을 모았다는 작가의 말이 책을 읽도록 내 마음을 움직였다. 내 머릿속에는 우직한 마음으로 성실하게 글을 써내려 가는 작가의 모습이 그려졌고, 부럽기도 했다. 한 편이라도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규칙적으로 꼬박꼬박 글을 쓴다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라는 것을 안다. 그것도 짧은 분량의 글을.(긴 글이 짧은 글보다 쓰기 쉽다.) 그래서인지 글속에 담겨 있는 작가의 진실한 마음이 느껴졌고, 책을 읽고 있으면 작가와 차 한 잔 마시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소설가의 작품을 읽기 전에 소설가가 쓴 에세이를 먼저 읽어 보는 습관이 있다. 에세이를 읽다 보면 작가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에 공감하고 희로애락을 느끼는 지 조금은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에세이를 통해 팬이 되고, 한 번 팬이 되면 그 작가를 끝까지 좋아하고 믿어준다. 어떤 소문이 떠돌지라도. (아직까지 악영향을 줄 정도로 소문이 떠돈 작가는 없었다.) 소설가 김연수씨가 그렇게 좋아하게 된 작가인데, <다정한 편견>을 읽고 앞으로 손홍규의 작품을 좋아하게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이 <다정한 편견>은 소설이 아니라 에세이니까.
1부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목록’을 시작으로 2부 ‘선량한 물음’ 3부 ‘바느질 소리’ 4부 ‘다정한 편견’으로 이루어진 산문집은 농촌에서 나고 자란 작가의 순박한 정서와 사람과 사람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법, 소설가로서의 생활과 자세, 현실, 생각,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 등을 담고 있다. 글 속에 담긴 작가의 문장과 내용은 따뜻하고 다정하지만, 시선과 분석은 냉철하고 객관적이다. 제목에서 느껴지는 역설적인 표현이 곳곳에서 느껴졌고, 한편으로는 잘못을 저지른 자식을 호되게 야단치는 어머니 같은 인상을 받기도 했다. 무엇보다도 그의 생각을 담아내는 올 곧고 아름답고 고운 어휘들과 표현이 인상 깊었다. ‘내가 평소에 쓰지 않고, 들어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우리말 표현들이 이렇게 많았구나.’ 라고 생각 할 정도로 언어를 다듬고 사랑하는 작가에게 신뢰가 갔다. ‘비긋이’, ‘허덕허덕’, ‘무르춤해진’, ‘산그리메’, ‘메지구름’, ‘몰강스러운’, ‘버성긴’, ‘고비늙은’ 등과 같은 낱말들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싶어서 사전을 찾아 한 자 한 자 적어가던 나의 어휘력이 가난하여 부끄럽기도 했다. 세상에는 돈 많은 부자들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언어와 생각, 시선과 마음의 부자도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런 부자들이 더 많이 늘어나는 사회를 슬그머니 꿈꾸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목록>은 시골출신이 아니라 농촌의 생활과 풍경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는 내가 마음 찡하고 정겹게 읽어 내려간 문장이었고, <선량한 물음>은 마음이 울적하거나 내가 오늘 무엇을 하며 살았나, 내가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지 몰라 헤맬 때 숨을 쉬게 해주는 글이었다. 소설가의 고단함과 자괴감, 현실적인 삶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이고, 소설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바느질 소리>는 울고 웃으면서 읽어 내려간 글이었다. 무엇보다 <다정한 편견>은 지나간 겨울, 촛불을 손에 쥐고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던 우리의 친구들을 떠올리게 했다. 글도 성장하고 성숙해진다. 이 글을 읽고 나서 그동안 블로그에 써놓았던 글들을 다시 읽어 보았다. 여전히 부끄러웠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이런 생각을 했었다니 하고 스스로 대견해했던 행복한 시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것들을 글로 남겨야 할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게 해준 고마운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