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홉 가지 이야기
제롬 데이비드 샐린저 지음, 최승자 옮김 / 문학동네 / 200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샐린저의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 <아홉 가지 이야기>중에서

 

- “……그놈들은 바나나가 잔뜩 들어 있는 구멍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지. 구멍 속으로 헤엄 치고 있을 때는 보통 물고기처럼 보이지만, 일단 들어가기만 하면 돼지처럼 굴어. 나는 바나 나가 있는 구멍 속으로 헤엄쳐 들어가서 자그마치 일흔여덟 개의 바나나를 먹어치우는 바나 나피시를 알고 있어.”

그렇게 뚱뚱해진 뒤에 그 물고기들은 당연히 구멍에서 도로 나올 수가 없어. 구멍 입구에 몸이 맞질 않으니까.”

그놈들은 어떻게 되는데요?”

바나나피시.”

그렇게 많은 바나나를 먹은 뒤엔 그 물고기들이 바나나 구멍에서 나올 수가 없을 거란 말을 하고 싶은 거지?”

그래요.”

……시빌, 네게 얘기해주긴 싫다만, 모두 죽는단다.”

왜요?”

글세 바나나 열병에 걸려서. 무시무시한 병이야.”

저기 파도가 와요.”

우린 그걸 무시해야 돼. 밀쳐버리는 거지.”

둘 다 시큰둥해하는 거야.”

 

샐린저의 <아홉 가지 이야기>를 펼치면 다음과 같은 화두가 써져 있다.

두 손바닥이 마주치는 소리쯤은 모두 알고 있다.

그러면 한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는 어떤 것일까?

 

작가가 화두를 잡고 쓴 소설들이니 그 화두를 붙잡고 소설을 읽었다.

 

  이 소설은 대부분 대화로 이루어져 있다. 처음엔 젊은 남자와 집을 떠난 딸과 엄마의 대화가 시작되고, 또 해변에서 젊은 남자와 어린 여자아이가 바나나피시를 잡으며 대화를 나눈다 마지막 부분 엘리베이터 안에서 젊은 남자와 낯선 젊은 여자가 몇 오간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호텔방으로 들어온 남자는 옆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이 ‘1948년 정신적 매춘부라고 부르는 여자를 바라보며 권총자살을 한다.

  소설을 읽는 동안 이들은 도대체 누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저히 소통이 되지 않고 있는 것 같아 답답했다. 독자를 무시한 채 작가가 혼자 허공에 대고 손바닥을 치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한 손바닥으로 치는 소리는 답답함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어떤 느낌이었을까 하고  서평들을 읽다가 샐린저 세계대전과 나치강제노동수용소를 목격하고 그가 알게 된 사실을 무시하는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한 젊은 남자에 대한, 어쩌면 샐린저의 이야기를 쓴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을 알고 다시 읽으니 소설이 다시 읽혔다. 여기저기 샐린저가 숨겨 놓은 힌트도 많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의 은유적 표현들이 마음에 들었다. 한 손바닥으로 나는 소리는 그 손바닥이 무엇과 마주치느냐에 따라 다양한 소리들을 내게 될 것이다.  오늘은 바나나피시를 위한 완벽한 날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