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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7의 고백
안보윤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3월
평점 :
안보윤의 <소년7의 고백>속에 담겨있는 아홉 편의 소설을 읽다보면 우리의 어두운 자화상을 마주하게 된다. 누가 강자이고 약자인지 가해자와 피해자가 구분되지 않는다. 선과 악은 자웅동체처럼 한 몸을 이루고 우리들을 바라본다. 우리 사회에는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 수만큼 처한 상황이나 다양한 생각, 행동의 결정과 그 이후의 삶 또한 다양하다. 그러나 쉽게 외면하고 잊혀지는 쪽은 나약하고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이미 세상에 대하여 포기하기를 먼저 배우고, 그것에 익숙해진 사람들이다.
<소년7의 고백>의 소년은 취조실에서 자신의 목소리만을 붙잡고 진실을 말하려고 하지만, 사실은 무시된 채 뻔뻔한 성폭행범으로 변해간다. 소년이 애타게 찾는 할머니는 그를 구해줄 힘이 없다. <포스트잇>의 ‘나’또한 아버지에게 살해당한 소녀를 애도하다가 언론에 의해 냉혈하고 파렴치한 사람이 되어 쫓겨나지만 결국 소녀의 죽음에 가해자였음을 보여준다. <불행한 사람들>에 나오는 ‘주은’과 ‘화진’은 생활비와 등록금을 갚기 위해 존엄성을 무시당하며 일을 하지만, 그들이 얻은 것은 초라한 자기 현실과 더 이상 만나고 싶지 않은 자기를 닮은 불행한 사람들이다.
- 궁금해서요. 주은씨는 어떻게 견뎌내고 있는 건지. 그 복도에서 어떻게 괜찮을 수 있는 건 지 궁금했어요. 난 일하는 내낸 존엄이라든가 긍지라든가 그런 게 사라져버리는 기분이었 거든요. 인간의 영역에서 매일 미터씩 꾸준히 밀려나는 기분요.
- 저도 딱히 괜찮은 건 아니에요. 복도는 뭐 …… 끔찍하죠.
- 주은씨도 그런가요. …… 우리 참 불쌍한 사람들이네.
불쌍하고 불행한 사람들, 여자와 나처럼, 나와 화진처럼, 스스로를 스스럼없이 불쌍하다고 지칭하는 사람들이. <불행한 사람들> 89,91
<일그러진 남자>와 <여진>, <이형의 계절>에서는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 서로에게 희생을 강조하고, 자기 삶만 배려받기 원하거나 자신을 위해 타인을 이용하다가 결국 자신도 파멸해 버리고 마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외로움을 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을 곁에 두지만 결국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일그러져가는 불쌍한 자화상을 반복하고 있다.
소년은 이제 알 수 있었다. 소년과 소년의 누나 안에서 어떤 세계가 완전히 막을 내렸음을. 희망이나 기적이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같은 것들을 간직하고 있던 세계가 지금,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음을. 소년은 도도의 발가락과 두두의 발뒤꿈치를 간신히 바닥에 붙이고 섰다. 서서히 땅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여진> 164.p
소설을 읽으면 우리가 얼마나 안간힘을 쓰면서 하루를 버티고 살아가는 지 알 수 있게 된다. 소설을 읽고 분노하기도 하고, 아파하면서 내가 살아온 삶을 생각하며 나는 이렇게 힘들지도 불행하지도,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지도 않았다고 스스로 자위해보지만 가슴 한 구석이 찌릿찌릿해지고 자신을 부정할 때 느낄 수 있는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강남역 사건이나 어린이집 사건 등 나와 멀리 떨어져있는 불행한 사건에 연류 된 사람들에게 동정하고 분노했지만 그것은 쉽게 잊혀졌다. 바쁜 일상을 살다가 부딪치는 사람들을 무시하고 외면했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땐 일부러 듣지도 보지도 않기 위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나만의 세상에 몰두했던 것도 함께 말이다. 그 순간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가 사고를 당하거나 고통의 시간을 마주하였을 것이다.
소설은 인간의 양심에 호소하거나 대책을 찾고 해결방법을 제시해 주지 않는다. 그래서도 안 되고 말이다. 소설은 곧 인간이고, 삶이다. 안보윤의 <소년7의 고백>을 읽으며, 우리가 날선 불행을 매일 마주하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나’를 포함한 이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부조리와 불행이 난무하는 시간 속에서 때로는 실패하고 좌절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또 하루를 견디고 버티면서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소설을 써 나가는 동안 작가의 마음이 많이 힘들고 어려웠을 것이라는 짐작이 갔다. 그래도 사실을 마주하고 인정하게 된 것은 나의 변화이다. 우리 사회의 민낯을 드러내고 불행한 삶을 조명하면서 소설과 더불어 우리는 계속 나아가게 될 것이다. 고통과 상처는 그대로 둔 채 또 살아있는 사람들은 계속 살아가야하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