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 - 천연균과 마르크스에서 찾은 진정한 삶의 가치와 노동의 의미
와타나베 이타루 지음, 정문주 옮김 / 더숲 / 201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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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친구와 이태원에서 만나 리움 미술관 쪽으로 올라가는 데 재미있는 장면을 목격했다. 정오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라 근처 직장인들이 삼삼오오 점심식사를 하러 나왔는데 저마다 손에 하얀 봉지를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어느 빵가게 앞에 많은 사람들이 줄을 서고 빵을 사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그러니까 사람들이 손에 들고 있었던 하얀 봉지는 바로 이 집에서 산 빵이었던 것이었다. 그런데 함께 걷던 친구가 우리도 얼른 줄을 서자며 내 손을 잡아 끌었다. 바로 그 가게가 국산밀가루와 물, 소금, 천연 발효종을 이용하여 빵을 만드는 작지만 유명한 '*** *빵집'이었다. 그래서 나도 그 집 빵을 맛볼 수 있었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정말 너무 맛있었다. 일반 제과점에서 사 먹은 빵과 비교해 본다면 단맛이 적고, 고소한 맛이 더했다. 전자가 화려한 장식과 다양한 종류로 소비자들을 공략한다면 후자는 빵맛 하나로 진검승부를 건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후자가 압승일 것이다. 아마 그 날 그 빵집 앞을 지나가지 않았다면 나는 평생 빵맛과 재료, 만드는 과정과 유통에 대해 아무런 생각없이 프렌차이즈 빵맛에 길들여져 살았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우연히도 그 시기에 <시골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라는 책이 나왔고, 내 손에까지 오게 되었다. 그리고 빵을 통해 내가 살고 있는 사회의 작은 부조리한 단면을 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을 펼쳤을 때, 프롤로그의 첫문장인 '혁명은 변두리에서 시작된다.'라는 말이 마음에 와서 박혀 버렸다. 빵을 굽는 일이 혁명이라는 말과 함께 쓸 정도로 거창한 것인가 라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썩는다' '부패한다'라는 자연의 섭리에 따라 빵을 만들고, 순환하는 경제를 실천하고자 애쓰는 저자의 삶을 진심으로 응원하고 싶어졌다.

이 책은 총 2부로 되어 있다. 제 1부는 '부패하지 않는 경제'라는 제목 아래 저자가 천연균을 이용하여 일본주종빵을 만들게 된 사연과 시골빵집의 마르크스 <자본론> 강의가 쉽게 소개 되어 있다. 제 2부는 '부패하지 않는 경제'로 '와타나베 이타루'씨가 천연균을 이용하여 빵을 만들어 온 과정과 그 시간을 통해 배운 천연균에 대한 지식, 삶의 철학과 자본주의 사회에 맞서 자신의 기술과 인생을 지켜내고 풍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자세히 알려 주고 있다. 1부를 통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이해해 나갈 수 있다면, 2부를 통해 천연균을 이용한 이타루씨의 빵과 삶, 우리의 먹거리와 현재의 삶을 되돌아 볼 수 있다. 다소 딱딱할 것 같은 자본론, 마르크스, 주종빵, 천연균, 부패와 발효, 순환 등에 관한 소재들을 경제학자나 전문가가 아닌 동네 빵집 아저씨가 우리들의 언어로 쉽고 재미있게 들려 주는 이야기 같아서 중고등학생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서른이란 나이에 대학을 졸업하고 작은 유기농산물 도매회사에 들어간 '와타나베 이타루'씨는 농부가 되고 싶다는 꿈과 연장선상에 놓여 있다고 생각한 직장에서 불합리한 세상을 경험하게 된다. '원산지 허위 표시', '뒷돈 챙기기' 등이 가볍게 행해지고, 불합리한 구조와 편법을 당연하게 수긍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에 저항하면서도 회사를 나가지 못하는 자신에게 실망하고 괴로워한다. 무엇보다도 그는 생산물에 대한 경의감은 사라지고, 오로지 상품으로만 그것을 평가하고 대하게 되는 사람들의 태도에 충격을 받는다.

- 그런가 하면 "매입자가 없어서 토마토는 3톤이나 또 썩고 있네요."같은 이야기를 직원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생산자에 대한 경의, 생명이 있는 것을 다룬다는 자각, 자연의 결실을 고마워하는 마음,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한꺼번에 짓밟아버린 데 대한 자책은 대체 어디로 갔단 말인가?

p.19

매일 해야 하는 하는 업무가 사람들로 하여금 농산물속에 들어있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잊어버리게 만들고, 농산물을 오직 상품의 질과 판매량으로만 평가하게 만들었으며, 그것은 곧 우리의 생각 또한 둔해지거나 변하게 만드는 것이 되었다.

