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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박상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9월
평점 :
단편이라고 하기에 분량이 꽤 많았던 표제작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의 긴 제목에서 느껴지는 복잡하고 미묘한 감정들, 그것을 하나씩 풀어나가는 인물들의 섬세한 몸놀림, 넘어지고 상처받는 사회에서 한 개의 작은 점으로라도 남고 싶어 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아무렇지 않게 접하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소수자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과장하거나 동정심을 유발 하지 않은 채 그대로 그려내고 있다. 낯선 세계에 대한 낯설지 않은 그의 글이 작품을 읽는 사람들을 흡수한다. 우리는 이 사회를 이루고 있는 한 개의 점이라고. 아이러니한 유머가 절망의 습기를 머금고 작품 곳곳에서 올라오지만 어둡거나 음흉하지 않아 좋다. 결국 우리는 세상에 태어나 하나의 인생을 살다가 떠나갈 사람들이니 점으로 남은 사람들도 언젠가 지워지고 말 것이다.
현대무용입니다. 작품의 제목은 ‘나는 세상의 아주 작은 점이다.’
……
우리는 세상의 작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
그의 말이 맞았다. 우리는 세상의 아주 작은 점조차 되지 못했다. 점은커녕 그 어떤 것도 되지 못했다. 인생을 걸고 했던 일들은 모두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되어버렸다. 칸영화제를 가기는커녕 제대로 된 퀴어 영화를 찍지도 못했고,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감정을 느끼는지조차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어영부영 나이만 처먹었다. 동성애자이면서 제대로 동성애를 하지도 못 했고 그것도 모자라 이성애자들로부터 마이크 하나조차 제대로 훔치지 못했다.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들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 215.p
세상이 놀랄만한 영화를 찍고 싶었으나 이제는 성인영화를 복사한 불법 사이트 관리자에게 항의 메시지를 보내는 일을 하고 있는 ‘나’와 세상에 한 점이 되고 싶었다는 무용가 ‘왕샤’는 우습게도 자이툰 부대에서 만나 서로의 몸을 탐하고 좋아하게 된다. 세상에는 자신들을 거부하는 것뿐이며 이루고 싶었던 일들은 시간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다. 하루하루 고요하고 지루한 일상이 지나가는 것 같지만 세상에서 소외된 것 같은 두 사람은 끊임없이 몸부림치다가 쓰러진다. 여전히 하나의 점이 되지 못한 채.
‘나’와 ‘왕샤’처럼 작가가 그려내고 있는 인물들은 가난과 편견, 무너진 꿈을 부여잡고 있는 나약한 자신과 벽 같은 현실에 가로막히고 있다. 그러면서도 피할 수 없는 가상의 세계에 자신의 욕망을 심어놓지만, 결국 삶도 관계도 뒤죽박죽 알 수 없는 허공 속에서 부유한다. <중국산 모조 비아그라와 제제, 어디에도 고이지 못하는 소변에 대한 짧은 농담>은 ‘나’와 제제의 이야기이다. ‘나’는 제제가 게이전용 마사지 숍에서 일하는 것이 불안하지만 그를 막지 못한다. ‘나’는 제제가 잠들기 전에 들려주는 우스운 이야기에 기대어 외로움을 이겨내려고 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패리스 힐튼을 찾습니다>와 <부산국제영화제>는 하나의 연작소설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잃어버린 개를 찾아 헤매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이 마치 블랙코미디 영화를 보는 것 같다. 그 사람들이 거짓말을 하고 부산으로 향한다. 그곳에서 또다시 위선으로 가득한 친구들을 만나고 서로의 관계를 생각한다.
…… 우리는 그 많은 추잡한 일들을 공유하면서도 정작 자신의 가장 내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하긴 상대방에게 진실을 숨긴 채 다른 것들을 욕망하며 사는 우리의 관계야말로 지극히 일반적이고 정상적인 커플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부산국제영화제> 123.p
철저히 연출된 모습만 보여주고 행복을 연기해 보지만 결국 그들에게 남는 것은 손에 쥐어보지 못한 꿈과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구분하기 힘겨워진 텅 빈 자신들이다. 한편 <조의 방>. ‘나’는 조와 함께 머물렀던 그의 방에서 젊음과 사랑과 신뢰를 빼앗겼다. ‘나’는 손님에 따라 유나가 되기도 하고, 또 다른 누군가가 되며 과거의 자신을 잊으려고 한다. <햄릿을 아십니까?>의 ‘나’는 10대와 20대 초반까지 연습생 시절을 보내며 결국 데뷔도 하지 못한다. 인심 쓰듯 찾아온 방송국 관계자의 서바이벌 오디션 나이 많은 연습생 캐릭터를 제안을 받고 출연하지만 결국 다시 내려오고 만다. 알 수 없는 미래를 위해 흘린 땀과 빚을 지면서 바꾼 얼굴은 현재의 삶에 절망과 포기만을 안겨주었다.
사람들은 참 많은 노력을 하면서도 많은 것을 잃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아프고 무덤덤해지고 외로우면서도 혼자이기를 바라게 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하게 된다. 안보윤의 <소년7의 고백>은 읽는 내내 불편했고, 박상영의 <알려지지 않은 예술가의 눈물과 자이툰 파스타>는 이해하기 다소 난해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황현산, 허수경 선생님이 걸어간 길에 동행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앞 세대와 다음 세대가 또다시 만날 수 있다는 믿음을 안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