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한낮의 연애
김금희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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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란 자기만의 구덩이에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3년 전 연말에 '세실리아'를 읽고 소설이 끝나는 여백에 '작은 옴니버스 형식의 소설들이 요트동아리와  세실리아라는 끈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썼다. 3년만에 책장에 꽂아두었던 소설책을 다시 꺼내 가방에 계속 넣고 다녔다. 책 속에는 많은 문장에 밑줄이 쳐져 있었는데 그때 나는 어떤 생각을 하고, 무엇을 하며 살았을까? 처음에 책의 내용은 생각나지 않지만  이 책을 읽었을 당시의 내 모습은 기억났다. 


 소설의 시작도 '송년'이다. 대학교 동창들과 송년회를 하는 자리에서 정은은 '엉겅퀸'이라 불렸던 동아리 친구 세실리아에 대해 듣는다. 남자 동창들은 끈질기게 엉겨붙는 세실리아에게 '엉겅퀸'이란 별명을 붙여 주었지만 그 별명이 진짜 뜻이 엉덩이가 아주 건강하고 풍만해서 지어진 것이란 말을 듣게 된다. 함께 요트동아리를 하며 20대 초반을 지낸 친구들이지만, 남자들의 성희롱에 가까운 말이 거슬렸다. 3년 전에도 그랬을까. 작가도 그것을 의식하였을까 정은이 누구하고나 잘 수 있는 송년이지만 그렇지 않겠다고 불쾌함을 드러내고 있다.


 세실리아는 같은 동아리 친구인 치운이와 연얘를 했다. 다른 동아리 부원들은 그런 세실리아를 미워하고 따돌렸다. 그리고 세실리아는 사라졌다. 여러 사람이 한 사람을 투명인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정은은 무기력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지만 무관심이나 방관도 동료를 그림자로 만들어 버린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렇게 사라진 세실리아가 친구들 사이에서 십 여년이 지난 후에도 계속 입에 오르내린다. 사람들은 연못의 개구리에게 돌을 던지고 가라 앉게 만든 다음 가라앉은 연못 속에서 떠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동결이라는 상태는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내 안의 모든 것이 아주 차가워져서 살이 붙고 피가 붙고 똥도 붙고 눈물도 곁붙어서 차가운 것들이 견딜 수 없게 차가워서 붙고 붙다가 더는 붙을 수 없어 멈춰버린 상태. 가장 저점에서 엉기고 마는 상태. 그런 건 나쁠까. 좋을까. 아니면 나쁘지도 좋지도 않을까. (86.p)


 정은은 세실리아를 다시 만났다. 하나도 변하지 않는 풍만한 엉덩이와 몸매를 가진 까무잡잡한 세실리아. 송년에 친구들과 그녀에 대해 떠들었던 나는 신년에 그녀를 만나 작업중이라는 구덩이도 보고, 팔짱을 낀 채 함께 닭요리를 먹으러 갔다. 그리고 유럽에서 박지성보다 더 유명해졌다는 세실리아와 술을 마시고 눈물을 흘리고, 어딘가 둥둥 떠서 흘러가는 것 같은 삶에 대해 이야기 나눈다.  그리고 다시 송년이다. 인원은 작년보다 조금 줄어있다.


 세실리아는 그렇게 파고 또 파고 들어가서 어디까지 파들어가고 싶었을까. 그곳은 어떤 고통의 바닥, 말로도 이미지로도 전할 수 없고 오직 행위로만 드러낼 수 있는 상처들이 엉겨 있는 바닥이겠지. 여기가 바닥인가 싶다가도 또다시 바닥이 열리는, 그렇게 만화경처럼 계속 열리는 바닥이겠지. (100.p)


 어쩌면 세실리아는 삶을 알았다고 말할 만큼 무덤덤해지고 무기력해진 자신들에게 그래도 한때 젊고 싱싱했던 시절이 있었다고 말할 수 있는 줄이 아니었을까. 자신한테 끌어 당길 수는 없으나 놓고 싶지 않은 줄말이다. 세실리아는 그런 친구들을 알고 있는 듯 구덩이를 파고  또 판 다음 그안으로 들어가 버릴 것만 같다. 우리들의 세실리아가. 그리고 나와 트 동아리 친구들도. 어쩌면 우리 삶이란 어딘가로 점점 빨려 들어가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지 않은가.각자의 구덩이만 다를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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