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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깊다 - 서울의 시공간에 대한 인문학적 탐사
전우용 지음 / 돌베개 / 2008년 5월
평점 :
사실 이 책은 우연히 얻게된 책이다. 한참 '돌베개' 책들을 읽다가 책 사이에 끼워온 '독자엽서'가 반가워서, 그렇게 뭔가 직접 써서 보낸다는게 왠지 설레여서 몇자 끄적여서 보낸 답례(?)로 받아버린 거다. 예상치 못한 택배를 받았을때, 그 포장을 뜯을때의 설레임이란! 솔직히 제목을 딱 보는 순간 '서울 명소안내'뭐 이런류인줄 알았다. 그래서 한동안 거들떠도 안보다가 우연히 이 책에 대한 호평(!)을 보고서야 집어들었다. 난 다른사람 리뷰에 너무 약하다니깐.
최근 '서울'에 관해 읽은 글들은 전부 부정적인 것들 일색이었다. 심하게는 '지방'의 피를 빨아먹고 사는 흡혈귀같은 존재라는 것부터, 외국의 수도들과 비교하면 특색이 없다느니, 혹은 치솟는 수도권 아파트값 등등. 이 책은 서울 예찬도 비난도 아닌 인문학적'비평'이다. 조선왕조부터 시작된 서울의 생태와 문화, 근현대 서울의 일상 등등. 신랄한 비판이나 톡톡쏘는 맛은 덜하지만 제목처럼 뭔가 '깊이'가 있다. 별 생각없이 받아들인 일상의 단어 또는 유적지의 기원을 추적하며 역사의 흔적들을 더듬는 맛이 좋다. 사물 하나하나에 담긴 신비한 비밀이야기를 풀어내는 할아버지의 이야기보따리 같은 느낌.
내가 살고있는 서울. 요즘같이 변화가 빠른 시대에는 시간이 '공간'의 동질감을 희석시켜 불과 몇십년 전 서울의 사진들이 낯설기만 하다만. 서울이 이 나라의 '중심'이 된 것은 벌써 600년도 더 된 일이다. 그때부터 서울은 "모든것을 빨아들이는 괴물의 입"이었다. '도시'는 태생적으로 자신의 생존과 확장을 위해 농촌을 수탈해야 한다. "조선시대 내내 서울은 사실상 유일한 도시였고 다른 도시의 발전 가능성을 봉쇄한 채 모든 경제적/사회적 자원을 독점하면서 커 나갔다. 특히 조선 후기 서울의 빠른 변화는 '경향분리'현상 - 더 정확하게는 지방의 배제와 소외 - 과 더불어 진행되었다.(p.28)" 일정한 경계를 잡아 내부는 동일시하고 외부는 배제하는 졸렬한 논리는 시대를 초월하는 고매한 원칙인지 ^^ '격조높은 풍류생활'의 상징처럼 보이나 사실은 '요정문화'나 '호텔 밀실 문화'의 원류인 '정자문화'는 또 어떤가. 꽤나 오랫동안 이 땅의 '얼굴마담'을 맡고있는 서울에 대한 접근은 이렇듯 정치적일수밖에 없다.
역사학자의 책이라 그런가. 서문부터 역사와 문화가 '상품'이 되어버린 현실에 대한 비판이 등장하고 군데군데 소비문화에 대한 따끔한 지적들이 보이는데, 즉각적으로 튀어나온 날선 비판이라기 보단 오랫동안 뜯어보고 곱씹어 찬찬히 살펴보는듯한 '원숙함'이 담겨있다. 저자의 역사학자적인 통찰력으로, 때로는 저명한 사회학자들의 의미심장한 말들을 동원해서 어떤 현상에 대한 철학적/정치적 함의를 일깨워주는 부분이 많다. 저자는 10년넘게 '서울학 연구소' 상임위원을 맡았고 서울에 관한 책도 몇권 쓸만큼 '베테랑'이다. 연구소에서 여러 분야의 젊은 학자들과 토론하면서 서울에 대한 안목이 달라졌다며 가급적 우리 역사학에서 다루지 않았던 부분을 담고자 했다는 서문의 한 구절이 새삼 눈에 띈다. 학계에서야 어떻든 대중들은 항상 새로운 시각에 목말라 하니까.
