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 문학동네 청소년 39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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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서 온 은유의 편지를 읽으며 시간 너머 그리운 것들이 꿈틀거리며 살아났다. 동생 책갈피 속에 끼어있던 파란색 바탕에 이순신 장군과 거북선이 그려져 있던 500원짜리 지폐를 급하게 쓰고, 1000원짜리 지폐로 돌려주었다가 심하게 싸웠던 일, 초등학교가 아닌 국민학교를 나와 연합고사와 학력고사를 보았고, 틈틈이 농구대잔치와 프로야구에 열광했던 세대로서 과거 은유의 편지를 읽으며 나도 모르게 예전으로 돌아간 간 듯 했다.

 

 

  김용택 선생님의 글처럼 그리운 것들은 모두 산 뒤에 있는 것 같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리웠던 것은 두 은유가 주고받은 편지이다. 중학교 때는 요즘 우리가 카톡을 주고받는 것만큼 편지를 주고받았고, 그렇게 모아둔 편지가 운동화 상자로 몇 개나 되었는데 지금은 그것들이 어디로 갔는지 알 수 가 없다. 내가 편지를 자주 쓰지 않게 되었던 것은 고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쓰지 않은 것이 아니라 쓸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었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720분까지 등교, 10시에 자율학습이 끝나는 시대에 살았다니 다시 돌아가고 싶지 않은 시절이다. 그러다가 대학교에 입학하여 친구들과 사촌들끼리 학보를 주고받으며 띠지에 썼던 문장들이 나름대로 멋있고, 운치 있었다. 1989년생 작가가 70년대 생들의 청소년기와 청년대를 재미있게 풀어낸 것이 신기했다. 그만큼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만들어진 작품이라 몰입이 잘 되고, 술술 읽힌다. 감동과 가독성 모두 청소년 도서로서 최고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좋은 소설의 요소 중 한 가지는 사람의 마음을 읽어주는 데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고, 마지막 반전을 노리는 아빠의 편지와 그로 인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흔한 방식의 단점을 보완해 줄 만큼 현재 은유의 외침에 집중하게 만든다. 작가가 의도했는지 모르지만 편지가 오고가는 중간지점부터 두 사람의 마음이 하나로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어린 은유가 큰 은유에게 그 동안 하지 못한 어리광을 마음껏 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엄마를 잃고 15년 동안 외롭게 지내오느라 힘겨웠던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달라고 울부짖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제 두 은유와 현철이이며 아빠가 각자의 골방에서 나와 서로를 만나기 위해 걸어오는 것 같다. 세 사람의 세계 속에서 교집합을 찾으려고 흩어졌다가 다시 모아지는 것 같이 세 사람 모두 용기를 내어 상처받을까 외면했던 현실을 뚫고 천천히 마주할 시간을 향해 말이다.

 

 

  세상에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사람들이 특별한 일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되어 있기 때문일 거야. 46.p

 

 

  서로에 대한 오해와 두려운 감정으로 인해 진실을 밝히지 않은 채 살아온 부녀는 엄마의 편지로 인해 점점 서로를 알아가게 된다. 어린 은유의 상처가 깊었던 만큼 아내를 잃고 갓난아기인 딸을 키워야했던 아빠의 고통과 외로움도 컸을 것이다. 가족이라고 해서 서로의 노력과 책임감 있는 행동 없이 무조건 이해할 수 없는 거니까.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가족이라고 해서 네가 원하는 모습대로 네 마음대로 되는 건 아니란 뜻이야.

  어쩌면 가족이라는 존재는 더 많이, 더 자주 이해해야 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 137.p

 

 

 “넌 가족이 뭐 엄청 특별한 건 줄 알지? 가족이니까 사랑해야 하고 이해해야 한다고 믿지? 웃기지 마. 가족이니까 더 어려운 거야. 머리로 이해가 안 돼도 이해해야 하고, 네가 지금처럼 멍청한 짓을 해도 찾으러 다녀야 하는 거야. 불만 좀 생겼다고 집부터 뛰쳐나가지 말고. 너도 엄마가 왜 그랬을까 생각하는 척이라도 해봐. 최소한 너도 노력이라는 걸 하라고.” 137.p

 

 

 아빠의 결혼과 엄마의 존재를 알게 된 은유에게 앞으로 더 많은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물론 힘들고 어려운 일들도 계속 되겠지만 예전보다 좀 더 지혜롭게 해결해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 그만큼 은유의 세계가 확장되고 넓어졌을 테니까. 큰 은유의 편지를 계속 받을 수 없겠지만 다른 엄마가 옆에서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줄 테니까.

 

 

 어쩌면 우린 너무 많은 기적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사는지도 모르겠어. 217.p

 

 그 먼 시간을 건너 네 편지가 나한테 도착한 이유를.

  너와 내가 사는 세계의 시간들이, 그 모든 순간들이 모여, 있는 힘껏 너와 나를 이어 주고 있었다는 걸.                 

  참 신기하게도. 참 고맙게도. 218.p

 

 

 돌아보면 우리들도 누군가 세계를 건너 와주었기에 지금 여기에 존재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만큼 현재 우리가 살아 움직이며 함께 하는 것보다 더 큰 기적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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