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 - 부엌에서 마주한 사랑과 이별
오다이라 가즈에 지음, 김단비 옮김 / 앨리스 / 201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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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표제가 부엌에서 마주한 사랑과 이별 <그 남자, 그 여자의 부엌>이었다. 부엌이란 장소는 참 신기하다.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같지만 누군가 그 안에 들어가 무언가를 하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1년에 네 번 정도, 그러고 보니 봄, 여름, 가을, 겨울 대전에 사는 친구 집에 찾아가 하루를 머물다 온다. 서울에서 내려간 두 명이 초인종을 누르면 함께 사는 다롱이(반려묘)가 야옹 하고 먼저 나와 반겨주었는데 이제 그 녀석도 나이가 들었는지 올해는 우리를 슬쩍 한 번 쳐다보고 말았다. 손을 씻고 식탁에 앉으면 친구는 저녁과 후식, 차까지 코스로 준비해놓는다. 우리는 식사를 하며 그 동안 있었던 일을 주고받는다. 올 봄에 함께 가기로 한 스페인 여행 준비와 얼마 전에 읽었던 책에 대한 이야기. 또 조카들과 고양이에 대해 말하고, 직장 생활에 대한 스트레스도 털어놓는다. 나도 모르게 마음속에 들어있던 이야기들이 술술 나오고 만다. 그렇게 우리는 친구에서 밥을 함께 먹는 식구가 되었다.

 

…… 그곳에는 반드시 크고 작은 이야기가 있다. 부엌이란 참으로 희한한 공간이다. 첫 만남임에도 부엌에서 마주하면 마음 깊숙한 곳에 묻어둔 응어리와 고충을 털어놓게 된다. 과거의 쓰라린 이별이나, 현재의 고민과 골칫거리를 토로하는 이도 있다. …… 왜 이토록 부엌에는 사람 냄새 나는 이야기가 가득할까. …… 대부분의 사람들은 기운이 있는 날이나 없는 날이나 밥을 지어야 한다. 언제 어느 때건 부엌에 서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는 변함이 없다.

(5~6.p)

 

  언젠가부터 집으로 사람들을 초대하여 밥을 함께 먹는 일들이 사라졌다. 손님들을 초대하여 음식을 대접하고 즐거운 시간을 나누며 서로의 삶을 나누던 우리 부모님 세대와 다르게 대접을 하거나 모임을 가질 때, 대부분 음식점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다보니 서로의 민낯이나 속마음을 나누기 더더욱 힘들어졌다. 적당히 분위기를 맞추고 주어진 시간을 잘 보내면 서로가 시간을 함께 보내었어도 그들의 삶으로 들어가기가 어렵다. 집이란 그만큼 사적이면서도 내밀한 공간이고, 집 안에서도 부엌은 더더욱 속살을 보여주는 것처럼 모든 것을 드러내는 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집으로 초대하고 자신이 늘 이용하는 부엌에서 익숙한 재료로 음식을 만들어 대접받는 일이 귀하고 아름답다. 초대하는 이도 초대받는 사람도 우리는 서로에 대해 마음을 나누며 함께 기뻐하고 슬픔을 나눌 수 있는 사람임을 말하지 않아도 알기 때문이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그들의 부엌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었다. 그들의 식탁에 앉아 함께 식사를 하며 삶에 대해 나누는 것 같았다. 인스턴트와 술을 마시고, 과식을 한 뒤 약을 먹는 남편의 이야기를 들으며 현대 직장인 남자들의 현실적인 모습을 보는 것 같았고, 채식을 권하는 부인과 싸우는 모습에 아 저들은 곧 헤어지게 되겠구나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54년이란 긴 시간을 한 공간에서 만들어낸 음식을 먹고 살아온 노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사람의 관계 속에 세월이 쌓이고 서로에게 스며드는 나 아닌 또 다른 나를 그려보았다. 같은 음식을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은 자신들도 인식하지 못한 채 서로를 닮아가게 된다. 그 모습이 신기하면서도 아름답다.

 

 

  부엌에 서서 음식을 만든 시간이 짧든 길든 혹은 혼자 먹는 것이나 함께 먹는 음식이나 그것을 직접 만든다는 것은 실제로 만지고 볼 수 있는 몸을 가진 존재들과 시간과 마음을 나누겠다는 또 다른 표현이 될 것이다. 그래서 나와 타인을 위해 할 수 있는 가장 고귀한 일이 음식을 만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을 먹고 지금까지 살아왔기 때문이다.

 

 

  조르바 처럼 말하고 싶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말해주시오, 그러면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말해 주겠소.” 나의 친구는 우리를 위해 밥도 하고, 떡국도 끓였다. 모이면 즐겨 마시는 와인과 함께 요리한 불고기를 내놓은 다음 자신이 평소에 먹는 김과 김치 등 반찬을 꺼냈다. 식사를 마치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 내가 좋아하는 감바스를 뚝딱 만들어냈다. 좋아하는 홍차도 예쁜 다기에 담아 내놓았다. 다른 사람의 손을 거쳐 내게 온 음식들이 맛있어서 행복했다. 불이 꺼지지 않는 부엌은 온기가 있고 따뜻하다. 그리고 힘들고 지친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요리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 번쯤은 그곳에 서고 싶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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