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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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풍경을 뒤에 두고 살고 있는가

김애란의 <<풍경의 쓸모>>

 

  사진을 찍을 때 가만히 있어야 한다는 걸 알려준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무척 평범한 사람,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날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니까 그런 순간과 만났을 땐 잘 알아보고, 한곳에 붙박아둬야 한다는 걸 알 정도로…… 나이든 사람 말이다. 150.p

 

 

 차를 타고 가다가 우연히 바라본 하늘이나 산은 평화롭기만 하다. 한 번 만나고 헤어질 타인들은 아무 이해관계 없이 만나 웃으며 인사를 나눈다. 자연스럽게 스치는 풍경들은 나와 멀리 떨어져 있기에 아름다워 보인다. 때로는 마음도 편안하게 해준다. 나와 상관없지만 늘 그 자리에 있어주며, 언제든지 내가 원할 때 바라볼 수 있어서 풍경으로써 쓸모가 있다. 그러나 그 풍경 속으로 가까이 들어가는 순간 더 이상 풍경이 될 수 없게 된다. 그 속에 들어가면 주체와 객체가 서로 감추고 싶은 어떤 것들을 들키거나 공유해야 하는 상황이 오고야 만다. 그것은 누구하고나 공유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면 더 이상 풍경이 제 역할을 할 수 없게 되고, 어떤 관계를 맺을지 선택해야 된다. 평생을 함께 하며 관계를 맺고 관리를 해야 하는 대상이 되거나 아니면 그 속에서 완전히 사라지도록 손을 쓸 수밖에 없다.

 

 

 세상은 기본적으로 불행한 곳이다. 삶은 불행의 연속이며 행복은 불행의 휴지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다시 말하면 불행, 불행, 불행 사이 잠시 행복이 끼어 있다가 다시 불행해지는 것이 인생이라고. 그 잠깐의 행복을 영원히 남기기 위해 사람들은 환한 미소를 지으며 사진을 찍는다. 순간의 행복을 박제처럼 만들고 그것을 바라보며 위안이라도 얻어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듯 전투적으로 사진을 찍고 남긴다.

 

 고속도로 주변에 펼쳐진 풍경을 보며 좀 심란했다. 여행 중 몇 번 오간 길인데도 그랬다. 풍경이 더 이상 풍경일 수 없을 때, 나도 그 풍경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 순간 생긴 불안이었다. 서울 토박이로서 내가 중심에 얼마나 익숙한지, 혜택에 얼마나 길들여졌는지 새삼 깨달았다. 그리고 그 때문에 내가 어떻게 중심으로부터 멀어지고 있는지 잘 보였다. 158.p

 

 

 정우의 아버지는 엄마와 아들을 버리고 다른 여인을 향해 떠나갔다. 아버지는 그렇게 스스로 떨어져 나갔고, 두 사람에게 풍경처럼 자리만 남았다. 아버지는 풍경답게 정우가 자라는 동안 기념할 일이 생길 때나 선물을 보내왔고, 아들의 결혼식 때도 딱 풍경에 맞는 역할만 했다. 가족이었으나 더 이상 가족일 수 없는 사람들. 끊어진 관계라고 생각하지만 마지막까지 아주 가느다란 관계의 끈으로 엮어진 사람들은 더 집요하게 끊어지지 않는다. 그 사람들이 서로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미약한 것 같으면서도 울림이 크고, 어떠한 방향에서 날아올지 모르는 아픔과 분노에 무방비로 서있게 만든다. 정우에게 아버지와 곽교수가 그러했다. 아버지는 사라졌다고 생각한 존재였으나 엄마의 아들의 아름다운 풍경을 빼앗아 혼자만 누리고 있는 사람이었고, 곽교수는 정우 자신이 기대고 만들어 나간 풍경이라고 생각했으나 그 또한 허상과 착각으로 만들어낸 거짓 풍경이 되고 말았다.

 

 

 누군가를 향해, 그 누군가가 원한 미래를 향해 해상도 낮은 미소를 짓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사진 속에 붙박인 무지, 영원한 무지는 내 가슴 어디께를 찌르르 건드리고는 한다. 우리가 뭘 모른다 할 때 대체로 그건 뭘 잃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뜻과 같으니까. 무언가 주자마자 앗아가는 건 사진이 늘 해온 일 중 하나이니까. 151.p

 

 

 곽교수는 어느 날 우연히 정우에게 다가와 아름다운 풍경이 되어 주었다. 그와 함께 있을 때 정우는 자신도 멋있는 풍경이 되었다는 착각에 빠졌을지도 모른다. 누구나 마찬가지이다. 능 력과 영향력 있는 사람과 친분을 유지하고, 은밀한 비밀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면 저절로 우월감을 갖게 되기 마련이니까.

 

 

 강의를 마치고 돌아올 때 종종 버스 창문에 얼비친 내 얼굴을 바라봤다. 그럴 땐 과거가 지나가고 사라지는 게 아니라 차오르고 새어나오는 거란 생각이 들었다. 살면서 나를 지나간 사람, 내가 경험한 시간, 감내한 감정 들이 지금 내 눈빛에 관여하고, 인상에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것은 결코 사라지지 않고 표정의 양식으로, 분위기의 형태로 남아 내장 깊숙한 곳에서 공기처럼 배어 나왔다. 어떤 사건 후 뭔가 간명하게 정리할 수 없는 감정을 불만족스럽게 요약하고 나면 특히 그랬다. ‘그 일이후 나는 내 인상이 미묘하게 바뀐 걸 알았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내 과거를 먹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소화는, 배치는 지금도 진행중이었다. 173.p

                                                                             

 

 

 작가는 인간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시기와 질투, 분노, 가장 극에 달할 때 오히려 담담하게 뻔뻔해질 수 있는 냉정한 마음을 표현해 주고 있다. 다른 여인과 평범한 행복을 누리며 찍은 아버지의 사진을 보게 되었을 때, 정우는 자신과 어머니에게 없는 사랑과 환희의 순간을 가진 아버지에게 배신감과 시기, 질투를 느꼈다. 그것은 분노와 부러움의 또 다른 모습이었을 것이다.

 

 

  나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러면서도 가을 풍경 속에 안긴 두 사람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어쩐지 두 사람이, 좋은 일은 금방 지나가고, 그런 순간은 자주 오지 않으며, 온다 해도 지나치기 십상임을 아는 사람들 같아서였다. 182.p

 

 

 나는 어떤 풍경을 뒤로 한 채 살아가고 있을까. 혹시 나도 모르게 내가 만들어내는 허상과 이기심의 풍경을 배경으로 가식적인 미소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는지 두려워지곤 한다. 내가 스쳐간 많은 풍경들, 그 속에서 만난 사람들과 몸과 마음으로 부딪치며 경험한 상황들이 나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이승환이 부르던 노래처럼 부조리한 현실과 불확실한 미래에 내 안에 숨지 않게 나에게 속지 않게 나에게 물어 보며 살고 있는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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