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로 돌아가고 싶어
이누이 루카 지음, 김은모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얼마 전부터 나는 새해가 되어도 희망찬 계획을 세운다거나 이루고 싶은 소망들이 무엇인지 가늠해보는 일들을 하지 않는다. 그보다 현재의 일들이 틀어지지 않고 잘 진행되기를, 주어진 상황에 최선을 다하기를 더 바라게 되었다. 그런 가운데 새해 첫 달 이누이 루카<그날로 돌아가고 싶어>를 읽었다. 과거와 미래보다 현재 삶에 더 충실하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나에게 이 책은 마음을 울리는 순간이란 시간을 선물해 주었다. 모든 사람들에게는 작거나 크게 삶을 변화시키고 마음의 울림을 남긴 순간의 시간이 있다. 물론 그 시간을 당시에는 인지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것이다. 살아온 인연의 퍼즐조각을 찾아 맞추는 마음으로 이 책을 읽다보면 뺨을 스치는 따듯한 봄기운을 느낄지도 모른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밤의 냄새가 났다. 어딘가 비밀스러운 냄새였다. …… 그 후로 나에게는 한밤중 몰래 집을 빠져나와 동물원에 간다는 비밀이 생겼다. <한밤의 동물원> 28, 39

 

  비밀을 간직한 사람은 다른 세계를 마음에 품은 것과 같다. 반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리면서 힘겹게 학창시절을 보내던 엔도 다다시’. 자신의 괴로운 마음도 모른 채 학원에 보내려는 부모님과 싸우게 된 날 밤, 집을 나온 그가 우연히 발견한 곳은 주홍불빛을 뿜어내고 있는 동물원이었다. 무작정 집을 나와 길을 헤매던 엔도 다다시에게 동물원의 불빛은 비밀을 만들어주었고, 삶을 변화시킨 첫 순간이 되었다.

 

이름이란 신기하다. 원래는 개인을 나타내는 기호에 지나지 않았지만, 때로는 부르는 것만으로 서로를 단단히 이어주는 힘을 지닌다. 서로 이름을 아는 것은 가장 초보적이고도 중요한 인간관계의 구축이다. …… 내가 잊어버렸을 뿐, 어디서 만난 적이 있는 걸까?

<그날로 돌아가고 싶어> 116, 117

 

  양로원에 자원봉사 나온 젊은 이시바시 가요는 그곳에서 완고하기로 소문난 이름이 똑같은 이시바시 노인과 친구가 된다. 노인은 숲속 호수가 있었다는 곳을 바라보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수생식물 소나가 자라고 있는 그 호수에 아내가 빠져 죽은 그날로 돌아가기를 간절히 바랐던 노인은 결국 병으로 죽고 만다. 그리고 는 노인의 아내가 죽던 날, 자신이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물론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이지만 자신과 똑같은 이름을 가진 노인과 친구가 된 것은 그가 내 이름표를 바라본 순간 시작되었다.

  벌써 20171월이 끝나가고 있다. 이미 평생 기억될 한 순간이 지나갔을 지도 모른다. 앞으로 몇 번 더 다가올 수도 있고. 어쩌면 내일, 살아 있길 잘했다고 말 할 수 있는 순간이 기다리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불안하기도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이 기대되고 좋다.

 

어째서 내일이 나쁜 날일 거라고 단정하니?

아무도 모르는데.

어쩌면 내일, 역시 살아 있길 잘했다고 생각할 일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밤산책> 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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