이 책은 연재물들을 추려서 엮은 것이다. '서울'이라는 이름으로 묶인 독립된 스물 여덟개의 단편들이 저마다의 색깔과 음색을 낸다. '파리국', '제중원', '촬영국' 등 이름에서부터 먼지냄새가 풀풀 나는 소재들도 있지만 '등 따습고 배부른 삶', '똥물, 똥개', '땅거지' 등 서울의 특징이라고 하기엔 밋밋한 소재들도 파고 들어가면 단어에 쌓인 '서울의 역사'를 보여주는 훌륭한 예시가 된다. 풍부한 사진자료도 책을 읽는 재미를 더한다. 연재물의 특징상 대부분의 글들이 주제와 별 상관없어 보이는 곁두리 이야기부터 시작해서 점차 파고들며 관련 에피소드나 역사적 사실들을 덧붙이는 형태인데, 다소 산만한 감이 없지 않지만 딱딱하게 자기 할말만 하고 끝나는 '일관된'역사책들에 비하면 가독성은 훨씬 좋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책인만큼 주제 선정이나 전개 방식이 흥미 위주로 갈 수 밖에 없었겠지만 저자의 내공이 만만치 않은지라 어느 단편을 보든 결코 가볍지 않은 통찰력으로 여러 '함의'들을 끄집어낸다.
리뷰를 쓰려고 목차를 훝다가 '복수의 하나님'이란 글씨를 보고 새삼 놀라 들춰보니 아하, 명동성당 얘기였구나. 명동성당이 경복궁을 겨눈 쇠뇌였다는 사실을 아는지. "이 땅에 처음 세워진 천주교회들은 '복수의 하나님'이 무도한 세속 권력에 희생된 '하나님의 성도'들을 어떻게 위로하는지, 또 그들에게 어떤 미래를 예비해주었는지를 명료하게 보여주는 가시적 증거물이었다. 명동성당은 십자가가 달린 뾰족탑을 경복궁정문, 광화문을 향해 세웠다. 하늘에서 내려다보면 마치 쇠뇌로 경복궁을 겨누는 형국이다. 아마도 구약시대의 하나님이었다면 그의 종들이 폭군의 처소를 향해 쇠뇌를 겨누고 있는 모습을 보시고 무척 흡족해하셨을 것(p.158)" 글 끝자락에는 "아관파천이후 고종이 경복궁을 버리고 새로 경운궁을 정비한데는 명동성당을 보고 싶지 않았던 심리가 작용했을지도 모른다"는 조심스러운 추측이 덧붙여 있다. 익숙한 공간이 머금은 역사의 흔적을 더듬는 일은 늘 새롭다. 정치상황의 변화에 따라 '공간'을 바라보는 시각의 변화를 살피는 것도 재미있다.
'상품화된 역사'에 대한 거부감 때문일까. 자본주의, 특히 '물신숭배'에 관한 비판이 곳곳에 묻어난다.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하느님께 봉헌하기 전에도 서울은 '신시'였다만. 지금의 서울은 자본주의 시대의 신, 신중의 신 '물신'의 도시다. "서울은 중세적 중앙집권국가에서 유교적 왕신의 도시로 만들어졌지만 왕신이 그 현실적/상징적 권위를 완전히 상실한 뒤에도 새로운 종교의 성지로 변신하는데 성공했다.(p.21)" 천민이나 양반이나 '경관'만은 함께 누릴 수 있었던 서울 사람들의 '시각적 유대'는 사라진지 오래. "자본주의적 가치법칙은 경관의 소비에도 예외가 없어 이제 초고층 건물 초고층에 살지 않는 한, 어느곳에서도 온전히 조망할 수 있는 능선은 없다.(p.159.)" 동네 여느 중국요리집에 붙어있는 관우초상은 시대의 흐름에 맞게 재물을 늘려주는 사업가로 변신. (27. 와룡묘) '초정리 광천수'의 충청남도 초정은 서울사람들을 위해 마구 퍼올린 탓에 개울도 마르고. "서울이 지방으로부터 모든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된 것은 이미 오래전이지만, 이제는 땅 속에 숨어 흐르는 물까지 빨아들이는 지경에 이르렀다(24. 물장수)" 한때 사라졌던 '물장수'는 이제 다른 모습으로 다시 나타났고 이젠 수돗물도 마법같은 단어 '민영화'와 짝이 되는것을 걱정해야 한다. 서울의 역사를 되짚는 일은, '물신'을 변천을 추적하는 것과 뗄 수가 없다.
이 책에 대한 리뷰를 훝어보니 '깊다'에 대한 말들이 많다. '깊이'는 공간에 대한 개념이지만 대개는 시간과 결부되어 쓰이니 이 책의 제목으로 잘 골랐다 싶다. 공간이 품고있는 수많은 사연들, 시공간을 들여다보기. '서울'이라는 카리스마를 파헤치는 책이다. '서울의 숨은 명소 안내서' 쯤으로 생각했던 첫인상이 '오해'라는 것이 기분좋을 줄이야.