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
허수경 지음 / 난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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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 허수경은 시인으로 더 많이 알려져 있지만 정작 나는 작가의 시보다 소설 <아틀란티스야, 잘 가>와 산문<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를 먼저 읽었다. 정작 시는 선생님의 암투병과 부고를 접하고 읽게 되었다. 그러나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 시대의 올곧고 단단한 아름다운 작가를 잃었다는 것이 슬플 뿐이다.

 

  <그대는 할말을 어디에 두고 왔는가>의 회색빛 표지를 넘기면 친필로 ‘2018년 허수경입니다.’라고 흘려 쓴 간결한 문장이 먼저 나온다. 그 문장이 작가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았다. 이 책은 서문에 해당되는 짧은 글 15편과 여섯 번째까지 이르는 편지 형식으로 이루어졌다. 글을 읽으면 작은 체구의 선생님을 그대로 만나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서울을 떠나 독일에서 살다가 묻힌 작가는 친구들에게 이야기 하듯 천천히 문장을 써내려갔다.

 

만일 서울에서 계속 살았더라면, 이 많은 이야기를 나는 친구들에게 했을 것이다. …… 그러니까 내가 이름 없는 나날이라고 부르는 이 나날 동안 나는 혼자서 먼먼 그들에게 말을 걸었다. <이름 없는 나날들>15.p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과거의 잊혀 진 흔적을 찾는 고고학에 열중하면서 그녀가 싸웠을 고독과 외로움이 그대로 다가왔다. 강제로 주어진 일과 머물러야 할 곳이 정해져 있지 않는 이상 각자가 서있는 장소와 일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자 의지의 결과이다. 그녀는 이 땅을 떠나 독일에 머물렀고, 그곳에 묻혔다. 그래서 이 책은 우리에게 붙여진 편지로 남게 됐다. 그렇다면 편지를 받은 우리에겐 그것을 읽고 답하는 시간이 남았다

                 

…… 성경에 그려진 대홍수를 찾거나(이건 자신의 정체성의 근원을 찾는 일이다) 아니면 커다란 박물관을 채울 유적을 찾거나(이건 현재 자신이 가진 정체성의 위상을 높이려는 일이다) …… 모든 것의 시작을 좇아가는 자의 뒷모습은 언제나 좇기는 자의 모습을 하고 있다. 시작 전에 시작이 있는 법이다.

<모든 것의 시작을 좇는 자>, 108.p

 

 

  우리에게 Good-bye라고 인사를 건넨 두 분을 애도하기 위해 닫힌 문을 열고, 또다시 그 길을 걸어가는 젊은 작가들을 만나고 싶다. 두 분이 자신들 보다 먼저 시작한 이들을 좇아갔던 것처럼 그들을 좇아가는 수많은 작가들 또한 글쓰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가 누군가를 라고 부른다.

내 안에서 언제 태어났는지도 모를 그리움이 손에 잡히는 순간이다. <개정판 서문> 중에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동안 두 분의 부제가 안타깝고 더 이상 읽을 수 없게 된 글들이 그리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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