슌킨 이야기 쏜살 문고
다니자키 준이치로 지음, 박연정 외 옮김 / 민음사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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슌킨 이야기를 읽기 전 표지가 먼저 눈에 들어왔다. 표지의 그림만으로도 일본소설이라는 것을 금방 알아 볼 수 있었고, 무엇보다 환상적이면서도 몽환적의 느낌이 드는 것이 소설과 수수께끼를 하는 것 같았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은 처음 접하는 거라 어떤 내용인지 궁금했고, 표지를 보며 상상해보는 것도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는 주인공 슌킨과 사스케의 관계, 칠현금과 샤미센 가락에 대한 모든 것이 표지 그림 속에 다 담겨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소설을 읽기 전에 보는 것과 다 읽고 나서 다시 표지를 보며 음미하는 기쁨 또한 이 책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표지 그림과 함께 쏜살문고의 장점은 더욱 두드러진다. 부담 없는 분량과 무게, 휴대하기 좋은 크기가 더해져 장식품 같은 느낌이 더해진다. 그래서 외출할 때 읽지 않더라도 책을 들고 나가지 않으면 조금 불안해하는 사람들에게 딱 좋다

 

 

이처럼 슌킨은 고집도 세고 제멋대로였지만 다른 고용인들에게는 심술궂게 행동하지 않았다. 유난히 사스케를 대할 때만 그녀의 심술이 심해졌는데 원래 그런 기질이 있는 데다 사스케만이 애써 비위를 맞추려 했기에 그를 가장 편하게 생각해서 그런 극단적인 행동이 나타났던 것이다. 사스케 또한 고달프게 여기지 않고 오히려 기쁘게 받아들였는데, 필시 그녀의 유난스러운 심술을 응석으로 여기며 일종의 은총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29.p

 

 

슌킨과 사스케의 관계는 평범하지 않다. 두 사람은 처음 주인과 하인의 관계에서 시작했지만, 사미센 연주를 통해 예술적 스승과 제자의 연으로 발전했다. 두 사람이 함께 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인아씨의 손바닥 같은 존재였던 사스케는 여전히 슌킨에게 무시당하고 업신여김을 받지만 그것은 다른 모습의 집착과 사랑이라고 할 수 있다. 슌킨이 다른 이들에게는 친절하나 분명한 선을 긋고, 사스케에게는 자신의 부끄럽고 민망한 일까지 모두 맡기는 것을 보며 사랑의 다른 면에 그려진 가혹함과 잔인성을 보게 된다. 그런 슌킨에 대한 사스케의 사랑은 지극하다. 그녀가 자신에게만은 절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스스로 장님이 되기를 선택하는 장면에서 그의 사랑은 절정을 이룬다. 잔혹함 속에서 사랑의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그를 통해 사랑이란 이름으로 품을 수 있는 수많은 감정과 관계들을 생각해 볼 수 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작품을 말할 때, 대부분 여성 숭배와 육체적인 사랑, 마조히즘이나 사디즘, 예술 지상주의 등을 논하게 된다. 그러고 보니 처음 표지를 보았을 때의 느낌과 맞아 떨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결국 이 또한 정형화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랑의 모습이나 인간관계에 지나지 않을 뿐이다. 1933, 전 세계가 광란의 전쟁과 폭력 속에 휘말려 가고 있을 때, 암울하고 섬세한 작가의 떨림은 오히려 약한 것 같지만 강인한 여성과 예술에 무조건적인 굴종과 순응의 모습을 그려냈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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