저자는 직장 생활 속에서 매일 자신의 양심과 갈등하고 고민했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자신때문에 더 힘들어 했다. 그럴수록 자기 자신을 향해 끊임없는 질문을 던지고 또 던지게 된다. 그토록 치열하게 온몸으로 고민했던 시간을 통해 '빵'을 만들어야 겠다는 확신을 갖게 되면서 직장을 미련없이 나올수 있었다. 저자가 직장속에서 했던 고민들은 현재 자본주의 체제 아래 살아가고 있는 모든 이들의 고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민해봤자 답은 없다며 아예 생각하기를 멈추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러나 끝까지 모순덩어리인 이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만들어 가고 싶다면 멈추지 않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한다. 물론 그 과정이 매우 힘들겠지만 그래서 마지막에 많은 사람들이 후회하고 어려워할 때 진짜 웃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아가 손을 내밀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 될 확률도 높다. 끈질기게 고민하고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는 과정속에서 무언가 한 개의 힌트를 얻게 된다면 자신이 선택한 길을 기쁘게 걸어 갈 수 있을 것이다. 와타나베 이타루씨는 그것을 실천했고 우리에게 그 기뿜을 알게 해 주었다.

- 비겁한 사회 상황을 향한 슬픔과 분노야말로 마르크스가 생애를 걸고 <자본론>을 쓴 동기였을 것이다. ... 노동자와 서민들에게 강요되는 가혹한 환경은 무엇하나 변하지 않았다. 어째서 우리는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만 하는가? 각자의 머리로 고민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p.43

현재 우리나라의 많은 사람들도 실업과 열악한 노동환경, 노동력 착취와 저임금으로 힘겨운 삶을 살고 있다. 150년 전 마르크스가 비참한 사회 상황을 향해 <자본론>을 써내려갔던 시절에 비해 달라진 것이 별로 없는 듯하다. 가혹한 노동환경은 인간의 삶을 피폐하게 만들어 버렸다. 인간은 적당한 노동과 쉼을 통해 삶을 이어가고 자기 정체성을 세워 나가야 하는 데 자본은 돈이란 매개체를 내세워 사람들에게 생각하고 여유를 가져야 할 시간을 빼앗았다. 그것은 곧 사람됨을 빼앗은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렇다고 공산주의 체제를 선택하는 것은 더욱 어리석은 일이다. 이미 우리는 역사를 통해 그것을 알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우리가 각자 '소상인'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 마르크스는 이렇게 말했다. "자본주의 경제의 모순은 생산수단을 가지지 못한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팔 수 밖에 없는 구조에서 발생한다." 그래서 마르크스는 노동자가 모두 생산수단을 공유하는 공산주의(사회주의)를 지향한 것이다. 그런데 미안한 말이지만 그 방법이 잘 돌아갈 거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이 시대는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생산수단을 가지는 길이 효과적인 해결책이 될 거라고 본다. 그 의미를 잘 표현하는 것이 '소상인'이라는 단어다. … 우리 안에 있는 힘, 잠재능력을 살리는 삶과 일이 천연균과 자연재배, 또는 '뺄셈의 빵'이라는 발상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 지금이야말로 소상인의 시대가 아닐까? 교통과 통신 인프라가 정비되어 규모가 작아도 충분히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특히 인터넷과 소셜 미디어는 정보의 수집과 발신을 자유롭게 만들었다. 이 얼마나 큰 무기인가?

p.186

저자는 소상인이 되기 위해 아침 7시, 고택에 붙어사는 균과 지역에서 자연재배한 작물을 합작하여 '일본식빵'과 여러 종류의 빵을 판매한다. 그들이 부패하는 경제를 실천하며 자연의 소리를 듣는 자연 중심의 빵을 만들기까지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었고, 고통과 불안한 나날을 보내야만 했다. 그러나 일본의 변두리에서 작은 혁명은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 되고 있다.

평범한 소시민이 자본주의의 거대한 구조에 맞서 도전한 용기와 마음, 실천력, 먹는 것이 곧 우리의 몸이 되고 삶이 된다는 가치관에 따라 빵을 만든 것에 대해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가 했다면 우리도 얼마든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생활방식이 그대로 삶과 생명으로 연결되기 때문에 진짜 자본주의 구조속에 자신의 인생을 빼앗기고 싶지 않다면 삶의 악순환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방법을 각자가 찾아야 한다.

- 최근 워크 라이프 밸런스(work-life balance, 일과 생활의 조화)… 생활 속에 일이 있고, 일 속에 생활이 있는 나날이다. "장인은 월급쟁이가 아니니 생활이 삶이고 삶이 직업이다."라고 한 것 처럼 우리도 삶 그 자체가 직업이다.

p.223

우리가 아무리 수많은 조직 속에서 월급쟁이로 살아간다 하더라도 각자의 삶에서는 자기 자신을 고유하게 만들 수 있는 삶의 장인이 되어야한다. 왜냐 하면 바로 우리 자신이 곧 삶이고, 삶이 자기 자신이 되기 때문이다. 그럴려면 무엇보다도 귀찮고 힘들다는 이유로 그동안 외면해왔던 자기 자신이 보내는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적어도 자신만의 진정한 삶의 가치와 의미를 찾고 싶다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와타나베 이타루씨가 시골빵집에서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 것도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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