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대하고 게으르게
문소영 지음 / 민음사 / 201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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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대하고 게으르게사이에는 어떤 단어들이 있을까. ‘광대하게속에는 무슨 내용들이 들어 있어서 등장부터 무거운 느낌을 주는 걸까. 의구심을 품고 책을 펼쳤는데 제목과 다르게 <게으르게>로 시작한다. 우리의 광대한 포부는 멀리 있지만 게으른 자신은 바로 코앞에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처음 만나는 첫 번째 소제목도 마음에 들었다. 늦게 꽃핀 대가들이라니. 나도 혹시 늦게 꽃필 수 있지 않을까.’(11.p)하는 문장에 밑줄을 치며 내 마음을 들킨 것 같았고, 한편으로 고맙고 위로가 되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또 있구나. 만약 <광대하고>가 먼저 나왔다면 나는 아마  끝까지 이 책을 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광대하고 게으르게>>는 미술 전문 기자인 문소영씨가 삶속에서 만난 다양한 사람들과 예술, 책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써나간 에세이다. 1게으르게로 시작하여 불편하게’, ‘엉뚱하게’, ‘자유롭게’, ‘광대하게’, ‘행복하게로 총 6개의 주제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 개인의 감정에만 머무르지 않고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사회와 문화 전반에 걸친 깊은 사유가 담겨 있다. 그림과 영화, 사진, 책 등을 단순히 스토리위주로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다양한 고민과 새로운 도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차분한 어조로 말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첫 장부터 작가의 생각에 공감하며 읽다보니 어느 새 하루가 저물었다. 책의 중간마다 밑줄 쳐진 문장과 그 옆에 써 내려간 나의 글들이 흔적처럼 남아 있었다. 작가가 언급한 그림과 책, 영화들 중에는 내가 보고 읽고 공감했던 것과 같은 것들이 많았다. <케빈에 대하여>를 보며 새로운 모성에 대한 저자의 생각에 공감이 갔고, 유행하는 먹방에 대한 해석과 위장과 심장을 동시에 건드리는 소박한 음식에 대한 작가의 말에 나도 그렇다고 말해 주고 싶었다. 블랙페이스에 대하여 나조차 크게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던 점도 발견했다.  사소한 것 같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인종차별주의자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을 읽는 동안 물방울처럼 사라진 나의 생각들을 붙잡았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남았다. 스페인 여행 중 티센보르네미서 미술관에서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 ‘hotel room', 1931을 보고 당시에 느낀 기쁨을 단 몇 줄이라도 적어 놓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리듬에 맞춰 발을 까딱거리며 보았던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 대한 감상을 남겼다면 나의 생활은 좀 더 달라졌을까. 20년 동안 새벽 4시부터 묵묵히 빵을 만들어 살아온 제빵사의 이야기를 듣고 오던 날 들었던 다양한 생각을 정리만 했더라도 나의 마음이 조금은 성숙해질 수 있었을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록하지 않았기에 추상적으로 머릿속에 머물다 떠난 것은 더 이상 나의 것이 아니다. 엉성하더라도 나만의 그물을 짜 놓았다면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비교하고 공유하며 삶의 좋은 자양분이 되었을텐데 하고 아쉬움이 남았다.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크고 넓은 세상에서 명성을 떨치기를 꿈꾸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참으로 게으르다. 하고 싶은 것과 해야 할 것이 많지만 몸의 한계는 너무나 뚜렷하고 절망적이다. 그렇다고 금방 포기하거나 외면할 자신도 없다. 그 동안 작게나마 성취한 검험의 달콤함이 머리와 가슴에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어떻게 할까. 프랭크 매코트의 계속 끼적거리세요! 뭔가가 일어날 겁니다.(Keep scribbling Something will happen).”(20.p)라는 말을 지도삼아 지금 내가 해야 할 일과 하고 싶은 일들을 계속 해 나갈 수밖에 없다. 때로는 게으른 내 자신과 싸우다가 가끔은 타협하게 되더라도 매일 조금씩 무언가를 해 나간다면 그것이 쌓여서 어떤 일이 일어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머릿속에 맴돌고 있는 우리의 생각이 각자의 가치관이 되고, 실천의 동력이 되기 위해서는 보이지 않는 추상적인 것들을 어떤 형태로든 표현할 수 있어야 하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매일 무언가를 한다가 될 것이다. 이 책도 작가가 게으른 자신과 싸우거나 혹은 다독이면서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생각한다. 꾸준하게 천천히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무언가 커다란 것을 이루어 내지 않아도 행복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것들이 찾아오고, 또 스쳐지나 간다. 그중에는 손을 내밀어 악수를 하기도 하고, 가벼운 목례만 하고 지나쳐 버리는 사람들이 있다. 또 차를 마시거나 산책을 하며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을 때가 있다. 혹시 그런 휴식 같은 시간이 찾아왔을 때 <<광대하고 게으르게>>에 대해 함께 읽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충분히 우리의 시간을 내어주어도 아깝지 않은 좋은 생각들이 많이 담겨 있는 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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