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여기가 좋다
한창훈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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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눈이 내리던 밤

    나는 여기가 좋다 중 <밤눈>

 

 

  한창훈 작가의 글은 소설보다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로 먼저 접했다. 작가의 작품이 아닌 에세이에는 살아온 날과 성향, 생각 등 작품 속에 담고자 하는 작가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있기 때문에 소설가는 직접 만나고 있는 기분이 든다. 내가 느낀 한창훈 작가의 글속에는 바다와 자연, 인간에 대한 투박하지만 순수한 그의 마음이 들어있었다.

  소설 <밤눈>을 읽는 동안 아무도 귀 기울여주지 않을 것 같은 작은 술집주인의 사연을 술 한 잔 앞에 두고 조곤조곤 듣는 것 같았다.

 

 

여인네는 약간 성가시기는 하지만 사람 사는 것이 다 그렇지 않으냐는 표시로 슬쩍 어깨를 흔들며 돌아왔다. 묶어올린 머리 뒤로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39.p

 

 

 첫 문장을 시작으로 이 소설의 또 다른 주인공은 바로 이다. 그러나 여인의 인생과 함께 밤새 내리는 눈은 말하는 이나 듣는 사람의 마음을 따뜻하게 덮어준다. 마치 담요처럼. 눈 때문에 소설이 살아나고 힘든 일상을 살아내는 서민들의 삶도 살아난다. 그들의 하루하루에 위선은 없다. 실없는 희롱과 걸쭉한 농담이 오고가지만 고단한 인생을 살면서 만들어낸 마음의 이력은 그것을 받아치고 넘겨버린다. 그 위로 눈이 오고 발자국을 덮고 쌓이기를 반복한다.

 

 

 유독 춥고 눈도 많이 오는 해가 있었소이. 시래깃국 한 사발 퍼먹고 돌아서면 배창시가부르르 한번 떠요. 그러면 또 고파. 그때 이런 눈이 왔소.

  오메, 밥 온다.

  그때는 어찌 그리 다 짜잔했으까. 담벼락에 눕다시피 기댄 언니가 이렇게 콧물을 주욱 닦음서 그럽디다.

  아이 봐봐. 밥 내린당께.

  …… 그렇게 들어서 그런지 참말로 쌀밥 덩어리 같습디다. 57.p

 

 

 쌀밥 덩어리 같은 눈을 통해 가난한 가족의 허기짐이 느껴졌다. 그 눈이 하늘에서 말을 하기 위해 내리는 것과 사랑을 할 때 눈이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으며, 결국 그 눈이 누군가의 무덤을 만들기 위해 내리는 것이라는 주인공의 말은 시보다도 더 아름답다.

  문학이 주는 위로가 참 좋다. 위대한 인물의 업적과 성공담이 아닌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것 같은 존재감 없는 고단한 인생을 살다간 사람일지라도 영원히 간직할 수 있는 꽃 같은 순간이 있다는 것을. 누구나 인생이란 퍼즐 안에 잊지 못할 환희 몇 조각은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 퍼즐이 있다는 것을 소설이 아니면 무엇을 통해 말할 수 있을까.

 

 

 눈은 함북 내리고 또 내려 아예 세상을 온통 과거로 만들어버리고 있었다. 63.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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